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키보드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는 키보드의 개수는 총 7개. 중고장터를 통해 판 것까지 포함하면 아마 10개가 넘어갈 거다.
키보드를 3개쯤 샀을 때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한 물욕이란 녀석은 충분함을 몰랐다. 그렇게 계속 키보드를 계속 샀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20만 원을 주고 COX 블랙펄 풀알루미늄 키보드를 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정말?) 키보드를 구매하니 확실히 물욕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블루투스’ 키보드는 계속 사고 싶었는데, 아직 끝장을 보지 못한 것 같아서(이런 사람은 돈을 모으지 못한다). 오늘은 레노버 씽크패드 트랙포인트2를 리뷰한다. 아마도 이게 나의 마지막 블루투스 키보드겠지?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씽크패드 트랙포인트2(이하 트랙포인트2)를 본 순간 ‘이게 바로 내가 지금껏 찾아왔던 그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오래전부터 씽크패드의 쫀득한 키감을 동경했다. 8년 전쯤이었나…? 직장 선배의 노트북을 잠깐 쓴 적이 있었다. 보통의 노트북에서 느껴보지 못한 키감에 화들짝 놀랐는데, 그 노트북이 바로 씽크패드였다. ‘와,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전설의 씽크패드…?!’
트랙포인트2는 보통의 블루투스 키보드와 조금 다르게 생겼다. 대부분의 블루투스 키보드가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제품 크기를 줄이고 키캡을 급격히 다이어트 시키는데, 트랙포인트2의 배치는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Shift, Enter, Backspace 모두 적절한 체지방률과 근육량을 보유한 정상 체중처럼 보인다.
팜레스트와 마우스 버튼 덕분에 노트북의 하판을 그대로 떼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블루투스 키보드에 마우스가 왜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구매 목적에 따라 다르다. 이 키보드를 PC나 태블릿과 연결해 쓴다면 충분히 필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키보드를 PC에 연결해서 사용하진 않겠지만, 실제로 그런 용도로 구매하는 사람도 꽤 있는 듯하다. 키 배열이 답답하지 않아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무게는 460g으로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 블루투스 키보드 판매량 상위 랭커 ‘로지텍K380’이 423g이니 37g 더 무거운 정도다. 이 정도 무게라면 백팩에 넣고 다녔을 때도 무게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사이즈가 책과 비슷해 백팩에 넣었을 때도 이리저리 뒹굴거리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 다음엔 연결성을 보자. 트랙포인트2는 공식적으로 윈도우와 안드로이드OS를 지원하는데, iOS나 macOS와도 연결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또, 무선 리시버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투스를 지원하지 않는 구형 기기와도 연결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무선 리시버가 있는 것만 봐도 이 제품의 목적에는 분명 PC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회사에서 쓰는 아이맥과 블루투스로 연결하려고 했는데 원활하지 않아서 리시버를 사용해 연결했다. 하지만 일부 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역시 맥 유저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트랙포인트2를 쓰기에 가장 좋은 유저는 윈도우 PC와 안드로이드폰을 보유한 사람이다. 기기 간 전환도 빠릿하니 한 개씩 연결시켜서 사용하면 만족도가 높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트랙포인트2와 가장 좋은 궁합은 안드로이드 태블릿이다. 마우스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간단한 워드, 엑셀 같은 업무를 할 때 빨콩을 이용하면 되니까.
아쉬운 점도 있다. 멀티페어링을 3대까지 지원하는 저가 블루투스 키보드도 많은데, 이 제품은 13만 9,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최대 2개밖에 안된다. 참고로 제품 후면에 USB-C 포트가 있는데 유선 연결은 지원하지 않고, 오직 충전만 가능하다.
그 다음은 타건감. 이게 제일 중요하다. 내가 키보드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바로 타건감이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타건감은 내게 키보드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솔직히 말하면 트랙포인트2의 첫 타건감에 조금 실망했다. 다른 리뷰를 찾아보면 다른 무선 키보드에 비해 좋다는 평이 많았는데, 그 의견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면서도 ‘확실히 더 좋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계식 키보드에 길들여진 손가락이 더이상 펜타그래프 키보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금 적응을 하니 처음 느꼈던 실망감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13만 9,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오직 타건감의 신세계를 맛보기 위해 트랙포인트2를 사겠다면 말리고 싶고, 씽크패드 감성이 좋아서 사는 거라면 반대하지는 않는다. 감성은 대체되지 않는 거니까. 기계식 키보드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 좋은 타건감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이니 참고만 하자. 백라이트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트랙포인트2의 가장 큰 특장점은 ‘빨콩’의 존재다. 빨콩은 키보드 중앙에 있는 마우스 입력 장치에 대한 별칭으로 실제 명칭은 제품명과 동일한 ‘트랙포인트’다. 사과 로고가 애플의 상징이듯, 빨콩은 씽크패드의 상징이다. 기본으로 키보드에 달려 있기 때문에 키보드 하나를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마우스를 덤으로 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빨콩을 움직이면 마우스 포인트가 화면에 뜬다]
빨콩이 있으니 키보드만 연결하면 안드로이드에서도 마우스를 쓸 수 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으니 빨콩이 있다는 것 자체는 장점이다. 하지만 터치패드에 길들여진 요즘 사람들에게 빨콩 조작은 참으로 어렵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혹시 내가 빨콩 비기너라서 이렇게 불편한 건가 싶어 숙련자의 리뷰를 찾아봤는데, 많은 분들이 빨콩이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터치패드를 더 많이 쓴다고 하더라. 터치패드는 제스처까지 지원하니 능력치만 보면 빨콩이 이길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빨콩을 쓰면 키보드와 마우스를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어서 간편하게 쓰긴 좋지만, 터치패드의 정교함을 이길 수 없으니까. 씽크패드에게 빨콩은 이제 기능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아무리 써봐도 빨콩이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이런 평가 역시 짧은 기간 사용했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다. 빨콩에 대한 만족감은 본인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나는 트랙포인트2의 기능과 만듦새가 만족스러웠다. 백라이트의 부재, 부족한 멀티페어링 등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치명적인 정도가 아니었고,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맘에 걸리는 건 가격이다. 단순히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쓸 생각이라면 이것보다는 로지텍 K380, 삼성 스마트 키보드 트리오500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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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