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장 뜨겁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꼽을 때 여기를 빼놓을 수 없지. 이번에 소개할 곳은 엄태준 셰프의 솔밤이야. 오픈 첫 해에 바로 미쉐린 가이드에서 1 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고, 고객의 사랑을 받으며 ‘서울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레스토랑’ 중 하나로 이름을 알리고 있어.
엄태준 셰프는 내가 아는 셰프 중에서도 특별히 ‘리더십’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야. 그래서 솔밤에서는 한 명의 셰프를 넘어, ‘팀’으로 느껴지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느낄 수 있지. 오늘은 맛있는 솔밤의 음식과 함께, 그 이야기를 소개해 볼게.
한 팀의 마음을 담아내다, 엄태준 셰프
솔밤에 가면 모든 테이블 위에 웰컴 카드가 놓여있어. 레스토랑 이름은 셰프에게 유년시절 고요한 사색을 선물했던 안동의 숲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해. 안동에 ‘솔밤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어렸을 때 그 근처 숲을 걸어다니며 많은 생각을 했다더라고. 조용한 가운데에 자연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공간은 평생 셰프의 마음에 모티프로 남아 이렇게 레스토랑의 이름으로까지 이어졌지.
다시 웰컴 카드로 돌아와 볼게. 자리에 앉으면 테이블 위에 작은 솔방울과 함께 레스토랑의 웰컴 메시지를 볼 수 있는데, 바로 눈에 띄는 건 직원들의 이름과 QR코드야. “이게 전체 직원 이름이에요?” 물어보니,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솔밤 팀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의 이름과 각각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해 두었더라고! QR코드를 찍으면 온라인 매거진 같이 꾸며진 페이지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각각 직원들의 얼굴과 개인적인 이야기가 하나하나 담겨 있어. 레스토랑에 가면 늘 ‘셰프’가 유일무이한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여기서는 소믈리에의 얼굴, 또 키친 막내의 얼굴까지 하나하나 다시 보게 돼.
“솁, 이거 왜 있어요?” 엄솁한테 물어봤어. 그랬더니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하더라. 하나의 하모니가 이루어지려면 각각의 연주자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솔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대.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전부터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쓰는 컨셉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거야. 셰프 한 명의 열정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그 말이 수긍이 되면서도 이렇게 실제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처음부터 정말 흥미롭게 느껴졌어.
솔밤, 잔잔하고 여운 가득한 음악처럼
자, 그럼 이제 식사 시작! 처음은 두 가지 바이트 메뉴로 시작해. 기물이 참 독특하지? 솔밤에서는 자체 제작한 식기를 다양하게 쓰고 있어서, 보는 즐거움도 있어. 먼저 위에 올라간 한입요리는 어니언 칩 사이에 닭 간 무스를 채운 음식이야. 바삭한 질감 아래로 녹진한 풍미가 샴페인 한 잔을 간절히 생각나게 해. 그리고 아래 구멍에 들어 있는 건 김 부각 안에 막걸리 식초로 살짝 절인 전어 무침인데, 입맛을 돋우기에 제격이야.
설레는 마음으로 와인 페어링도 함께 경험했어. 솔밤에서는 첫 스타트로 항상 돔페리뇽을 매치하는데, 풍부하면서도 강인한 돔페리뇽 스타일이 솔밤의 첫 요리와도 참 잘 어울리더라.
본격적인 첫 요리는 솔밤의 캐비아 합이야. 솔밤의 캐비아 요리도 계절마다 늘 변화해 왔는데, 나는 솔밤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해서 다양한 버전을 경험해 봤어. 이번에는 가장 첫 사진의 버전이었는데, 허브 향이 향긋한 딜 오일과 아래의 녹진한 크림치즈 뵈브아(bavarois), 부드러운 단새우와 살짝 매운 맛이 느껴지는 대파 슬라이스, 파프리카가 들어가 식감과 맛의 재미가 정말 좋더라고. 바삭한 브리오슈 칩에 올려 먹은 뒤 샴페인 한 모금을 들이키면! 이게 파인다이닝의 진짜 즐거움이지.
그 외에도 여름에는 초당옥수수 버전, 때론 갓김치와 하몽 슬라이스가 들어간 버전, 곁들이는 빵도 바삭한 칩부터 러시아식 불리니, 고구마 빵, 옥수수 모양의 앙증맞은 증편까지 매 계절 솔밤 캐비아 합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있어.
다음으로는 꼬치에 꽂은 관자 롤! 다시마 파우더를 뿌려서 은은한 감칠맛이 가득해. 흰 소스에 듬뿍 찍어 먹으니 입안에서 오독오독 청어알이 터지며 식감의 재미를 선사하더라.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계절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버섯 요리. 송화버섯으로 돌돌 말아낸 한우 무스와 버터에 로스트한 꽃송이 버섯이 눈길을 사로잡아. 여기에 양지와 표고, 양송이로 맑게 끓인 육수를 부어 주는데 풍미가 너무 좋아. 맑지만 강렬하게 응축된 가을 맛이라고나 할까? 숟가락으로 버섯과 함께 국물을 떠 먹다 보면 아삭한 것들이 씹히는데, 들기름에 볶은 갓김치와 곤드레 나물 장아찌가 중간중간 섞여 있어 입 안에서 즐거움을 더해줘.
페어링도 와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버섯을 이용한 약주가 나오니 좋더라.
다음으로는 금태 요리. 누룩에 숙성한 금태를 숯불에 살짝 구웠는데 워낙 기름지고 부드러운 생선이라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아. 육수의 맛이 풍부하길래 물어봤더니 미더덕을 베이스로 했다고 설명하더라. 바다의 감칠맛이 가득! 여기에 달콤한 가을 배추와 무가 곁들여져.
다음으로는 ‘게리동 서비스’라고 일컬어지는 서비스 카트와 함께, 주방에서 셰프가 나와서 바로 테이블 옆에서 요리를 해 줘. 깨끗이 손질한 뒤 마사지해 냉장 숙성한 전복에 합자장 소스를 발라서 바로 숯불에서 구워 완성하는 시그니처 요리야.
그런데 잠깐. 합자장이 뭐냐고? 합자장은 ‘통영의 유서 깊은 지역 음식으로, 홍합 100kg를 달여 농축한 소스’라는 설명과 함께 티스푼에 한 방울씩 소스를 떨어뜨려 줘. 한 번 입에 넣어 보니, 바다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한국 사람인데도 ‘합자장’이라는 소스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 이 소스를 이용한 전복 요리라니, 정말 기대돼.
테이블 옆에서 완성된 전복과 합자장 소스 요리야. 옆에는 김 퓨레와 풋마늘 장아찌를 넣은 찰보리 리소토가 함께 올라가 있어. 입 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전복과 함께 부드러운 합자장 사바용 소스가 모든 요소를 하나로 이어 줘. 톡톡 터지는 보리의 식감도 즐겁고.
포도를 모티프로 한 귀여운 클렌저로 입을 한 번 정리하고…
이번엔 메추리와 트러플! 메추리 가슴살 사이를 잘 보면 마치 대리석의 무늬처럼 검은 선이 있는데, 이 속을 페리고 블랙 트러플로 채워서 이런 선의 모양을 만든 뒤에 차콜에 구워 냈어. 여기에 부드러운 셀러리악과 트러플 퓌레가 곁들여져. 페어링되는 레드 와인과도 훌륭해.
조명에 따라서 이렇게 사랑의 하트를 볼 수도 있고.
그리고 다음으로는 작은 나무 박스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는데, 장롱 문을 열 듯 그 속을 열어 보니 한우 안심과 갈빗살 두 가지 부위가 놓여 있어. 주방에서 다시 플레이팅을 한 뒤 서빙되는데, 안심은 6주간 웻 에이징을 통해 부드러운 한우 본연의 풍미를 극대화했고, 꽃갈비는 16시간 동안 양념에 부드럽게 익혀 함께 제공돼. 여기에 ‘소나무’라는 솔밤의 모티프를 적용해 솔잎으로 만든 붓과 함께 액젓이 같이 나오는데, 취향에 따라 액젓을 한우에 더 발라 먹을 수 있거든. 그럼 정말 강렬한 풍미가 폭발하는 느낌이야. 레스토랑에서 한우 메인은 굉장히 지루하기 쉬운데, 정말 재미있지.
다음으로는 솔밤의 우엉 국수! 한우와 함께 나온 우엉을 조리한 육수를 베이스로, 차돌박이와 함께 맑은 국수를 내는데 와, 해장까지 한번에!
이어지는 디저트 타임. 계절마다 다양한 과일과 로컬 재료로 만들어지는 디저트, 한식과 양식을 넘나드는 마지막 다과는 차와 함께 즐겨도 좋아.
물론 술을 좋아하는 나는 식후주(디제스티프) 메뉴를 열심히 보며, 한 번씩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편이야. 시중에서는 굉장히 구하기 힘든 1960년대 브랜디나, 최고의 명품 디저트 와인인 샤토 디켐의 다양한 빈티지도 글라스로 만나 볼 수 있으니 와인 애호가라면 놓치지 말기를!
솔밤의 다이닝 포인트
-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야. 온라인 시스템으로는 늘 만석인 경우가 많은데, 전화 예약으로는 좀 더 먼 미래의 예약이 가능하니 전화 예약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 전체적으로 ‘흐름이 아름다운’ 요리야. 강렬한 하나의 디쉬가 압도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끝나고 나면 ‘너무 좋았다!’라는 말이 나오는 곳. 내용에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레스토랑에 방문하면 마지막에 제공되는 기프트가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 솔밤의 고동연 헤드 소믈리에는 지금 가장 핫한 소믈리에 중 한 명이야. 각종 국내외의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레스토랑에서는 맛있고 다채로운 페어링을 선보이고 있으니 와인 애호가라면 페어링도 좋은 선택.
- 솔밤은 2024년 2월 중순, 새로운 곳으로의 이전을 계획하고 있어. 그 전까지는 기존 공간에서 완성도 높은 메뉴들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코스를 선보인다고 해. 베스트 메뉴도, 내년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요리도 흥미로울 것 같으니 방문 시기를 잘 계획해 보시기를!
솔밤
-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37길 6 4층
- 전화번호: 0507-1385-7308
- 영업시간: 일요일 휴무, 월-토 17:30 – 22:30
- 디너 코스 3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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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미쉐린 스타 도장깨기를 연재합니다. 셰프의 이야기를 전하고, 샴페인을 연료로 삼는 미식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