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아론이야. 최근에 디에디트 라이프에도 몇 번 출연해서,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니 글 쓰는 게 조금 쑥스럽네. 최근에 신사동 가로수길에 조 러브스 팝업 스토어가 열려서 다녀왔단 소식을 전하려 해. 응? 조 러브스가 뭐냐고?
조 러브스는 조말론 여사가 론칭한 새로운 향 브랜드야. 맞아. 이제는 우리가 너무너무 잘 아는 바로 향수 브랜드 ‘조말론’을 만든 조말론 여사지. 사실 지금의 조말론에는 조말론 여사가 없어. 수년 전 에스티로더가 인수했거든. 인수 후에도 조말론 여사는 한동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함께 했지만, 암투병으로 인해 조말론을 떠났었지. 다행히 완치되어 돌아온 그녀가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게 됐고, 그게 바로 조 러브스(Jo loves)야.
조 러브스는 조말론 여사의 명성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브랜드야. 브랜드를 소개할 때 조말론 브랜드와 차이를 두기 위해서인지, 꼭 조말론 여사의 이름 뒤에 CBE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고? 별생각 없이 Creative 어쩌고~ 느낌의 직함 같은 거라고 짐작했어. 근데 알아보니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제국 훈장이라는 뜻이래. 조향사로서 국가 훈장까지 받다니, 멋지다 멋져.
그러니 조 러브스를 국내에 들여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 있었겠어? (승자는 신세계 인터내셔널인데, 그런 것까지 우리가 기억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조 러브스의 한국 진출이 늦어졌다는 게 아쉬운 포인트지. 2011년 첫 제품을 론칭한 지 10년 만에 한국에 팝업 스토어를 열게 됐으니 말야. 대신 가로수길 메인 거리 아주 좋은 자리에, 근사한 팝업을 꾸렸으니 결과적으론 잘된 일일 수도!
스토리가 너무 구구절절했나? 암을 이겨낸 후에 자신의 브랜드를 또(!) 론칭한 조말론 여사는 조 러브스의 향에 자신의 취향과 기억들을 많이 반영한 것 같아.
빨간 바틀이 단연 눈에 띄는 대표 향수는 이름이 무려 ‘조 바이 조 러브스’인데, 그레이프 푸룻을 중심으로 세련된 시트러스 느낌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시더우디 향으로 반전을 꾀하는 매력이 있더라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상큼함에 슬쩍 ‘멋’을 끼워 넣은 것 같달까.
그 연결선 상에 또 다른 대표 향수 ‘포멜로’가 있어. 비슷한 시트러스 뉘앙스지만 조 바이 조 러브스보다 좀 더 ‘그린’한 느낌이 도드라지더라. 껍질과 과실 사이의 하얗고 까끌한 부분의 씁쓸한 향이 좀 더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야. 잔향은 살짝 무게감 있지만 부드러운 스웨이드처럼 깔리는 편이야. 그래서 ‘조 바이 조 러브스’와 ‘포멜로’를 커플 향수로 쓰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 완전 똑같은 커플룩이 아니라, 은근히 비슷한 무드의 시밀러룩 같은 커플 향수가 될 것 같아. 닮은 듯 다른 매력이 여실히 느껴지거든.
그 외에도 No.42 플라워샵, 로즈 페탈 25, 핑크 베티버 등 총 9가지 향수가 있었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두 가지만 더 이야기해볼게.
첫 번째는 ‘오렌지 버터플라이’. 오렌지꽃 느낌이 중심인 향수인데, 아직 네롤리 향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네롤리 입문용 향수로 추천하고 싶었어. 잔향이 꽃비누 느낌으로 은은하게 남는 것도 좋고, 바틀에 나비가 그려진 것도 참 예뻐.
두 번째 향수는 ‘망고 타이 라임’이야. 내가 이걸 고른 게 스스로도 의외인데, 나는 너무 달콤한 향은 좋아하지 않거든. 게다가 망고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향도 아니잖아? 근데 첫 향은 새콤달콤 카라멜처럼 친근하게 달콤했다가, 뒤로 갈수록 희고 부드러운 느낌의 잔향으로 전개되는 게 매력 있더라고.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향이야. 익숙하고 흔한 향기를 바탕으로 좋은 향수를 만드는 게 어렵다는 걸 아니까 더 끌리는 것 같기도 해.
*조 러브스 모든 향수 가격 50ml 14만 9,000원, 100ml 23만 9,000원
그런데 조 러브스는 향수만큼 다른 바디 제품들도 전면에 내세우는 브랜드야. 팝업 스토어의 콘셉트도 ‘향기 타파스 바’로, 바디 제품의 향기를 독특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해뒀어.
칵테일 쉐이커로 거품을 낸 바디 워시를, 마치 술처럼 잔에 따라주는 거지. 바디 로션은 휘핑크림을 만드는 기계로 디저트처럼 내어주고 말야. 대신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경험할 수 있대.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변동될 수 있으니 꼭 확인해보도록!
그 외에도 브러시를 통해 향을 몸에 바를 수 있는 페인트브러쉬 젤도 참 재미있었어. 바디 제품의 향은 향수 라인과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기 때문에 레이어드하는 묘미가 있을 것 같아. 팝업은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슬쩍 들러보기에 넉넉한 일정이지? 나도 조만간 향수 하나 구매하러 또 가게 될 것만 같아.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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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