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먹고사니즘의 고단함

나는 매일 배가 고프다
나는 매일 배가 고프다

2019. 10. 07

하나. 하루종일 끼니 걱정을 한다. 구운 빵에 계란 후라이를 얹고 팬에 버터를 녹인 뒤 소시지와 토마토를 달달 볶아 아침을 먹는다. 무화과잼, 바질 페스토, 타르타르까지 소스는 적어도 3가지 이상. 근사하고 풍성한 아침이다. 오물오물 빵을 씹으면서 점심 걱정을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엔 무엇을 해먹을지 고민한다. 매 끼니를 배부르게 먹어도 이상하게 또 끼니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누가 한 달 살기 중 가장 큰 난관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못난 내 위가 제일 큰 문제였다고 말할 거다.

둘. 생각보다 물가가 비싸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얽혀있다. 일단 시칠리아 그중에서도 우리가 머물고 있는 몬델로(Mondello) 지역이 전형적인 유럽 휴양지라 관광객 물가가 적용된다는 것이 첫째요. 둘째는 무려 1,300원에 육박하는 유로 환율 때문이요, 셋째는 우리가 일곱 명이기 때문이다. 도착 둘째 날엔 40만 원어치 장을 보고, 셋째 날에 또 다시 30만 원어치나 장을 봤다. 그래도 또 짬짬이 동네 식료품점에 들러 내일 먹을 저녁거리를 사야 한다.

셋. 우리 집엔 한식 귀신들이 살고 있다. 아침과 점심은 그럴듯한 유러피안처럼 먹다가도 결국 저녁엔 자꾸 한식을 찾게 된다. 우리 집엔 마트에서 쌀을 4봉지나 사 왔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해서 쌈장에 찍어 먹고, 파프리카는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이제 한국을 떠난 지 겨우 나흘된 박PD는 갓 지은 맨밥에 고추장만 비벼 먹으면서 배시시 웃는다. 권PD는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라면을 먹어놓구선(면이 모자라서 라면에 스파게티를 넣어 끓여 먹었단다) 넷째 날인 오늘 자꾸만 짜파게티를 먹으면 안되냐며 성화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라비올리에 석화를 먹은 에디터B는 자꾸만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고 해서 에디터H와 나에게 잔뜩 핀잔을 들었다. 우리는 모두 해외로 이민 가긴 글렀다.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