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연희동의 엽서 도서관, 포셋

안녕, 객원 필자 최효정이다. 디에디트에 글을 쓰고 싶다고 기고 문의를 했더니 에디터B가 연희동에 있는 엽서 라이브러리에 갔다와 달라는 퀘스트를 줬다....
안녕, 객원 필자 최효정이다. 디에디트에 글을 쓰고 싶다고 기고 문의를 했더니 에디터B가…

2022. 07. 24

안녕, 객원 필자 최효정이다. 디에디트에 글을 쓰고 싶다고 기고 문의를 했더니 에디터B가 연희동에 있는 엽서 라이브러리에 갔다와 달라는 퀘스트를 줬다. 그곳이 요즘 핫하다고. 마침 문구류나 사무용품을 구경하고 사 모으는 취미가 있어서, 또 마침 우리 집이 연희동이어서 둠치따치 신나는 발걸음으로 다녀왔다.

나는 소품샵이나 전시회에 가면 빠지지 않고 구경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엽서다. 일단 엽서는 싸다. 고물가 사회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나 같은 서민의 두 손을 풍성하게 해준다. 그럼에도 엽서는 소품샵의 화려한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은은한 배경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소개할 곳에서는 엽서가 바로 주인공. 바로 연희동에 있는 ‘포셋(POSE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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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셋은 3,200여 개의 엽서를 판매하는 엽서 편집샵이다. 연희 곰탕 맞은편 건물 3층에 있다. 간판도 없고, 편집샵이 있을 것 같은 외관도 아니어서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여기야? 진짜 여기야?’하는 불신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거기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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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아담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줄 맞춰 진열된 수많은 엽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작은 전시회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사장님은 ‘엽서 도서관’을 상상하며 만드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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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는 이미지 종류에 따라 사진, 일러스트, 텍스트 등이 있고 팝업 형태의 엽서도 있다. 어떤 팝업 엽서는 글 쓸 공간이 너무 작아서 ‘생일 축하해’ 정도만 쓰면 더 쓸 공간이 없기도 했는데,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서의 가격은 대부분 1,000원에서 5,000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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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에는 작가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나는 ‘잔보’라는 작가의 엽서가 마음에 들었다. 색을 따뜻하고 재미있게 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잔보라고 검색해보니 바로 계정이 나와서 팔로우했다. 계정 이름은 @ninano_bo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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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편지를 쓸 목적으로 엽서를 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엽서를 사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혹은 아무것도 쓰지 않은 엽서 자체를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의 또 다른 엽서 활용법은 벽이나 옷장에 붙이는 것이다. 미니 포스터처럼 사용하면 손쉽게 방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엽서 빈 곳에 좋아하는 글귀를 써서 붙여두면 더 그럴싸하다. 인테리어란 그럴싸한 게 팔 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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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도서관에 간 김에 엽서를 좀 샀다. 폭염을 기념하여 여름 느낌이 나는 엽서들로 골랐다. 여름을 생각하면 많은 느낌이 떠오른다. 짱짱한 매미 소리,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햇빛, 미지근한 바람, 한적한 그늘, 청량한 바다… 그런 느낌을 잘 담은 엽서를 샀다.

그중에서 특히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 엽서가 마음에 든다. 보고 있자니 칙칙한 내 간마저 청량해지는 느낌이었다. 엽서의 가격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3,000원, 3,000원,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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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만 사면 서운하니까 연필 두 자루와 연필깎이를 샀다. 연필은 수퍼퍼비 삼각연필과 블랙윙 602를 골랐다. 블랙윙이라는 시리즈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팔로미노라는 회사에서 만들었고,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등 작가들이 썼다는 스토리로 유명하다. 심이 부드럽고 진한 게 특징. 심뿐만 아니라 가격도 진해서 한 자루에 무려 3,500원이다. 내가 산 블랙윙 602 모델은 은색 유광 몸통이고, 다른 모델보다 심이 단단한 편이다.

수퍼퍼비 삼각연필은 리라(LYRA)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다. 리라 수퍼퍼비는 원래 색연필로 더 유명하다. 몸통이 두껍고, 원통형이 아닌 삼각형이라 손에 쥐기에 안정적이다. 나는 길이가 2/3 정도로 짧은 모델을 구매했다. 몽땅함에서 오는 귀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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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깎이는 쿰(KUM)이라는 회사에서 블랙윙 마크를 달고 만든 ‘블랙윙 쿰 롱 포인트’라는 모델을 구매했다. 쿰은 오랫동안 수동식 휴대용 연필깎이만 생산해 온 연필깎이의 명가다. 연필깎이에 홀이 두 군데가 있는데, 나무 깎는 홀과 심 깎는 홀이다. 두 단계의 공정을 거치면 길고 매끈한 심을 얻을 수 있다. 사실 가격이 1만 7,000원으로 저렴하진 않아서 살까 말까 되게 고민했다. 하지만 전기나 와이파이 없이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결과물을 내놓는 정교한 도구를 구매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포셋은 이렇게 엽서뿐만 아니라 연필, 샤프, 볼펜 브라스 같은 문구류도 같이 판매한다.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신경 써서 고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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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프론트 쪽 벽면도 엽서로 아기자기하게 장식돼있다. 매대에서는 엽서가 아닌 일반 편지지와 편지 봉투도 색깔별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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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한 쪽에서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예진문의 ‘당신에게 건네는 39가지 여정’이라는 전시다. 작은 보관함들에 열쇠가 꽂혀 있고, 열쇠마다 질문이 달려 있다. 질문은 총 39개다. 질문을 읽고 보관함을 열면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을 볼 수 있다. QR코드를 인식해 오디오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답변도 있다. 예진문은 전시를 준비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날이 올 때는 종종 제 자신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중략)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어둠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제 앞날에 밝은 등불이 되어줬던 경험이 있어요.
(중략)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당신도 등불을 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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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와 관련된 엽서를 모은 엽서북도 살 수 있다. 엽서북의 종류는 ‘꿈 속에서 보내는 편지’, ‘동행’, ‘일기’ 등 다섯 가지다. 각각의 주제에 맞는 엽서로 구성되어 있다. 엽서북에는 엽서 10~11장, 포스터 2장, 필름 사진 1장, 소개글 1장이 들어있다. 가격은 1만 5,000원~2만 1,000원 사이. 전시는 7월 3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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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 옆에는 전시 준비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책상이 있다. 작가가 참고한 책과 작가가 남긴 기록을 읽어볼 수 있다. 포셋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QR코드를 찍어 월페이퍼도 다운받을 수 있게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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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야기를 본 후에는 내가 직접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해볼 수 있다. 창가 쪽에 답변지를 작성할 수 있는 1인용 책상이 마련돼있다. 책상 위에는 펜과 메모지, 귀여운 전구가 놓여 있다. 여기서 구매한 엽서에 글을 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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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셋에서는 ‘기록 보관함’이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일정 기간 편지나 일기장, 사진, 소지품 등 소중한 기록을 보관해준다. 개인적인 기록을 보관했다가 시간이 흐른 뒤 찾아볼 수도 있고, 기록 보관함을 통해 누군가에게 편지나 선물을 전달할 수도 있다. 이토록 번거롭고 감성적인 서비스라니… 아날로그함이 치사량을 초과해버렸다.

최소 보관 기간과 연장 단위는 1개월이다. 보관 기간에 제한은 없는 듯하다. 1개월 보관하는 데 1만 1,000원으로 저렴하지는 않다. 다른 사람과 보관함을 공유할 수도 있지만, 열쇠는 하나밖에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편지나 선물을 전달하려면 상대방에게 열쇠를 주며 “가서 열어봐…ㅎ”라는 다소 수줍은 멘트를 함께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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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셋의 상품과 전시, 서비스는 모두 ‘기록’이라는 컨셉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기록하는 도구, 기록할 수 있는 장소, 기록할 주제, 기록을 보관하기까지. 나도 기록하길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마를렌 호퍼의 <벽>이라는 책의 다음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어둠이 내리는 하늘을 응시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에
글쓰기가 나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 볼만한 곳이다. 뭔가를 손에 쥐고 끄적끄적하는 평안함을 누리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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