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파리 사는 어떤 사람, HAE라고 합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종 로고 플레이 티셔츠의 각축이었다면, 올여름에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위풍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던 브랜드 로고와 슬로건은 슬며시 자취를 감추고, 바야흐로 그래픽 티셔츠의 시대로 접어든 것인데요. 이번 여름을 함께 나고 싶은, 뻔하지 않은 그래픽 티셔츠 다섯 가지를 소개합니다.
[1]
“로우 퀄리티의 아름다움”
에이이에이이(AEAE)
현재 가장 동시대적인 패션 브랜드 하나를 꼽으라면 에이이에이이(@aeae_official)를 꼽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브랜드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도 2023년 가장 주목받는 대세돌, 뉴진스 덕분이었으니까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에이이에이이의 컨셉은 ‘동시대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브랜드만의 문화와 감성을 트렌드에 맞게 해석한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죠.
재밌는 점은 소통을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aeae_family)이 따로 있다는 건데요. 이를 통해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출시한 제품도 있다고 하니, 이 역시 대단히 ‘요즘 브랜드’다운 행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 패션이 메가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보니, 이번 시즌 에이이에이이가 주목하고 있는 것 역시 Y2K입니다. 그중 ‘비트맵 그래픽 크롭 티셔츠(BITMAP GRAPHIC CROP T-SHIRTS)’는 다소 엉성한 그래픽이 포인트인데요. 로파이 감성이라고 하죠. 일부러 로우 퀄리티를 지향하는 미감 말이에요. 약간의 촌스러움이 한 스푼 가미된 덕분에 오히려 가장 힙하고 쿨한 무드가 됐습니다.
그 흔한 블랙이나 화이트조차 찾아볼 수 없는 컬러 옵션에서도 브랜드의 자신감이 느껴지네요. 고품질 티셔츠에 사용되는 코마사 원단으로 만들어져 쾌적한 착용감에도 신경을 썼고요. 크롭 티셔츠이지만 몸에 딱 붙지는 않아서 부담 없이 편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은 4만 원대, 구매는 여기에서.
[2]
“그림판으로 그렸을까?”
서서(SUHSUH)
로파이 얘기가 나온 김에, 이번엔 로파이가 컨셉인 브랜드, 서서(@suhsuh.com_)를 살펴볼까 합니다. 브랜드를 처음 접한 건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 광고 덕분이었는데요, 분명 그림판으로 그린 것만 같은 조악한(?) 그래픽인데 자꾸만 눈길이 가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서서’라는 이름도 참 독특하죠? 서서의 서는 ‘상서롭다’ 할 때의 ‘서(瑞)’라고 해요.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조짐’이라는 뜻을 지닌 만큼, 보기만 해도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아이템이 한가득입니다. 상대가 귀여워 보이는 순간 이미 게임 끝이라고들 하잖아요. 브랜드 서서는 치명적인 ‘귀여움’이 무기랍니다.
서서는 시즌 별로 컬렉션을 출시하지 않고, 드롭 방식으로 아이템을 선보입니다. 때문에 원하는 아이템을 겟 하려면 신속하고 정확한 클릭이 필수죠. 이번 23SS 2차 드롭의 테마는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 바로 ‘휴가’입니다. 서서의 특징이자 강점은 비일상적인 컬러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사용한다는 건데요. ‘데이오프 티셔츠(DAY OFF T-SHIRT)’ 역시 보편적인 색감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청바지 혹은 스웨트 팬츠와 함께 툭툭 입어주면 데일리로 무리 없이 소화가 가능하죠! 게다가 이 녀석은 나름 ‘외유내강’형 티셔츠입니다. 도톰한 16수 면 소재라서 입었을 때도 흐물거리지 않고 힘 있는 실루엣으로 연출될 거예요. 가격은 5만 원대, 구매는 여기에서.
[3]
“70년대 펑크 록의 감성”
씬(SEEN)
70년대 펑크 록의 성지, 런던의 감수성을 잔뜩 품고 탄생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혼란했던 2020년 런칭한 씬(@seen__nees)이 그 주인공인데요. 런던 유학 출신 디자이너가 각국을 여행하면서 촬영한 사진들이 컬렉션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운영과 함께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도 활동할 만큼 사진에 진심인 디자이너이기도 하죠.
씬의 아이템은 마치 인화한 사진들을 거칠게 오려 붙여 콜라주한 것 같은 그래픽이 특징인데요. 과연 반항적인 영국 로큰롤 정신의 현현(顯現)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넥 저지 티셔츠 (HI-NECK JERSEY T-SHIRTS)’는 매 시즌 씬이 선보이는 프린팅 티셔츠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어디선가 쟈니 로튼의 샤우팅이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이번 23SS 시즌에는 ‘OUT OF ORDER(고장 난)’이라는 주제로 런던 거리의 거칠고 불완전한 부분들을 담았다고 합니다. 가격은 9만 원대, 구매는 여기에서.
티셔츠 하나만으로도 부족함 없는 포인트가 되어 줄 테지만, 옷 입는 재미도 놓칠 순 없죠. 한여름에도 다채로운 레이어링이 용이하도록 시원한 쿨링 원단을 사용했습니다. 티셔츠에 팬츠, 스커트만 입기 시시했던 분이라면 브랜드 룩북을 참고해 감각적인 레이어드 룩을 시도해 봐도 좋겠어요!
[4]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의 대명사”
더뮤지엄비지터(THEMUSEUMVISITOR)
자, 런던을 둘러봤으니 이번엔 베를린으로 가볼까요? 유럽의 힙스터들이 베를린으로 모이듯, 우리나라의 힙스터들은 전부 더뮤지엄비지터(@themuseumvisitor)로 모이는 것 같습니다.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의 대명사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요?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디자이너 덕분에 기존 패션의 문법을 무너뜨리는 독특한 발상의 아이템이 많습니다. 덕분에 멋쟁이로 소문난 인플루언서와 셀럽들이 착용한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죠.
더뮤지엄비지터는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제품에도 핸드 스프레이나 물감, 또는 스티치 기법 등을 더해 특별한 아이템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이런 수공예적 디테일이 매니아 층의 열렬한 사랑을 독차지하는 포인트이기도 하죠.
매력적인 그래픽 티셔츠가 무척 많지만, 그중에서도 올여름에는 ‘멀티 스타 스프레이 티셔츠(MULTI STAR SPRAYED T-SHIRTS)’를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요? 마치 현대 미술 작품을 연상시키는 그래픽이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템입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화이트 티셔츠이지만, 슈팅스타처럼 통통 튀는 그래픽과 은은한 스티치 포인트로 특별함을 더할 수 있을 거예요. 가격은 12만 원대, 구매는 여기에서.
[5]
“로고가 다가 아니야”
엠엠엘지(MMLG)
사실 로고 티셔츠 하면 빠질 수 없는 브랜드가 엠엠엘지(@official_mmlg)죠. 길거리에서 다들 한 번쯤은 ‘1987’ 혹은 ‘MMLG’가 새겨진 티셔츠를 목격한 적이 있을 거라 짐작합니다. 하지만 엠엠엘지는 로고 티셔츠만 쇼핑하기엔 아쉬운 브랜드입니다. 기발하고 위트 있는 그래픽 티셔츠도 대단히 많거든요.
워낙에 빼어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한 톱모델 김원중, 박지운 대표가 진두지휘하는 브랜드이다 보니, 그 안에 배어든 감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패피’들만 접근할 수 있는 어렵고 난해한 옷들이 아니라, 누구든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지웨어가 주를 이루고 있죠.
엠엠엘지는 컬러를 굉장히 잘 사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자체적으로 염색을 하고 원단을 개발할 만큼 색으로 승부를 보는 곳인데요. ‘록스타 하프 티셔츠(ROCKSTAR HF-T)’ 역시 산뜻한 핑크 컬러가 돋보이는 아이템입니다. 이렇게 뽀얀 딸기우유 색감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원단에 효소 가공 처리를 거쳤기 때문이죠.
드럼 심벌을 스마일 마크로 변형시킨 두들 그래픽에서도 엠엠엘지만의 유쾌한 감성이 묻어납니다. 무난한 화이트나 차콜 컬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핫 서머 시즌엔 핑크 정도는 입어줘야 멋쟁이 소리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가격은 4만 원대, 구매는 여기에서.
About Author
HAE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에디터. 내면에 락 스피릿을 간직한 미니멀리스트. 내세울 숟가락 색깔은 없어도 글 쓰는 펜수저 만큼은 대대로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