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파리 소식을 글로 전하고 있는 HAE입니다. 여러분은 꽃 좋아하시나요? 마지막으로 꽃을 받거나 선물한 날을 기억하시는지요? 이곳에서 길을 걷다 보면 투박한 종이에 둘둘 말린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꽃다발이 주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다면, 이곳에서는 좀 더 일상적으로 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파리에는 꽃집이 정말 많은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가게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9구 피갈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드보리우(Debeaulieu)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불어로 ‘beau’는 아름다움을, ‘lieu’는 장소를 뜻하니, ‘아름다운 장소’라 번역할 수 있겠네요. 드보리우는 플로럴 아티스트 피에르 뱅셰르(Pierre Banchereau)가 2009년 문을 연 플라워숍입니다. 오픈한 해부터 단숨에 루이비통의 선택을 받았고, 이후 줄곧 럭셔리 브랜드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부티크죠. 더 놀라운 점은, 피에르가 수십 년간 몸을 담갔던 인사(HR) 분야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둔 뒤에서야 비로소 플로럴 아티스트의 길을 시작했다는 사실인데요. 중년의 나이에, 그것도 비전공자가 문을 연 플라워숍이 까탈스러운 파리지앵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드보리우의 하얀 문을 열자, 신선한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음이 가장 먼저 맞아주었습니다. 업무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이외에는 모두 꽃으로 가득 차 있는, 오로지 꽃만을 위한 공간이었는데요. 수많은 꽃과 그것을 비추는 거울로만 채워진 공간이지만, ‘꽃에 압도된다’는 감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꽃이 공간과, 또 이 동네의 분위기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느낌이었죠.
부티크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도 참 절묘합니다. 물랭 루즈와 같은 카바레 거리로 잘 알려진 이 동네에 꽃집과 라이프스타일숍, 두 개의 부티크가 각각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하고 있죠. 때문에 가게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해도 무척 이색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 피에르가 등장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스태프들과 함께 분주히 꽃과 화병을 나르고 있었죠. 꽃집 사장님답게 붉은색 플로럴 패턴이 그려진 셔츠에, 짙은 초록색 줄무늬가 그려진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요. 평범치 않은 조합임에도 센스가 느껴지는 그의 옷차림에서 그가 어떤 식으로 꽃을 고르고 또 조합하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첫인상이었습니다. 상냥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던 그로부터 그의 브랜드, 드보리우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HAE(이하 H) 아직 한국에는 드보리우를 잘 모르는 분도 많을 텐데요,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드보리우를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하시겠어요?
PIERRE(이하 P) 드보리우는 파리의 일반적인 플라워 숍과는 다르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희가 하는 일은 꽃과 장식, 예술이 함께 얽혀있는 복합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예술 세계의 교차로에 서 있죠.
H 이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에는 꽃은 물론 크리에이티브 분야와는 전혀 무관한 HR 계열에서 일을 하셨다고요.
P 이전 직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드보리우는 없었을 거예요. 실제로 저의 외부자적 시각, 비즈니스 관리 및 팀 관리 경험은 장인 정신에 더해져 상당한 강점이 되었답니다.
H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여는 것은 누구나 꿈꾸지만 선뜻 실행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P 일터와 직업이 제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던 시점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었어요.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고, 가까운 가족, 친구들과도 충분히 논의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직업 재교육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고, 반드시 높은 리스크가 따른다는 것도 압니다. 특히 개개인의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 경제적 여건 등에도 영향을 받죠.
[드보리우의 대표이자 플로럴 아티스트, 피에르. 출처: 드보리우 홈페이지]
H 드보리우를 찾는 다양한 손님들 사이에 공통된 특징이 있을까요? 피에르의 HR 이력을 살린 답변을 듣고 싶어요!
P 드보리우는 기본적으로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플라워 부티크의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브제 부티크에는 색다르고 특별한 것을 찾는 쿨하고 트렌디한 파리지앵 고객도 즐겨 찾는답니다.
이곳 직원들은 이곳저곳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진열된 꽃들을 하나둘 능숙하게 골라 새로운 꽃다발을 만들곤 했습니다. 한편, 드보리우에서는 한 번 만든 꽃다발은 다시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가게 문을 연 이래로 지금까지, 무려 10년 이상 꿋꿋하게 지켜온 법칙이라고 합니다. 손님들은 매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부케를 받는 셈이니, 다른 어떤 꽃다발보다도 더 특별하게 느껴질 테죠.
[루이비통 매장의 플로럴 아트 프로젝트 ‘컬러풀 드림 가든(2020.01.20)’. 출처: 드보리우 홈페이지]
H 드보리우는 특히 럭셔리 메종이 사랑하는 브랜드죠. 맨 처음 브랜드에서 연락받았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P 그럼요. 드보리우로서 처음 작업을 했던 럭셔리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가 이끌던 루이비통이었습니다. 그의 연락을 받고선 얼마나 행복하고 놀랐는지 몰라요! 이 일은 드보리우에게 아주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고, 이후 작업들에도 힘을 북돋아 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H 작업에 있어서 감정이나 느낌이 중요하다는 얘길 인터뷰 등을 통해 수차례 강조하셨는데요, 드보리우만의 특별한 작업 과정이 있나요?
P 사실 작업 과정은 경우에 따라 무척 달라서 하나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수개월 전에 먼저 연락을 받고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행사 며칠 전에야 기획안을 받곤 합니다. 항상 준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죠. 그래도 작업 특성상 신선한 제철 식물들과 항상 함께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위안을 받기도 하지요.
[질샌더 A/W 20 컬렉션. 출처: 드보리우 홈페이지]
H 그동안 했던 작업들 중 ‘과정’이 특별히 마음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P 피렌체에서의 질 샌더(Jil Sander) 쇼 작업이 정말 좋았어요. 좋은 조건에서 두 개의 특별한 세트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요. 구상했던 컨셉과 아이디어가 완벽하게 구현된 풀 스케일의 세트를 보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난해에는 드보리우에서 직접 셀렉한 데코레이션 오브제를 선보이는 새 부티크의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꽃집에서 1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두 공간을 모두 둘러보기에 부담이 없답니다.
반가운 소식은 피에르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하고 소장 가치 있는 오브제들을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겁니다. 드보리우의 온라인 숍에서도 국제 배송으로 구입이 가능하니 참고하세요!
오브제 부티크에도 역시나 싱그런 초록 식물들이 먼저 마중을 나와 있더군요.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분수대에서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 창가 옆 새장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새소리가 맞아줍니다. 이러한 감각적인 요소들 덕분에, 실내에 있지만 실외에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곳 매니저 줄리앙(Julien)의 설명에 따르면, 오브제 부티크의 인테리어는 총 세 가지 정원의 스타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자로 잰 듯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프랑스식 정원 스타일과 의도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국 스타일의 정원, 마지막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 방울 더해줄 지중해식 정원의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해요.
천장을 가득 채운 그림도 무척이나 독특합니다. 쟈크 메를(Jacques Merle)이라고 하는 프렌치 작가가 드보리우만을 위해 직접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인데요. 그림 속에는 잠자는 사람, 채집가, 시인 그리고 꽃을 통해 바라보는 소년이 그려져 있습니다. 모두 프렌치 문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 파스텔 색상의 물결 모양 유리잔, 50유로 [링크]
부티크를 구성하는 제품의 80%는 드보리우가 직접 수집한 빈티지 제품이며, 나머지 20%는 소장 가치가 높은 수공예 제품을 위주로 셀렉하고 있다고 합니다. 손으로 만들어지는 공예품의 숭고함과 정교함, 그리고 희소성이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분이라면 틀림없이 이곳과 사랑에 빠질 거예요!
- 70년대 빈티지 식탁보, 190유로 [링크]
- 프랑스 Vallauris 지역에서 제작된 물고기 장식 그릇, 100유로 [링크]
드보리우에 방문한다면 제품에 대한 질문을 이래저래 해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지역에서, 어느 시대에 제작된 제품인지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렇게 하면 단순히 제품의 아름다운 외관뿐만 아니라, 그것에 담긴 이야기까지 함께 구입하게 되는 셈이니 더욱 가치롭고 풍부한 소비 경험이 될 겁니다.
- 60년대 남프랑스 해안가의 초콜릿 가게에서 사용된 조개 장식 상자.
- 60년대 CERENNE 공방에서 제작된 세라믹 커피잔 세트, 280유로 [링크]
이날 방문에선 여름이 제철인 라벤더 제품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남프랑스 지역의 전통 수공예 제품인 라벤더 향 주머니는 라벤더 줄기와 실크 등과 같은 섬세한 패브릭 소재를 하나하나 정교하게 엮어낸 것이라고 하는데요. 앙증맞은 모양과 독특한 디자인에 정성까지 듬뿍 들어간 제품이니 특별한 선물용으로 구입해도 좋을 것 같더군요.
- 남프랑스 지역의 전통 수공예 기법으로 제작된 라벤더 향주머니.
H 음악, 책, 영화, 여행, 일상 등 분야를 막론하고 최근 영감을 자극한 것이 있나요?
P 건축은 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노만 포스터 전시는 제게 영감을 가득 안겨다 준 보석 같은 전시였습니다.
H 꽃이 우리에게 주는 건 시각적인 아름다움도 있지만, 향수의 원료로 사용될 만큼 후각적인 즐거움도 있죠. 특별히 애정하는 꽃향기가 있을까요? 평소 사용하는 향수도 궁금합니다.
P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향기는 카네이션 향입니다. 향수 중에서는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을 각별히 애정하고 있죠.
H 작업할 때 음악을 듣는 편인지, 듣는다면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합니다.
P 일할 때는 조용한 편을 좋아합니다. 제게 작업할 때 중요한 것은 음악보다는 햇빛과 풍경이에요!
오브제 부티크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단순히 제품 전시나 판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누구나 팝업 이벤트를 비롯한 작은 파티나 저녁 모임 등을 위한 공간으로 예약할 수 있는데요. 호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맞춤으로 준비되는 꽃장식은 물론,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원한다면 플라워 아트 워크숍도 신청할 수 있다고 하니, 파리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참고해도 좋겠습니다.
H 드보리우는 그동안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해왔는데요, 혹시 아직 닿지 않은 분야 중 하고 싶은 작업이 있을까요?
P 저는 여행을 좋아해요. 또 여행지에서 그곳만의 문화적 코드와 로컬 식물을 활용해 작업하는 것도 좋아하죠. 아시아에도 꽃 문화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만약 한국에서도 지중해 테마의 행사가 열리게 된다면 함께 협업해 보고 싶네요!
- 70년대 얼굴 모양의 유리 화병, 190유로 [링크]
H 꽃다발을 만드는 일을 하시지만, 반대로 꽃다발을 받아본 경험도 있는지 궁금해요.
P 아쉽지만 아직까지 꽃다발을 받아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받아보고 싶네요!
H 일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어떤 일상을 보내나요? 삶의 행복을 위해서 과감한 결단을 한 분인 만큼, 평범한 일상 속에선 어디서 행복을 찾는지 궁금합니다.
P 업무 외에는 친구들과 함께 좋은 프랑스산 레드 와인을 마시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소박한 삶의 순간을 즐기곤 한답니다.
사실 피에르를 만나보기 전에는 그의 대담한 이력 탓에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워커홀릭 같은 부류의 인물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일과 삶의 균형을 적절히 맞춰가며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데 가치를 두는 사람에 가까웠죠. 그가 HR 회사를 나와 꽃집을 차린 것도, 커다란 성공이나 부에 대한 야심 때문이 아닌, 남은 인생을 좀 더 가치롭고 행복하게 보내고자 했던 고민에 대한 답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 ‘균형’이라는 단어는 그의 작업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이색적인 것과 익숙한 것, 반짝이는 것과 허름한 것, 아름다움과 추함과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 사이에서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내, 전에 없던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 피에르가 만드는 부케의 가장 큰 특징이죠. 그가 추구하는 이러한 절묘함의 미학은, 그의 작업은 물론 그의 인생까지도 관통하는 개념입니다.
커리어든, 인생이든,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적당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건 불변의 진리인 듯합니다. 생각해 보면 길을 걷거나, 음식을 씹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을 할 때에도, 의식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곤 하죠. 이렇듯 양극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무척이나 귀찮고 피곤한 일입니다. 하지만 알맞은 정도를 발견한 순간,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되죠. 피에르가 피워낸 이 공간, 드보리우처럼 말이에요.
H 피에르라는 한 개인의 인생이라는 관점으로 보았을 때, 중년의 삶을 잘 계획한 결과가 드보리우인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이후의 목표나 꿈이 있을까요?
P 드보리우는 이미 제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큰 만족감을 주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나갈 드보리우가 기대될 뿐이죠. 여러분도 함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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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에디터. 내면에 락 스피릿을 간직한 미니멀리스트. 내세울 숟가락 색깔은 없어도 글 쓰는 펜수저 만큼은 대대로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