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12 mini를 고민하는 모든 분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작은 폰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전자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고, 후자에는 팀 쿡이 있습니다. 저요? 저는 팀 쿡이 만든 큰 폰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큰 화면에 중독된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묻어둡시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름부터 작고, 실제로 보면 더 작은 아이폰 12 mini니까요.
박스부터 작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폰 12 시리즈 부터는 이어폰과 어댑터가 기본 구성품에서 제외되며 박스가 납작해졌는데, 내용물의 크기까지 작아지니 이 안에 제품이 들어있는 건 맞나 싶을 만큼 작네요. 박스 앞면 어디에도 mini라는 표시는 되어 있지 않지만, 존재감만으로도 알 수 있죠.
먼저 이 ‘mini’라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여태까지 애플이 아이폰 뒤에 붙였던 수많은 수식어를 생각해볼까요. 지난 세대와 다음 세대를 구분 짓기 위해 ’S’를 붙이기도 했고. 사이즈에 따라 Plus나 Max라는 명칭도 사용했죠. 작년부터는 Pro 라인업을 따로 만들었고, 저가형 모델로 SE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온갖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미니는 또 처음입니다. 그리고 이 제품에서는 이름이 전부죠. 말 그대로 ‘작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거든요.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쌈무 그린’이라고 부르는 아이폰 12 시리즈의 그린 컬러는 실물이 더 곱습니다. 새하얀 아이폰에 그린을 한 방울 떨어트린 것 같은 여린 파스텔톤 그린이에요. 매끈한 후면의 글래스 마감과 매트한 측면의 알루미늄 마감이 주는 대비도 근사합니다. 사실은 쌈무 컬러와 진짜로 닮았습니다. 저는 매콤한 주꾸미를 쌈무에 싸서 먹는 걸 좋아한답니다.
제품이 작다 보니 그립감은 손에 착 감깁니다. 항상 6인치가 넘는 Max 모델만 쓰다가 이렇게 작고 가벼운 제품을 손에 쥐니 장난감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무실 직원들 모두 mini를 손에 쥐어보고 감탄하는 눈치였습니다.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조차 한 번 만져보더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더군요.
에디터M은 굉장히 손이 작은 편인데, 확실히 작은 폰을 손에 쥐니 안정적이었습니다. 손이 큰 편인 권PD에게는 너무 작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손이 큰 편이라 화면 좌우 상단까지 완벽하게 한 손 조작이 가능해서 좋다고 하더군요. 현재 쓰고 있는 아이폰 11 Pro의 경우에는 권PD 손으로도 자유로운 한 손 조작까지는 어렵다고 합니다.
제 손은 일반적인 성인 여성 수준입니다. 특별히 작지도, 크지도 않아요. 아이폰 12 mini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는 좌우 폭이 좁고 두께가 얇아서 그립감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막상 한 손 조작을 해보려니 엄지 손으로 제어 센터를 내리거나, 알림센터를 내릴 때는 불편하더군요. 작은 기기이긴 하지만 제 손으로는 화면 최상단까지 쉽게 닿지 않아서 원활한 한 손 조작은 어려웠습니다. 근데 또 재밌는 건 아이폰 12 Pro보다 가로세로 폭이 더 큰 아이폰SE 2세대를 사용할 때는 한 손 조작이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무슨 뜻이냐면 아이폰 12 mini는 정말 작지만, 그게 화면까지 작다는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왼쪽 iPhone 11 Pro / 오른쪽 iPhone 12 mini]
아이폰 11 Pro 와 아이폰 12 mini를 비교해볼게요. 몸집 차이가 제법 나죠. 아이폰 11 Pro의 가로 너비는 71.4mm, 아이폰 12 mini는 64.2mm입니다. 각각 188g과 133g으로 무게 차이도 상당합니다.
[왼쪽 iPhone 11 Pro / 오른쪽 iPhone 12 mini]
근데 막상 실제 디스플레이 너비를 비교해보면 각각 5.8인치와 5.4인치로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무게 차이만 55g, 그러니까 전작보다 30% 가까이 가벼워진 셈인데 화면 크기는 고작 0.4인치 차이인거죠.
아이폰 12 mini는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된 모델입니다. 겉보기엔 똑같은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크기만 작아진 것 같지만, 전작보다 화면 주변의 베젤이나 두께를 줄이며 새로운 설계를 감행했습니다. 아이폰 11과 비교한다면 LCD에서 OLED로 넘어온 것 역시 영향을 줬겠죠. 덕분에 제품 크기나 무게가 줄어든 것에 비하면 화면 크기가 작아지는 건 최소화했죠. 전면 디자인에서 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한 손으로 잡고 사용했을 때 화면 최상단 터치가 어려웠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한 손에 잡힐 만큼 작지만, 막상 화면 크기는 5.4인치로 그렇게 작지 않았던 거죠.
[왼쪽 iPhone 7 / 오른쪽 iPhone 12 mini]
이전 세대의 폼팩터와 비교해보면 어떤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더 명확해집니다. 아이폰 7과 나란히 두면 화면 차이가 극명합니다. 참고로 아이폰 7은 아직도 판매 중인 아이폰SE 2세대와 동일한 폼팩터입니다. 제품 자체는 훨씬 작아졌지만, 화면 크기는 오히려 0.7인치가 커졌죠.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노치 디자인은 아쉽지만, 저 부분에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런 크기 구현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위쪽 iPhone 7 / 아래쪽 iPhone 12 mini]
화면 크기도 크기지만, 화면 비율이 주는 메리트도 큽니다. 영상을 전체 화면으로 플레이했을 때 아이폰 12 mini는 손해 보는 영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훨씬 큰 화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역시 여기서도 노치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요.
그립감에 대해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아이폰 12 시리즈에 적용된 각진 디자인은 mini 모델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본래 아이폰을 한 손으로 잡고 영상이나 사진을 찍을 때는 자연스럽게 아랫부분을 새끼손가락으로 받치게 됩니다. 근데 이 부분이 둥글게 마감이 되지 않고, 각진 형태가 되니 새끼손가락 위에 알맞게 지지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정말 안정적입니다. 아이폰 12 Pro 정도의 사이즈에서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게 아이폰 12 Pro Max 정도로 커지면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이건 나중에 아이폰 12 Pro Max를 다루면서 다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폰 12 mini의 출시가 의미 있는 이유는 작은 스마트폰을 쓰고 싶어하는 애플 고객들이 ‘저렴한 구형 폼팩터’가 아니라 최신 칩셋과 카메라를 모두 갖춘 ‘콤팩트한 아이폰’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실제로 제 주변에 정말 많은 분들이 mini를 위해 지갑을 열어젖히고 대기 중이더군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품고 있습니다. “mini는 Pro 모델보다 별로야? mini 사도 되는 거야?” 물론 대부분이 답정너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써야 하는 제품이니 함께 출시된 라인업과 무엇이 다른지 정확히 알고 사는 게 좋겠죠. 한번 깔끔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번 12시리즈의 네 가지 모델은 두 제품씩 묶여서 대부분의 스펙을 공유합니다. 아이폰 12 Pro와 아이폰 12 Pro Max가 고급형 모델의 짝꿍이라면, 아이폰 12와 아이폰 12 mini는 엔트리 모델의 짝꿍이죠. 특히 아이폰 12와 아이폰 12 mini의 싱크로율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크기와 무게,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100% 똑같은 제품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만큼 사이즈라는 선택지가 제품을 구분 짓는 큰 차이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왼쪽 iPhone 12 Pro / 오른쪽 iPhone 12 mini]
그럼 아이폰 12와 12 Pro 라인업은 뭐가 다를까요? 칩셋도 같고, 5G 지원 여부, 방수 성능, MagSafe 지원, 수퍼 레티나 XDR 까지… 대부분이 똑같습니다. 특히 디스플레이 스펙이 같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전작인 아이폰 11 시리즈에서는 아이폰 11과 아이폰 11 Pro의 가장 큰 차이가 디스플레이였거든요. LCD와 OLED 사이에는 건너려 해도 건널 수 없는 크나큰 차이가 있죠. 이번에는 전 제품에 OLED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며, 명암비나 색영역 등 모든 스펙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치당 화소수를 의미하는 픽셀 밀집도는 476ppi로 아이폰 12 mini가 가장 높습니다. 그만큼 작은 디테일이나 텍스트를 더 선명하게 표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왼쪽 iPhone 12 Pro / 오른쪽 iPhone 12 mini]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아이폰 12와 mini는 일반 모드에서 최대 밝기가 625니트로 제한되는 것에 비해, 12 Pro 라인업은 800니트의 최대 밝기를 지원합니다. 밝은 태양 밑에서 야외 시인성은 Pro 모델의 디스플레이가 더 뛰어나겠죠.
[왼쪽 iPhone 12 Pro / 오른쪽 iPhone 12 mini]
이제 카메라를 볼까요? 개수부터 명확하게 차이나죠. 아이폰 12 mini와 아이폰 12에는 초광각, 광각의 듀얼 카메라가 탑재됐습니다. 아이폰 12 Pro 시리즈에는 초광각, 광각은 물론 망원까지 포함한 트리플 카메라와 LiDAR 스캐너가 적용됐습니다. 사진 촬영 후 더 자유롭게 후보정을 할 수 있게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Apple ProRAW 포맷 역시 Pro 모델에서만 지원하는 기능입니다. 아이폰 12 mini에는 LiDAR 스캐너가 없기 때문에 야간 모드 인물 사진 같은 특정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것도 차이입니다.
당연히 이런 기능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Pro 모델과의 가격 차이를 고려했을 때 납득할 만한 차이입니다. 카메라 기능에서 Pro급 성능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해 라인업을 달리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면서 LiDAR 스캐너를 활용한 저조도 오토 포커스의 빠른 속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아이폰 12 mini의 초광각, 광각 카메라의 성능은 아이폰 Pro와 동일합니다. 충분히 좋은 카메라는 뜻입니다.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사진 결과물에서 차이를 찾기도 어려운 수준이고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이폰 12 mini나 아이폰 12에서 망원 카메라가 제외된 게 가장 아쉽습니다. 예전에 출시되었던 아이폰X과 아이폰XS만 해도 듀얼 카메라에 광각과 망원 화각을 선택했었으니까요. 초광각과 광각 화각만 쓰다 보면 망원 특유의 감성이 굉장히 아쉽거든요.
애플의 이런 선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해보고 있습니다. 첫째는 망원 카메라 모듈의 단가가 더 비싸기 때문에, 고급기인 Pro 모델에만 적용됐다는 가설입니다. 제가 각 부품의 단가를 아는 건 아니라 확신할 수 없지만 합리적인 의심이죠? 두 번째는 고객들의 실제 사용 패턴에서 ‘초광각’을 쓰는 빈도가 더 높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아이폰의 망원 카메라라는 게 딱 2배에서 2.5배 줌을 지원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내가 직접 움직여서 피사체에 다가가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정도의 화각이라는 거죠. 일명 ‘발-줌’이라고 부르잖아요. 물론 실제 망원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주변부 왜곡이 없기 때문에, 촬영했을 때의 느낌이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 적어도 망원 카메라가 없을 때는 ‘직접 다가가서 찍는다’는 옵션이 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초광각은 카메라 렌즈가 지원하지 않으면 찍을 수 없는 화각입니다. 좁은 실내에서 내부 인테리어를 촬영해야 하거나, 여행지에서 풍경을 한 컷에 담기에는 초광각만 한 것이 없죠. 이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폰 12 mini에서 2배 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디지털 줌으로 촬영할 수 있거든요. 아이폰 12 mini의 디지털 2배 줌 사진과 아이폰 12 Pro의 광학 2배 줌 사진을 비교해볼게요.
[왼쪽 iPhone 12 mini 디지털2배 줌/오른쪽 iPhone 12 Pro 광학 2배 줌]
저조도에서 촬영하면 결과 차이가 더 심해지긴 하지만, 이 정도 환경에서는 확대하기 전에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수준입니다.
[왼쪽 iPhone 12 mini 디지털2배 줌/오른쪽 iPhone 12 Pro 광학 2배 줌]
글씨를 확대해보면 노이즈나 선명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죠?
마지막으로 배터리를 살펴볼까요. 제품이 작다는 건 그만큼 배터리 용량도 작다는 뜻입니다. 애플은 항상 배터리 용량을 공식적인 스펙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대신 특정 조건에서의 최대 사용 시간을 고지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재생 시간을 기준으로 아이폰 12 mini가 최대 15시간, 아이폰 12&12 Pro 최대 17시간, 아이폰 12 Pro Max는 최대 20시간을 지원합니다. 시간 자체는 사용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겠지만, 확실히 아이폰 12 mini의 배터리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인 건 확인할 수 있죠.
이번에 아이폰 12 시리즈와 함께 공개된 MagSafe 액세서리 중 무선 충전기를 사용할 때도 다른 모델들은 최대 15W 충전을 지원하는데, 아이폰 12 mini만 12W로 충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배터리 용량이 다르다 보니 모델별 최적화 과정에서 제한된 것 같습니다. 이유야 있었겠지만 같은 돈 내고 산 MagSafe 차저로 속도가 다르게 적용된다면 조금 배 아프긴 하겠네요.
참고로 보여드리자면 이번에 출시된 MagSafe 월렛을 뒤에 붙였을 때, 아이폰 12 mini의 후면 라인과 정확하게 일치한답니다. 아마 이것보다는 작게 만들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폰 12나 다른 모델에 붙였을 땐 참 예쁜데, 아이폰 12 mini에는 조금 버거워 보이네요.
이 정도면 아이폰 12 mini를 사기 전에 알아두셔야 할 점은 모두 정리된 것 같습니다. 이제 가슴에 손을 올리고, 숨을 깊게 내쉬며 살지 말지 판단할 시간입니다. 아이폰 12 mini는 충분히 고사양 제품입니다. 작은 아이폰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분이라면 후회하진 않을 거예요. 다만, 다른 모델에 비해 짧은 배터리 시간과 망원 카메라의 부재를 오케이 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특별히 작은 폰에 대한 니즈가 없었던 분이라도, 아이패드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면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mini 모델을 고려해볼 만 하고요. 기회가 된다면 애플스토어에서 한 번 손에 쥐어 보세요. 작다, 작다, 말로만 들을 때하고 직접 손에 잡아 봤을 때하고는 많이 다르거든요.
아이폰 12 mini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로 갈 거냐고요? 다음 시간에 아이폰 12 Pro Max로 찾아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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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