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패션과 무척이나 소외된 장소에서 고통받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지금 난 미국 중부의 작은 도시에서 이 글을 보낸다.
얼마 전 오프화이트와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버질 아블로가 스트리트 패션과 ‘리셀(resell)’에 대해 입을 열었다는 기사가 떴다.
가끔 꽤나 흥미로운 멘트를 던지곤 하는 디자이너라서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기사 원문을 찾아봤는데 그의 대답은 이랬다.
‘다른 걱정 거리들처럼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의 것…
대응은 회사가 더 신경 쓰는 부분’
맞는 말이지만 조금은 김빠지는 답변이었다.
리셀이야 항상 존재했지만, 스트릿이 하이 패션계의 한 축이 되면서 리셀러 문제는 수면으로 떠올랐다. 버질 아블로도 하이패션-스트릿 패션의 큰 기둥 중에 하나인만큼, 그가 만들고 있는 루이비통과 오프화이트 역시 리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리셀에 대한 그의 견해에 기대를 걸어봤건만…
근데 가끔씩은 ‘OOO 대란’이라는 이름으로 뉴스에도 등장하는 리셀은 해석해보면 그냥 되판다는 뜻인데, 아니 근데 되파는 게 뭐가 문제일까. 우리 모두 중고거래를 하는데.
자, 리셀이 뭔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리셀은 물론 되판다는 뜻이 맞다. 사실 리셀러는 꽤나 흔하다. 우리가 자주 보는 프리스비, 에이샵도 모두 애플이 인정한 공식 리셀러다. 다만 일반적인 리셀러와 패션계에서 이야기하는 리셀러의 가장 큰 차이는 ‘한정된 수량’에서 온다.
프리스비를 비롯한 수많은 리셀러는 애플에서 물건을 받아다가 판매한다. 적어도 애플에서 그 제품을 판매하는 한 웃돈을 주고 사야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패션에서의 리셀러는 대개 그 수가 적은 한정판을 구매해서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해서 이득을 취하는 형태다. 흠, 그런데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사서 판매하고, 그 과정에서 이득을 취하는 행동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나? 왜 문제라고 하는 걸까. 문제는 그 방법이 부정한 경우가 많고 이득이 폭리에 가깝다는 점에서 생긴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가격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나이키 맥(Nike Mag), 흔히 맥플라이(Mcfly)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백 투 더 퓨쳐2>에 나왔던 나이키 제품을 실제로 만들어낸 신발인데, 아쉽게도 실제로 영화에 나왔던 모든 기능이 구현된 건 아니다.
89개라는 극단적으로 한정된 수량을 판매했지만, 판매가는 단돈 10달러에 불과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응모권을 받는 형태였고, 추첨으로 신발이 주어졌다. 응모권 한 장의 가격이 10달러인 셈. 그럼 리셀 가격은 얼마일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5만 달러가 넘었다.
단위를 잘못 적은 거 아닌가 싶겠지만, 한화 약 6천만 원에 해당하는 그 금액이 맞다. 5천 배가 넘는 가격이니 명백한 폭리다. 그나마 그것도 재출시한 뒤 가격이 내려간 게 6천만 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리셀러가 100% 성공만 하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실패가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건 2015년에 있었던 ‘BALMAIN x H&M’ 콜라보다. 1주일 전부터 캠핑(뒤에 용어를 설명해드리겠다)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뉴스에도 나고, 주요 일간지에서도 기사가 실리면서 SPA 브랜드의 협업 라인치고는 굉장히 큰 이슈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해서 리셀러들이 이익을 보는 건 크게 실패했다. 당시에 거래 사이트들을 찾아보면 정가보다 싼 가격에서 신품을 파는 것도 꽤 흔했다.
[캠핑의 아이콘, 슈프림]
자, 이제 문제가 되는 방법론에 대해 말해보겠다. 브랜드에서 새로운 라인업이 출시되어 제품을 판매하게 되는 걸 이른바 ‘드롭’이라고 한다. 이 드롭 때 물건을 구매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 위에서 말한 ‘캠핑’이다. 그 이름처럼 며칠이고 매장 앞에서 기다리면서 물건을 사는 거다. 캠핑을 하는 리셀러들이 정말로 캠핑 장비들을 챙겨서 기다린다는 걸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잘 지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부정한 방법은 뭘까?
바로 백도어라는 방법이다. 이름 그대로 뒷문이라는 뜻인데, 뒷문에서 몰래 사는 걸 뜻한다. 직원을 통해서 줄을 서지 않고 드롭 시에 챙겨둔 물건을 받아 가거나 드롭 전에 미리 받는 거다. 에이 설마 얼마나 그러겠어 싶은데, 생각보다 꽤 자주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 요즘에는 온라인 래플이라고 하는, 추첨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데 사람들은 항상 못된 방법은 빠르게 찾는다. 대개 한 사람당 표를 제한하기 마련인데, 가족과 같은 주변인은 물론 노숙자들에게 명의를 대량으로 빌려 수백 개의 추첨을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다.
그럼 선착순으로 진행하면 해결이 될까? 아니, 그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른바 ‘봇’이라고 해서 매크로를 통해서 대량구매를 진행하는 거다. 아무리 빨리 눌러도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작동하기 때문에 장바구니에 담고, 구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하는 사람은 구매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와중에 당최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라인 구매에서도 백도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유명 리셀 사이트의 보면 대략의 트렌드가 보인다]
어쩌면 리셀의 장점이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다고 리셀에서 생기는 괜찮은 점도 있긴 하다. 가장 큰 건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리셀러 사이트들을 보다 보면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인은 어떠한 형태인가를 대충이나마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만 한정되겠지만 구매에 실패한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일 수 있다. 어떤 물건을 정말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는 리셀러가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또 브랜드에게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준다는 것도 순기능이겠다. 물론 개인에게는 무의미하지만.
[제임스 제비아의 사진을 찾고 싶었지만, 슈프림 로고로 대체한다]
그럼 브랜드는 리셀러들을 좋아할까? 글쎄, 그다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슈프림의 제임스 제비아는 인터뷰에서 리셀러를 ‘무척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는데, 에둘러 말한 표현이고 공공연히 싫어한다는 티를 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만든 가격에 입길 바라지, 그 몇 배나 되는 가격에 되팔길 바라지 않는다’라는 게 이유다. 당연하다.
나는 패션이 예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패션은 늘어놓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패션은 사람이 입고, 신는다는 전제로 만들어진다. 착용한다는 게 전제조건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패션은 사람이 입을 때 더 아름답고, 더 빛이 날 수 있는 참여형 예술이다.
앞서 말한 나이키 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이키는 영화에 사용된 ‘Oct, 21, 2015’라는 날짜에 맞춰 제품을 출시했다. 나이키가 굳이 그 날짜까지 지켜가면서 불완전한 채로 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케팅을 위해서? 재미를 위해서? 글쎄, 나의 짧은 식견으로나마 추측해보자면 나이키 맥을 신던 영화 속 그 모습처럼 실제로 사람들이 신고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신을 수 있는 신발’의 가격인 단돈 10달러짜리 추첨으로 진행한 것이고, 그 이후에 다시금 출시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리셀은 패션을 관상용 예술로 만든다. 누가 감히 6천만 원짜리 신발을 신고 밖을 나다닐 수 있을까? 브랜드에서 제품에 책정한 가격은 그 가치와 목적을 고려한 결과다. 리셀은 그 가치와 목적을 곡해하고, 시장을 비튼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패션은 관상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