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옷장 맥시멀리스트 객원필자 손현정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패션 업계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여름 신상을 쏟아내고 있다. 카고팬츠, 치마 바지, 컷아웃 티셔츠…! 세상에는 왜 이렇게 예쁜 옷들이 많을까? 이미 내 옷장은 터져나가는 중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계절을 앞두면 이런 말이 또 나온다.
“이번 여름에는 정말 입을 옷이 없네?”
틈만 나면 패션 브랜드 인스타그램과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이유다. 이왕 사는 거 아무거나 살 순 없다. 중독된 듯이 패션 브랜드를 염탐하는 내가 특히 눈여겨보는 하입한 브랜드 다섯 개를 공유하려 한다. 다가올 뜨거운 여름을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읽어보자.
[1]
리(L.e.e.y)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열거나 인스타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브랜드가 많아졌다. 예전과 비교해 소비자와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트렌드가 된 것 같다. 하지만 L.e.e.y의 소통 방식은 다른 브랜드보다 더 특별하다. 팝업에 가야만 받을 수 있는 한정판 사은품이 있기 때문이다. 한두 개 만들고 생색내는 수준이 아니다. 직접 핸드워싱하거나 핸드프린팅한 제품부터 직접 리폼한 제품과 캠핑 의자까지 제품군도 꽤 다양하다.
L.e.e.y가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 향수, 영상 등 오감을 동원한 매개체로 그들이 어떤 브랜드인지 드러낸다. 여러 DJ를 섭외해서 팝업 부스 내에서 온종일 디제잉을 선보이기도 하고, 하루 영업이 끝나면 클럽 느낌이 나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L.e.e.y스러운’ 향을 담은 증정용 향수를 제작하고, 영화 같은 패션 필름을 만들어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L.e.e.y의 대표 이여정은 10대 시절부터 편집숍을 운영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에 브랜드를 런칭했다. L.e.e.y의 옷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디자인은 아니기 때문에 SNS 소통을 통해 더 친근한 브랜드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L.e.e.y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컬렉션을 제작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신장의 직원들이 직접 옷을 입어 핏이나 기장감을 알려주고 스타일링 팁까지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여름에는 어떤 신상을 발매하면 좋을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군은 무엇인지 의견을 듣고 옷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L.e.e.y의 카고팬츠, ‘camo pocket cargo pants khaki’. 나는 이 옷을 추천한다. 허리 부분과 밑단이 스트링으로 되어있어 체형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핏을 연출할 수 있다. 촌스럽지 않은 빈티지한 원단감으로 힙한 스트리트 패션을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구매는 여기.
카고팬츠가 부담스럽거나 코디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vintage washed classic denim pants blue’가 좋겠다. 세미 와이드 실루엣의 빈티지한 워싱이 포인트다. 워싱에 따라 다리가 짧아 보이거나 두꺼워 보일 수 있는데 이 제품은 다리 라인 바깥쪽으로 길게 워싱이 들어가있어 다리가 길어 보인다. 뒷면도 엉덩이 라인 아래쪽으로 워싱이 들어가있어 힙업되어 보이는 착시효과를 보여준다. 사계절 내내 교복처럼 입을 수 있는 바지를 원한다면 이 제품이다. 구매는 여기.
[2]
기준(Kijun)
1980-90년대의 쿨한 멋스러움을 사랑한다면 기준(Kijun)을 추천한다.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기준은 ‘Standard’를 의미한다. 틀에 갇힌 기존의 것을 벗어나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게 브랜드의 포부이자 정체성. 개성이 뚜렷했던 과거 서울 스트리트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컬렉션은 독특해 보이면서도 일상에서 쉽게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기준은 김현우와 신명준이 2018년에 런칭한 브랜드다. 그중 김현우는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후 프랑스에서 열리는 2017 이예르 페스티벌(Hyères Festival)에서 최종 10인에 선정돼 디자이너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기준의 가장 큰 특징은 컬렉션의 콘셉트와 스토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내용과 흐름이 주는 흥미로움. 매 시즌마다 80-90년대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만들어 낸다. 왜 영화일까? 김현우 디자이너에게 영화란 ‘우리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와 공간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영감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23S/S는 영화 <치코와 리타>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은 쿠바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치코와 가수 리타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서로의 뮤즈로서 사랑을 나눈다는 줄거리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관능적인 분위기를 의상화했다.
페미닌하면서 귀여운 옷을 찾는다면 ‘shirring tie cardigan’를 추천한다. 타이트한 핏에 셔링이 들어간 게 특징이다. 모델처럼 니플패치만 붙이고 입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안에 브라탑이나 나시를 입고 걸쳐도 좋다. 무난한 디자인에 세심한 디테일이 더해진 디자인이라 청바지, 치마 등에 매치해도 좋은 스타일링이 된다. 구매는 여기.
조금 더 과감한 디자인으로 쿠바의 여름을 만끽하고 싶다면 ‘havana knit vest’는 어떨까. 타이트한 핏에 금속 오프닝이 매력적이다. 니트 베스트는 외국 셀럽들의 파파라치에서도 자주 포착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와이드한 데님팬츠나 로우라이즈 카고팬츠,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더한다면 완성. 단독으로 입기가 너무 부담스럽다면 민소매 크롭탑 위에 걸쳐보자. 구매는 여기.
[3]
윤세(YUNSÉ)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패션이 아닐까? 윤세의 대표 윤세정은 나이와 국적에 제한 없이 여성들이 자신을 표현할 때 스스럼없이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고자 한다. 윤세의 디자인은 부드러운 곡선의 실루엣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곳곳에 터프함이 숨어있다.
윤세의 가장 매력은 소재에 있다. 온라인 샵으로 보면 느낄 수 없겠지만, 직접 만져보면 독특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베이직한 아이템이더라도 빛과 움직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소재를 써서 ‘꾸안꾸 느낌’이 제대로다. 또, 화려한 패턴과 과감하게 활용하는 원색도 특징이다. 내가 가장 돋보이고 싶은 날, 화려한 플라워 패턴과 원색 컬러로 포인트 주기에 제격이다. 신사역 인근에 쇼룸이 있으니 직접 만져 보고 입어보는 걸 추천한다. 장담하건대 누구든 윤세의 실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지갑이 열릴 거다.
내가 추천하는 건 ‘ginghem draped dress’다. 위아래 코디를 신경 쓸 필요 없고, 신체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입을 수 있다. 블루 깅엄체크 원단이 청량감을 더해주고 치마의 러플 디자인이 하늘하늘함을 더해준다. 뒤에 달린 끈으로 허리를 조여 스타일링할 수 있다. 구매는 여기.
깅엄패턴이 살짝 부담스럽거나 미니멀한 패션을 추구한다면 ‘ribbon string blouse’는 어떨까. 시원한 코튼 나일론 소재를 썼고, 백 오픈 스타일이라 시원하다. 뒷면에는 두 개의 단추가 있어 사이즈 조절도 가능하다. 무난하면서도 어깨에 리본 포인트가 있어 웬만한 하의와 잘 어울릴 듯하다. 코디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추천한다. 구매는 여기.
[4]
2000아카이브스(2000 Archives)
힙하다는 게 뭘까. 2000아카이브스가 말하는 ‘힙함’이란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2000아카이브스는 남의 눈을 의식해 절제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브랜드 런칭 이후 지속적으로 사랑받아 온 스포티한 느낌의 스니커즈와 힐이 결합된 트랙스타 힐처럼 말이다.
2000아카이브스는 그 이름처럼 2000년대의 빈티지 패션을 아카이브 하는 온라인 빈티지 샵으로 시작했다. 이후 일부 아이템을 직접 제작하여 판매하면서 2020년에는 패션 브랜드로 공식 데뷔했다. 그들은 과거의 빈티지 감성과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한 스타일을 선보이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프린팅 디자인’.
‘요즘 프린팅 티셔츠 없는 브랜드가 어디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0아카이브스의 프린팅은 수준이 다르다. 티셔츠는 기본이고 치마, 넥타이, 신발, 스타킹까지 프린팅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번 SS23 신상은 브랜드 런칭 이후 가장 제품 수가 많은 시즌이다. 야생적이면서 동시에 우아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꽃과 동물 프린트를 이용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대담하고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제품화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위시리스트가 너무 많아 내 지갑은 홀쭉해질 예정이다. 소개하고 싶은 제품이 많지만 전부 소개할 수 없으니 꼭 홈페이지에 방문해 보길 바란다.
이번 SS23 신상 중 하나를 추천하자면 나의 선택은 ‘Tromple L’oeil Skirt’. 커다란 빈티지 장식이 달린 이미지가 스캔 된 느낌으로 프린팅되어 있다. 흰 치마 안에 또 다른 치마가 그려져 있어 날씬해 보이거나 실루엣이 더 예뻐 보일 것 같다. 밝은색 상의와 함께 입으면 특별히 스타일에 힘주지 않아도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구매는 여기.
프린팅 디자인이 너무 화려하게 느껴져서 도전하기 어려운 이들에겐 23SS SPORT 라인으로 출시된 ‘2000 Football T-shirts’를 추천한다. 뉴진스나 벨라 하디드가 즐겨 입는 풋볼티셔츠나 저지 탑 같은 스포티한 티셔츠다. 내돈내산 후기를 조금 더하자면 시원한 소재와 어깨에 별 모양 자수가 포인트가 되어 귀여움이 두 배다. 구매는 여기.
[5]
더오픈프로덕트(TheOpen Product)
[출처: 아이유 인스타그램]
만약 나의 뮤즈가 내가 만든 옷을 입으면 어떤 기분일까? 더오픈프로덕트는 동대문 도매 사업으로 시작한 브랜드다. 자매인 김지영, 김보영 대표는 도매시장에서 대박을 내고 디자이너 브랜드를 런칭하여 20SS 컬렉션으로 그들의 첫 제품을 공개했다. 더오픈프로덕트는 첫 컬렉션 공개 이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오픈프로덕트의 니트 베스트를 입은 켄달 제너가 파파라치에 포착되면서 브랜드의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놀라운 사실은 한 인터뷰에서 밝힌 그들의 뮤즈가 바로 켄달 제너였다는 것이다. 켄달 제너뿐만 아니라 아이유, 블랙핑크 제니, 뉴진스 등 요즘 핫한 셀럽들이 찾는 브랜드가 바로 더오픈프로덕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주목받는 브랜드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들은 ‘경계 없음’을 지향한다. 예를 들면 런웨이와 스트리트, 여성과 남성, 나이 같은 것들 말이다. 젠더리스(genderless)가 가장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더오픈프로덕트는 동대문 도매 브랜드에서부터 시작한 덕분인지 빠르게 소비되는 대중문화와 트렌드를 잘 반영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Y2K 시대의 빈티지 카툰, 데님 프린트 같은 것들을 발 빠르게 선보였다.
22SS시즌에는 리사이클 원단을 사용하여 의류를 제작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은 환경파괴의 주범 중 하나인 이 시대의 패션 브랜드가 가출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되었다. 리사이클 원단이지만 옷감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깔끔하다.
무용수들의 공연 의상과 리허설 복장에서 영감받은 발레 코어는 올해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더오픈프로덕트의 23SS 컨셉 역시 발레리나. 나는 ‘ballerina mesh top’을 추천한다. 매쉬 저지 소재에 발레리나 콜라주 그래픽이 들어가 있다. 살짝 타이트한 핏의 비침 있는 티셔츠로 섹시함과 우아함이 공존한다. 반소매 티셔츠와 레이어드하기도 좋고 단독으로 입기에도 매력적일 것이다. 구매는 여기.
비침이 부담스러운 유교걸이라면 ‘rolled waist cargo pants’는 어떨까. 제일 작은 사이즈도 총장이 136.4cm로 굉장히 긴 편이지만 요즘 대세는 바닥 청소할 만큼 기장이 긴 바지 아니겠는가. 너무 길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면 롤업해서 입어도 좋다. 허리를 말아 입은 듯한 스트링 롱 웨이스트 디자인과 오버사이즈 핏이 매력적이다. 허리에 끈이 있어 사이즈의 구애도 없어서 활용도가 높은 편. 구매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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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정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박찬호급 투머치토커. 장래희망은 투머치라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