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겨울 특유의 포근하고 따스한 감성을 사랑하는 객원필자 김정현이다. 영하 19도까지 내려가는데 뭔 포근 타령이냐고? 상상해보자. 하얀 눈이 내리는 창밖 풍경과 옆에는 타닥타닥 타는 벽난로, 할머니가 직접 짜주신 두꺼운 스웨터를 걸쳐 입고서 모카포트로 끓인 진한 커피 한 모금을… 그래, 정정한다. 나는 여전히 영화 속 유럽의 겨울 풍경이 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Bon Iver – Holocene 뮤직비디오 中]
그치만 유럽은커녕 동네 카페조차 맘 놓고 못 다니는 게 현실. 하루하루가 답답한 요즘, 기분이라도 낼 겸 겨울의 유럽에 온 것처럼 스타일을 꾸며 보면 어떨까? 그리고서 커피나 핫초코 한 잔 옆에 두고 옛날 영화를 틀어놓는 거지. 친구와 함께 한적한 곳에서 캠핑이나 차박을 즐겨도 좋겠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中]
나처럼 겨울 로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특히 영국 할머니나 노르웨이 할아버지가 애용할 법한 두툼하고 투박하고 귀여운 아이템을 좋아한다면 구미가 좀 당길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 브랜드 제품으로만 선정한 이유? 제대로 느껴보겠다고 방대한 물량의 빈티지를 찾아 발품 팔거나 복잡하게 해외 직구까지 시도하기엔 다들 바쁘고 힘드니까. 우리 편하게 기분만 내자.
[1]
하이드아웃
JEKYLL AND HYDE
이 주제를 구상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템. 겨울옷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플리스 재킷 아니겠나. 그중에서도 ‘지킬 앤 하이드 리버시블 롱플리스 재킷’은 하이드아웃의 시그니쳐 제품이다. 이효리가 <효리네 민박>에서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던 친구지.
하이드아웃은 플리스 소재를 중심으로 편안하고 내추럴한 무드를 선보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데, 무난한 디자인과 컬러 덕에 일상생활에서도 아웃도어 활동 시에도 부담 없이 입기 좋다.
보고만 있어도 따뜻해지는 풍성하고 보들보들한 플리스 원단.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넉넉한 기장 덕에 보온성이 배가 된다. 사진 속 모델처럼 평소 자주 입는 후디 위에 툭 걸쳐도 좋고, 깔끔한 터틀넥과 매치해도 센스 있는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거.
‘리버시블’ 기능 덕에 실용성도 빠지지 않는다. 주구장창 입고 다니다가 질릴 때쯤 한 번씩 뒤집어 입자. 보들보들한 플리스 원단이 아닌 매끈한 나일론 원단이라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누빔 재킷 절대 못 잃으시는 어머니 아버지도 좋아할 스타일이랄까.
‘Chill out, Sunday’라는 타이틀의 겨울 시즌 에디토리얼이 우리가 원하는 포근하고 따스운 감성을 잘 보여준다. 영국 근교에서 평온한 오후를 즐기는 가족의 단란한 모습. 비록 여기는 코리아지만 뭐 어떤가. 동네 마실 다니며 장도 보고 커피도 마실 때, 이만큼 편하고 귀엽게 입을 옷 찾기 쉽지 않다.
[2]
노드 아카이브
Corduroy Fatigue Pants
플리스만큼이나 따뜻한 분위기를 주는 대표적인 소재가 ‘코듀로이’다. 그래, 골덴 혹은 고르뎅이라고 하는 그거. 아빠 옷장 뒤지면 꼭 하나씩은 나오는 그거. 도톰하고 부드러운 소재가 주는 캐주얼하면서도 정갈한 매력 덕에 가을 겨울철 재킷으로도, 바지로도 자주 찾게 되는 꿀 아이템이다.
귀여운 느낌의 코듀로이 바지를 찾고 있었다면 이 제품이 좋은 선택이 될지도. 노드 아카이브는 빈티지 복식 요소를 현대적인 실루엣에 접목해 편안한 일상복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이 바지 역시 60년대 영국군의 퍼티그 팬츠를 적절히 변주한 점이 포인트. 군용 작업복에 뿌리를 둔 만큼 단단하고 투박해 보이는 일반적인 퍼티그 팬츠에 비해 골의 너비가 볼록하고 넓은 코듀로이 원단을 써서 한층 부드럽고 포근한 인상을 준다.
따스해 보이는 첫인상 외에도 빈티지 맛 디테일을 뜯어보는 재미가 있는 바지다. 앞서 말한 퍼티그 팬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면부의 빅사이즈 아웃 포켓 외에도 앤티크한 무드의 금속 걸고리는 오랜 세월을 견뎌낸 바지를 입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준다.
어떻게 스타일링해도 매력적인 활용도 높은 제품. 나도 쏠쏠하게 잘 입고 다닌다. 그럼에도 우리의 유럽 겨울 감성을 지키기 위해, 10년은 거뜬히 입을 것 같은 두껍고 풍성한 스웨터랑 코디해보고 싶다. 그렇게 입고서 시골 마을로 놀러 가 숲도 거닐고 밤에는 벽난로 앞에 앉아 뜨거운 커피에 초콜릿 가득 박힌 쿠키를 먹는 거지. 아니, 이런 상상은 정말 나만 하는 건가?
[3]
와일드브릭스
LW ANCHOR FINGERLESS GLOVES
겨울 패션에 장갑이 빠질 수는 없다. 장갑이야말로 오직 이 계절만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아이템이니까. 문제는 호불호. 좋아하는 사람들은 컬러별로 패턴별로 모은다. 취향에 따라 매끈한 가죽만 사용하기도, 복실거리는 울 소재만 찾기도 하지. 반면에 아무리 추워도 장갑만큼은 안 끼는 사람들도 있다. 불편하고 답답하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이것만은 기억하자. 겨울 느낌을 가장 쉽고 저렴하게 낼 수 있는, 감성과 보온성을 동시에 갖춘 이런 아이템 또 없습니다.
오늘 추천하는 핑거리스 울 장갑은 평소 눈여겨보던 와일드브릭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제품이다. ‘와일드, 클래식, 아날로그’를 핵심으로 삼아,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고전적인 소재와 디자인을 자연스럽고 따뜻한 감성으로 담아내는 와일드브릭스. 이 장갑만 봐도 어떤 톤앤매너를 추구하는지 대충 감이 온다.
전면부에 수 놓인 닻 문양이 이국적인 느낌을 제대로 살린다. 어릴 적부터 뽀빠이 등을 통해 익숙하게 접한, 그야말로 뱃사람들의 심볼. 평생 육지에서만 살았어도 괜찮다. 이 장갑을 낄 때만이라도 북유럽 해안가 마을의 토박이, 요한 구스타프 페데르센 씨가 되어보자(겉은 투박해 보여도 심성은 따스한 사람일 것만 같다).
핑거리스만의 실용성도 무시 못 한다. 손가락 끝까지 다 덮는 게 답답해서 싫다는 친구도 정말 추울 때는 핑거리스 장갑을 끼더라고. 특히 한국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이 필요하지 않나. 원할 때면 바깥에서도 장갑을 낀 채로 자유롭게 터치가 가능하다.
[4]
모베러웍스 X 삭스타즈
ASAP SOCKS
다른 건 다 참아도 발 시린 건 못 참는다. 맨날 곰발바닥 같은 부츠를 신을 순 없으니 양말이 정말 중요하지. 그렇다고 보온성만 따질 수도 없다. 양말 하나만 잘 신어도 패션 센스 좋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아이템은 빈티지 무드 낭낭한 양말이다. 오래된 필름 사진에서 본 것만 같은, 더플 코트를 입고 두꺼운 책을 옆구리에 낀 채 걸어가는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이 신었을 법한 그런 양말. 앞에서 실컷 유럽 겨울 감성이라면서 왜 또 미국이냐고? 그래도 뿌리는 같으니 넘어갑시다…
자기다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쾌한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 ‘모베러웍스’와 더 나은 하루를 파는 양말 가게 ‘삭스타즈’의 멋진 협업 제품이다. 삭스타즈가 쌓아온 양말 제작에 관한 노하우와 모베러웍스 특유의 위트 있는 디자인이 만났다.
독특한 점은 요즘은 흔치 않은 ‘더블 실린더’ 방식을 채택했다는 거. 7-80년대에 많이 사용된 재래식 공법인데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싱글 실린더’ 방식으로 전환되고 나서는 효율성을 고려해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요즘 양말들에서 느끼기 힘든 두툼하고 투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덜 깔끔하고 덜 매끈한 대신 더 튼튼하다. 말하자면 오래 신을 수 있고 갈수록 자연스럽게 낡아간다는 건데, 그게 바로 빈티지의 맛 아니겠나. 나 역시 그런 러프한 매력에 반해 출시하자마자 구매했다. 기장도 길고 발에 착 감기는 느낌이 좋아 애용하는 중. 자수로 새겨진 캐릭터 ‘모조’도 귀여움을 더한다.
발바닥에는 이런 것도 있다. 실리콘으로 작업한 모베러웍스의 시그니쳐 메시지 ‘ASAP(As Slow As Possible)’. 평소엔 볼일이 없어 굳이 왜 넣었나 싶겠지만 이런 작은 디테일들이 ‘미국 맛 빈티지 양말’이라는 제품 컨셉을 뒷받침해준다. 발을 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실리콘 재질의 기분 좋은 감촉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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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