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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즈가 재창조한 위안의 세계, 퍼퓸 컬렉션

탬버린즈에서 어떤 향을 골라야할지 고민이라면
탬버린즈에서 어떤 향을 골라야할지 고민이라면

2022. 10. 19

안녕. 난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아론이다. 디에디트 라이프 채널에도 몇 번 출연했으니 이제 내 얼굴을 아는 사람도 많겠지? (으쓱) 이렇게 오랜만에 디에디트 웹사이트에 등장한(?) 이유는, 출시하자마자 핫해진 탬버린즈 향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팝업 스토어의 사전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됐다던데, 인스타그램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진들이 올라오고… 대체 무슨 향일까 호기심이 슬금슬금 생기지 않았나? 그래서 출시된 탬버린즈 향 10가지 중, 대표적이고 가장 인기 많은 향 3가지를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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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즈 퍼퓸 컬렉션 # 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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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p: Clary sage, Chamomile
  • Middle: Water, Cypriol
  • Base: Amber, Musk, Blond wood

‘카모’는 이번 탬버린즈 퍼퓸 컬렉션의 메인 향이다. 이번 퍼퓸 컬렉션의 콘셉트는 [SOLACE: 한 줌의 위안]이다. 위안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향들을 담아내려 했다고. 그러니 그중, 안정을 주는 허브차 카모마일을 떠올리는 향 ‘카모’가 메인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카모를 뿌린 직후에는 그린한 느낌의 허브향이 옅게 느껴지지만, 전반적으로 깔린 우디 노트가 전체 향을 어우르며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강도가 세지 않은, 물기를 머금은 듯 투명하면서도 잔잔한 그린 노트. 거기에 살포시 더해지는 허니 뉘앙스의 조화가 무척 매력적이다. 여기서 허니 ‘노트’가 아니라 ‘뉘앙스’라고 표현한 것은, 꿀처럼 진득하거나 당도 높은 느낌의 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마스크 로즈처럼 달콤한 느낌이 강한 꽃에서 풍겨오는 자연스러운 허니 뉘앙스가 이 향수에 더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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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즈 측에서 사이트에 명시해 둔 탑노트는 클라리 세이지와 카모마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카모마일 본연의 향이 강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대신 배경에 깔려있는 부드러운 우디 향 + 물기를 머금은 그린 노트 + 옅은 허니 뉘앙스 + 슬며시 더해진 모시 노트(이끼 내음)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카모마일을 연상시키게 하는 방법으로 카모마일을 재창조해냈달까.

재미있게도 처음부터 이 향수의 무드를 좌우하는 주인공은 은근슬쩍 숨어있는 우디 노트라고 생각된다.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의 우디 향에 모시 노트(이끼 내음)가 살짝 더해진 정도라, 우디 노트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잔향으로 갈수록 점점 샌달우드 느낌의 우디향이 강해지고, 달콤한 느낌이 겹겹이 쌓이는 것처럼 더해진다. 그렇다고 부담스러울 정도의 무게감은 아니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분 좋게 느낄 만한 스윗 우디로 마무리되는 편. 약간의 촉촉한 흙 내음이 더해진 얼씨(Earthy)함과 따뜻한 스모키 노트도 함께 느껴지기 때문에, ‘위안을 준다’라는 퍼퓸 컬렉션 콘셉트에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집중한다.


탬버린즈 퍼퓸 컬렉션 # 바이링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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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p: Marshmallow, Orange Blossom
  • Middle: Tobacco, Tonka Bean
  • Base: Musk

바이링구어 향을 맡으면 처음에는 의외로 새하얀 비누가 연상되는 깨끗하고 투명한 흰 꽃향기가 공기 중에 흩날리듯 풍겨온다. 시트러스의 과육에서 느껴질 법한 가벼운 향도 함께. 탬버린즈 측에서는 마시멜로라고 표현했지만, 나에게는 오톨도톨한 질감이 느껴지는 흰 비누에 더 가까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약간은 맵싸한 느낌의 그린 노트가 슬쩍 올라오면서 낯선 조화를 만들어낸다. 이게 탬버린즈 측에서 표현한 타바코라면, 흔히 떠올리는 건조한 갈색 담뱃잎이 아닌 아직 마르기 직전의 신선한 담뱃잎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소 뾰족할 수 있는 그 포인트를 비누 향과 보드라운 꽃향기가 언뜻언뜻 나타나 달래준다.

개인적으로, 이 향수는 시간이 좀 지나야 본격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파우더리한 향이 서서히 올라오며 앞서 느꼈던 흰 꽃 비누 느낌과 결합되어 마시멜로의 질감을 완성하고, 베이스에 깔려있는 통카빈 같은 무게감 있는 달콤함이 더해져 마시멜로의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이 중심점에는 Iso E Super(이소 이 슈퍼)가 있다고 추측해 본다. Iso E Super는 르라보의 어나더 등에서도 노트 표기에 명시할 정도로 많이 쓰이는 합성 향료인데, 옅은 우디가 느껴지면서도 파우더리하고 살 내음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포인트로 쓰인다기보다 다양한 향들을 한데 어우르는 역할로 많이 쓰이고, 요즘 부쩍 사랑을 받는 ‘살냄새 향수’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향료이기도 하다. Iso E Super가 다양한 향기들의 연결점을 만들어준다는 부분에서, 이 향수의 이름인 ‘두 가지 언어를 모두 구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바이링구어’라는 콘셉트에 찰떡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으레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연결하는 존재가 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혹시 내 해석이 꿈보다 해몽인 걸까, 그게 아니면 나 지금 탬버린즈에 뉴런 도킹 중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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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비누 향을 좋아하거나 살냄새 향수를 좋아한다면 추천. 하지만 중간에 화음인 듯 불협화음인 듯 맵싸하게 느껴지는 그린 노트 구간이 잘 맞는지 꼭 시향 해봐야 할 것 같다.


탬버린즈 퍼퓸 컬렉션 # 버가 샌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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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p: Bergamot, Lime, Cardamom
  • Middle: Cypriol, Cedar Atlas, Cucumber
  • Base: Amyris, Sandalwood, Leather

첫 향에서부터 라임과 베르가모트의 향이 팡파라팡팡 폭죽처럼 상쾌하게 터진다. 껍질의 쌉싸래한 냄새와 과육의 상큼한 향까지 리프레시의 향연이다. 그뿐만 아니라 짙푸르고 굵은 줄기를 가진 풀에서 날 것 같은 그린 노트까지 합세. 청량하게 푸른 기운이 배가 된다. 작고 예쁜 정원은 아니고, 정글의 거대한 푸름을 떠올리면 알맞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린 노트는 점점 더 풍성해진다. 정글 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생각보다 정글이 엄청 크잖아!?’ 하는 느낌이랄까. 동시에, 전체적인 향이 물기를 머금는다. 만약 오이 냄새가 불호인 사람이 있다면, 이 포인트에서 조심해야 할 듯. 초록초록한 향에 워터리한 노트를 더 하면 딱 오이 향이 떠오를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이 물내음, 꽤 오래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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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 공인 그린 노트 마니아인 나는 버가 샌달에 꽤 매력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친숙한 시트러스 노트는 어느 정도 고급스러움만 잘 표현되면 쉽게 마음을 열게 되는 열쇠가 된다. 게다가 무성한 그린 노트까지 더해졌다면? 나에게는 금상첨화지.

다만 표기된 노트나 이름에서 추측하게 될 법한 샌달우드 향이나 시더우드, 레더 노트 등의 향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 향들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신 전체적인 향을 좀 더 중성적으로, 조금은 거칠게 만들어주는 역할에 더 힘을 쏟는다고 느꼈다. 대신 마지막 잔향에 다다를수록 그린 노트는 톡톡 튀는 스파클링 한 느낌으로(탬버린즈 측에서는 이걸 ‘햇살’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남고, 그제야 매끈하고 무게감 있는 샌달우드 향이 빼꼼히 머리를 내민다. 이 마지막 부분은 시향지에 뿌렸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고, 피부에 착향을 했을 때야 면모를 드러내니 꼭 착향 해볼 것! 그리고 시트러스 특성상 종이에서는 빨리 날아가기 때문에, 피부에 뿌렸을 때 파워가 훨씬 세지는 향이란 것도 기억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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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향들을 데리러 팝업 스토어에 들렀을 때, 사람들은 어쩐지 향보다는 사진 찍기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 괜스레 내가 다 서운했다. 동시대에, 같은 땅에서,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고 콘셉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브랜드의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즐겁고도 흥분되는 일이다. 내가 느낀 향기가 부디 화면을 타고 여러분에게도 가닿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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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