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CES 2022가 열렸죠. 매년 세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 가전 박람회는 IT와 관련된 기술 흐름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분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행사입니다. 저도 이번에 라스베이거스에 직접 취재 갈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전시 부스를 세세하게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주요한 발표나 트렌드는 온라인으로 볼 수 있어서 꽤 흥미롭게 챙겨 봤습니다.
자, 그렇다면 CES 2022에서 어떤 새로운 게 등장했을까요? 저는 조금 비틀어서 이야기하면 새로울 것 하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주 내내 CES 관련 글도 쓰고, 방송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많은 미디어의 공통적인 질문이 ‘이번에 새로 나온 기술’이었습니다.
CES를 왜 봐야 할까요?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새로운 기술은 거의 없습니다. 새로운 소식들, 제품들은 있지만요. CES에 나오는 기술들은 대부분 흐름이 있고, 어떤 맥락으로 점점 성장하고, 상용화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 헬스케어 등의 키워드와 우주, 모빌리티, 푸드테크 같은 키워드들이 주목할 만한 기술로 선보였습니다. 재미있는 것들도 꽤 많았고요.
하지만 이 기술들이 한번에 툭 튀어나온 건 아닙니다. 흐름을 함께 보고 왜 이런 기술이 지금 이 타이밍에 나와서 주목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띕니다.
푸드테크부터 볼까요? 말 그대로 음식과 관련된 기술들이죠. 음식 배달뿐 아니라 스마트팜, 대체육, 유통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 이번에도 음식을 만드는 쿠킹 로봇이나 원격 배달 로봇 같은 기술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산과 유통 장벽을 줄이려는 노력들도 있었고요. 이 기술들은 모빌리티, 공유경제, 로봇,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들을 통해서 성장해 오던 것이죠. 도미노피자 같은 경우는 여러 테크 기업들과 배달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랫동안 해 왔어요. 제 기억에도 트위지를 기반으로 배달에 특화된 모빌리티 서비스를 기획했던 적도 있었고, 자율주행 자동차나 드론을 이용한 음식 배달에 대한 시도도 아주 많았습니다.
이게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죠. 펜데믹 때문에 음식을 먹는 경험이 상당히 많이 변했습니다. 밖에서 뭘 먹는 게 불편해진 거죠. 그걸 집으로, 사무실로 가져오는 것이 다시 챌린지가 된 겁니다. 단순히 배달이 아니라 먹는 경험 자체에 주목하게 되면서 배송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또 사람이 아니라 로봇을 이용해 정해진 맛을 유지하는 기술들이 나오기도 하는 거죠. 서빙 로봇 역시 사람과는 다르지만 감염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면서도 괜찮은 서빙을 받는 느낌을 주는 겁니다.
‘펜데믹’, 가전이 주목받는 시대
헬스케어의 부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헬스케어도 CES에서 10년 넘게 이어 오는 단골 주제입니다. 그동안은 센서와 사물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웨어러블이 더 주목을 받아왔지요. 하지만 헬스케어에 테크가 붙는 이유를 돌아보면 병원이나 건강관리 기관, 가깝게는 운동 센터를 가지 않아도 평소에 운동량을 늘리고, 아픈 곳을 찾고, 관리해야 하는 것들을 챙겨주는 데에 중심이 있었지요.
원격 진료 역시 꾸준히 이어오던 주제였습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으로 환자의 진료 기록이 정밀 분석되고, 특히 5G로 통신의 지연이 사라지면서 완전한 실시간 반응으로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장벽 중 하나는 ‘왜 원격 진료를 해야 하나’라는 원론적인 데에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비용과 고성능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저소득 국가 사람들이 원격으로 지구 반대편의 훌륭한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도 이상적이고 꼭 필요하지만 당장 현실적으로는 와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우리는 의료 서비스의 한계를 경험했습니다. 아무리 사회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그 이상의 환경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의 수요가 생기게 되고, 관련 기술이 주목을 받게 됩니다.
헬스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은 가장 좋은 건강 관리 방법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게 되지요. 웨어러블 기기는 운동의 동기를 마련해주지만 외부 활동이 불편해지면서 집에서 하는 이른바 ‘홈트(홈트레이닝)’가 대세가 됐지요. 우리가 운동을 미루는 이유는 운동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집에 적절한 운동기구가 없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CES에는 실내 운동기구와 관련된 기업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CES 참가를 취소한 펠로톤이 아쉽기는 하지만 트레드밀, 실내 사이클, 로잉머신들이 선보였고, 주요 키노트에서도 이런 홈트 장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집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렇게 가전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새로움보다 경험 바꿀 기술 흐름 돋보여
이번 CES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가전에 대한 기대치와 소비자의 수요가 이제서야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가전 기업들은 인공지능, 클라우드, 사물인터넷을 비롯해 새로운 기술들을 가전에 화려하게 접목시켜 왔습니다. CES는 그 가능성을 전시하는 자리였고요.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아직 먼 이야기 같았죠. 음성으로 시간을 물어보거나 전등을 켜고 끄고, 에어컨을 만지는 것보다 직관적인 스위치와 리모콘이 더 나았습니다. 굳이 실내에서 운동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은 찾아가서 먹는 재미가 있었죠. 이유와 차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기능보다 단순한 본래 기능이나 디자인이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펜데믹이 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좋은 성능과 풍부한 앱으로 더 많은 OTT 서비스를 볼 수 있는 TV, 우리집 인테리어 톤에 색깔을 맞출 수 있는 냉장고, 생활 패턴에 맞춰 전력 관리를 해주는 가전 서비스처럼 집에서 가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소비자들과 입맛을 맞추게 된 것이지요.
지난해 CES는 안 그랬냐고요? 물론 이런 모든 주제들은 펜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CES도 그랬고, 코로나19가 막 시작했던 2020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펜데믹을 전 세계가 받아들이게 됐고, 가전은 그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창구가 됐습니다. 가전은 매일의 집안일을 거들어주었고, 다른 사람과 만나게 해주는 창구가 됐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여행의 대리 만족, 궁금한 맛집 등 우리의 관심사, 욕구가 모두 가전으로 해소됐습니다. 값이 훨씬 비싼 고화질 OLED TV에 손이 가고, 바닷가 어딘가를 달리는 느낌을 주는 실내 자전거가 실제로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소니의 자동차 시장 진출이 놀라운 일로 꼽혔죠. 하지만 소니의 설명을 들어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라고 봅니다. 소니는 안전, 확장성, 엔터테인먼트를 이유로 자동차 시장에 나섰습니다. 자동차가 갖고 있는 가치는 엔진과 변속기, 디자인 등 이동에 대한 본질적인 경험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그리고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안전한 이동에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목적지까지 간다’. 이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이동 경험이니까요. 소니는 이를 잘 할 수 있는 회사이고, 이 가치를 잘 살릴 수 있는 기업들은 소니 외에도 많습니다.
가전의 진화는 단순히 소재와 기술의 발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혁신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고, 그동안은 기술과 시장이 다소 발을 맞추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적지 않습니다. CES 2022가 시사하는 2022년의 가전은 결국 더 나은 경험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필요한 기능들, 개방성, 확장성 등 시장이 원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간단하지만 뚜렷한 이유, 목적을 담은 메시지가 가전에 명확하게 반영되는 것, 바로 가전이 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그래서 CES의 주제는, 또 지켜봐야 하는 포인트는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 같은 새로운 기술 찾기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것만이 혁신은 아닙니다.
About Author
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