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객원 필자 전아론이다. 요즘엔 유튜브 채널 <아임 아론>에서 향수 리뷰를 하고 있다. 오늘은 얼마 전 오픈한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TMI를 밝히자면 취재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에 함께 들른 사람이 에디터B님이었던 것이다. 직업병이 발동한 나는 자연스럽게 B님에게 딥티크의 향과 역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도슨트처럼 풀어내기 시작했고, 동시에 직업병이 발동한(?) B님 또한 자연스럽게 공간의 곳곳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물 흐르듯 만들어진 콘텐츠를 이렇게 여러분이 읽게 되었다는 사실. 짜잔-
사실 이제 딥티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향수 브랜드가 되었다. 향수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일 테니까. 그 유명세에 걸맞게 이번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는 신사동 가로수길 대로변에 프랑스 가정집을 통째로 옮겨놓겠다(!)는 포부를 보이며 오픈했다.
원래 있던 건물 안에 가정집을 어떻게 옮겨놓겠다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문을 열자마자 ‘아…!’ 하고 작은 탄성을 (속으로) 질렀다. 섬세한 타일로 문 앞에 새겨진 딥티크의 로고부터, 문밖의 대로변 느낌과는 다르게 아늑한 무드,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나선형의 대리석 계단까지. 딥티크는 역시 사이즈가 다르네, 하는 생각으로 치솟는 부러움을 느꼈달까. 나중에 알아보니 실제로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라고 한다. 역시….
1층은 서재 혹은 작업실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들과 목재 벽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정집의 뉘앙스를 본격적으로 느끼려면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응접실과 다이닝룸으로 꾸며진 공간에서는 캔들이나 디퓨저 등의 딥티크 향 제품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도 집을 꾸밀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딥티크 제품을 활용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자연스럽게 감각을 익히게 되는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파우더룸을 포함한 욕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에서는 딥티크의 다양한 바디 용품을 만나볼 수 있다. 에디터B님과 나는 수도꼭지를 돌려보며 ‘물이 나오는 것 같다’ ‘아니다 장식인 것 같다’로 의견이 분분했는데, 결국 물이 나오지 않음을 확인했다. 딥티크 제품을 사용해 직접 손을 씻어보며 피부에 남는 잔향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공간은 다름아닌 부엌이었다. 실제로 부엌은 향 제품이 많이 쓰이는 공간이 아니다. 음식의 향, 다시 말하자면 식향이 강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딥티크는 이 공간에서 각각의 향 재료들과 실제 캔들 제품을 매칭하여 전시해두었단 게 재미있었다. 오렌지 캔들 뒤에는 오렌지를, 바이올렛 캔들 뒤에는 바이올렛 꽃을, 바닐라 캔들 뒤에는 바닐라빈을 배치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방식의 전시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을 가진 향일 때 더욱 효과를 발한다. 향 이름은 영어로 되어 있어도 낯설 때가 많은데, 심지어 딥티크는 프랑스 브랜드라 난생처음 들어보는 프랑스어투성이다. 그런데 재료가 뒤에 놓여져 있으면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예를 들어 Genevrier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캔들 뒤에는 주니퍼베리 열매(한국어로는 노간주나무 열매)가 놓여 있고, Tilleul이라는 이름의 캔들 뒤에는 피나무의 나뭇잎이 놓여져있다. 이건 뭐지 저건 뭐지 검색해보고 들여다보느라, 나는 한참을 혼자 바빴다. (그동안 B님은 부엌 공간의 모든 서랍을 다 열어봤다….)
개인적으로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다름 아닌 캔들이라고 생각한다. 딥티크에 캔들이 이렇게 많았어? 하는 생각에 나조차 놀랐을 정도니까. 사실 딥티크는 처음엔 향수 브랜드가 아니었다. 딥티크는 원래 파리 생제르망 34번가에 세 명의 아티스트가 모여 오픈한 패브릭 부티크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패브릭 부티크에 와서 사라는 패브릭은 안 사고, 함께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인테리어 오브제들만 사려고 했단다.
덕분에 딥티크는 패브릭 부티크에서 인테리어 소품 편집숍에 가까운 공간으로 변신한다. 거기서 가장 인기 있었던 제품은 다름 아닌 향초였다. 양초가 아닌 향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이었는데, 딥티크 창시자들은 거기서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우리 생각보다 ‘향’이란 것을 훨씬 더, 굉장히 많이 좋아하는구나. 그 깨달음은 결국 향수 출시로 이어지게 되고, 지금의 딥티크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앗… 갑자기 너무 먼 과거로 다녀온 것 같은데, 이런 스토리를 떠올리면서 플래그십 스토어를 둘러보다 보니 향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딥티크의 창시자인 3명의 아티스트는 각각 인테리어 디자이너, 무대 장식 아티스트, 그리고 화가였다. 그래서인지 딥티크는 다른 향수 브랜드들보다 아티스틱한 향 제품들을 만드는 데 진심인 모습을 보여왔다. 향기가 나는 팔찌인 브레이슬릿,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이기 좋은 골드 톤의 글라스 디퓨저, 캔들 위에 끼우면 열에 의해 모빌처럼 돌아가는 회전형 캔들 홀더 까루셀 등등.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그 면모를 더욱 견고히 하려는 것 같다. 단순한 향수 브랜드가 아니라, 향기로운 삶을 만드는 브랜드로써 말이다. 그게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잃지 않는 쪽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라는 점이 멋지다. 이 멋짐을 오감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여러분도 서울시 강남구 가로수길 15에 위치한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러보시길.
딥티크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
- 서울특별시 강남구 가로수길15
- 매일 11:00-21:00
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