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썼던 때가 새록새록 기억난다. 아이폰4와 갤럭시S가 판매되던 2010년이었다. 그때는 어디를 가나 스마트폰이 화젯거리였다. ‘아이폰이 낫냐 갤럭시가 낫냐’ ‘갤럭시는 카메라 500만 화소라며?’, ‘아이폰 화이트는 진짜 예쁘던데?’ 그런 얘기들을 했다.
그중에 몇 명은 스마트폰 세계에 입문하지 않고 뉴초콜릿폰이나 코비폰 같은 걸 썼다. 그들 덕분에 대화는 스마트폰 강연처럼 바뀌곤 했다. 스마트폰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안드로이드와 iOS의 차이, 애플의 역사까지 이어졌다. 스마트폰 세계에 늦게 입문한 나 역시 주로 듣는 편이었다(다들 스마트폰을 쓸 때 난 프라다폰2를 썼다).
생각해보면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앱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았다. 카카오톡, 마이피플 같은 메신저를 쓰며 “우와 그럼 문자 안 써도 되는 거야? 통신사 망하겠네?” 같은 말들이나 했을 뿐이지. 그 당시엔 앱 종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앱이 우리 삶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은 즉, 10년 전만 하더라도 디지털 의존도가 높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앱이 없어도 일상은 가능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우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제 사람들은 서로의 폰이 어떤 기종인지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많던 제조사는 모두 어디로 가버려서, 선택권도 별로 없다. 아이폰 아니면 갤럭시 그리고 가끔씩 LG스마트폰을 만날 뿐이다. 익숙해지면 궁금증도 사라지는걸까.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에게 당연한 물건이 되었다. 이제는 폰이 아니라 앱에 대해 얘기를 한다.
재작년이었다. 나에게는 1~2년마다 한 번씩 만나는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는 것에 서로 놀랐다. 박막례 할머니, 강유미 채널 등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 대해서만 한 시간 넘게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만났을 땐 그중 한 명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더라. 시간에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매년이 너무 달랐다. 우린 이제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괜찮지 않아 보인다. 성인 5,267명을 대상으로 한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3시간 55분으로 응답자의 88.1%가 스마트폰에 빠져 겪는 피해가 있다고 답했다. 쓸데없는 지출 증가, 시력 저하, 거북목을 피해 사례로 언급했으며 대화가 줄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대장을 받았다. 발신자는 구글이다. 세계 각국의 인플루언서들이 모여 디지털 웰빙에 대해 얘기할 건데 참석할 생각이 없냐는 내용이었다. ‘구글이 디지털 웰빙에 대해 말한다고?’ 이런 의문이 들었지만, 장소가 태국의 휴양지 코사무이라고 하니 꼭 디지털 웰빙이 아니어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2박 3일 동안 디지털 웰빙에 대한 대화를 바탕으로 우리가 중독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나의 중독 사례를 말하려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중독을 이겨내고 디지털 웰빙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언급하며 끝맺을 예정이다. 이렇게 쓰니 세미나 보고서 같다.
[웰빙이 될 수밖에 없는 좋은 호텔에서 묵었다. 이름은 식스센스 코사무이 호텔]
1.우리가 중독된 이유
2박 3일로 진행된 서밋은 크게 발표와 토의로 이루어졌다. 강연자가 디지털 중독이 가져온 문제점에 대해 발표를 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유튜버, 매거진 에디터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대화해보니 사는 곳과 언어만 다를 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많이 공감될 거다.
[기술의 유용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에 대해 얘기했다]
토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개념을 ‘정의’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일단 중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중독이란 무엇일까. 약물 중독과 도박 중독 등 중독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정의는 달라지겠지만, 의학적으로는 ‘특정 행동이 건강과 사회생활에 해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반복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집착적 강박’을 뜻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본인의 욕구를 본인이 제어할 수 없는 상태다.
청소년의 디지털 중독이 심한 편인 브라질의 정신의학 및 심리학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중독을 이렇게 정의했다. ‘스마트폰 사용을 절제하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지 않을 때도 계속 생각이 나고,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기분이 침체되는 등의 증상을 보일 때’. 이 말에 동의한다면 계속 읽어나가도록 하자.
[디지털 중독이 얼마나 심한지 뉴스를 보여주는 중이다]
서밋에 초대받은 12명의 인플루언서는 각자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털어놓았다. 내 얘기 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부터 확인해요”
“화장실에 갈 때도 폰을 가져가요”
“특별히 할 게 없는데도 폰을 봐요”
“폰이 옆에 없으면 불안해요”
“자기 전까지 폰을 보다가 잠들어요”
하나같이 공감되는 말이었다. 다같이 모여 중독 증상을 고백하니 마치 집단치료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고해성사를 하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디지털 중독의 문제는 완전히 끊기 불가능하다는 거다. 스마트폰이 이미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Softpomz라는 태국의 유튜버는 댓글이 달리면 빨리 확인하고 답변을 달아줘야 하기 때문에 폰을 항상 곁에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브이로그를 찍기 때문에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없다는 점도 힘들다고 했다. 말끝에는 “그런데 그게 내 직업이에요”라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일은 유튜버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활동이다. 그래서 중독된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다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이해할 거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 않나. 하상욱 시인의 작품 ‘애니팡’은 스마트폰의 역설을 잘 말해준다.
‘서로가 소홀했는데/덕분에 소식 듣게 돼’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이어진 덕분에 친구의 소식을 들을 수 있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으로 이어진 탓에 친구를 앞에 두고 서로 폰만 보는 상황도 생긴다. 그래서 구글은 디지털 사용을 멈추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을 잘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디지털 웰빙’을 하자고 말한다. 디지털 웰빙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우선 나의 중독 사례부터 얘기해준 뒤 방법을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2.나의 디지털 중독기
스마트폰의 브라우저를 열면 월요일엔 최소 10개 이상의 창이 열려있고, 금요일에 가까워지면 40개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중요한 뉴스를 놓칠 수 있다는 강박 때문이다. 토요일에 카페에 가면 그 많은 뉴스를 읽느라 시간을 보낸다. 지금도 내 폰엔 영국의 해리 왕자와 결혼한 배우 메건 마클이 보그 객원에디터로 참여했다는 뉴스부터 한정판 숙성 소주에 대한 뉴스까지 다양하다. 누구는 이런 습관을 보고 열심히 산다고 칭찬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실 나는 이런 내가 괴롭다. 새로운 뉴스를 모른 채로 넘어가면 불안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읽지 않고 미뤄두는 건 가능한데, 차마 창을 닫지 못한다.
한 가지 중독 사례가 더 있다. 나에겐 계획 강박이 있어서 구글 캘린더에 정말 많은 것을 적는다. 꽤 심각하게 많이 적는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 제품 출시 소식, FC서울의 경기 날짜, 연남동 맛집 리스트, 연락해야 할 친구 리스트까지. 회사와 관련된 일은 주황색, 개인적인 업무는 노란색, 영화나 TV프로그램 같은 콘텐츠는 초록색, 친구와 약속은 파란색, 정말 중요한 소식은 빨간색, 여행 일정은 보라색. 신용카드 사용 기한이 끝나는 2020년 6월에는 그 다음에 발급받을 카드 종류까지 적혀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는데, 정말 심했을 때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일정까지 적어놓았다.
이런 나도 디지털 웰빙이 가능할까. 서밋에서 들었던 방법 중 꽤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이제 그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규칙을 반복하여 습관으로 만든다’는 것. 이건 공부를 할 때나 다이어트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 점심은 반 공기만 먹는다, 튀긴 음식은 먹지 않는다처럼 말이다.
[스마트폰을 써도 되는 공간과 안되는 공간을 구분하면 도움이 된다는 내용]
특정한 상황에서는 폰을 쓰지 않는다는 규칙을 만들어보자.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웠을 때는 폰을 보지 않는다거나 밥 먹을 때는 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것들. 하지만 말이야 쉽지 해보면 쉽지 않을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장치를 만드는 게 좋다. 침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 폰을 충전시킨다, 밥 먹을 땐 스마트폰을 비행모드로 설정한 뒤 가방에 놓는다. 규칙을 디테일하게 설정해야 변명거리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공간의 성격을 구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어렵다면 더 강한 규칙을 만들어도 좋다. 포스트잇을 스크린에 붙인다. 이것만으로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조금의 의지라도 있다면 그 포스트잇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다. 포스트잇에 ‘집중할 것’ ‘꼭 지금 봐야 돼?’ ’11시까지 보지 말 것’ 같은 메시지를 써놓으면 떼어내기가 힘들 거다.
[구글에서 준 오프라인 박스. 이 안에 스마트폰을 넣으면 열고 닫는 게 귀찮아서라도 폰을 안 볼 수 있다]
우리가 폰을 자주 보는 이유는 알람 때문이기도 하다. 낯선 아이디의 사람이 댓글을 남겼다거나 새로운 유튜브 영상이 올라왔다거나 60% 시즌 오프 세일을 한다는 알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한다. 그러니 반드시 중요한 게 아니라면 알람을 꺼놓는 것도 방법이다. 반드시 중요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주말이라면 아예 비행기 모드를 설정해서 모든 알람을 받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 글을 쓰는 중에도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왔다. ‘추가 주문 시작! 프라이팬 4종 세트’ 이렇게 알림이 오면 “why now?”라는 질문을 해보라고 하더라. ‘프라이팬을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하나? 꼭 그럴 필요는 없지.’ 덕분에 나는 잠금 해제하지 않았다.
코사무이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열흘 정도가 지났다. 아직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여전히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화장실 갈 때 폰을 가져간다. 하지만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SNS에 댓글을 확인하거나 잠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는다. 경계를 설정하고 습관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내 삶이 웰빙이 되어가는 중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무기력하게 스마트폰을 만지는 시간은 줄고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늘었다는 거다. 당연히 후자가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경우엔 잠들기 싫어서 궁금하지도 않은 스마트폰 속을 뒤적거렸던 거였으니까. 괜히 페이스북 들어갔다가 인스타그램 들어갔다가 네이버 홈화면 봤다가… 그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마음 상태가 더 고요해졌다.
디지털 웰빙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미션 10개를 준비했다. 그리 어렵지 않으니 단 며칠이라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1. 스마트폰 쓰지 않고 밥 먹기: 대신 앞 사람과 대화를 하세요. 폰은 나중에 봐도 되잖아요.
2. 침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충전하기: 스마트폰은 알아서 잘 충전 될 거예요. 당신의 체력을 충전하는 일이 더 중요하잖아요.
3. 검색하고 싶은 마음 참기: 10분을 참았는데도 궁금하다면 검색해보세요.
4.뉴스 보는 빈도 줄이기: 반드시, 꼭, 지금 봐야 하는 뉴스인가요?
5.비행기 모드 사용하기: 집중이 필요할 때 사용하면 좋아요.
6.포스트잇을 스마트폰에 붙이기: 마찬가지로 집중 효과를 높여줘요.
7.홈스크린 비우기: 홈스크린을 들여다 볼 일이 줄어들어요. 아이폰이라면 폴더에 집어넣으면 돼요.
8.흑백모드로 바꾸기: 시각적 자극을 줄이면 흥미가 떨어져요.
9.폰은 집에 두고 외출하기: 항상 연결되어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는 길을 가는 거라면 두고 가요. 큰 일 안 생겨요.
10.즉각 답장하지 않기: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천천히 답장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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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