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M이에요. 술 리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죠? 사실 요즘 알콜과 좀 소원했거든요. 솔직히 전 세계에서 모여든 맥주를 보는 게 피로하고, ‘내추럴’이란 딱지가 붙었다는 이유로 한 병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표를 달고 복잡 미묘한 맛을 내는 것도 다 지겹더라구요. 여러분은 안 그래요?
그러다 최근 이 알태기(알콜 권태기)가 조금 괜찮아졌어요. 왜냐구요? 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캠핑을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공감하실 거에요. 사실 먹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요. 먹기 위해 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캠핑의 진짜 시작은 마트에서부터라니까요. 단 거, 짠 거, 매운 거, 가볍고 무거운 것까지 끼니와 끼니 사이에 들어갈 간식까지 디테일하게 상상하며 끼니를 챙기거든요.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화롯대 앞에서, 지글대며 구워진 고기 앞에서, 보글거리는 찌개 앞에서 무엇보다 멋진 자연 풍광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건 어쩐지 반칙 같더라구요.
요즘 제가 가장 자주 마시는 주종은 막걸리예요. 이상하죠. 캠핑장만 가면 그렇게 막걸리가 마시고 싶더라구요. 혹시 막걸리가 유서 깊은 노동주라서 그런 걸까요? 텐트를 치고 캠핑 장비를 정리하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나면, 저는 시방 그렇게 막걸리가 마시고 싶더라구요. 노란 머리를 하고 있지만 실은 그 뿌리는 검기 때문일까요.
근데, 요즘 마트에 가면 막걸리 종류가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요. 한 4년 전의 맥주 가판대를 보는 것 같더라고요. 막믈리에를 자청하며 이것저것 마셔보다가 최근엔 이걸로 정착했어요. 너무 맛있어서 여러분에게 이걸 소개하지 않으면 미안할 것 같아서 키보드를 뚱땅뚱땅 두드리고 있어요(사실 사설이 더 길었지만요).
오늘의 주인공은 해창 막걸리. 아직 안 먹어봤다면 제발 마셔주세요. 저는 마트에서 샀지만, 사실 이 녀석은 땅끝마을 해남에서 왔어요.
해창은 바다의 창고라는 뜻이에요. 자료를 찾아보니 양조장이 정말 멋진 곳에 있더라구요. 깊고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곳에서 숙성을 해서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해창 12도의 뒷면에 있는 그림은 허영만 화백이 그린 그림이라고 해요. 실제로 허영만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시는 막걸리래요.
일단 이 말부터 하고 시작할게요. 이 막걸리의 도수는 12도예요. 가격은 마트에서 만 오천 원을 줬구요. 다들 깜짝 놀랐죠? 그런데 아직 놀라긴 일러요.
이 막걸리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일명 ‘롤스 로이스 막걸리’라고 불리는 해창 18부터였어요. 네, 18이란 숫자는 막걸리의 도수를 말하는 거예요. 아니 막걸리가 18도라고? 일반적인 막걸리가 6도 정도니까 3배 정도 높은 도수인데요, 가격은 무려 11만 원. 3대 서민의 술이라고 불리는 막걸리가 10만 원이 넘는다니! 그리고 도수는 소주보다 높다니! 사실 어마어마한 가격 때문에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이름은 해창에서 직접 붙였다고 해요. 막걸리 뒤에는 정말 롤스로이스 그림이 그려져 있답니다. 저도 마셔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해남까지 가야 만나볼까 말까하는 귀한 분이시라 저는 구경도 못 했어요.
도수를 보고 짐작하셨겠지만, 깔끔한 맛은 아니에요. 투명한 잔에 따르면 그 묵직함이 잔을 따라 꾸물꾸물한 궤적을 그릴 만큼 맛이 진해요. 먹고 나면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되는 맛이랄까요. 진한 텍스처 때문에 꼭 드링킹 요거트를 먹는 것 같아요. 부드러운 식감이 혀를 감싸서 이게 술인지 크림인지 헷갈립니다.
달지 않은데 달아요. 곡주에서 느껴지는 뭉근한 단맛이 올라옵니다. 탄산이 거의 없고, 바디감이 굉장하기 때문에 이건 혀 안에서 천천히 굴려 마시는 술이죠. 풋풋한 쌀의 맛과 향 그리고 혀를 감싸는 뭉근한 감칠맛 덕분에 꿀꺽꿀꺽 마시다 보면 12도란 알코올 도수는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아, 물론 그렇다고 취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에요. 안주 없이 그냥 먹어도 당연히 맛있지만 은은한 산미와 단맛은 의외로 피자, 치킨, 고기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더라구요.
이쯤에서 해창 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저만의 꿀팁을 풀어볼까요? 바로 얼려마시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막걸리 슬러시죠. 워낙 도수가 높기 때문에 냉동고에 올려 두어도 꽝꽝 어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에요. 4시간 정도 얼린 뒤 마시면 서걱서걱한 얼음 알갱이가 씹히는 슬러시 식감이 되는데요, 이 맛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아 다들 이걸 마셔봐야 하는데 제발 제 마음을 알아주세요.
마지막으로 전통주가 좋은 건 바로 인터넷 주문이 된다는 거 아니겠어요? 해창 막걸리 사이트에서 9도와 12도를 6병 단위로 구입할 수 있어요. 저는 벌써 6병 사서 두 병은 마시고 나머지는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어요. 한 병 한 병 건넬 때마다 “이게 어떤 술인지 알아?”라며 해창 막걸리에 대한 수다를 한참을 떤답니다. 이야기가 있는 술을 더 달콤한 법이니까요. 여러분을 위해 해창 막걸리 웹사이트 링크도 달아둘게요! 다들 행복한 시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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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