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B의 첫 혼자 여행기. 경주의 맛 2편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으레 받는 질문들이 있다. “언제가 제일 좋았어?” “뭐가 제일 맛있었어?” 오늘은 그 두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려고 한다. 경주 황리단길이 뜬다는 말은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직접 가본 사람은 드물 테니 이번 기회에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다.
우선 가장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첨성대를 봤던 순간이다. 첨성대만큼 작고 앙증맞은 랜드마크가 또 있을까. 최대한 높고 웅장하게 쌓으려는 현대의 랜드마크와 달리 첨성대는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정도의 작은 천문대다. 신라 선덕여왕의 지시로 하늘을 관측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첨성대에 찾아가기란 어렵지 않다. 밤이 되면 첨성대를 비추는 알록달록한 조명 덕분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인다. 어쩌면 첨성대를 향하는 사람들의 부산한 발걸음 때문에 먼저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곳에 가면 너나 할 것 없이 첨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떻게 찍어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기회다.
첨성대 주변의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산책을 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관광객이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주민인 듯했다. 딸과 오랜만에 산책을 나온 듯 싶은 엄마는 “이렇게 좋은지 알았으면 자주 나올 걸 그랬다”며 딸과 팔짱을 끼고 걸었다. 첨성대 주변에는 경주 사투리와 서울말이 섞여 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좋다, 예쁘다.
첨성대를 비춘 조명은 핑크색이었다가 파란색이었다가 시시각각 변했다. 대부분 핑크색이었고 가끔 파란색으로 변했다. 핑크첨성대 촬영에 성공한 나는 블루첨성대를 찍기 위해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10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낮에 경주파스타에서 들었던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 경주에 왔을 때는 허허벌판이었지. 첨성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 허허.” 어쩌면 어두워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아저씨 말처럼 정말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나는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기가 아쉬워 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 봤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이름을 읽었다. ‘계림’ 설화 속에 나오는 그 숲이다. 계림은 작은 소나무숲으로 원래는 평범한 숲이었다. 어느 날,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 숲으로 신하를 보내었는데 나무 위에 금으로 만든 궤짝이 있고, 그 아래에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한다. 금짝에서 나온 사람이 바로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다.
그리스에 살면 이런 느낌일까. 경주에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신화와 전설이 있다. 어릴 때 신라의 역사를 만화로 보여주는 책에서 계림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신화를 알기 때문일까, 숲은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보였다. 어찌 보면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고. 마치 움직이는 전설의 나무들을 찾아가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같았다. 울타리를 넘어가면 나무가 살아 움직이며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걷는 걸 좋아해서 서울에서도 한강을 걷고 연남동도 걸었지만 경주의 산책은 또 기분이 달랐다. 신화 속 한 장면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얼음 창고였던 석빙고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8시쯤이 되자 계림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하산하는 노부부에게 길을 물었다. 불빛이 보이는 바로 저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10분을 걸었지만 불빛은 도저히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리는 거라고 발자국 소리 밖에 없었다. 저벅저벅. 그날 나는 아주 깊이 잠들었다.
“경주에서 뭐가 제일 맛있었어?”하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 맛있었다고. 경주의 모든 음식이 다 맛있을 리는 없지만, 먹은 음식이 전부 좋았던 걸 보면 황남동 식당들은 꽤 준수한 맛을 보여주는 듯하다. 핫플레이스를 자주 가다 보면 인테리어에 신경 쓰느라 맛은 부실한 경우가 있는데 황남동은 기본에 충실했다.
두 번째 날 아침. 어제의 피로 때문에 결국 아침을 걸렀다. 결국 11시에 밥을 먹었으니 브런치를 먹게 된 셈인데, 메뉴는 밀면이었다. 날씨가 더우니 시원한 면을 이길 메뉴가 없었다.
밀면이 국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소면이 아닌 두꺼운 중면을 쓴다는 점이 첫 번째. 두 번째는 메밀을 재료로 하는 냉면, 막국수와는 달리 밀가루를 재료로 써서 면이 더 쫄깃하다는 점이다.
밀면은 경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산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은 시원한 냉면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메밀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밀가루를 사용했는데 그게 밀면이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휴전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 중에는 그 맛을 못 잊어 밀면을 시작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경주는 부산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그 유행이 퍼지기에도 쉬웠을 것 같다. 그래서 경주에서는 밀면식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내가 갔던 황남밀면은 하얀색 벽지와 대리석, 플랜테리어 등 브런치 카페처럼 깔끔하게 꾸며놓은 가게였다. 주문과 동시에 면을 뽑아낸다는 말과 72시간 끓여낸 사골육수로 깊은 맛을 낸다는 약속이 잘 보이는 곳에 적혀있었다. 밀면 메뉴는 황남밀면, 매운밀면, 물밀면 세 가지가 있었고, 함께 먹을 수 있는 연탄불고기, 간재미 무침도 있었다.
매운맛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매콤함은 미미했고 고소함이 느껴졌다. 어찌보면 특별한 게 없는 맛이어서 먹었을 당시에는 ‘심심한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맛이 몹시 그립다. 서울에 올라와 프랜차이즈의 비빔막국수나 비빔냉면을 먹었는데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혀가 변한 걸까. 다시 경주에 가면 황남밀면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심심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양념까지 싹싹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며 나갈 때 보니 가게는 2/3가 차 있었다. 황남밀면의 힘일까 밀면의 힘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밀면이라는 단어에는 마법이 깃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마법은 여름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스타벅스 로고의 세이렌처럼.
밀면의 공통적인 매력이겠지만, 황남밀면의 매력은 씹는 맛에 있었다. 보통 냉면을 마시듯 삼키는 나도 탄력 있고 오동통한 밀면을 씹지도 않고 그냥 넘기기에는 아까웠다. 특히 황남밀면에는 땅콩 부스러기가 솔솔 뿌려져있는데 덕분에 식감이 더 좋았다. 다만 지금도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연탄불고기를 함께 먹지 못했다는 거다. 2인분만 아니었다면, 아니 혼자 오지만 않았다면..
식당 밖으로 나오니 괜찮은 식당을 찾는 사람들로 거리가 분주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3명의 무리는 보라색 과티를 입고 숙취를 풀기 위해 해장음식을 찾고 있었고,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부부는 노키즈존이 없는 식당을 찾으며 황남밀면에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다음 행선지에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언론에서는 황리단길이 뜨고 있다고는 하지만 황남동 안에서도 메인스트림을 벗어나면 북적인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다. 골목을 조금만 들어가도 사람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한적해진다. ‘경주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주스러운 게 뭘까.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작 한 번 온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경주스럽다는 말은 영화 <경주>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가 낮잠을 자는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있으면 가끔씩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풍경이 내가 기대하는 경주스러움이었다. 영화에서 박해일은 찻집에 갔다가 신민아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곳에 가보고 싶어서 장소를 찾아봤는데, 몇 년 전 폐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최대한 비슷한 곳을 찾아 방문했다. 빛꾸리라는 곳이다.
빛꾸리는 황남밀면에서 나와 골목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을 때 발견한 찻집이다. 바람이 불면 맑은 소리를 내는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있고,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다. 나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미닫이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첫 손님이었다.
3개의 큰 방이 있었고, 각 방에는 소반이 몇 개씩 놓여있었다. 나는 창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풍경 소리가 잘 들릴 것 같아서였다.
카메라와 백팩을 풀어놓고 벽에 어깨를 기대었다. 에어컨 대신에 선선한 선풍기 바람이 불고 있었고, 땀을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때마침 풍경소리가 들렸다.
정호승 시인의 글귀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그 사이 주인아주머니는 주문했던 오색 인절미를 가져다주었다. 살짝 구워 노릇노릇해진 인절미와 꿀이다.
적당히 달고, 끈적끈적했다. 배부른 것도 잊고, 순식간에 여섯 개를 먹고 그릇을 싹 비웠다. 가만히 앉아 쉬고 있으니 손님들이 한두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손님들도 아늑한 공간에 반한 듯 싶었다. 다시 슬슬 움직여야 할 때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경주 여행의 마지막 공간이다.
내가 가려는 계업식은 황남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식당이다. 빛꾸리에서 40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황남동에서 벗어나있는 탓에 조금 멀기는 했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역사의 도시답게 골목의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아사달 맥주 같은 호프집 같은 곳.
계업식은 닭을 주재료로 음식을 선보이는 양식당이다. 파스타, 스테이크와 같은 고정적인 메뉴와 함께 매번 달라지는 메뉴도 선보인다.
1시쯤 도착했을 때 빈 테이블은 겨우 하나뿐이었다. 처음 을지로 골목에 숨어있는 스피크이지바에 갔을 때 ‘여긴 어찌 알고 다 찾아왔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계업식도 그런 느낌이었다. 한적한 골목에 티도 내지 않고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나는 경주에 오기 전부터 계업식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위치에 식당을 만들어 놓다니, 맛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인테리어는 특별하지 않았다. 실제 할머니가 사용했던 선반이나 예스러워 보이는 냉장고 등 빈티지 인테리어와 소품들은 망원동의 어떤 식당에서 자주 본 듯 익숙했다.
하지만 계업식의 맛은 평범하지 않았다. 갑자기 딴소리를 조금 하자면, 영화의 재미를 측정하는 나만의 방법이 하나 있다. 퇴근한 뒤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보는데도 졸지 않고 본다면 정말 재미있는 영화다. 나만의 정설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맛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른 점심으로 밀면을 먹고, 오색인절미 여섯 개를 클리어한 상태에서 바질페스토 크림파스타를 먹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배부르니까 반만 먹어야지 생각했다가 결국 싹싹 긁어먹었다. 다시 경주에 올 때는 첫 끼는 무조건 계업식이라고 아무도 모르게 다짐했다.
그 이유는 음식이 맛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음식을 남기기 싫어서이기도 했다. 환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득 남긴 것을 쉐프가 보고 오해하는 게 싫어서다. 쟁반을 깨끗하게 비웠다는 것만큼 확실한 메시지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이번 경주 여행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장식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마음도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야 할 때가 됐다. 신경주역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올 때도 쉬웠듯 갈 때도 쉽다. 관광지답게 어떤 위치에도 네이버 지도를 켜면 역으로 가는 버스가 몇 대씩 뜬다. 배차 시간도 길지 않았다. 다만 나는 조금 더 불편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천천히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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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