안녕, ‘금’쇼핑 3개월차에 돌입한 객원 에디터 손현정이다. 金쇼핑이 아니라 禁쇼핑, 그러니까 갑진년이 된 이후로 단 한 벌도 사지 않았다. 갑자기 쇼핑 금지 운동에 나선 이유는 단 하나. 힙생힙사, 힙 때문에 살고 힙 때문에 죽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하겠다 싶어서다.
쇼핑은 끊었지만, 힙함과 트렌디함을 포기할 수 없는 나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2024년 떠오르는 패션 트렌드가 바로 ‘긱시크룩’과 ‘걸코어룩’이라는 것! 몇 년 째 옷장을 지키고 있는 아이템을 꺼내입기만 해도 트렌디함을 유지할 수 있으니 쇼핑 금지 운동가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올드머니룩처럼 비싼 아이템도 필요없다. 오늘은 긱시크룩과 걸코어룩에 대해 설명하고 룩을 완성시킬 수 있는 몇가지 아이템을 추천하려고 한다.
“촌스럽지만 멋진 긱시크”
긱시크란 무엇인가. 긱시크는 괴짜를 뜻하는 ‘긱(Geek)’과 세련됨을 뜻하는 ‘시크(Chic)’가 만나 괴짜스러울수록 멋진 스타일을 뜻한다. 수학, 공학, 과학에 능하거나, 지능이 뛰어나지만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사회성이 없는 아이 등등. 공부보다는 노는 게 좋은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런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런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옷차림을 한 이들은 미국에서 너드(Nerd)라고 불리며 따돌리거나 놀린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이미지가 있다. 흔히 공대생하면 패션에 관심이 없고, 뿔테 안경을 쓰고 체크셔츠를 입은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세상이 변했다. SF 영화나 만화에 심취한 덕후는 자라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예전에는 무시 받던 덕후들의 위상이 높아졌다. 몇몇 덕후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 대학에 입학해 수억대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검은 목폴라에 청바지를 입으면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고, 회색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으면 마크 주커버그를 떠오르듯 그들의 성공으로 인해 너드의 취향이나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진짜 이런게 유행이야?’하며 ‘힙함’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긱시크는 너드한 느낌에 은근슬쩍 시크함을 섞어 반전미를 보여주는 것이 포인트. 막상 두꺼운 안경테와 세련된 90년대 스타일로 입는다면 그 상반된 조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걸코어”
작년에는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며 수많은 XX코어가 탄생했다. 바비코어, 블록코어 등등. 그 중에서 누가 살아 남았을까? 바로 발레코어룩이다. 발레리나가 입는 스커트 튀튀를 본떠 만든 스커트, 니삭스, 리본 아이템 등 발레복을 일상복에 접목시킨 발레코어룩은 걸코어룩으로 변형되어 돌아왔다. 발레코어의 영향을 받은 걸코어룩(Girl Core Look)은 소녀(Girl)와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이라는 뜻의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다. 여성만을 위한, 가장 여성스러움을 강조할 수 있는 패션이라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발레코어가 예쁘긴 하지만 레오타드(상의와 하의가 연결된 발레복)나 튀튀는 쉽게 소화하기 힘들다. 발레코어의 영향은 받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걸코어룩에는 도전해보자. 걸코어룩은 좀 더 쉽다. 장미와 같은 꽃무늬, 리본, 셔링 디테일이 더해진 조금 더 로맨틱하고 러블리한 옷이다. 썸남과 데이트할 때 비장의 무기처럼 꺼내 입으면 된다. 짧은 기장의 하의나 꽃잎을 형상화한 스프링 프린트가 들어간 상의, 펀칭이 들어간 미니 원피스 같은 것들. 여기에 레이스나 리본이 달린 양말이나 헤어핀 등 악세사리로 포인트만 주면 끝.
긱시크나 걸코어 모두 쉽다. 지금까지 이렇게 완성하기 쉬운 패션은 없었다. 비싼 옷을 사지 않고도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다니 손 안대고 코 풀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무렇게나 입는다고 해서 긱시크나 걸코어가 되는 건 아니다. 자칫했다간 긱시크가 아니라 ‘긱’, 걸코어가 아니라 ‘걸’이 될 뿐이다. 쉽게 긱시크과 걸코어를 완성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세가지씩 준비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스타일 중에 하나쯤은 당신의 취향일 수도 있으니 끝까지 읽어주길.
긱시크룩 완성하기
젠틀몬스터(gentlemonster)- 아토믹 02(B)
이게 빠지면 절대 긱시크가 아니다. 긱시크룩의 본체라고나 할까? 지적인 이미지에 현대적인 세련미를 더해줄 ‘이것’은 바로 안경! 잡화점에 깔린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안경을 써보며 친구들과 웃어본 적 있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알이 큰 뿔테나 오히려 얇은 테 또는 무테 안경 등으로 숨어 있는 ‘너드함’을 잔뜩 부풀리면 게임 끝.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가상의 고등학교를 모티브로한 캠페인을 펼치는 24SS 옵티컬 컬렉션을 선보였고, 레트로한 무드의 볼드한 안경을 공개했다. 그중에서도 아토믹 02(B)처럼 템플 팁과 노즈 패드에 심볼 디테일이 들어간 안경이라면 더욱 힙해보일 것이다. 구매는 [여기].
인스턴트펑크(INSTANTFUNK)-오버숄더 에코 스웨이드 자켓
클래식하면서도 여러 스타일과도 잘 어울리는, 테일러링이 가미된 자켓을 걸치는 것을 추천한다. 시크한 무드의 블랙 롱코트나 어깨에 힘을 준 파워숄더 블레이저 같은 것 말이다. 주어진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깐깐한 비서같은 느낌이랄까? 자켓을 통해 너드의 프로페셔널함을 강조하자. 블랙이나 차콜처럼 무난한 컬러의 자켓이 많다면 인스턴트펑크의 ‘오버숄더 에코 스웨이드 자켓’을 장만해보는 건 어떨까. 인스턴트펑크는 24S/S에서 긱시크와 걸코어 모두 완성할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템들을 선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이 스타일링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뻔하지 않은 스웨이드 소재에 워싱을 넣어 빈티지함을 더해 주기 때문에 자켓만 입어도 재미있다. 어깨가 강조된 오버사이즈에 허리 라인이 들어가있어 실루엣까지 매력적이니 긱시크에 걸맞는 아우터라고 할 수 있다. 구매는 [여기].
마뗑킴(Matankim)-BERMUDA SELVEDGE DENIM PANTS
테일러링이 들어간 자켓에 딱 어울리는 팬츠를 찾고 있다면 마뗑킴의 ‘BERMUDA SELVEDGE DENIM PANTS’만한 게 없다. 원단의 조직이 불균형하고 뻣뻣해서 입는 맛이 좋은 셀비지 원단에 핀턱 디테일, 무릎을 살짝 덮는 애매한 기장이라 롤업해서 입기도 좋은 버뮤다 팬츠는 너드함이 넘쳐흐른다. 이런 바지라면 어떤 니트나 체크 셔츠를 입어도 촌스럽지 않게 긱시크를 완성할 수 있겠다. ‘짜리몽땅’해보이는 다리 라인은 너드함을 귀여움으로 탈바꿈시킨다. 구매는 [여기].
걸코어룩 완성하기
루에브르(LOEUVRE)-Fringe Collarless Tweed Jacket
얼굴이 화사해보이는 핑크빛 자켓을 찾는다면 루에브르의 ‘Fringe Collarless Tweed Jacket’을 추천한다. 탁한 핑크가 아니라 맑은 파스텔 핑크라 색감부터 합격. 너무 핏하거나 짧은 크롭 기장이면 불편하겠지만 적당한 품과 기장으로 다른 트위드에 비해 활동성이 높은 편이다. 프린지 디테일로 캐주얼하게 입어도 좋고 같은 원단으로 제작한 스커트와 셋업으로 입어도 좋다. 활용성도 높고, 포인트가 되는 트위드 자켓을 찾는다면 이만한 게 없을 거다. 하지만 벚꽃 시즌에 입고 나가면 썸남이 뭐가 꽃이냐고 물어볼수도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구매는 [여기].
더티스(The tis)- RIBBON DETAILED SWEATSHIRT
걸코어를 선호한다면 더티스를 주목해야만 한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리본 아이템만을 따로 모아둘 정도로 페미닌한 무드의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이번 시즌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영감 받았다고 하니 컨셉에서부터 이미 합격. 리본이나 장미 패턴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더티스의 ‘RIBBON DETAILED SWEATSHIRT’를 추천한다. 데일리로 입기 좋은 스웻셔츠에 벨벳 소재의 리본 디테일이 더해져 사랑스럽지만 전혀 과하지 않다. 소매와 밑단에 볼륨을 주어 스웻셔츠임에도 여성스러움을 더해주니 프릴스커트나 팬츠 어떤 하의와도 잘 어울리겠다. 자연스럽게 소녀미를 뽐내고 싶은 이들을 위해 강력 추천한다. 구매는 [여기].
시눈(sinoon)-COLOR CORDUROY PANTS
플라워 패턴이나 리본이 부담스럽거나 원피스가 질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올해의 컬러인 ‘피치 퍼즈’처럼 따뜻한 파스텔 컬러가 들어간 옷으로 걸코어에 도전해보자. 부드럽고 러블리한 색감이 페미닌한 무드를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시눈의 ‘COLOR CORDUROY PANTS’이라면 부담스럽지 않게 걸코어룩을 완성시킬 수 있다. 스트레이트 핏의 코듀로이 팬츠로 다른 걸코어룩보다는 데일리로 즐기기 좋다. 코듀로이만이 줄 수 있는 빈티지함에 애프리콧 컬러가 더해져 매력적이다. 하지만 더워지기 전까지 빠르게 즐겨야한다는 게 단점으로 다가 올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에서 피치퍼즈 컬러를 가장 매력적으로 뽑아낸 브랜드는 시눈이라고 생각한다. 코듀로이 팬츠로 봄을 만끽할 옷을 찾는다면 필히 시눈 홈페이지를 둘러보길 바란다.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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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정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박찬호급 투머치토커. 장래희망은 투머치라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