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말 많고 고독한 평론가 차우진이다. 내가 작년 말, 그러니까 11월부터 지금까지 한 3개월 집콕을 하고 있는 상태다. 아 물론 재택이라기보다 이건 좀 구금 상태 같지만. 아무튼 재택 도비로 살면서 한 일이라고는 음악 듣고 글 쓰고, 글 쓰고 음악 듣는 게 전부였다.
쓰고 듣고 쓰고 듣고 그러다가 짬이 나면 밥하고 설거지하고 잠도 좀 자는 뭐 그런 (노예)생활을 하였는데 이 노하우를 살려서 오늘은 일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공유하려고 한다.
잠깐, 그런데 ‘일할 때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거 어째서인지 ‘일해라 노예야!’처럼 들리지 않아?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으면 내 마음 속에는 ‘엔터테인먼트는 민중의 아편! 사악한 콘텐츠 산업!’이랑 ‘아니다, 악마야! 음악이야말로 이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이런 생각이 서로 치고박고 부릉부릉대지만. 뭐, 그래봐야 나는 하찮은 마감 도비니까. 여러분은 이 험한 세상 어떻게든 돈 많이 벌어 탕진하면서 잘 살길 바라겠다. 그러니 부디 딴 짓 말고 이거 듣고 힘내서, 일해라 노예야!
사실 스포티파이나 바이브를 듣기도 하지만, 일할 때는 아무래도 유튜브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아. 왜 그럴까? 일단 일할 때는 컴퓨터와 연결된 헤드폰을 쓰기 때문이고, 일하다가 뭐가 잘 안 풀리면 음악 뿐 아니라 영상을 보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야. 그래서 여기서는 오직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만 소개할게.
물론 ‘떼껄룩’이니 ‘에센셜’이니 ‘멜러리 뮤직’이니 유명한 플리 맛집들이 많지만, 그것들 다 빼고 내가 아는 선에서 레어템을 꺼내왔다. 아무래도 나는 글을 쓰다보니 한국 노래 플레이리스트는 ‘거의’ 없다는 것, 미리 알려줄게.
[1]
“재택근무가 외롭더냐”
<바이올렛 피즈>
플레이리스트의 관건은 첫 곡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처음 10초. 소개팅처럼 거기서 승부는 끝난다고. [바이올렛 피즈]는 최근 발견한 채널인데, 딱 시작되는 인트로가 죄다 취향저격이야. 물론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 같지만 바로 그 음악은 아니라는 ‘pain point’가 있지만(그러니까 대체로 유명한 히트곡의 카피 같달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평타 이상의 음악을 줄줄이 들을 수 있다는 게 매력이야. 당장 이 리스트의 첫 곡만 봐도 REM 같지만 REM은 아니거든. 다만 그보다는 좀 더 깔끔하고 상쾌한 음악이야.
⏰ 재생 시간 1시간 47분
[2]
“사람 목소리 듣고 싶지 않을 때”
<땡쓰 포 커밍>
<땡쓰 포 커밍>은 재즈를 주로 선곡하는 채널. 근데 제목이 아주 후킹하지. ‘어찌되었건 피곤하면 열심히 산거야’ 말 장난을 고급지게 하는 느낌인데, 그게 마치 위로받은 것 같아. 그냥 틀어두면 집중력도 향상! 이거 듣고 고시 합격했다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못 봤네. 댓글창을 보는 것도 사이드 재미야. 아주 그냥 고민상담소임. 그런데 상냥한 주인장은 모두의 댓글에 답글을 달아줘. 위트있게.
내가 팬덤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종종 소개하는 사례이기도 함. 왜냐고? 플레이리스트 채널은 수익화가 안되거든, 그런데 이 채널 구독자들이 그걸 알고선 이런 채널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텀블벅에 뭐라도 올리면 후원해주겠다고 해서 주인장이 머그컵과 에코백 세트 펀딩을 열었더니 3천 만원 넘는 금액이 모였네? 팬덤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장되는지에 대한 사례로 소개하고 있어.
⏰ 재생 시간 1시간 1분
[3]
“최신 인디 포크 송은 어때?”
<INDIE FOLK CENTRAL>
매우 애정하는 채널. 캐나다에 있는 비영리 사이트 <인디 포크 센트럴>에서 운영하는 채널이야. 주로 영미권의 인디 포크 송만 모아서 들려주는데, 제목도 분위기도 올드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심플해. 어디서도 듣기 힘든 곡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게 강점. 데일리, 주간, 월간, 연간 기준으로 1시간 이상의 플레이리스트를 업로드하고 있어. 곡이 흐르는 화면에 곡에 대한 짧은 소개와 노랫말이 나와. 하지만 영어다….
⏰ 재생 시간 1시간 5분
[4]
“어쨌거나 내가 고른 곡들”
<티엠아이 에프엠 TMI.FM>
작년 4월부터 ‘밤레터’라는 라디오 컨셉의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어. 매회 ‘일 많고 고독한 밤’이라는 테마로 음악을 몇 곡 소개하는데, 이게 벌써 150곡 가까이 되네. 이 리스트도 자주 들어. ‘일 많고 고독한 밤’이라니, 너무 나 같아서. 아무래도 나는 내가 (고른 곡이) 좋은가봐. 으하하. 플레이리스트는 여기.
[5]
“한 번에 한 팀, 무한반복”
타샤 술타나
기타리스트 타쉬 술타나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야. 멜번의 음악가인데 버스킹으로 시작해서 유튜브로 국제적인 인기를 얻은 음악가. 10대 후반에 마약에 빠졌다가 음악으로 회복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버스킹을 시작했다고 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 작사, 작곡 뿐 아니라 혼자서 모든 악기의 연주, 편곡, 프로듀싱까지 해내는 인물이기도 해. 유니크하고 몽환적인 사운드 트립을 경험할 수 있어. 2018년에 발매된 앨범의 제목은 [Flow State], 말 그대로 몰입을 위한 음악이야.
⏰ 재생 시간 25분
시그리드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의 미니 콘서트 영상. 원래는 2020년 여름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었지만,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자 기획된 영상. 그런데 음향이 너무 좋아! 실제 댓글에도 음향 감독에게 상줘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 소리만 듣고 있으면 깔끔한 노랫소리 주변으로 흩어지는 바람 소리, 자갈 소리, 건반 소리, 발자국 소리, 박수 소리 등이 ASMR 같고 그래. 일하기 좋은 음악.
⏰ 재생 시간 34분
올리비아 로드리고
그리고 이건 최근 1주일 동안 가장 많이 들은 곡. ‘드라이버 라이센스’란 제목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거야. 지난 주에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빌보드 차트에서 난리난 신인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곡으로, 팬들이 이렇게 1시간 루프 버전을 만들어서 올리고 있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17살의 나이에 누구보다 빨리 큰 성공을 거둔(발매 48시간 만에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1위, 빌보드 싱글차트 1위-핫샷 데뷔를 기록했어) 젊은 싱어송라이터. 이 노래는 멜랑콜리하고 우아한 멜로 드라마 같은데, 이걸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들으면서 일을 하면 정말 잘 되더라고. 적어도 내게는 매우 바람직한 노래.
⏰ 재생 시간 1시간 3분
[6]
“플리도 교차편집이다”
<강민혁x차누>
교차 편집 채널 참 많은데 [강민혁x차누] 채널은 장면 전환의 편집 수준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서 좋아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걸그룹 위주로 콘텐츠를 구성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왜 하필 아이즈원이냐고? 그것은 내가 위즈원이기 때문이지…
⏰ 재생 시간 23분
모두들 ‘일 많고 고독한 밤’에 무너지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반드시, 잘 보내도록. 해피 뉴 이어.
About Author
차우진
음악/콘텐츠 산업에 대한 뉴스레터 '차우진의 TMI.FM'을 발행하고 있다. 팬덤에 대한 책 [마음의 비즈니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