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애플이 한 해 동안 진행하는 이벤트 중 어떤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아이폰 이벤트를 생각하실 겁니다. 애플 하면 아이폰이고, 실제로 가장 많은 매출을 가져오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WWDC, 즉 세계개발자회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WWDC는 전 세계의 애플 플랫폼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이제 20억 대를 넘은 애플 기기들을 구동하는 운영체제들의 미래를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사용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그리고 애플 워치가 올가을에 어떤 새로운 기능들을 탑재하게 될지 미리 알 수 있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하드웨어를 사지 않더라도요. 그런 면에서는 아이폰을 새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아이폰 이벤트보다도 더 중요한 자리라고 볼 수 있죠.
올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좀 다르긴 했습니다. 이번 발표에는 애플이 애플 워치 이후로 처음으로 새로운 제품군에 도전하는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죠.
1. 새 맥 하드웨어
제일 먼저 발표된 것은 새로운 맥 하드웨어입니다. 첫 번째는 맥북 에어의 15인치 버전입니다. 지금까지 맥 노트북에서 13인치보다 더 큰 화면을 원하면 두세 배를 더 투자해서 14인치나 16인치 맥북 프로를 구매해야 한다는 애로사항이 존재했었는데, 15인치 맥북 에어는 맥북 라인업의 이 간극을 말끔히 해결하기 위한 제품으로 나왔습니다.
15인치 맥북 에어는 13인치와 몇 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큰 15.3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것과 스피커에 저음을 내는 우퍼가 2개 추가된 6개짜리 스피커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 그것입니다. 그 외의 사양은 13인치 모델과 동일합니다. 똑같이 M2 칩을 사용하며, 1080p 페이스타임 카메라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189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13인치 모델도 159만 원으로 10만 원 인하되었다는 소식도 있네요.
애플은 15인치 맥북 에어를 소개하면서 다른 15인치 윈도우 노트북과 비교를 했었는데, 40% 더 얇고, 200g 더 가벼우면서 성능은 2배 더 빠르고, 배터리는 50% 더 오래 버틴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애플이 15인치 맥북 에어의 주요 고객층을 어디로 잡고 있는지가 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다음으로 공개된 제품은 M2 세대로 업그레이드된 맥 스튜디오였습니다. 이미 올해 초에 출시된 새 맥북 프로에서 선보인 M2 맥스와, 이 칩 두 개를 연결한 M2 울트라를 탑재했습니다. M2 울트라는 M1 울트라 대비 최대 20%의 CPU 성능 향상과 30%의 GPU 성능 향상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애플은 M2 울트라는 최대 22개 스트림의 8K 영상 클립을 동시에 재생이 가능하고, 동시에 6개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연결할 수 있을 정도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맥 스튜디오의 가격은 299만 원부터 책정되었습니다.
M2 울트라가 탑재된 제품은 또 하나 있는데요, 바로 애플이 15개월 전에 살짝 언급했던 맥의 정점에 있는 맥 프로입니다. 맥 스튜디오랑 똑같은 M2 울트라를 탑재했다면 맥 프로가 가지는 이점이 뭐일지 궁금하실 분들도 많을 겁니다. 애플은 여기에 ‘확장성’이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꼭 4년 전에 선보였던 일명 ‘치즈 강판’ 인텔 맥 프로와 똑같아 보이는 케이스 안에는 여태까지 애플 실리콘 맥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 탑재돼 있습니다. 바로 PCIe 확장 슬롯입니다. PCIe는 일반 윈도우 데스크톱 PC에서도 기능 확장을 위해 쓰이는 슬롯으로, 대표적으로 그래픽 카드를 PCIe 슬롯을 통해 연결합니다. 하지만 애플 실리콘이 탑재된 맥 프로는 그래픽 카드를 지원한다고 명시하지 않으며, 대신 저장 장치 확장이나 오디오/동영상 I/O, 네트워킹 등의 기능 확장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맥 스튜디오는 이런 기능 확장을 위해서 뒤에 있는 USB 포트나 썬더볼트 포트를 통해 외장으로 확장해야 하는데, 맥 프로는 이 기능을 내장으로 확장해서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확장성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릅니다. 바로 1,049만 원이라는 가격이죠.
2. iOS 17
iOS 17은 잠금 화면을 사용자 입맛대로 꾸밀 수 있었던 작년의 iOS 16만큼 큰 변화는 아니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기능들이 있었습니다.
애플이 가장 먼저 선보인 기능은 바로 연락처 포스터입니다. 전화를 걸 때 상대방의 아이폰에 보이는 발신인 화면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인데요. 잠금 화면을 꾸미듯이 자신의 사진이나 미모티콘을 선택하고, 위에 이름도 다양한 서체와 색, 크기 중에 고를 수 있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었던 때가 많은데, 이를 위한 기능도 있습니다. 바로 실시간 음성 사서함이라는 기능으로, 상대방이 가상의 음성 사서함에 말하는 목소리를 받아써서 화면에 표시해 주는 기능입니다. 전화를 받아야겠다 싶으면 바로 전화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메시지 앱에서는 친구나 가족의 안전을 위한 기능이 새로 생겼는데, 바로 체크인 기능입니다. 늦은 밤에 귀가하는 등의 상황에서 체크인 기능을 켜면 친구나 가족이 알림을 받으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상황을 공유받게 됩니다. 혹여나 오랜 시간 동안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여겨질 때는 기기의 위치나 배터리 잔량, 셀룰러 신호 상태 등이 친구나 가족에게 전달됩니다.
애플 기기 사용자끼리 사진이나 파일 등을 인터넷 연결 없이도 주고받을 수 있는 에어드롭에도 몇 가지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첫 번째는 네임드롭(NameDrop)이라는 기능으로, 서로의 연락처를 아이폰 혹은 애플 워치에 직접 번호를 칠 필요 없이 에어드롭으로 교환하는 기능입니다. 단순히 번호뿐만 아니라, 위의 연락처 포스터 전체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에어드롭 기능 자체 또한 전송이 시작되고 나서 두 기기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알아서 인터넷을 활용해 파일 전송을 완료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고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앱도 선보였습니다. 연말에 추가 업데이트를 통해 선보이는 일기 앱은 아이폰에서 일기 쓰기를 생활화하게 해줄 수 있는 앱입니다. 기기 내 학습 처리를 통해 오늘 찍었던 사진이나 방문했던 장소 등을 취합해 일기의 영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며, 사용자가 설정하면 알림으로 일기를 쓸 것을 권장하는 기능도 들어가 있습니다. 써드파티 앱 또한 일기 앱의 맞춤 제안에 데이터를 보낼 수 있도록 연동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스탠바이라는 새로운 기능도 선보였는데요, 아이폰을 가로로 충전하면서 거치하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종의 나이트 스탠드 기능입니다. 단순히 시계뿐만 아니라, 사진을 보여주거나 아이폰에 설치된 위젯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집사 여러분께 희소식도 하나 있는데요, 바로 사진 앱이 동물의 얼굴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반려동물만 하나의 앨범으로 모을 수 있다는 뜻이 되겠죠?
3. iPadOS 17
iPadOS 17의 새로운 기능은 대부분 이미 iOS에 있던 기능을 물려받은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잠금 화면을 아이폰처럼 꾸밀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역시 iOS 16에서 처음 선보인 실시간 현황 기능도 지원하게 됐습니다.
건강 앱이 아이폰에서 처음으로 넘어왔으며, 아이폰에서 그러했듯이 아이폰과 애플 워치에서 수집한 건강 데이터를 아이패드의 더 큰 화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PDF 파일의 편집 기능도 크게 개선되었는데요, PDF 파일을 열면 빈칸으로 예측되는 부분을 감지해 직접 기재할 수 있게 해주며, 서명란도 인식해서 아이패드에 저장해 둔 서명을 불러오거나, 새로 쓸 수도 있습니다.
4. macOS 14 Sonoma
macOS의 새로운 버전은 캘리포니아의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도시 ‘소노마’에서 따 왔습니다.
원래 알림 센터 안에만 있었던 위젯을 데스크톱으로 배치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아이폰에 설치된 앱의 위젯을 맥으로 불러올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됐습니다.
화상회의를 할 때 화면을 공유하면 자동으로 공유하는 화면에 발표하는 화자를 합성하는 기능이 추가됩니다. 이 기능은 화자를 가장자리에 작은 썸네일로 표시하거나, 아예 얼굴을 가운데 둔 채로, 공유하는 화면을 살짝 뒤로 보내 실제로 회의실에서 발표하고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사파리에도 몇 가지 기능이 추가되었는데요, 프로필 기능을 통해 개인용 프로필과 업무용 프로필을 분리해 사용할 수 있고, 웹 앱을 별도의 앱으로 분리할 수 있는 기능도 생겼습니다. 크롬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기능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웹앱을 하나의 맥 앱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입니다.
5. 오디오 & 홈
이번에 애플은 에어팟을 오디오 섹션에 묶어서 발표했습니다. 에어팟에 새로운 기능을 이렇게 발표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로, 에어팟이 최근 들어 애플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에어팟의 경우, 에어팟 프로와 맥스에 들어가는 노이즈 감쇄 기능을 활용하는 새로운 기능들을 몇 가지 선보였습니다. 적응형 오디오라 불리는 이 기능은 노이즈 감쇄 기능이나 주변음 허용 모드를 수동으로 켜고 끄는 것이 아닌, 재생하는 미디어의 종류나 외부에서 나는 소리 등을 조합해 미디어가 잘 들리면서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소리는 들려주는 새로운 기능이라고 애플은 소개합니다. 여기에 사용자가 대화하기 시작하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미디어의 음량이 낮아지면서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며, 전화를 할 때 또한 주변에 필요하지 않은 소리는 자동으로 걸러내어 통화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tvOS에는 페이스타임 앱이 추가됐습니다. 즉, TV에서 영상통화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는데, 카메라는 아이폰을 거치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작년에 선보였던 맥에서 아이폰의 카메라를 웹캠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과 비슷한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6. watchOS 10
다음은 watchOS 10입니다. 이제 watchOS도 숫자가 두 자리로 올라갔다는 것은 그만큼 플랫폼이 성숙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watchOS 10에서 많은 부분을 갈아엎었습니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기본 앱들의 새로운 디자인입니다. 공통적으로 기존의 검은 배경에서 탈피해 애플 워치 시리즈 7과 8, 그리고 울트라의 더 커진 화면을 활용해 화사한 배경색을 입힌 것이 특징입니다. 날씨 앱은 아이폰처럼 현재 날씨 상황을 바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세계 시계 기능 또한 배경을 통해 해당 도시가 낮인지 밤인지를 빠르게 훑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빠르게 훑을 수 있도록 위젯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어떤 워치페이스를 선택했던지 아래로 스크롤 하면 위젯이 상황에 따라 워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위젯을 가장 위에 띄우는 방식으로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watchOS의 가장 큰 약점이 써드파티 앱의 정보를 쉽게 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이 부분에 대해 애플이 어느 정도 고민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워치페이스는 크게 두 가지가 추가됐는데, 그 중에 스누피 워치페이스가 참 귀엽네요.
애플이 매해 신경을 쓰는 운동 앱에도 몇 가지 변화가 있는데요, 특히 사이클링 운동은 사이클링에 활용하는 다양한 센서들을 블루투스로 워치와 연결해서 더 정확한 운동량 측정에 사용할 수 있으며, 이 데이터들을 취합해 1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이클링 강도를 의미하는 FTP(Functional Threshold Power)를 예측해 이를 뜀뛰기와 비슷하게 파워 존으로 나눠서 현재 운동 세션의 단계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전거에 아이폰을 거치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사이클링 운동의 상태를 아이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침반 앱은 하이킹 도중 마지막으로 셀룰러 신호가 잡힌 지점과 전화 혹은(아이폰 14 시리즈의 경우) 위성으로 마지막으로 신고가 가능한 지점 등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흔하지 않지만, 미국만 가도 셀룰러 신호가 터지지 않는 곳도 많기 때문에 조난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유용한 기능이 되겠죠?
그 외에도 마음 챙기기 앱을 통해 정신 건강을 챙기고, 근시를 예방하기 위한 일광 시간과 폰이나 아이패드와의 주시 거리를 TrueDepth 카메라로 측정하여 경고하는 기능도 들어갔습니다.
7. One More Thing
이 모든 발표를 마무리하고 이제 슬슬 끝내려나 싶은 순간, 팀 쿡이 나와 “One More Thing”을 외칩니다. 이 문장은 스티브 잡스가 생전 깜짝 발표가 있을 때 자주 사용하던 표현으로, 팀 쿡이 CEO가 된 이후에는 애플 워치를 처음 선보일 때와 애플 뮤직, 그리고 아이폰 X을 선보일 때, 딱 세 번만 썼습니다. 그만큼 쿡은 이 표현을 아끼고 아껴왔다는 것인데, 지금 이 표현을 썼다는 것은? 뭔가 엄청난 것이 발표된다는 뜻이겠죠. 바로 애플이 몇 년이나 개발에 매달렸다고 하는 증강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입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공간적 컴퓨팅’으로 정의합니다. 지금까지의 컴퓨팅이 화면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비전 프로는 사용자가 있는 공간 전체를 컴퓨팅에 활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일단 하드웨어를 먼저 볼까요? 일단 슥 보기만 해도 꽤 고급스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면은 유리, 가운데 프레임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디지털 크라운과 헤드셋의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할 때 쓰는 셔터 버튼이 있습니다. 그 뒤에는 패브릭으로 된 빛 가림막이 있습니다. 빛 가림막은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다른 사이즈를 붙였다 뗄 수 있는 모듈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뒤의 헤드밴드도 3D 니팅 패턴으로 제작되어 편안한 핏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안경을 쓴 사용자를 위해 자이쯔와 함께 개발한 도수 렌즈 모듈도 준비했다네요.
프레임과 헤드밴드를 연결하는 부위 양쪽에 공간 오디오를 지원하는 스피커가 있고, 왼쪽에는 전원 포트가 있습니다. 전원은 직접 어댑터를 연결하거나, 최대 2시간 사용이 가능한 외장 배터리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배터리는 주머니에 넣고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하네요.컨트롤러는 따로 없으며, 모든 조작은 시선과 손의 제스처로 할 수 있습니다. 눈이 바라보는 곳으로 커서가 움직이고, 손 제스처가 클릭을 담당합니다. 필요하다면 매직 키보드와 마우스 혹은 트랙패드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전반적인 하드웨어의 느낌은 에어팟 맥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알루미늄 프레임과 디지털 크라운, 그리고 오른쪽의 촬영 버튼도 그렇고, 패브릭 소재의 빛 가림막을 자성으로 붙이는 것 또한 에어팟 맥스의 이어커버가 자성으로 붙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전 프로의 내부 디스플레이는 총합 2,300만 화소의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를 두 눈에 나눠서 씁니다. 재밌게도, 비전 프로는 외부에도 OLED 디스플레이가 달려있는데, 이것은 EyeSight라는 기능을 위한 디스플레이입니다. EyeSight는 외부인이 비전 프로를 착용한 사용자와 소통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기능으로, 사용자가 비전 프로 콘텐츠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이면 그래픽을 통해 사용자가 상대방을 볼 수 없음을 알리고, 사용자가 상대방을 볼 수 있는 상태이면 사용자의 눈을 디스플레이에 투영해서 헤드셋을 낀 상태로도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이 비전 프로가 할 수 있는 기능은 무엇일까요? 애플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생산성 기능인데요, 눈앞에 있는 공간에 여러 개의 앱을 띄워놓고 자유롭게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포인트로 내세웠습니다. 심지어 맥북의 화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맥북의 화면까지 비전 프로에 띄워서 비전 프로에서 돌리는 앱과 연동해서 사용하는 시연까지 선보였습니다.
애플은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등 다양한 생산성 앱의 지원을 약속했고, 여기에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도 비전 프로에서 바로 구동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비전 프로로 화상 회의를 할 수도 있는데요, 회의하는 상대방은 헤드셋을 쓰고 있는 사용자 대신 비전 프로를 처음으로 셋업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얼굴을 페이스 ID와 비슷한 방식으로 스캔해서 사용자의 모습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재현한 3D 아바타를 보게 됩니다.
두 번째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최대 4K 해상도의 HDR 영상을 비전 프로 내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영상을 시청하는 배경도 기호에 따라 바꿀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진과 비디오입니다. 비전 프로에는 3D 카메라가 달려 있어 3D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으며(3D 촬영이 가능한 최초의 애플 기기입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이나 아이클라우드 사진 라이브러리에 있는 사진 및 동영상들도 사용자가 있는 공간 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애플은 또한 써드파티 개발자들이 비전 프로의 새로운 용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길도 열어두었습니다. 비전 프로는 다른 애플 기기가 그러하듯이 앱 스토어를 지원하며, 다양한 개발 도구를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애플이 비전 프로로 던지는 ‘비전’은 이전에 페이스북이라 불렸던 메타의 비전과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메타버스를 준비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헤드셋(당장 며칠 전에 9월에나 출시할 예정인 메타 퀘스트 3 헤드셋을 깜짝 공개했었죠)과 호라이즌 월드와 같은 사용자들이 가상 속 세계에 완전히 빠져 있을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애플은 현실의 공간을 활용한다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확실히 애플의 비전이 훨씬 비싼 비전입니다. 애플은 비전 프로의 가격을 $3,499로 책정했습니다. 6월 6일 기준 환율로 455만 원이라는 상당한 고가입니다. 메타가 며칠 전에 공개한 퀘스트 3은 비전 프로의 가격의 1/7이죠. 실제로 애플이 쏟은 엄청난 노력을 생각하면 그만한 가격의 하드웨어일 지도 모릅니다(애플은 비전 프로를 개발하면서 5,000여 개의 특허를 출원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애플이 제시하는 사용 케이스가 과연 그 비싼 가격을 지불할 만한가는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비전 프로에 진지하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기술들은 대부분 과거 다른 애플 제품들에도 쓰였던 기술입니다. 공간 오디오를 비롯해 카메라를 통한 장면 인식 기술과 공간을 인식하는 도트 프로젝터 기술(아이폰의 페이스 ID에 쓰인 기술입니다.), 에어팟 맥스에 쓰였던 다양한 재질 공학을 사용한 것까지 그렇죠. 맥북에 보이는 화면을 비전 프로로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이미 맥에서 아이패드로 화면을 확장하는 사이드카 기술을 응용한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 기술들은 애플이 비전 프로에 쓰려고 다른 제품에서 먼저 시험해 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비전 프로가 애플, 아니면 팀 쿡의 엔드게임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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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