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한정판, 특별판, 그리고 콜라보레이션 전자 제품 리뷰를 빌미로 옛날 제품 이야기를 하는 ‘컬렉터’ 코너의 객원필자 기즈모다.
오늘 리뷰할 제품은 마샬 60주년 기념 다이아몬드 쥬빌리 에디션이다. 흔한 표현은 아니지만 영어권(특히 영국)에서는 60주년을 다이아몬드 쥬빌리라고 한다. 한국말로 하면 ‘환갑잔치’다. 지난해 마샬은 60주년을 맞이했고 그 기념으로 스피커, 헤드폰, 이어폰 3종 세트를 내놨다. 그 중에서 마샬 엠버튼 스피커를 골라봤다. 한정판이긴 한데 구하는 것은 쉽다. 여전히 공식홈페이지에서 재고를 판매 중이며 해외직구로 20만 원대에 구입 가능하다. 내 솔로 시절과 비슷하다. 나도 한정판이었지만 큰 인기는 없었다.
마샬 얘기를 좀 더 해보면 마샬은 원래 스피커 회사가 아니다. 기타 앰프 회사다. 기타 앰프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분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전자기타는 기타의 음을 증폭시켜서 스피커로 내보내야지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이 음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가 기타 앰프다. 오로지 전자 기타만을 위한 앰프인 셈이다. 마샬은 1960년 밴드의 드러머 출신이었던 ‘짐 마샬’에 의해 설립됐다. 훗날 그의 별명은 father of loud(굉음의 아버지)가 된다. 리뷰와 함께 흥미로운 마샬 60년을 되돌아보자.
우선 디자인은 일반 마샬 엠버튼과 동일한 디자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샬 로고가 검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검은색 몸체에 검은색 로고라니. 상식적인 디자인은 아니지만 마샬이 하면 어쩐지 힙하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상단에 조그 스위치다. 원래 일반판의 조그 스위치는 황금색인데 60주년 기념판은 검은색 다이아몬드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몸체가 온통 검은색이다. 상태표시 등과 배터리 게이지의 빨간색 LED만 제외하면 모두 검은색이다.
앞쪽과 뒤쪽에는 각각 철망으로 덮여 있다. 스피커 그릴에 금속을 쓰는 경우는 흔하지만 마샬처럼 저렇게 멋지게 짜임을 넣은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인 금속 그릴에 비해 제작하기가 어려운 방식이다. 이게 바로 락스피릿(Rock Sprit)이다. 멋을 위해 공정과 과정을 무시하는 것. 덕분에 마샬은 카페스피커로 불리며 인테리어 아이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음악은 앞쪽만 아니라 뒤쪽으로도 나온다. 앞뒤로 똑같이 10W의 앰프가 내장돼 총 20W의 출력을 지원한다. 20W의 출력은 거실이나 넓은 공간용은 아니지만 방이나 캠핑장에서 적당한 볼륨으로 음악을 즐기기에 충분한 출력이다.
옆쪽에는 60이라는 숫자가 크게 그려져 있어 60주년 한정판임을 알려준다. 시리얼 넘버는 없지만 60주년 기념판다운 특별한 컬러와 각인이 만족감을 준다. 겉은 우레탄 재질처럼 약간 탄력이 있는 플라스틱 재질이다. IPX7등급의 완전방수 재질로 물속에 들어가도 문제가 없다. 앞쪽은 철망으로 스피커 유닛을 보호하고 웬만한 충격에도 깨질 염려가 없다. 표면도 우툴두툴해서 흠집이 나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극한 상황에서도 버텨내고, 충격도 잘 흡수하며, 흠집도 눈에 띄지 않는, 생업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직장인 같다.
가로 사이즈는 16cm, 무게는 700g. 배터리는 완충시 총 20시간 재생이 가능하다. 다만 절반 이상 볼륨으로 틀어 놨을 때 12시간 정도 지속됐다. 여러모로 휴대에 최적화된 스피커다. 음질은 마샬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카랑카랑하면서도 저역도 어느 정도 강조가 돼 있다. 태생답게 록음악이나 시끄러운 음악을 재생하는데 최적화된 스피커다. 또 하나의 장점은 앞과 뒤과 동일하게 설계돼서 앞뒤로 음악이 나온다는 점. 따라서 야외에서 스피커를 중앙에 놓고 음악을 들을 때 제실력이 나온다. 캠핑에 최적인 완전방수, 양방향 스피커, 휴대가 편리한 무게, 긴 배터리 등. 집과 야외, 어디서든 다용도로 쓰기 좋은 스피커다.
이제 옆길로 새어 보자. 마샬은 소위 짝퉁이 많은 스피커로 유명하다. 해외 직구를 잘못하면 여지없이 짝퉁이 배송된다. 그래서 구입할 때 정품을 구입하거나 정식 홈페이지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런데 왜 유독 마샬은 짝퉁이 많은 것일까? 마샬이 워낙 인기도 있는 점도 있지만 어쩌면 그의 태생 때문인지도 모른다. 태생? 사실 마샬은 카피캣(copycat-유명 제품을 똑같이 카피해서 만드는 제품)으로 시작한 회사다. 마샬을 설립한 짐 마샬은 당시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들이 너무 비싼 ‘펜더’의 기타앰프에 군침만 흘리는 것을 보고 펜더의 기타앰프를 카피해서 저렴한 기타앰프를 만들었다. 소위 카피캣이다. 하지만 덕분에 가난한 기타리스트들도 개성 있는 기타소리를 만들 수 있었다.
기술의 역사를 보면 이런 카피캣은 끝없이 반복된다. 현재 모든 공산품에 의무적으로 새겨지는 ‘Made in XXX’는 영국 제품을 똑같이 카피하는 독일 제품에 짜증이 난 영국의 상표법에서 비롯됐다. 그 독일 제품을 집요하게 카피했던 게 일본 제품이고, 일본 제품을 카피하던 나라 중에는 한국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이 카피캣의 대명사다. 중국이 만드는 짝퉁 중에 마샬 스피커도 있다. 돌고 돌아 이제 마샬이 카피캣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래서 마샬은 카피캣에게 좀 더 너그러운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미 헨드릭스와 그의 마샬 앰프]
그저 카피캣으로 끝날 수 있던 마샬은 엄청난 행운을 만나며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그 행운은 기타의 전설 ‘지미 헨드릭스’다. 지미 헨드릭스는 마샬 설립 초창기에 마샬의 기타앰프를 선택했고 마샬은 곧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런데 지미 헨드릭스가 마샬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의 본명은 ‘제임스 마샬 헨드릭스’였는데 우연히 미들네임이 마샬과 같아서 마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짐 마샬을 만나 자신의 앰프를 주문했다. 짐 마샬은 처음에 지미 헨드릭스를 몰라보고 또 무료 협찬을 요구하는 하찮은 기타리스트인줄 알았다고 한다.
거대한 대기업들의 성공스토리는 나중에 화려하게 포장되지만 사실 초창기에는 이런 허무한 에피소드가 많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는 초창기에 ‘블루박스’라는 불법 전화기를 만들어 팔다 감옥에 갈 뻔 했고, 구글을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이 팔리지 않아 할 수 없이 직접 운영하다 현재의 구글을 만들었다.
마샬 역시 카피캣으로 시작했고 유명 아티스트의 미들네임과 같다는 이유로 유명해졌다. 그러고 보면 성공의 요건에 ‘운’은 필수요소인 것 같다. 물론 행운이 오기 전까지 노력은 있어야겠지만.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아직 당신에게 운이 도달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벽처럼 쌓인 마샬 앰프 스택]
마샬은 이후로 세계 최정상의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사용하며 자신이 카피했던 펜더 만큼이나 전설적인 기타앰프 제조사가 됐다.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오지오스본, 데이빗 보위, 잉베이 맘스틴, 에릭 클랩톤, 건스앤로지스 등의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마샬 앰프를 쓰면서 록과 메탈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스웨덴의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은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인공 물체는 “만리장성과 내 마샬 앰프 스택(앰프와 스피커를 쌓아 둔 것) 뿐이다”라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내가 구입한 스피커를 쌓아 두고 흐뭇해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2012년 창업자인 짐 마샬이 사망했을 때 수많은 록밴드들은 “굉음의 아버지가 잠들었다”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후 2016년 마샬은 창업자의 유지를 받들어 마샬 레코드라는 에이전시를 만들었다. 단순히 제품만 파는 게 아니라 직접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라이브 공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음악계에 공헌하고 싶었던 짐 마샬의 유언 덕분이다.
아마 마샬보다 더 좋은 스피커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마샬만큼 음악에 공헌한 스피커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신들이 지원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자신이 만든 스피커로 일반인에게 들려준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일까? 그래서 마샬 스피커에는 그들이 사랑했던 록밴드처럼 반항과 굉음이 살아 숨쉰다. 마샬 스피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