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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서브마리너 vs 튜더 블랙베이

안녕하세요. 생활인의 시계 김생활입니다. 여러분들은 ‘비싼 시계’, ‘명품 시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시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이 질문으로 여론조사를...
안녕하세요. 생활인의 시계 김생활입니다. 여러분들은 ‘비싼 시계’, ‘명품 시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2021. 07. 28

안녕하세요. 생활인의 시계 김생활입니다. 여러분들은 ‘비싼 시계’, ‘명품 시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시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이 질문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면, 아마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시계는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일 겁니다. 물론 세상에 비싸고 좋은 시계는 끝도 없이 많습니다만, 대중적인 인지도에서 서브마리너를 따라올 만한 시계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업의 성공이나 승진 같은 중요한 성취를 기념하고 싶을 때, 많은 분들이 제일 먼저 구매 후보에 올리는 시계가 서브마리너인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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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시계를 살 때 비슷한 생각을 하다 보니, 늘 품귀 사태가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롤렉스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리테일가는 이제 유명무실해졌고, 웃돈을 낼 의사가 있는 분들조차 오랫동안 기다리는 게 당연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전이나 희귀 모델로 분류되는 모델들은 물론이고, 비교적 생산량이 많다고 알려져서 크게 인기가 없었던 모델들의 중고 가격마저 같이 치솟고 있습니다.

한편 서브마리너가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혹은 생각보다 너무 구하기 힘들어서 실망하신 분들을 현혹하는 시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롤렉스의 자매 브랜드인 튜더에서 내놓고 있는 헤리티지 블랙베이라는 시계인데요. 언뜻 보면 비슷한 외양을 갖고 있음에도, 리테일가는 서브마리너의 반값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이슈가 있지 않는 이상 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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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체로 천만 원을 넘게 들여야 살 수 있는 서브마리너와, 오백만원이 안 되는 예산으로도 장만할 수 있는 블랙베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정말 서브마리너는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나는 만큼 품질도 두 배 이상 좋은 시계일까요? 아니면 품질보다는 브랜드의 가치 차이가 가격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요? 블랙베이가 그저 서브마리너의 열등한 카피판에 불과하다는 일부의 부정적 인식은 정당한 걸까요? 오늘은 이 질문들에 답변을 마련해 보려고 합니다.


롤렉스 VS 튜더
“형만한 아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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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두 시계를 비교해보기 전에 두 브랜드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우리가 왜 이 두시계를 비교하는지 알아 봐야겠죠. 롤렉스는 사실 명성에 비해서는 그렇게까지 나이가 많지는 않습니다. 독일 태생의 한스 빌스도르프라는 인물이 1905년 런던에서 설립했습니다. 원래는 영국 회사였지만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스위스로부터 무브먼트를 수입할 때 붙는 관세가 너무 오르는 바람에, 1920년에 제네바로 이전을 하게 됩니다. 왜 회사 이름이 롤렉스가 됐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요. 빌스도르프한테 시계 용두를 감는 소리가 ‘롤렉스’라고 들려서 그렇게 짓게 됐다는 설이 제일 유명합니다.

1400_004[롤렉스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의 젊은 시절]

튜더는 빌스도르프가 만든 두 번째 시계 회사입니다. 정확히 언제 출범한 회사로 볼지는 조금 애매한데요. 상표가 등록된 건 1926년이지만, 실제로 튜더라는 이름으로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건 1946년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만든 상표였지만 영국 역사와 튜더 왕조 이야기를 좋아했던 빌스도르프가 1936년에 사용권을 사들이게 되고요. 튜더 왕가의 상징과 비슷한 장미를 브랜드의 로고로 사용하게 됩니다.

1400_005[1926년 튜더의 상표 출원서]

빌스도르프가 튜더라는 회사를 세운 건 꼭 롤렉스와는 다른 종류의 시계를 만들어보겠다는 제작자로서의 순수한 꿈이 있어서는 아니었던 걸로 보입니다. 창립 초기의 튜더는 독자적인 회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갖추려 하기보다는, 좀더 접근가능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롤렉스의 다운그레이드 제품들을 카탈로그의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1400_006[1952년 튜더의 제품 광고]

예를 들어 50년대와 70년대 사이에 나왔던 튜더의 서브마리너는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와 모델의 명칭은 물론이고, 케이스와 시계 유리, 브레이슬릿, 용두 등의 주요 부품까지 공유했습니다. 로고를 제외하고 나면 롤렉스 서브마리너와 튜더 서브마리너 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엔진이었습니다. 튜더는 롤렉스의 인하우스 무브먼트 대신 플루리에나 에타에서 만든 좀 더 저렴한 범용 무브먼트를 채택했습니다.

1400_007[50년대말 튜더 서브마리너(왼쪽)과 롤렉스 서브마리너(오른쪽)]

롤렉스의 믿을 만한 방수 성능을 공유하면서도, 가격도 더 저렴하고 정비도 쉬웠던 튜더의 다이버 시계들은 특히 각국의 군 부대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해군,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의 해군에서 튜더의 서브마리너를 다이버 시계로 활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군에 지급됐던 튜더의 다이버 시계들은 수집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에 나온 롤렉스의 제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1400_008[70년대 프랑스 해군에 지급됐던 튜더의 스노우플레이크 서브마리너]

70년대 이후 본격화된 쿼츠 파동은 두 브랜드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짜 강자는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고 하잖아요. 롤렉스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압도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점점 더 특권적이고 고급스러운 시계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됩니다.

서브마리너의 가격 변화만 봐도 롤렉스의 높아진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초 롤렉스의 논데이트 서브마리너의 리테일가는 230달러 정도였습니다. 요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2,100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약 240만 원 정도입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21년 현재 논데이트 서브마리너의 리테일가는 8,100불, 한국에서의 가격은 985만원이 됐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제외하고도 네 배가 오른 건데요. 심지어 지금은 그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시계가 됐습니다.

1400_009[1960년대말 롤렉스 논데이트 서브마리너 광고]1400_010[2020년 롤렉스 논데이트 서브마리너 광고]

브랜드의 위상을 한껏 끌어 올린 롤렉스와 달리, 튜더는 쿼츠 파동 이후에 점차 판매량이 줄게 됩니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북미를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면서 암흑기를 맞습니다. 그렇지만 브랜드의 대대적인 리부트와 함께 2012년에 나온 헤리티지 블랙베이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1400_011[011.png 튜더 헤리티지 블랙베이]

리부트 이후의 튜더는 롤렉스의 모델을 거의 그대로 받아와서 스펙만 낮춰서 내놓던 창립 초기의 튜더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빈티지 모델의 디자인 요소들과 포 파티나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소소한 실험에서 더 나아가서, 2015년부터는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주요 모델에 장착하는 진취적인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버나 브론즈, 세라믹 같은 새로운 소재로 케이스를 만든다던가, 디스플레이 케이스백을 적용해보는 등의 대담한 실험도 진행중입니다.

1400_012[튜더가 올해 내놓은 세라믹 소재의 블랙베이]

요즘의 튜더는 ‘다운그레이드된 롤렉스’라기보다는 ‘다이어트한 롤렉스’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롤렉스가 자기 이름의 무게 때문에 하기 힘들어진 다양한 실험들을, 위험 부담이 적은 튜더가 대신 수행하는 것입니다.

디자인 언어를 상당 부분 공유하는 이상, 튜더가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롤렉스의 열등한 카피판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튜더는 롤렉스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힘을 빼고 시계를 만드는 회사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게 아마 앞으로 튜더만의 아이덴티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교: 체감 사이즈

그럼 좀더 자세하게 두 시계를 비교해보도록 하죠. 두 시계는 사이즈부터 흥미롭게 다릅니다. 실제 손목 위에 올려보면 사이즈 차이는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데요. 서브마리너는 40mm 시계지만 실제로는 39mm 정도의 클래식한 다이버 시계 사이즈로 느껴지고, 블랙베이는 41mm 시계지만, 실제로는 42mm 이상의 현대적인 다이버 시계 사이즈의 체감을 갖고 있습니다.

1400_021[극적인 사이즈 차이]

이 때문에 서브마리너의 클래식 케이스는 가는 손목에도 상당히 친화적입니다. 위아래로 넘치는 느낌도 전혀 없고, 두께도 버블백이 만들어낸 착시효과 때문에 300m 다이버 시계 치고는 상당히 얇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작게 만들려고 찌부러트린 시계가 아니라, 모든 것들이 비례에 맞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시계입니다. 베젤의 폭이라던가 다이얼의 크기라던가, 러그의 길이와 러그의 폭에서 수치 하나를 바꾸고 싶은 부분도 없을 정도로 비례도 완벽합니다.

1400_022[15.2cm 손목 둘레의 여성이 착용한 서브마리너]

물론 서브마리너는 좀더 굵은 손목에도 어색해 보이지 않습니다. 손목 사이즈에 상관없이 어지간하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야말로, 왜 서브마리너가 그토록 오랫동안 클래식의 자리에 군림해왔는지를 설명하는 요인일 겁니다.

1400_023[17.8cm 손목둘레의 남자가 착용한 서브마리너]

반면에 튜더의 블랙베이는 서브마리너보다 케이스 직경은 고작 1mm 남짓 더 크지만, 체감은 훨씬 큰 시계처럼 느껴집니다. 시분침도 크고, 용두도 크고 러그도 길고, 러그 간의 폭도 넓어서 수치 상의 사이즈가 시사하는 바보다 더 훨씬 존재감이 강합니다. 두께 역시 롤렉스와 수치상으로는 0.6m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튜더의 케이스는 버블백이 아닌 납작한 케이스백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두껍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1400_024[15.2cm 손목둘레의 여성이 착용한 블랙베이]
1400_025[17.8cm 손목둘레의 남자가 착용한 블랙베이]

각 요소 간의 비율 자체만 놓고 봤을 땐, 서브마리너의 고전미에는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래서 더 젊고 대담해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 다이버 시계의 큰 사이즈에 익숙해지신 분들이라면 더 편안함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비교: 케이스

1400_026[블랙베이의 케이스]

두 시계의 피니쉬는 비슷한 듯 다릅니다. 헤리티지 블랙베이 케이스는 러그의 정면에는 사틴 브러쉬를 촘촘하게 적용했고, 측면에다가는 폴리쉬를 했습니다. 50년대말의 빅크라운 서브마리너를 따라서 케이스의 모서리를 빗면으로 만들고 폴리쉬된 선을 깊게 넣은 게 특징적입니다. 단순무식한 툴와치가 아니라 피니쉬에 신경을 쓴 고급 시계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반면 서브마리너의 케이스 역시 러그의 정면에는 사틴 브러쉬를 촘촘하게 적용했고, 측면에는 폴리쉬를 했습니다. 블랙베이와 달리 케이스의 모서리를 인위적인 빗면으로 깎아내지는 않았습니다. 롤렉스의 고급스러움은 날이 선듯한 모서리의 선명한 윤곽에서 드러납니다. 14060M은 이후에 나온 서브마리너와 달리 러그 측면에 시계줄 교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드릴드 러그 처리도 되어 있습니다.

1400_027[서브마리너의 케이스]
1400_029[블랙베이(왼쪽)와 서브마리너(오른쪽) 케이스의 광택 차이]
1400_028[블랙베이(왼쪽)와 서브마리너(오른쪽) 케이스의 클로즈업]

피니쉬만 놓고 봤을 때 롤렉스라고 해서 꼭 튜더보다 브러쉬가 더 선명하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더 도드라지는 차이는 소재에 있습니다. 서브마리너는 일반적인 316L 스테인리스 스틸 대신에 904L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기 때문에 블랙베이보다 폴리쉬된 부분의 광택이 좀더 반짝이고 투명하게 느껴집니다.


세 번째 비교: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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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와 튜더 모두 사파이어 크리스탈에 무반사 처리를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요. 무반사 처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벗겨지면서 흉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반사 처리를 안 하는 걸 고집하는 걸로 보입니다. 서브마리너는 따로 멋을 부리지 않고 납작한 평면의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장착했습니다. 그 밑에 있는 다이얼도 깊이 들어가 있지 않고 시계 유리 밑에 바로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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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블랙베이는 가장자리가 솟아 올라 있고 가운데 부분은 살짝 볼록한 박스형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장착했습니다. 그 밑으로 보이는 다이얼도 상당한 깊이감이 느껴지는 게 서브마리너와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네 번째 비교: 베젤

1400_032[블랙베이의 코인엣지]
1400_033[블랙베이의 야광점]

헤리티지 블랙베이의 경우는 베젤 가장자리에 코인엣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매트한 블루 색상의 알루미늄 인서트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60분 야광점이 밖으로 많이 돌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특징적입니다. 블랙베이는 서브마리너와 달리 일부러 낡은 시계처럼 보이도록 하는 포 파티나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재밌는데요. 이 블루 베젤의 색상도 사실은 빈티지 검은색 서브마리너 모델의 알루미늄 인서트가 파란색으로 변색이 된 걸 보고 착안해서 제작한 거라고 합니다.

1400_034[빈티지 서브마리너의 변색된 베젤과 79220B의 블루 베젤 비교]

코인엣지는 잡기에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60클릭의 단방향 회전식 베젤을 채택하고 있는데요. 60클릭이다 보니까 클릭 하나 하나 간의 경계가 크고 뚜렷합니다. 굉장히 깊고 분명한 클릭음을 갖고 있습니다. 베젤은 덜렁거리거나 뒤로 밀리는 현상 없이 고급스러운 사용감을 제공합니다.

재밌는 점은 베젤의 60분 마커가 12시를 지날 때 다른 부분보다 저항이 좀더 많이 걸려 있어서, 확실히 여기가 제 위치라는 걸 알게끔 해준다는 것인데요. 평소에 베젤을 정확한 위치에 정렬해두고 싶어하는 유저들을 위한 멋진 설계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깜찍한 시도가 블랙베이를 매력적이게 하는 부분입니다.

1400_035[12시를 지날 때 저항이 더 많이 걸리는 블랙베이의 베젤]

그렇다면 서브마리너는 어떨까요? 서브마리너의 베젤 가장자리에는 롤렉스의 상징과도 같은 부채꼴의 호 모양, 혹은 왕관 내지 병뚜껑이라고도 불리는 모양의 엣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확실히 튜더보다는 더 디테일이 있고 날이 서있는 엣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060M은 세라크롬의 도입 이전의 모델이기 때문에, 진한 검은색의 알루미늄 인서트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알루미늄의 광택이 글로씨 다이얼을 좀더 부각시켜 준다는 점에서 심미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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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크롬에 비하면 나중에 긁히거나 변색될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알루미늄이 사용 흔적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낡아간다는 걸 매력적으로 느끼실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베젤에도 60분 야광점이 부착되어 있는데, 야광점이 돌출되어 있지 않고 베젤의 안쪽에 좀더 파묻혀 있다는 점이 튜더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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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젤이 얇지만, 엣지가 상당히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서 잡기가 나쁘지 않습니다. 서브마리너는 좀더 일반적인 120클릭의 단방향 회전식 베젤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무게중심이 낮고 굉장히 탄탄하게 짜인 느낌의 베젤액션을 보여주는데요. 튜더에 비해 클릭음은 깊고 차분한 편입니다. 기분탓일 수도 있겠지만 좀더 고급스럽고 정밀한 기계를 만지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다섯 번째 비교: 용두

1400_040[크라운가드 없는 튜더의 용두]
1400_041[용두 정면의 장미 로고]

블랙베이는 크라운가드 없이 무려 8mm 지름의 커다란 용두를 붙여주었습니다. 베젤 인서트와 같은 색깔의 튜브를 밖으로 노출시킨 재밌는 터치가 있습니다. 용두의 측면에는 베젤과 마찬가지로 코인엣지가 새겨져 있고 정면에는 장미 문양이 찍혀 있습니다. 용두가 큰 만큼 쾌적한 조작감을 자랑합니다. 나사의 윤활도 잘 되어 있어서 용두를 빼고 넣는 것도 문제가 없고, 수동감기와 시간조정도 잘 됩니다.

1400_042[크라운가드 속의 롤렉스의 용두]
1400_043[용두 정면의 왕관 로고와 트리플락 표시]

서브마리너는 7mm 지름의 용두를 폴리쉬된 크라운가드 속에다 배치했습니다. 측면에는 코인엣지라기보다는 톱니에 가까운 느낌의 엣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용두의 정면 역시 튜더보다 확실히 더 고급스럽습니다. 롤렉스의 왕관로고를 꽤 티테일을 살려서 새겨 놓았습니다. 롤렉스의 특허인 트리플락 크라운 기술을 상징하는 세 개의 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트리플락 크라운은 튜더의 용두에 비해 확실히 더 꽉 짜인 기계를 만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걸 만지다가 다시 튜더를 만지면 헐렁헐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여섯 번째 비교: 다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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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시계를 어느 정도 보신 분들의 눈에만 보이는 어쩌면 다소 소소한 차이들일텐데요. 다이얼은 한눈에 봐도 꽤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다이얼은 시계의 역사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다이얼 가운데 하나일 텐데요. 거울 같은 광택을 가진 글로씨 다이얼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18K 화이트골드로 아플리케 인덱스와 시분초침을 제작해서 한 눈에 봐도 보석처럼 블링블링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냥 봐도 정교해 보이지만 클로즈업을 해볼수록 퀄리티가 높다는 게 느껴지는 데요. 아플리케 인덱스의 마감은 물론 흠잡을 데가 없고, 안 그래도 반짝거리는 시분초침은 일부러 표면을 볼록하게 구부려서 더욱 빛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디테일에 신경을 썼습니다. 옆에서 보면 시분초침이 거리를 두고 떠있지 않고 타이트하게 꽉 붙어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다이얼의 프린트도 섬세하고 얇은 하얀 선들을 아주 높은 해상도로 유광의 다이얼 위에 찍어내서 굉장히 선명합니다. 유광의 검은색 다이얼 위에 하얀색 글씨가 이렇게 멋스럽다는 걸 롤렉스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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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요. 6시 방향에 프린트가 무려 네 줄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이얼은 많은 것들이 절제되어 있어서 차가운 느낌마저 드는 기조를 갖고 있는데, 거기에 잘 맞지 않는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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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 가장자리의 르호라고 불리는 벽 부분에 새겨진 롤렉스 각인들도, 이걸 이렇게 정교하게 정렬시켜서 새기는 게 힘들겠다는 건 알겠으면서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시계에 들어가는 디테일이라기보다는, 지폐 같은 데 들어가야 할 거 같은 디테일이라서 좀 어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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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이의 다이얼 역시 훌륭하긴 합니다만 당연하게도 퀄리티에서는 서브마리너와 정면승부를 하기는 다소 버거워 보입니다. 일단 블랙베이의 다이얼은 서브마리너만큼 번쩍거리지 않는데요. 매트한 검은색 바탕의 다이얼에 흰색의 프린트와 크롬 코팅된 인덱스, 알루미늄 소재의 시분초침을 적용했습니다. 서브마리너에 비해서 인덱스의 크기가 크고, 스노우플레이크 시분초침의 크기도 더 커서 정확한 비례가 주는 고전적인 매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더 대담하고 시원해 보인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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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의 야광 인덱스나 시분초침도 클로즈업을 해봤을 때 거칠게 마감이 됐다거나 실수가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굉장히 좋은 품질을 보여줍니다만, 아쉽게도 18K 화이트골드가 아니라 크롬이나 알루미늄 같은 덜 특권적인 금속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시분초침은 서브마리너처럼 곡면이 아니라 평면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서브마리너와 별 차이가 없는데 뭔가 조금씩 반짝거림이 모자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옆에서 보면 시분초침 간의 거리도 서브마리너에 비하면 좀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덜 타이트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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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마리너의 프린트들이 매우 얇고 정교한 느낌이라면, 블랙베이의 프린트들은 다소 두텁고 굵은 글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굳이 서브마리너와 비교하지 않는다면 프린트의 품질은 매우 선명하고 우수합니다.

그래도 블랙베이에는 서브마리너에 없는 레트로 풍의 디테일이 있습니다. 서브마리너처럼 완전한 평면이 아니라 깊이감이 있으면서 가장자리가 다소 내려와 있는 컨벡스 다이얼이라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안쪽이 열려 있는 철도 모양의 챕터링이나, 길쭉하게 뽑은 12시 인덱스도 나름의 맛이 있습니다. 게다가 장미 로고와 스마일리 프린트는 서브마리너의 프린트보다 더 고풍스러우면서도 덜 수다스럽고 균형 잡혀 있습니다. 르호에다 브랜드 이름을 돌아가면서 새기는 불필요한 디테일도 없고요.

그래서 저는 블랙베이가 서브마리너에 비해 퀄리티에서는 밀려도, 대등한 매력을 가진 다이얼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서브마리너처럼 보석 같은 느낌의 번쩍거리는 다이얼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요. 50년대말의 빈티지 서브마리너의 디자인을 참 매력적으로 옮겨왔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곱 번째 비교: 야광

1400_069[069.png 야광 촬영 30초 경과]
1400_070[야광 촬영 10분 경과]

14060M은 크로마라이트라는 새로운 야광도료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이전의 제품이어서 블랙베이와 마찬가지로 슈퍼루미노바 C3 야광도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료가 같을 때는 인덱스와 시분초침이 커서 야광을 바를 면적이 많은 블랙베이가 더 유리하겠죠. 최신 모델끼리 비교하면 새로 개발한 도료를 쓰는 롤렉스의 야광이 더 오래 가겠지만, 오늘 비교에서는 블랙베이의 야광이 서브마리너보다 더 오래 가는 게 보이실 겁니다. 가끔 블랙베이의 시침에 야광이 고르게 발리지 않았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예전에 나온 모델에서도 시침의 야광은 약간 고르지 않게 발려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비교: 무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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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는 롤렉스와 튜더가 전통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던 지점입니다. 요즘은 튜더도 파워리저브 70시간에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내세우면서, 롤렉스와의 스펙 상의 격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롤렉스 14060M의 엔진은 전설적인 3135 무브먼트의 논데이트 버전인 3130입니다. 파라크롬 헤어스프링이 들어가기 이전 제품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브레게 오버코일 헤어스프링을 장착해서 전 세대보다는 고급스러운 부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파워리저브는 48시간으로 요새 나오는 시계들보다 다소 부족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크로노미터 기준보다도 더 엄격한 롤렉스의 자체 기준을 따라서 +-2초의 일 오차범위를 갖고 있습니다.

튜더 79220B의 엔진은 ETA2824-2의 탑 그레이드입니다. 이 시절의 블랙베이는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보통은 +5초 안쪽의 일 오차가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스펙이 인상적이지는 않아도 정비 비용이 싸고, 어디서나 수리할 수 있다는 점은 상대적인 장점입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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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결론을 내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서브마리너와 블랙베이 간에는 분명히 부정할 수 없는 품질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500만원 이상의 가격 차이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시는 분들마다 다른 판단을 내리실 거라 생각합니다. 서브마리너를 구매하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의 상당 부분은, 롤렉스라는 특권적인 이름과 역사에 지불하는 돈이라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하실 필요도 있겠습니다.

한편 튜더가 롤렉스의 열등한 복사판에 불과하다는 식의 인식은, 이제 더 이상 블랙베이와 서브마리너의 관계에서는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브마리너와 블랙베이 간에는 퀄리티의 차이도 있습니다만, 심미적인 목표의 차이도 있습니다.

서브마리너 수준의 정교한 퀄리티를 블랙베이에서 기대하기 힘든만큼이나, 블랙베이에 있는 레트로 풍의 디자인 요소나 경쾌한 터치 같은 것들 것들을 서브마리너에서 기대하기 힘듭니다. 둘 다 다이버 시계이긴 하지만 지향점이 의외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결국 서브마리너의 매력을 블랙베이가 온전히 대체할 수 없는 만큼이나, 블랙베이의 매력을 서브마리너가 온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겠네요.

batch_sanghw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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