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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맥 25주년의 기쁨과 슬픔

컴퓨터 산업을 바꾼 아이맥의 히스토리
컴퓨터 산업을 바꾼 아이맥의 히스토리

2023. 08. 21

안녕하세요, ‘쿠도군’ 이주형입니다. 오늘은 이제 스물다섯살이 된 아이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이맥이 탄생했던 그 당시로 돌아가 볼까요. 때는 1997년, 스티브잡스는 자신이 창업했지만 자신을 내쫓았던 회사에 12년 만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됩니다. 곧바로 불필요한 제품들은 전부 단종시키고, 과도하게 불려진 직원들도 정리해고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면서 맥 제품군을 2×2의 격자판으로 정리했습니다. 한 축에는 데스크톱과 노트북, 다른 축에는 프로페셔널과 일반 대중이 적혀있었습니다. 이 중 일반 대중용 데스크톱을 새로 개발하기로 하고 그다음 해에 등장한 것이 아이맥입니다.

아이맥 첫 공개 당시 뉴스위크지에 실렸던 기사.

아이맥 첫 공개 당시 뉴스위크지에 실렸던 기사. (사진 출처: Newsweek)

아이맥이 2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아이맥은 파산 직전의 애플을 살리면서, 지금의 애플이 되는 초석을 마련한 제품입니다. 아이맥이 없었으면 아이팟도 없었고, 아이폰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애플에게도 각별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플뿐만 아니라 컴퓨터 산업 전반에 큰 영향 끼친 아이맥. 25년이 지난 지금,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인터넷의 대중화

아이맥(iMac)의 “아이(i)”가 인터넷의 i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만큼 아이맥은 인터넷 시대에 준비된 컴퓨터였습니다.

애플은 유명한 “세 번째 단계는 없습니다” 광고를 통해 아이맥이 인터넷에 연결하기 얼마나 쉬운지를 강조했습니다. 요즘에야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연결하거나 이더넷을 꽂기만 하면 바로 인터넷이 되지만, 199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PC는 인터넷 연결에 필요한 하드웨어가 따로 내장되지 않아 추가로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설사 하드웨어를 구해서 설치했다 하더라도 각자의 모뎀에 맞는 드라이버나 유틸리티 프로그램들을 내려받은 후에 윈도우에서 “인터넷 설정 마법사”라는 프로그램에 들어가 일일이 설정값을 입력해 줘야 했었죠. 아이맥은 이런 단계 필요 없이 일단 모뎀이나 이더넷 케이블을 꽂아주고, 간단한 설정만 거치면 바로 인터넷이 연결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애플이 인터넷 시대에 앞장서려고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에 PC 시장에서 맥 점유율은 애플이 파산 직전일 정도로 바닥인 상황이었고, 대부분의 PC 호환성은 윈도우와 IBM PC에 맞춰져 있었죠. 하지만 인터넷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호환성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계산이 어느 정도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데스크톱 서비스들이 웹 브라우저에서 구동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이후 아이폰을 대표로 한 스마트폰의 등장을 생각하면 인터넷 시대가 하드웨어 플랫폼 사이의 비호환성이 가져오는 제한을 초월할 것이라는 예측은 완벽히 맞힌 셈입니다.


USB의 시작

1980~1990년대 PC를 쓰셨던 분들은 정말 다양한 단자들을 사용한 기억이 있을 겁니다. 용도에 따라 모두 다른 단자를 쓰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1996년에 공개된 USB(Universal Serial Bus, 범용 시리얼 버스) 표준은 하나의 다용도 커넥터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첫 아이맥의 포트부. USB 포트 두 개가 자리한 것이 보입니다.

첫 아이맥의 포트부. USB 포트 두 개가 자리한 것이 보입니다. (사진 출처: Six Colors)

그리고 아이맥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기존의 모든 포트들을 없애고 USB 단자와 모뎀 단자, 그리고 이더넷 단자만으로 채웠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이 결정은 꽤나 급진적이었습니다. 아이맥이 공개된 당시에는 아이맥이 사용한 USB 1.1 표준의 사양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애플은 당시에 거의 범용적으로 쓰였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뭔지 모르는 독자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저장 버튼의 기원인 물건입니다)도 없애버리면서 USB에 올인했습니다. USB-C 포트 하나만 있는 노트북을 만든 2015년의 애플과 참 비슷한 구석이 있네요.

당연히 당시에 기존 포트들을 제거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찮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맥에 USB 포트밖에 없다는 것은 당시까지 존재했던 다양한 컴퓨터 액세서리들이 모두 USB를 지원하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제조사들은 아이맥이 발표된 1998년 5월부터 실제로 출시된 8월까지 다양한 USB 액세서리들을 앞다투어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진공청소기나 전동칫솔까지 USB로 충전할 정도로 대중화된 규격이었습니다. USB가 컴퓨터 산업과 일반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데 있어 아이맥이 중요한 첫발을 내딛도록 해준 셈이죠.


“디자인의 애플”의 시초

2002년 아이맥 G4 공개 당시에 포춘지 기사를 위해 찍은 조니 아이브(왼쪽)와 스티브 잡스. (Michael O'Neill)

2002년 아이맥 G4 공개 당시에 포천지 기사를 위해 포즈를 취한 조니 아이브(왼쪽)와 스티브 잡스. (사진 촬영: Michael O’Neill)

아이맥은 또한 애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듀오를 배출했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와 조니 아이브죠. 재밌는 점은, 잡스가 애플의 임시 CEO로 돌아왔을 시점에 이미 아이브는 5년가량 애플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잡스가 돌아오기 전 방향성을 잃어버렸던 애플에서 퇴사할까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잡스는 그만두려던 아이브를 발견하고, 그를 설득하여 디자인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아이브는 아이맥의 디자인을 직접 맡았고, 심지어 아이맥의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의 성형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공장에서 2개월 동안 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니 아이브 전기에 따르면, 이 공장은 바로 한국의 LG전자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 폴리카보네이트에는 깊은 바다 같은 푸른색을 입혔습니다. (애플은 이 색의 이름을 호주의 해안 지역에서 딴 “본다이 블루”로 지었습니다.) 이후 애플은 다양한 색의 아이맥을 추가로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 다양한 색들은 M1을 장착한 새로운 아이맥에서 오마주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맥 G3. (사진 출처: Apple)

아이맥 G3. (사진 출처: Apple)

아이맥의 디자인은 당시의 베이지색 플라스틱으로 도배돼 있던 PC 디자인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습니다. (사실 베이지 색 플라스틱으로 점철된 디자인도 70년대 애플 II로부터 시작된 디자인이긴 합니다.) 많은 경쟁 PC 제조사들이 아이브의 새로운 시도를 따라 했습니다.

사실, 아이맥은 PC뿐만 아니라 가전 디자인에서도 반투명 플라스틱 트렌드를 선도했는데, 심지어 빵 굽기용 그릴의 외장을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곳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브는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경쟁자들을 따돌렸습니다. 2002년에는 첫 아이맥의 후계 기종으로 받침대에 모든 내장 부품을 넣고 모니터 부분만 자유롭게 각도를 조정할 수 있는 아이맥 G4나, 알루미늄 등의 금속 재질을 적용하는 등 컴퓨터 하드웨어 디자인의 트렌드를 선도했습니다.


애플을 살린 제품의 현재는?

이렇게 애플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맥이지만 출시 25주년을 맞은 지금, 아이맥의 미래는 “흐림”입니다.

현행 맥 라인업. (사진 출처: Apple)

현행 맥 라인업. 왼쪽부터 14인치/16인치 맥북 프로, 24인치 아이맥, 맥 미니, 맥 스튜디오, 15/13인치 맥북 에어, 맥 프로. (사진 출처: Apple)

애플은 2022년부터 맥 라인업을 M2 기반의 새로운 칩을 장착한 신형 모델로 교체해 왔지만, 아이맥만이 유일하게 2021년 봄에 M1을 기반으로 완전한 새로운 디자인으로 출시된 후, 2년이 넘게 대체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2022년에 출시된 맥 스튜디오와 스튜디오 디스플레이의 출시와 함께 27인치 아이맥은 아예 단종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맥이 홀대(?)받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노트북이 인기가 많다는 것이겠죠. 시장 조사 기관인 CIRP에 따르면, 2022년 9월 분기의 맥 판매량 중 74%가 맥북 에어와 프로 등의 노트북 제품군이었습니다. 휴대가 용이하고, 여차하면 집에 모니터를 두고 거기에 꽂기만 하면 데스크톱처럼 확장이 가능한 점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애플 실리콘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스크톱과 노트북이 모두 같은 칩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성능의 간극 또한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이 데스크톱을 선택할 이유를 줄이게 되는 요인이 됐습니다.

안 그래도 좁은 맥 데스크톱 사이에서도 아이맥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맥 27인치 모델을 애플 실리콘을 장착한 신형 모델로 업데이트하는 대신 화면 부분을 떼어다가 모니터로 만든 스튜디오 디스플레이를 출시했습니다. 또, 함께 출시한 맥 스튜디오나 M2 프로까지 장착할 수 있는 맥 미니, 그리고 M2 울트라를 장착하며 애플 실리콘 버전으로 처음 선보인 맥 프로 등을 통해 아이맥 같은 일체형 데스크톱보다는 이미 작업 환경에 맞는 모니터를 갖춘 전문가들을 위한 고성능의 분리형 데스크톱 모델에 더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맥북 에어 등의 노트북을 판매하고, 노트북의 폼 팩터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강력한 성능을 원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아이맥보다는 더 강력한 칩을 탑재한 분리형 데스크톱을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다 보니 그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있는 아이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죠.

2018년 뉴욕에서 거주했을 때 썼던 27인치 아이맥 5K 모델의 모습.

2018년 뉴욕에서 거주했을 때 썼던 27인치 아이맥 5K 모델의 모습.

이렇게 아이맥이 처한 상황은 씁쓸한 기분을 자아내게 합니다. 제 대학 생활과 첫 사회생활을 비롯해 거의 5년 동안 제 다양한 작업을 도맡아줬었던 것이 바로 2015년형 아이맥 5K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맥의 디스플레이는 제가 여태 써본 모니터 중 최고였고 너무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밖에서도 일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아이맥 대신 M1 프로를 탑재한 맥북 프로로 교체했고, 집에서는 27인치 4K 모니터에 물려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 우리가 익숙했던 것들을 대체하게 되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애플만 봐도 아이팟은 이후에 나온 아이폰에 의해 기능이 완전히 대체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신제품 업데이트 없이 외면을 받다가 결국 2022년에 단종되었습니다. 루머 등을 종합 해보면 아직 애플은 아이맥의 신형 모델을 계속 개발할 의지는 있어 보이지만, 아이팟이 그랬던 것처럼 단종이 멀지 않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오래 사용했던 제품들이 인기가 떨어지고 단종되는 것을 보면서 슬픈 이유는, 그만큼 저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랄까요. 그래도 25년 전에 등장했던 아이맥은 대단했습니다. 2023년의 여름에 그 역사를 기록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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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낮에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밤에는 '쿠도캐스트'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IT가 메인이지만 관심가는 게 너무 많아서 탈이 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