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남서부 이베리아 반도에서 LG의 여섯 번째 G가 등장했다. 멀고 먼 나라에서 영어로 중계되는 G6 공개 현장을 애정(!)으로 끝까지 시청했다. 문득 익숙한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2012년 개봉작인 ’건축학개론’이다. 여러분에게 G6라는 제품을 설명하기에 딱 알맞은 영화인 것 같아서 엮어 봤다. 억지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해다.
자, LG G6와 건축학개론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기사 속 사진은 영화 건축학개론 스틸컷이다.
1. 같은 부지에 실내 공간을 넓혔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서연(한가인)이 15년 전 첫사랑이었던 승민(엄태웅)을 찾아가며 시작된다. 건축가가 된 친구에게 서연은 고향인 제주도에 있는 오래된 주택을 허물고 다시 설계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나라엔 수많은 건축사 사무소가 있을 텐데, 이혼 합의금도 두둑하게 받은 마당에 굳이 입봉도 못한 첫사랑을 찾아가다니. 여기부터 질척거림의 시작이지만 사족이니 넣어두자. 클라이언트인 서연이 모든 설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갑질을 하자, 결국 기존 집을 증축하는 걸로 가닥이 잡힌다. 원래 있는 집터를 그대로 살리되, 앞마당까지 실내 공간을 넓히는 아이디어다. 거실 층고는 높아지고 없던 2층 공간을 만들어 넓고 아름다운 집이 완성된다.
G6도 비슷한 설계를 감행했다. 디스플레이가 무려 5.7인치다. 크다. 얼마나 크냐고? 지금은 시장을 떠난 모델이지만, 갤럭시 노트7과 같은 크기의 화면이라고 하면 감이 오겠지. 이 정도 화면이면 한 손으론 사용하기 힘든 패블릿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G6의 가로폭은 고작 71.9mm. 5.3인치 디스플레이인 G5의 가로폭이 73.9mm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부지는 그대로(사실은 더 좁아졌지만)인데 앞마당, 옆마당, 뒷마당 전부 시원하게 터버리니 실내 공간은 넓어졌다.
베젤이 기이할 정도로 좁아져서 정면에서 봤을 땐 화면 외엔 보이지 않는다. 화면 몰입도가 높은 미래적 디자인이다. 확실히 한눈에 “헉”하게 되는 효과는 있다. 제품 모서리를 부드럽게 라운드 처리하며, 디스플레이 모서리 역시 라운드 처리했다. 계속 보면 익숙해질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낯설다.
화면 비율은 18:9라는 아스트랄한 숫자를 내세웠다. 기존 앱과 화면 비율이 맞지 않을 테니 뭔가 찝찝하지만, 고민을 많이 한 모습이다. 카메라 앱에서는 여분의 공간을 사진 미리보기 타일로 활용했고, 화면 비율을 선택할 수 있는 메뉴를 마련해뒀다. 어쨌든 서연의 집만큼 넓어진 화면은 G6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2. 한때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졌다
건축학개론 최고의 캐릭터는 누구일까. 어린 서연(수지)일까? 아니지. 첫사랑의 늪에 빠진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재수생 신분에도 넙죽 나와주는 ‘납뜩이(조정석)’이다. 대학생 씩이나 되어서도 쑥맥처럼 굴며 납득이 안되는 소리만 해대는 친구에게 얼마나 주옥같은 충고를 해줬던가. 승민과 납뜩(이름도 없다)은 한 세트처럼 정다운 친구였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후, 납뜩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우정은 끝난 것이다.
G6도 마찬가지였다. 작년만 해도 얼마나 친구들 타령을 해댔는가. LG G5를 혁신적인(?) 모듈형 스마트폰으로 만들어 준 것은 다름아닌 친구들이었다. 사진을 더 쉽게 찍을 수 있다는 캠 플러스 모듈과 B&O 마크가 새겨진 하이파이 플러스 모듈. LG는 G5와 친구들을 통해 플레이 그라운드를 만들겠다고 단언했었다. 그리고 1년 만에 그 놀이터에는 모래만 남았다. 모바일 원더랜드 만들어준다더니 그들의 우정도 끝난 것이다.
아, 물론 비난하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우정은 시간이 흐르며 빛 바래기 마련이다. G6가 G5 시절의 친구들을 대놓고 쌩깐 것도 냉정하지만 현명한 처사다. 그냥 납뜩이와 G5의 마음도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3. 자라나면 다른 사람이 된다
비슷한 얘기의 연장이다. 건축학개론은 내게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족히 네 번은 다시 본 것 같다. 문제는 캐스팅이었다. 수지가 자라서 한가인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마음을 곱게 먹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역과 성인 배우 역할을 캐스팅할 땐 분위기라도 비슷한 사람을 뽑는 게 보통 아닌가? 둘 다 미인이지만, 수지와 한가인은 장르가 너무 다르다. 맥이 끊긴다. 툭, 툭.
시리즈마다 장르가 바뀌고 맥이 끊기는 건 G시리즈를 따라갈 자가 없다. 특히 G4와 G5는 같은 제조사가 같은 이름을 걸고 만든 같은 시리즈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르다. 같은 이니셜을 공유할 땐 컨셉이라도 같아야 하는 게 아닌가. G5에서 G6로 넘어오며 보여준 긍정적인 변화는 반갑지만, 매번 스토리 없이 진화에 급급한 모습은 아쉽다. 수지가 자라서 한가인이 되고. G가 자라서 G6가 됐다.
4. 흑역사가 있다
모두 흑역사는 있게 마련이다. 어린 승민(이제훈)은 순수한 20대 남자가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찌질함을 정직하게 담고 있다. 짝퉁 게스 티셔츠가 창피해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남자 선배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내앞에서 꺼져달라며 맘에도 없는 소릴 한다.
G시리즈의 흑역사는 바로 지난 해였다. G5에서 보여준 모험심 넘치는 요소는 위험한 결과를 낳았다. 항간에서 V시리즈를 잘 만들기 위해 G시리즈를 희생양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헛소리가 흘러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어둠의 시대는 지나가기 마련이다. 승민은 자라나 번듯한(?) 건축가가 되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부자고, 예쁘고, 어린 고준희와 결혼해 미국으로 간다. 그 후에 행복했는지 따위는 내 알바 아니지만 암울한 20대를 무사히 넘겼다는 건 분명하다.
G6 역시 일단은 흑역사를 극복한 것 같은 때깔이다. 모험심 넘치던 과거의 그림자는 내려놓고, 품위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해외 유튜버의 영상으로 미리 확인한 G6는 꽤 근사하고 고급스러워보인다. 돌비 비전과 HDR 10을 지원해 같은 넷플릭스 드라마도 훨씬 더 생생한 화질로 볼 수 있다고. 영상 속에서 아이폰과 화질을 비교한 모습을 보니 꽤 드라마틱한 차이다. 멋지다.
5. 사운드로 절반 먹고 들어간다.
영화관에서 건축학개론을 처음 보던 그날. 옥상에서 수지가 CD 플레이어를 꺼내 전람회의 노래를 들려주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수지가 직접 꽂아준 이어폰에서는 ‘기억의 습작’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완벽한 배경음악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가진 분위기를 300% 끌어올렸다.
사운드로는 소리 장인 LG도 빠지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샀는데 뮤직 플레이어가 딸려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LG G6는 하이파이 쿼드 DAC를 탑재했다. 외부 오디오 기기를 연결했을 때 실제 원음에 가까운 고해상도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V20의 쿼드 DAC보다 업그레이드된 기술이라고. 좌우 음향을 각각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싱글 DAC 대비 최대 50%까지 노이즈를 줄여 준다. 이렇게 말하니 좀 어렵다. 쉽게 설명하자면 전용 플레이어가 없어도 스마트폰으로도 훨씬 깨끗하고 입체감있는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돈에 소리가 좋으면 핵이득.
다만 이상한 점은, 한국 출시 모델에만 쿼드 DAC가 들어간다는 사실. 한국 사람들만 귀가 까다로운가? 또 이상한 건 한국 모델엔 무선 충전 기술이 빠져있다는 소문이. 뭐지. G5 버릇을 못 버리고 국가별로 기능 모듈형 판매를 실시하는 건가.
6. 혼자라서 더 완전해졌다
건축학개론의 마지막 장면은 제주도에서 스스로의 삶을 다시 시작한 서연의 모습이다. 기억의 습작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한가인의 모습은 아무 대사도 하지 않아 연기력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없이 아름다웠다.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모두 보내고 혼자서도 완전한 삶을 개척하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확대 해석해보자.
G6역시 다시 혼자가 되길 택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혼자서도 완전한 배터리 일체형이 되었다는 뜻이다. 착탈식 배터리를 LG를 선택하는 이유라고 말해왔던 사용자들은 동공지진 멘탈붕괴 상태겠다. 이제 이 땅에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스마트폰 따위는 남지 않으려나보다. 교체식 배터리와의 이별을 겪은 G6는 강해졌다. IP68 등급의 방수/방진을 지원하는 터프함을 얻었다. 환영할 소식이다.
G6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은 아직 많다. 카메라도, 구글 어시스턴트와의 궁합도 궁금하다. 일단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나왔기 때문에 차분하게 리뷰할 기회를 기다려 볼 참이다. G6 발표회를 본 시간보다 건축학개론을 다시 본 시간이 더 길었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면 그 또한 여러분의 오해. 리뷰로 다시 돌아오겠다. 영화말고 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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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