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이었나. 내 친구 K가 이런 얘길 했었다.
“아니 거래처 A씨가 나한테 카톡을 보낸 거 있지? 아 황당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A씨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 불쾌한 내용이 있었나? 추근덕댔나? 욕을 했나? 아니었다. A씨는 전달받은 서류를 팩스로 보내달라며 사무실 팩스번호를 보냈을 뿐이었다. K가 화를 낸 이유는 사적으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카카오톡으로 연락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막 스마트폰을 구입해 카카오톡이라는 첨단(!) 소통 장치에 적응해가는 과정이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필사적으로 고르고, 하루에 한 번씩 상태 메시지를 바꿨다. 미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한 헤어진 연인들의 이름이 친구 목록에 떠올랐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신저는 아직 사적인 영역이었다. 친한 사람들과는 카톡을 쓰고, 업무상 아는 사람과는 문자를 주고받는다는 묘한 불문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업무 관련 메시지를 카톡으로 보낸 게 상당히 무례하고 프로답지 못한 일이라며 화내던 6년 전의 K. 이 유난스런 계집애. 잘 지내니?
세상이 바뀐 지금, 이제 거래처 A씨가 카톡으로 연락했다고 열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바일 메신저는 전화나 메일처럼 너무나 당연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모두가 카톡을 주고받지만 그래도 여전히 친한 사람과 공적인 관계에 대한 ‘구분’은 있다. 뭐냐고? 바로 짤방의 유무다.
https://youtu.be/wGXe_DmeEyI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짤방’을 보낼 수 있다면 친한 사람. 수고하세요 ^^, 감사합니다 🙂 같은 어색한(?)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덜 친한 사람. 내가 했지만 너무너무 정확한 분석이 아닌가! 소름….
얼마 전 대화 중 친한 분이 “디에디트 열심히 운영해라, 잘 살려야지”라는 다정한 메시지를 보냈다. 순간 느낀 감사함을 짤방으로 표현하지 않곤 견딜 수 없었다. 온몸을 휘감는 그 충동! 수고스러움을 무릅쓰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살려야 한다’를 입력했다.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이미지를 다운로드받아 대화창에 띄웠다. “헐, 이걸 가지고 있었던 거야? 빠르다” 대화방의 모두가 내 빠른 속도에 감탄한다. 흐뭇해진다.
[소니 기자간담회에서 정우성을 본 후 나와 M의 대화]
짤방이나 움짤을 던질 때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얼마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가. 그리고 얼마나 빠른가! 대화의 흐름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움짤을 던져야만 그 가치를 다하는 것이다.
여자들 사이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한 대화를 통해 움짤의 좋은 사용 예를 보여드리겠다.
H : ㅎㅎ 나 오늘 연예인 닮았다는 말 들었엉
H : 트와이스 채영 닮았대!
M :
via GIPHY
H: 뭐야? 그 반응은? 두 번이나 들었는데?
M :
via GIPHY
M :
via GIPHY
M :
via GIPHY
H : … 잘못했다. 고마해라.
친구가 잘못된 발언을 했을 때 “안 닮았어 ㅂㅅ, 닥쳐!!” 이런 험한 말을 할 필요 없다. 천 마디 말보다 한 마디 움짤이 강력하니까.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나 기쁨, 놀라움이 있는데 한국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된다면?
“에헤헤헤헤엥ㅎㅎㅎㅎㅎㅇ앙마이아이밈아미쳫ㅎㅎㅎ왜저랳ㅎㅎㅎㅎ”라는 타이핑만으로는 지금 이 상황의 웃김이 표현이 안된다면?
우리에겐 우리 대신 웃어줄 움짤이 있다!
그런데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움짤을 쓰면서도 꺼림칙할 때가 있다. 이들의 저작권은 어디에 있는가. 막 써도 되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주로 세계 최대 규모의 GIF 사이트인 기피(GIPHY)를 이용한다. 이미 틴더(Tinder) 같은 해외 소셜 앱은 움짤 공유를 위해 기피와 협업하고 있다. 기피에서 제공하는 방대한 움짤을 내가 쓰는 모바일 메신저에 바로 불러다가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상하고 웃긴 앱 베리잼(vryjam) 다운로드]
똑똑한 내가 움짤 중독자 여러분을 위해 수상한 앱을 하나 찾았다. ‘베리잼(Vryjam)’이라는 앱인데, 기피의 움짤을 검색해서 바로 대화창에 보낼 수 있다. 로고부터 뭔가 병맛의 향기가 난다. 꼼데가르송 로고가 고도 비만이 된 듯한 기묘한 모습. 괜히 끌린다. 신박하다! 카카오톡이나 라인같은 국내 메신저로 바로 공유할 수 있어 편하다. 이것만 있으면 나는 움짤의 여왕.
한번 써보자. 베리잼 앱을 열고, 지금 나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검색어를 넣으면 된다. 한국어로도 검색이 꽤 잘되어 있다. 개놀람, 개실망, 쩔어, 대박 등 내 수준에 딱 맞는 단어로 원하는 움짤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일단 ‘ 빡침’을 검색해봤다. 하… 결과가 너무나 내 마음 같아 놀라고 말았다.
인기 움짤 목록도 따로 확인할 수 있는데,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움짤이 표시된다. 시크릿가든의 길라임 움짤이 자꾸 나오는 걸 보면 한국 문화(?)에 트렌디하게 반응하는 건 분명하다.
원하는 움짤을 고른 뒤엔 각종 방법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카카오톡, 라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메신저, 이메일, 문자 등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거의 다 지원한다고 보면 된다. 카카오톡을 선택하면 바로 해당 앱이 실행되며 대화 상대나 대화방을 고른 뒤 전송할 수 있다. 단 3번의 터치로 완료되는 간편한 조작이다.
이제 예습은 충분히 했으니, 실전에 들어가 보자. 실제로 에디터M과 대화하며 베리잼 앱으로 희롱(?)한 대화 내용을 공개한다.
좋은 움짤은 넘쳐나고, 이걸 베리잼에서 카카오톡으로 연동해서 보내는 과정은 너무나 쉽다. 뭐랄까? 한국어밖에 못하던 내가 2개국어를 깨우친 느낌?
움짤은 문자보다 직관적이고 짜릿하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탓에 전달할 수 없는 ‘느낌적인 필링’을 함축적으로 전할 수 있다. 베리잼 앱을 리뷰하겠답시고 다운로드 받아놓고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펼쳐지는 움짤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건 비밀.
퀵버튼이라는 재밌는 기능을 추가하면 어느 화면에서나 바로 베리잼 앱을 열 수 있다. 위의 카톡창 오른쪽 상단에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게 바로 퀵버튼이다. 움짤 중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마치 키보드 단축키처럼 자연스럽게 움잘을 쓸 수 있다. 퀵버튼을 활성화해두면 화면 어디서나 저 수상한 비만 꼼데가르송이 나를 바라보며 “움짤을 보내~”라고 텔레파시를 보낸다.
요즘 나의 관심사인 고양이를 검색해보았는데, 귀여운 게 너무 많아서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이 앱은 굳이 메신저로 누군가에게 움짤을 보내지 않더라도 재미난 움짤을 찾아보는 용도의 킬링타임 용으로도 충분하다. 너무 잉여롭다고? 맞다. 우리 인생이 원래 그렇다. 인키 키워드나 즐겨찾기 기능으로 자주 쓰는 움짤은 바로 바로 꺼낼 수 있다. 이 앱을 만든 개발자는 움짤의 생명이 초 단위의 스피드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얼굴 마주 보고 나누는 대화보다 메신저 화면 속 대화가 많아진 건 어쩔 수 없는 변화다. 나는 졸업 후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친구들과 연락이라도 이어갈 수 있는건 모바일 메신저와 소셜 미디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네트워크 기반의 소통이 당연해졌다면, 이제 그 안에서 마음껏 즐겨보자. 딱딱한 문자의 소통에 양념처럼 움짤이나 동영상을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건 모바일 시대가 내린 축복이 아닐까. 말로는 모자라고 행동으론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게다가 우리는 늘 유머와 웃음에 목마르고.
평소에 적재적소에 움짤을 보내오는 친구의 센스가 부러웠다거나, 스마트폰에 쌓인 수백 장의 움짤을 제대로 써먹지 못해 고민인 사람에게 ‘베리잼’을 추천한다. 오늘의 허술한 앱 리뷰는 여기까지. 아, 단점이 있다. 이 센스있고 잉여력 넘치는 앱이 아직 안드로이드 버전만 개발돼있다(다운로드는 여기서). 어서 iOS 버전을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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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