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 소소하게 질러 결국 크게 탕진하는 에디터M이다.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코너, M의 취향은 일정한 기간동안 나를 행복하게 하거나 일상을 변화시킨 소소한 지름을 모은 글이다. 세상에 ‘티 안나게 돈 쓰기’라는 대회가 있다면 적어도 순위권 안에 들 자신이 있다. 티끌을 모아선 태산이 되지 않으니 헨젤과 그레텔의 빵 부스러기처럼 작고 귀여운 물건을 끊임없이 사서 내 행적을 남겨보자.
이번 M의 취향은 다가올 여름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모은 도토리처럼 작고 귀여운 물건들이다. 남들은 뭘사나 훔쳐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한 법이지. 말이 길면 뭐하나 바로 시작한다.
닥터브로너스 페퍼민트 퓨어 캐스틸 솝
노부부인 에디터H와 나는 요즘 퇴근이 너무 늦지 않은 날엔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노력한다. 어제도 걸었다. 누군가가 쉬지않고 내 피부에 더운 숨결을 불어 넣고 있는 것 같은 습한 공기를 헤치고 두팔을 휘저으며 요란스럽게. 내 몸에 있는 줄도 몰랐던 땀구멍까지 송글송글 물기가 어렸다. 집엔 택시를 타고 왔는데 한껏 달궈진 몸은 좀체 식을 줄 모른다. 샤워를 해야지. 요즘 정말 잘쓰고 있는 닥터브로너스의 페퍼민트 퓨어 캐스틸 솝으로.
요즘 우리 가족의 최애템이라 집에 있는 950mL 용량은 차마 들고 오지 못했다. 대신 사진은 사은품으로 받은 60mL로 대신한다. 이거 정말 물건이다. 문질문질 낸 거품이 몸에 닿는 순간 피부의 온도가 2도는 내려간다. 시원한 그 느낌이 참 좋아서 일부러 조금 기다렸다가 몸을 헹군다. 샴푸, 세안, 바디워시까지 겸용이 가능한 올인원 제품이라 간편하고 성분도 순하고 거품도 잘 난다.
페퍼민트의 진가는 샤워가 끝나서야 제대로 알 수 있다. 걸어다니는 인간 쿨민트가 되어 화장실을 나와 선풍기 앞에 선다. 분명 시원할리 없는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이 마치 에어컨이라도 켠 것처럼 차갑다. 온몸에 얼음찜질이라도 한 것같은 느낌. 속절없이 더운 날엔 이만한 제품이 없다. 다가올 무시무시한 더위를 준비하자. 추천.
레인보우 샌들
제품명이 샌들이라 이렇게 썼지만 사실 슬리퍼, 아니 정확히 말해 ‘쪼리’다. 여름엔 무엇이든 내 살과 닿는 면적을 최소화해야 한다. 쪼리는 열개의 발가락 모두에게 통풍의 자유를 허한다. 다만 신발과 내몸을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얄팍한 끈 하나로 지탱해야하니 그게 좀 아슬아슬 하다. 쪼리의 단점은 이거다. 어느 정도 신었을 때 얄팍한 끈이 툭 하고 떨어져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는 거.
레인보우 샌들도 그렇게 시작됐다. 1974년 발이 푹푹 빠지는 해변가의 모래사장을 걷다 끈이 떨어진 쪼리를 쥐고 창업자는 결심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튼튼한 신발을 만들거야! 위쪽을 지탱하는 가죽 스트랩은 적당한 두꺼워서 발등에 착 감기게 하고 두 줄씩 박음질을 했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 밑창을 위해 특수 접착제도 만들었다. 레인보우 샌들은 끈이 떨어거나 밑창이 떨어지는 것에 한해 평생 수리를 약속한다.
레인보우 샌들은 약간의 길들이기 작업이 필요하다. 처음엔 발등이 뻐근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발에 편하게 맞는다. 샌들 측면을 보면 몇 겹의 스펀지가 보인다. 이 스펀지 고무는 딱 10%만 내 발 모양에 맞춰서 내려 앉는다.
밑창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발의 아치 부분이 조금 높게 올라간 더블 레이어와 덜 높게 올라간 싱글 레이어가 있다. 더블 레이어의 경우는 평발인 사람들에게 참 좋다더라. 나는 이런 종류의 신발은 바닥에 딱 붙어 있는 게 좋아서 싱글레이어를 선택했다.
바닥도 논슬립 처리가 되어있어 매끄러운 바닥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스펀지라 물에 약하긴 하지만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걷는 것만 아니라면, 약간 묻은 물은 그늘에서 잘 말려주기만 하면 큰 문제는 안 된다.
겨우 쪼리 주제에 9만 5,000원이란 가격이 퍽 사악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불과 만 원이면 사는게 바로 쪼리니까. 하지만 너무 편해서 집앞 슈퍼갈때도 신고, 사실 디에디트에 출근할 때도 열심히 신는다. 지금은 내 발모양에 맞춰 거뭇하게 자국이 생겼다. 시간이 지날 수록 손때가 묻는 가죽의 에이징처럼 진짜 내것이 되어가고 있다.
탬버린즈 무드 퍼퓸912
재작년 겨울쯤이었나 세로수길에 간판도 없는 수상하고 큰 건물이 들어선 때가. 어떤 정보도 없었다. 그냥 한눈에 봐도 고가인 게 분명한 가구들이 멋지게 전시되어 있을 뿐. 사실 이곳은 바로 젠틀몬스터가 만든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였다. 제품에 대한 설명도 정보도 없다니. 아! 플래그십 스토어가 이토록 쿨할 수도 있구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샀다. 탬버린즈에서 내가 제일 잘 쓸 수 있는 것으로. 무드 퍼퓸 912은 공간에 뿌리는 향수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외출한 사이 텅 비어있던 방안의 향기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다. 서너 번 뿌려주면 내 방은 안개가 가득 낀 숲속이 된다.
레몬, 스피아민트, 사이프러스, 그리고 우디한 향이 뒤엉켜있다. 처음엔 좀 강하게 느껴질수도 있는데 잔향이 정말 휼륭하다. 비온 뒤 젖은 땅의 향이랄까 초여름 이끼의 향이랄까.
문제는 내가 이제품을 받고 딱 이틀만에 새로운 무드 퍼퓸 284가 나왔다는 것. 잘익은 오렌지와 월계수잎의 향이라니, 딱 내 스타일로 말이다. 얼른 새로운 향을 사고 싶은 마음에 아낌없이 뿌리고 있다. 뿌릴 때마다 내 방은 숲이 되어 진격했다가 안개처럼 침구에 책상위에 화장대에 스며든다.
글로시에 클라우드 페인트 & 보이 브로우
이건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생찬스를 썼다. 사실 글로시에는 메이크업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내가 작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뷰티 브랜드다. 우리나라에는 수입이 되지 않아 구입하기 위해서는 직구를 해야해서 망설이고 있었을 뿐. 2014년에 시작해 깐깐하기로 유명한 뉴요커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 잡았는데, 그 비결은 키치한 패키지와 피부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톤 때문이다.
내가 고른 건, 자연스러운 발색을 자랑하는 블러셔 클라우드 페인트와 눈썹의 결을 하나하나 살려줄 아이브로우 마스카라 보이 브로우. 가격은 각각 18달러와 16달러.
클라우드 페인트는 가장 인기가 많은 더스크(dusk)와 빔(beam) 두 가지 색을 골랐다. 평소에 볼도 립도 코랄색을 즐겨해서 빔 컬러를 더 자주 쓸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더스크를 더 자주 쓴다. 약간 햇볕에 그을린 듯한 건강한 혈색을 만들어주더라고.
그리고 보이 브로우는 정말 강력추천. 검은색부터 갈색까지 컬러가 다양한데 나는 투명을 샀다. 색조를 잘 하지 않는 대신, 눈썹의 결만 살리는 메이크업을 좋아한다. 그동안 다양한 브랜드의 투명마스카라를 써봤는데 보이 브로우가 최고시다. 이것 만큼 고정력이 좋은 걸 보지 못했다. 솔이 짧고 힘이 좋아서 나처럼 짧고 힘이 없는 눈썹에도 잘 맞는다. 어느 방향으로 슥슥 그어도 소가 핥고 지나간 것처럼 깔끔하게 고정된다. 특히 눈썹 앞쪽을 살려주기 아주 좋더라.
콜드 프레임 COLORLESS PADLOCK NECKLACE
이쯤 쓰고 보니 아무래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남성 독자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내가 좋아서 산 제품 뿐인걸.
영상을 찍을 땐 화려한 귀걸이를 하기도 하지만 내 취향은 간결하지만 자세히 보면 위트가 있는 쪽에 가깝다. 콜드 프레임은 요즘 내가 제일 눈여겨 보고 있는 국내 액세서리 브랜드다. 꽃과 인체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그래서인지 야자잎을 꼬아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형태에 은으로 만든 팔찌, 금속으로 매듭을 지은 것같은 반지와 귀걸이 등 범상치 않은 디테일 때문에 하나같이 사고 싶어진다.
그중에서 내가 고른 건 자수정으로 만든 자물쇠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다. 난 이게 자물쇠 모양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는데, 처음 이걸하고 출근한 날 에디터 기은이 왜 가방을 목에 걸고 다니냐고 묻더라. 흑흑. 자물쇠라고 우겼지만 다시 보니 가방모양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포장이다. 하얀 박스 안에는 변색된 금을 닦아낼 일회용 천, 파우치 그리고 인조털로 만든 천을 딱 박스 사이즈만큼 잘라서 바닥에 깔아뒀다. 인증하기 좋고, 보관하기도 참 좋고, 여행갈땐 이 박스 안에 여러 액세서리를 담아서 통째로 들고간다.
딥티크 오로즈
작년 봄에 르 라보 향수를 샀다. 리뷰는 여기. 그런데 여름에 쓰기엔 좀 무겁게 느껴져서 급하게 하나 더 샀다. 딥티크의 오로즈. 싱그러운 장미향은 끈적한 여름에도 쉬폰 블라우스를 입은 것처럼 가볍다. 단점이라면 지속력이 정말 짧다는 것. 그래서 아침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팡팡 뿌려준다.
물을 잔뜩 머금은 장미를 줄기째로 땄을 때 느껴지는 생장미의 향이다. 금방 날아간다는 건 그만큼 부담스럽지 않고 가볍다는 말이라서 뿌릴 때마다 기분도 가벼워진다. 역시 새로운 계절엔 새로운 향수를 사야한다.
두서도 없고 어째 별 영양가도 없는 것 같아서 마지막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법칙으로 마무리해보자.
“미래를 위해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날마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다 써버리고는
더 좋은 것이 생기리라 믿는다.”
여러분도 좋은 물건으로 아낌없이 주변을 채우고 힘껏 쓰는 계절 되시기를. 재미있는 것들을 또 잔뜩 사고 써본 뒤 다시 돌아오겠다.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