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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 가장 저렴한 오메가, 문스와치

레트로 마니아 기즈모의 한정판 리뷰 시리즈
레트로 마니아 기즈모의 한정판 리뷰 시리즈

2023. 01. 30

안녕. 나는 한정판, 특별판, 그리고 콜라보레이션 전자 제품 리뷰를 빌미로 옛날 제품 이야기를 하는 ‘컬렉터’ 코너의 객원 필자 기즈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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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제품은 스와치 브랜드의 ‘문스와치’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다이얼에 ‘오메가’ 로고가 선명하다. 문스와치는 오메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스피드마스터 시리즈를 똑 닮은 외양이 화제가 됐다. 2022년 초에 33만 원대의 가격으로 출시되어 품절 사태를 빚었고 리셀 가격이 3배 가까이 치솟은 적이 있다. 심지어 한정판도 아닌데 말이다.

다행히 이제는 구입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리셀 가격도 매장 판매가와 큰 차이가 없어 하나 구입해 봤다. 세부 모델은 태양계의 11개 행성에서 따와 총 11개 종류가 있다고 한다. 태양계 행성이 11개라니? 찾아보니 태양계 행성은 8개인데 여기에 명왕성과 달, 해까지 포함했다고 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최대한 모델을 늘렸다. 출시된 지 좀 됐지만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는 뒷얘기가 있으니 리뷰를 빌미로 옛이야기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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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내가 구입한 모델은 미션 투 새턴(Saturn)라는 모델이다. 새턴은 토성을 뜻한다고 한다. 태양계 몇 번째 행성이라고 하는데 토성을 고른 이유는 별다른 게 없다. 리셀 가격이 매장가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토성이 몇 번째 행성인지도 잘 모른다. 나는 리뷰 외에는 관심이 없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도 리뷰하다가 알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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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투 새턴의 케이스는 베이지 색상이고 플라스틱 소재다. 따라서 가볍다. 무게는 스트랩 포함 29g. 지름은 42mm, 높이는 13.58mm, 러그폭은 20mm. 지름이 작은 편은 아니지만 17cm가 안 되는 내 손목에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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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랩은 갈색이고 일반 천 재질인데 특이하게 벨크로 방식으로 고정된다. 이유는 있다. 우주복 위에 시계를 차려면 벨크로 소재가 유리하다고 한다. 물론 내가 우주복을 입을 가능성은 없고 그럴 기회가 있어도 우주로는 나가지 않을 것이며 무슨 임무를 수행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비티’라는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계 모델명이 미션 투 새턴 아닌가. 시계 이미지와는 잘 맞는 스트랩이다. 물론 가격도 엄청 저렴할 테고. 다만 스트랩이 시계 본체에 완전히 봉제돼 있기 때문에 다른 스트랩을 사용하려면 기본 스트랩을 잘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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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에는 토성 이미지의 배터리 케이스가 있고 스와치 로고가 새겨져 있다. 건전지를 사용하는 쿼츠 시계며 무브먼트는 ETA의 저렴한 쿼츠용 무브먼트로 추정된다. 기압은 3bar 방수라고 한다. 일반 전자제품식 방수등급으로 보면 IPX5등급 방수 성능 정도다. 샤워나 손을 씻는 정도는 가능한 생활방수 수준이다. 우주로 이 시계를 가지고 나가는 것은 절대 무리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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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 디자인을 보자. 이 제품의 가장 큰 매력은 다이얼에 ‘오메가’ 마크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오메가 밑에 ‘스와치’ 마크도 새겨져 있지만 크기 차이를 두어 오메가가 눈에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스피드마스터 특유의 세 개의 크로노그래프(스톱워치)가 위치하고 있다. 문스와치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다이얼을 3D 스캔해서 동일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만든 모델이다. 특히 스와치 미션 투 더 문의 경우는 실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와 색상 배합도 같아서 싱크로율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미션 투 더 문의 리셀 가격이 가장 높은 편이다. 참고로 내가 가진 미션 투 새턴 모델은 세 번째 크로노그래프에 토성처럼 띠 모양이 그려져 있다. 다른 버전은 없는 새턴 버전만의 특유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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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대강 살펴봤다. 언뜻 보면 예쁘긴 하지만 플라스틱 소재의 저렴한 스와치 시계다. 제품 자체만으로는 30만 원대의 가격이 과하다. 평범한 케이스에 평범한 소재, 평범한 쿼츠 무브먼트, 평범한 스트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과연 평범의 상징 스와치답다.

콜라보레이션은 보통 비슷한 브랜드 가치를 가진 제품이 결합하거나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제품들이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스와치는 오메가가 일방적으로 스와치를 밀어주는 모습이다. 럭셔리 브랜드이면서 시계 브랜드 가치 1, 2위를 다투는 오메가가 굳이 이런 손해(?) 보는 콜라보레이션을 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약점을 잡힌 게 있을까? 그렇다. 이야기의 시작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00_omega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아폴로11호 50주년 기념판]

시계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얘기가 나오면 으레 하는 얘기가 있다.

“아, 문워치. 인류 최초로 달나라에 갔다 온 시계지.”

맞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시에 우주비행사가 차고 있던 시계다.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나사(NASA)가 시계메이커에 요청해서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통과한 모델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다. 진행했던 테스트, 기타 에피소드는 오메가 홈페이지나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등에 잘 나와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보면 된다. 어쨌든 달나라에 갔다 온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문워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오메가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다. 오메가가 처음 달나라에 발을 디딘 영광의 시대가 바로 1969년이다. 근데 이 사건은 문워치가 탄생한 배경이지, 스와치의 문스와치의 탄생과는 관련이 없다. 그런데 같은 해에 문스와치가 탄생하게 된 진짜 사건이 일어난다.

1400_seiko [최초의 상용 쿼츠 시계, 세이코 아스트론]

1969년은 인간이 달에 간 사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시계 제조사인 ‘세이코’는 1969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세계 최초의 상용 쿼츠 손목시계인 ‘세이코 아스트론’을 발표했다. 기존 태엽구동 대신에 전자식 배터리를 쓰는 쿼츠 시계는 정확한 시간과 저렴한 가격으로 손목시계의 패러다임을 바꿔 버렸다. 세이코의 뒤를 이어 시티즌, 카시오 등의 일본 시계 업체들은 연달아 쿼츠 시계를 내놓았다. 달나라 가느니 어쩌니 하며 천상에서 놀던 스위스 시계 업체들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스위스 시계 업체의 70%가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오메가도 쿼츠 시계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매출은 급감했고 살아남기 위해 쿼츠 시계를 만들거나 저품질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시대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1970년대 후반 파산 위기에 밀린다. 채권은행은 1981년 오메가가 속해 있는 SSIH그룹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1848년부터 시작된 오메가의 역사가 끝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최후의 순간에 스위스 정부와 은행이 오메가가 속한 SSIH와 또 다른 시계 연합인 AGUAG그룹을 통합 인수하며 ‘스와치그룹’을 출범시킨다. 스와치 그룹은 저렴한 세컨드 시계 브랜드 ‘스와치’를 런칭 시켰고 큰 성공을 거둔다. 스와치의 활약 덕분에 시계 역사와 함께해온 유서 깊은 브랜드인 오메가, 브레게, 해밀턴, 티쏘, 블랑팡 등이 기사회생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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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고 평범한 스와치 덕분에 수많은 스위스 럭셔리 시계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거다. 문스와치는 오메가가 스와치에게 보내는 고마움의 보답이 아니었을까? 오메가의 CEO ‘레이날드 애슐리만’은 문스와치 컬렉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와치의 비전과 용기 없이는 오메가의 길고 독보적인 역사는 단절되었을 것이다. 문스와치(MoonSwatch)는 재치 있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스와치에게 경의를 표하며 탄생했다.”

최근 오메가가 스와치에게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겼다. 스와치에게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애플워치는 저가 쿼츠 시계 업계를 압도할 정도로 성장했고, 코로나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어들며 스와치 매출이 전반적으로 침체됐다. 위기감을 느낀 스와치는 오메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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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메가는 자신의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스피드마스터의 얼굴을 스와치에게 내주기로 결정했다. 오메가의 가치가 낮아진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스와치가 있었기에 오늘의 오메가가 있기에 오메가의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두 회사의 뒷얘기까지 소비자가 알 필요는 없다. 그저 30만 원대에 오메가를 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제성은 폭발했다. 그리고 스와치 매장에 줄을 서는 기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2022년 스와치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예상외의 효과도 있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달착륙 스토리가 일반인들에게 더 유명해지며 오메가의 매출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스위스의 전통 시계 산업은 시대의 변화에도 무너지지 않을 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난생처음 오메가 시계를 손목에 걸고 다니게 됐다. 이 정도면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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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평소에 큰 부담없이 오메가 마크가 새겨진 가벼운 시계를 찰 수 있다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뭐. 그게 스와치의 존재 이유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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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즈모

유튜브 '기즈모' 운영자. 오디오 애호가이자 테크 리뷰어. 15년간 리뷰를 하다보니 리뷰를 싫어하는 성격이 됐다. 빛, 물을 싫어하고 12시 이후에 음식을 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