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M이에요. 참으로 조심스러운 시기에요. 사실 올해 상반기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이맘때쯤 하는 그런 흔한 소리가 아니라 1월부터 6월까지 우리를 짓누르는 바이러스 이름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공허함. 잃어버린 봄이 너무 아깝고 내 시간을 돌려내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하 딱히 원망할 사람도 없네요.
하지만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순 없죠. 술자리를 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요즘은 시끌벅적한 술자리 대신 조용히 홀짝이는 혼술의 매력을 다시 찾아내고 있거든요.
우리에겐 4캔에 만 원의 행복이 있으니까요. 이건 정말 위축된 내 몸과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 같은 존재 아니던가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죠. 편의점 파란 불빛과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냉장고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맥주를 찾기 위해 알바생의 뜨거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한참을 서 있게 되는걸요. 그래서 오늘은요. 저의 편의점 최애 혼술 조합을 소개해 볼까 해요.
오늘 소개할 맥주는 편의점에서 찾은 프리미엄 맥주 그림버겐입니다. GS25, CU, 세븐일레븐 어디에서나 어디서나 만날 수 있어서 더 좋구요. 당장이라도 입에서는 불을 내뿜고, 큰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불사조가 굉장히 인상적이죠?
조금 낯설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림버겐은요. 무려 1128년부터 무려 900년에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벨기에의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맥주랍니다. 1142년에 한 번, 유럽대륙을 휩쓸었던 1566년의 종교전쟁 당시 두 번, 그리고 1798년 프랑스혁명까지 3번의 화마 속에서도 정말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난 양조장이에요. 정말 불사조처럼 잿더미가 되어도 매번 지지 않고 화려하게 부활한 거죠.
그림버겐 더블앰버는 씁쓸한 맛, 카라멜의 달콤한 맛과 향의 밸런스가 참 아름다운 더블앰버 스타일의 맥주예요.
하지만 오늘 소개할 맥주는 그림버겐 블랑쉬에요. 왜냐고요? 제가 밀맥주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이 맥주는요, 이쪽에서는 가장 공신력이 있는 World Beer Awards에서 2019년 베스트 밀맥주(벨지안 스타일 부문) 수상 경력도 있답니다.
그전에 잠깐, 이게 있으면 더 황홀하게 즐길 수 있어요. 바로 이렇게 멋진 전용잔입니다. 와 세상에 이렇게까지 화려한 일인가요. 마법사가 어떤 신을 소환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그린 것 같은 육각형의 받침부터, 멋스럽게 뻗어 올라간 다리까지 정말 멋지지 않나요?
맥주를 부으면 잔에 양각으로 새겨진 불사조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꼭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만 같아요. 잔 위쪽의 골드림까지 정말 화려함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단순히 멋지기만 하면 섭섭하죠. 잔 밑 부분을 자세히 보면 불사조 모양의 각인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손가락으로 만져보면 거칠거칠하더라구요. 하지만, 이 전용잔에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이 고르지 않은 표면에 맥주 안에 있는 탄산이 계속 부딪히면서 거품을 일으키는 원리죠. 덕분에 마지막 한 모금까지 적당한 탄산감을 즐길 수 있어요. 정말 근사하죠?
자, 이제 맥주를 따라볼까요? 몽글몽글 폭신폭신한 거품이 호박색 맥주를 뽀얗게 뒤덮는데요. 천혜향에서 느낄 수 있는 시트러스 향이 먼저 느껴지는데 그러면서도 밀맥주 특유의 바나나 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맥주에서 약간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효모의 향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상큼한 오렌지와 바나나의 향 그리고 씁쓸한 효모의 맛과 탄산의 밸런스가 아주 좋아서 편의점에서 샀다고는 믿을 수 없는 퀄리티를 느낄 수 있더라고요. 혹시 블랑1664나 에델바이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취향저격.
이런 맛의 맥주는 가벼운 해산물이랑도 궁합이 좋지만, 저는 오늘 요즘 편의점 맥주 안주로 아주 핫한 스발라야 스모크 치즈와 함께 마셔볼게요. 비엔나소시지처럼 생긴 이걸 에어프라이어에 160도로 딱 8분만 구워주면! 안에 들어 있는 부드러운 치즈가 터져 나오면서 줄줄 흐르는데요. 쫄깃한 겉면과 훈연 향 가득한 부드러운 치즈의 궁합이 정말 최고예요. 밀맥주의 향긋함과 스모크 치즈의 맛의 궁합이 정말 좋았어요. 이건 꼭 드셔보셔야 해요.
자, 이 조합이 바로 제가 편의점에서 찾은 최고의 조합이자 주말 밤을 보내는 가장 근사한 방법. 멋진 그림버겐 전용잔과 향긋한 맥주 그리고 눅진하게 녹은 스모크 치즈까지 함께라면 정말 끝내주게 멋진 혼술 메이트가 된답니다. 어때요?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가고 싶지 않으신가요?
맥주의 계절이 오고 있어요. 오늘 저녁 퇴근하는데 특별한 약속도, 사는 재미도 없다면 집 앞 편의점에 들리는 건 어떠세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 손엔 기분 좋은 쨍그랑 소리가 나는 비닐 봉다리를 흔들면서 걷는 퇴근길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나요? 행복은 가끔 골목길 맞은편의 GS25, CU, 세븐일레븐에 있기도 하거든요. 오늘 에디터M의 혼술 맥주 추천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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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