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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영화관 옆 스몰 카페 3

영화 관람 후 도보로 이동하기 좋은 카페 루트
영화 관람 후 도보로 이동하기 좋은 카페 루트

2023. 11. 09

안녕. 한때 예술 영화관만 골라 다니며 되도 않는 시네필 행세를 했던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영화사전에 따르면 예술 영화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해외 및 국내의 예술 영화 즉 아방가르드 영화나 독립 영화, 단편 영화, 고전 영화 등을 전문으로 상영하는 영화관.” 자본이나 흥행력이 아닌 작품성을 기준으로 깐깐하게 선별한 영화들이 가득한 극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순수한 애정과 몰입의 에너지가 흐르는 공간에서, 조금은 난해해도 가치 있는 질문을 던져 주는 작품을 만나는 경험은 우리를 어떻게든 이전과 달라지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잠깐이라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쉽게 잊히지 않는 대사와 장면을 천천히 곱씹어 보기 위해. 극장을 나오면 하염없이 걷거나 편안하게 멍때리기 위해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게 되는 이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상념에 잠기는 시간은 명작 관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성 필수 코스다.

깊어져 가는 가을에 좋은 영화가 주는 여운 속으로 푹 젖어들고 싶다면 잘 찾아오셨다. 서울의 예술 영화관 세 곳, 그리고 영화 관람 후 도보로 이동하기 좋은 인근의 스몰 카페 세 곳을 소개한다. 뾰족한 주제와 개성 강한 화법을 내세우는 예술 영화처럼 투박하더라도 운영자 개인의 고유한 색깔이 더 진하게 드러나는 스몰 카페에서 감성 충만한 가을날을 만끽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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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라이카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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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코스프레 한창 하던 시절, 홍대에 놀러 가면 상상마당이 있고 광화문에는 씨네큐브가 있었다. 압구정에 갈 때는 CGV 아트하우스로 향했다. 하지만 연희동에는 예술 영화관이 없었다. 이대나 홍대로 넘어가야만 했지. 연희동의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좋아서 놀러 온 건데, 좋게 말하면 활기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번잡한 대학가로 넘어가는 게 성에 찰 리가 있나. 그러나 이제는 번거롭게 이동할 필요가 없다. 라이카시네마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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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시네마는 2020년 1월에 개관한 연희동 최초의 예술 영화관이다. 오해하지 말자.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Leica와는 아무 상관 없다. 1957년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를 비행한 최초의 개 이름 ‘라이카Laika’에서 따왔다. 공유 오피스와 대관 공간을 함께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 1층에 티켓박스가, 지하 1층에 상영관이 자리한다. 그레이와 실버 톤이 만드는 모던한 분위기에 오렌지 컬러가 포인트를 더하는 세련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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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와는 달리 상영관이 하나뿐인 단관 극장이다. 그마저도 39석의 작은 규모지만 실망할 필요 없다. 국내 예술 영화관 중에서도 최상급의 사운드 시스템을 자랑하니까. 라이카시네마는 서울 소재 예술 영화관 중 유일하게 돌비 애트모스(입체 음향 기술) 상영관을 보유하고 있다.

예술 영화관 이용 Tip #1 기획전
예술 영화관은 특정한 주제로 여러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각종 기획전에 힘을 쏟는다. 최근 개봉작 외에도 프로그래머와 큐레이터가 까다롭게 선별한 양질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참고로 라이카시네마 방문 당시에는 <오펜하이머> 개봉을 기념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 <메멘토>를 특별상영하고 있었다

라이카시네마

라이카시네마 → 도보 6분
bok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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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케bokeh는 사진 용어다. 주인장에 따르면 “이미지의 아웃 포커스 부분에 미적인 블러 효과를 만들어 내는 사진 표현 방법”.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쏟아지던 햇빛을 보게 됐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보케를 연상시켜 일찌감치 가게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아마 이 카페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통유리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가만히 멍때리는 순간을 갖지 않을까. (주인장이 첫눈에 반했던 그 장면이 궁금하다면 오후 4-5시에 맞춰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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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잡아끄는 버건디 색의 바닥 타일은 무려 40년이 넘은 것이다. 건물을 지을 때 깔았던 그대로다.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전 매장에서 덮어둔 두 겹의 나무 타일을 들춰냈더니 그 아래서 이렇게 독특한 질감과 영롱한 색감을 드러냈다고. 카운터와 중앙 진열대 등으로 사용한 은색 철제와 대비를 이루고, 거기에 안팎의 초록 식물들이 생기를 더하며 보케만의 개성 강한 공간 분위기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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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한 의자에 앉아 넘실대는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며 즐기는 커피와 디저트.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오후에 나는 플랫 화이트와 밤고구마 브륄레 산도를 주문했다. 따뜻한 온도의 플랫 화이트도 고소하고 부드럽지만, 아, 밤고구마 브륄레 산도는 정말 물건이다. 차가운 빵에 촉촉한 크림을 발라 큼지막한 밤고구마를 감싸고, 고구마 표면에는 설탕을 올려 토치로 구웠다. 너무 달지 않게 제조한 수제 크림에는 극소량의 후추를 첨가해 느끼함을 잡은 센스까지. 비주얼도, 맛도, 양도 모두 만족스러운 메뉴다. (디저트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포만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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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16 2층 좌측
  • 영업시간 화-금 11:00-20:00 토-일 12:00-21:00 (월 휴무)
  • 인스타그램 @bokeh_coffee

[2]
광화문 씨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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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복판에 우뚝 솟은 해머링 맨.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하는 조형물 옆 흥국생명 빌딩 지하에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 영화관 씨네큐브가 있다. 2000년 12월에 개관한 이래로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영화관이라는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극장이다. 나 역시 20대 초반부터 내 안의 예술 감성이 차오를 때면 씨네큐브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코엔 형제와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나와 한껏 센치해진 채로 광화문의 밤거리를 배회하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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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예술 영화 전용관답게 깔끔하고 쾌적한 시설을 자랑한다. 무려 293석을 갖춘 1관에는 대형 상영관에 걸맞은 커다란 크기의 스크린이 있어서 높은 몰입도로 감상하기 좋다. 여유 있는 좌석 배치와 넓고 깨끗한 화장실도 무시 못 할 장점. 당일 티켓을 소지하면 빌딩 내 식당과 카페 이용 시 1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예술 영화관 이용 Tip #2 관객과의 대화
작품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예술 영화 전문 극장인 만큼 감상의 폭을 넓혀주는 토크 프로그램도 활성화돼 있다. 감독이나 배우, 영화평론가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는 혼자만 보고 느끼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 씨네큐브에서도 ‘씨네토크’, ‘GV (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 등 다양한 이름으로 행사가 열리니 홈페이지와 SNS를 유심히 살펴보자.

씨네큐브

씨네큐브 → 도보 6분
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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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 가득 쌓아놓은 나무 냄새 풀풀 나는 오래된 오두막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 벌새의 인스타그램에 적힌 문장이다. 공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짙은 색의 나무에 긴 시간 수집한 CD와 LP, 오후 2시만 되면 흘러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 ‘명연주 명음반’과 느리게 퍼지는 원두 향기까지, 이 작은 카페의 목표는 성공한 듯 보인다. 울창한 초록의 숲 대신 빽빽한 광화문 빌딩 숲에 둥지를 틀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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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오래된 킷사텐이나 LP 바에 온 듯한 아날로그 & 빈티지 무드가 인상적이다. 반지하층 특유의 낮은 천장과 바닥에 깔린 카페트는 공간에 아늑함을 더하고, 창문 프레임 너머로 올려다보이는 직장인들의 바쁜 걸음은 지금 이 순간이 숨 가쁜 도심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이질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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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오리진 커피를 주문한 후 바에 자리를 잡는 것을 추천한다. 바로 앞에서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의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렬로 늘어선 드리퍼에 천천히 물을 붓고, 분쇄한 원두가 거품을 내며 부풀어 오르고, 다시 뜨거운 물을 부을 때 그 열기가 김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고요한 장면. 핸드드립 커피가 주는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고 있으면 나의 정신없는 일상도 한 템포 쉬어가는 것만 같다. 이날 내가 마신 건 에티오피아 벤사 코코세 내추럴이다. 처음에는 부드럽고 연하게 들어왔다가, 뒤에 가서 복숭아와 감귤의 단맛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매력적인 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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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주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3길 12 신문로빌딩 지하 1층 22,23호
  • 영업시간 월-금 12:00-19:00 토 12:00-18:30 (일 휴무)
  • 인스타그램 @beolsae8

[3]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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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예술 영화관이라니. 말만 들어도 낭만 그 잡채 아닌가. 건국대의 KU시네마테크가 그랬고, (지금은 사라진) 고려대의 KU시네마트랩이 그랬는데, 이 두 극장 이전에 이화여대의 아트하우스 모모가 있었다. 2008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 대학 내 상설영화관. 현재는 캠퍼스 후문 인근에 위치한 필름포럼, 연희동의 라이카시네마와 함께 서대문구 시네필들의 감성을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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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을 지나 쭉 들어가다 보면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디자인한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 복합단지(ECC)’다. 지하에 반쯤 파묻힌 듯한 이 건물은 강의실과 각종 편의시설을 품고 있는데, 아트하우스 모모는 건물 3번 게이트로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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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상영관과 요즘은 보기 힘든 아날로그 필름 상영 시스템까지 갖춘 작지만 알찬 극장. 시네필들을 위해 제공하는 풍성한 멤버십 혜택도 매력적이다. 매표소에 신분증을 제시하면 생일이 포함된 달 중에 하루를 선택해 무료 관람 1회가 가능하며, 영화 관람 시 쿠폰에 찍어주는 스탬프 10개를 모으면 일반 상영작 1편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예술 영화관 이용 Tip #3 현장 이벤트
예술 영화 특. 굿즈까지 예쁘다. 공식 포스터부터 엽서, 핀 버튼 등 프로모션용으로 제작한 아기자기한 굿즈를 현장 이벤트로 증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트하우스 모모 역시 거의 대부분의 상영작마다 개봉 기념 현장 이벤트를 진행하니 영화 굿즈 컬렉터들이라면 늦지 않게 달려가자.

아트하우스 모모

아트하우스 모모 → 도보 6분
파티션 W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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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신촌-이대 일대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카페다. 근데 이제 좀처럼 문을 안 여는…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주인장이 게으르거나 불친절해서 그런 게 아니니까. 이름의 뜻을 알고 나면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파티션 WSC’. Workroom과 Showroom과 Cafe를 필요에 따라 나누고, 또 연결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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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문화 기획자인 남편과 공예 디자이너인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파티션 WSC는 두 사람 각자의 작업실이자,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브랜드 ‘공예가’의 쇼룸이자, 누구나 부담 없이 들러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갈 수 있는 카페다. 다양한 기능을 담은 공간인 만큼 전시와 팝업 등 흥미로운 이벤트의 장이 되기도 한다. 재즈 칼럼니스트의 소규모 재즈 강의나 도서 출간 기념 전시, 공예 워크숍 등 주로 음악/출판/디자인 분야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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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카페는 언제 문을 여냐고? 2주에서 한 달가량 팝업이나 전시가 열릴 때 해당 기간에 맞춰 방문하면 된다. 전시를 감상하고, 프로그램 테마에 맞게 볶은 블렌드 원두를 맛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구매해 보자.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크고 작은 콘텐츠들을 접하며 그냥 커피 한 잔 마실 때보다 훨씬 더 풍성한 경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장이 직접 볶은 원두로 내리는 묵직한 핸드드립 커피가 궁금하다면 @ppa.tti 계정도 주목할 것.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 안에 자리한 프로젝트 팝업 카페로 주 1회 오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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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션 WSC

  • 주소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88-9 2층
  • 영업시간 인스타그램 계정 통해 확인 필요 (대개 전시/팝업 기간에 맞춰 열린다.)
  • 인스타그램 @partition_wsc

[예술 영화관 관람 에티켓]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만 가본 이들이라면 예술 영화관만의 관람 에티켓이 다소 낯설지도 모르겠다. 아래 4가지 사항만 알아둬도 비매너 관객 딱지는 피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물을 제외한 음료 및 음식물은 상영관에 반입할 수 없다.
➋ 영화는 별도 광고 없이 정시에 상영한다.
➌ 상영 시작 후 10분 초과 시 입장이 제한된다.
➍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상영관의 불은 켜지지 않는다.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