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가 내 물건을 따라 사고 싶다고 하면 입 꼬리가 씰룩 씰룩 올라간다. 나의 안목이 타인에게 인정받은 묘한 희열이랄까. 그래서 이 물건을 사게 된 경로부터 어디서 사야 최저가이며 쓰면서 느낀 장단점까지 구구절절 알려줘야 속이 후련하다. 좋게 말하면 오지랖이고 나쁘게 말하면 직업병이다. 최근 나의 오지랖을 발동 시킨 질문은 바로 우리집에 대한 것.
[창문 많은 집에 살고 있다]
아차, 내 소개가 늦었다.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안녕?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집으로 출근하는 프리랜서 ‘글로노동자’다. 식구는 단출하게 남편1, 고양이1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에서 #홍차네집 이라는 집스타그래머로 활동 중이다. 이렇게 디에디트에 글을 연재하게 된 연유는 사실 에디터H 때문이다. (구)직장 동료였던 그녀의 조련에 넘어가 온라인 집들이를 하게 됐다. 원래 남의 살림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나.
이제 현실적인 집 소개로 넘어가보자. 우리집은 작년에 농담 좀 보태서 오조 오억 개의 남의 집을 돌아다녀 찾아낸 창문 많은 집이다. 양창형 거실로 정면과 측면이 통창으로 이뤄져 있어 하루 종일 볕이 들어오고 뷰 빼면 시체인 집이다. 첫 신혼 집에서 겪었던 날카로운 곰팡이의 추억을 말끔히 씻어내기 유감 없는 집이다. 비록 은행과 사이 좋게 공동명의지만.
벌써 이사 온지 1년이 됐지만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는 미완성 살림살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남편과 선택 오류인 내가 만나 필요한 물건이 생겨도 두 달은 넉넉히 고민하는 흥선대원군 같은 소비성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빠른 지출이 있다면 바로 그림이다. 좀 의아할 수 있겠지만, 집에 기본적인 가전, 가구들이 채워지면 이제 매일 같은 풍경의 고정 값이 된다. 이렇게 몇 달이 흐르면 ‘집태기’가 찾아 온다. 이때 지루해진 집에 변화를 주기 가장 쉬운 방법이 그림이다. 기분 따라 계절 따라 쉽게 살수도 바꿀 수도 있기 때문. 물론 인사동 갤러리에 걸려있을 법한 그런 높은 수준의 그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시피 미술전공자도 아닌데다 오히려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 수준이다. 대신 집요하게 초록창을 검색 하는 인내심을 갖고 있다. 주머니 사정은 가볍고 시간은 많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집 현관, 거실, 침실, 서재엔 모두 그림 한 점 이상은 걸려 있다. 앞서 언급했던 오지랖을 이제 부려볼 참이다. 이번 시간은 “이 그림 어디 거에요?”, “어디서 샀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언젠가 날 잡아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사를 빌려 우리집 그림들에 대한 썰을 풀어보겠다.
먼저 현관에서 복도로 이어지는 하얀 벽에 우리집 ‘얼굴 마담’격인 원화가 유일하게 걸려 있다. 올 여름내 걸려있던 첫 번째 그림을 먼저 소개하자면 성왕현 작가의 <집에 오는 길>이라는 작품이다.
‘오픈갤러리(www.opengallery.co.kr)’ 에서 3개월간 대여한 한 점뿐인 작품이다. 이 그림 대여 서비스는 갤러리에 가지 않고도 전문 큐레이터가 국내 작가를 발굴해 소비자와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그림도 정수기처럼 렌탈 하듯 집에서 유명 작가의 작품을 단기간 빌릴 수 있는 서비스란 소리. 이 작품 가격은 360만원선. 월 대여료는 15만원이다. 그림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집 고양이와 닮아서. 그리고 오래 봐도 눈이 피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지가 한 겹 감싸져 있어 잔디가 움직이는 듯 섬세한 붓 터치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최근 첫 번째 작품의 3개월 대여 기간이 끝나고 그림 대여 서비스를 3개월 더 연장했다. 현재 우리 집에 걸려있는 가장 크고 비싼 두 번째 작품을 소개한다. 이종기 작가의 <순천> 이라는 작품이다. 다들 잘 아는 심슨 가족의 그 바트 심슨이 순천의 구 시가지를 관광하듯 걷고 있는 이 키치한 자태를 보라. 보자마자 “이건 사야 돼”를 외쳤다. 다만 가격은 듣고 놀라지 마시라. 천만 원이다. 물론 이번에도 빌렸다. 살면서 천만 원짜리 그림 언제 한 번 집에 걸어보겠냐는 게 솔직한 심정. 월 대여료 15만원으로 내 안목이 이정도야~ 라고 어깨 뽕 좀 올려봤다.
이제부터 소개할 그림들은 5만 원 미만의 ‘소확행’ 그림들이다. 거실 창문 사진과 함께 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그림으로 역시나 고양이다. 이 거실 그림은 반대로 작가가 우리집 고양이에게 영감을 얻어 탄생됐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고 작가가 직접 <WHAT A LOVELY CAT>이라는 제목을 지어 선물했다. 아트 포스터와 일러스트 전문 그림 업체인 ‘예라스튜디오’에서 직접 제작한 아트 포스터로 현재도 판매 중이다. A3 사이즈 기준 3만 5,000원선.
선물 받은 그림이 마음에 들어 침실에 <In spring> 아트 포스터를 추가로 구입했다. 침실 가구는 킹 사이즈 침대와 사이드 테이블이 전부라 다소 밋밋한 공간을 그림이 채워준다. 가끔 꽃을 올려두거나 고양이가 모델처럼 포즈만 취해주면 진짜 그림같은 인증샷을 찍을 수 있다. A3 사이즈 기준 3만 5,000원선.
서재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이다. 나중에 작은 북카페를 차릴 날을 꿈꾸며 서재만큼은 맥시멀 라이프로 즐기고 있다. 소파를 두고 책이나 잡지류를 아무렇게나 스툴이나 테이블 위에 쌓아두고 손가는 대로 읽다 내버려둔다. 그래서 서재 방은 소개할 그림도 많다. 기분 따라 계절 따라 변덕을 부리기 좋은 공간이라 그렇다.
가장 따끈한 신상 이다. 폭염을 핑계로 그림을 질렀다. 여름 맞이 인테리어를 위해 들인 시원한 색감의 작품이다. 마치 손가락으로 콕콕 선을 그리듯 시원한 채색이 눈에 띄는 김현묵 작가의 <선의 이미지> 라는 작품이다. 사이즈는 A3 액자 포함 5만 원선. 구매처는 신진 작가를 직접 발굴하고 라이선스를 지급해 작품활동을 독려하는 아트플랫폼 ‘프린픽’.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카페나 술집에 가면 벽에 하나쯤은 걸려있을 법한 이제는 흔해진 앙리마티스 그림이다. ‘저렴이’ 버전의 앙리마티스 포스터로 매거진랙에 액자 그대로 툭 넣어놓기만 해도 저절로 홈스타일링이 된다. 그림이지만 부담 없이 막 굴리기 좋단 소리다. 봄날프로젝트 앙리마티스 <LA MUSIQUE> 포스터 9,000원대. 지금 찾아보니 1+1 행사 중이다.
미신일 수 있지만 액자를 거는 방향과 동식물에 따라 풍수지리가 있다고 한다. 주로 해바라기 그림이나 노란색 액자가 재물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집들이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팔랑 귀인 나 역시 노란색 액자 한 점을 서재에 걸어두었다. 흔하지 않은 노란색 그림을 찾다가 만난 작품이다. 가벼운 캔버스 액자에 텁텁한 겨자색이 아닌 귀여운 노란색으로 잘 빠졌다. 노란색이 주는 밝은 에너지를 그대로 옮겨온듯 아기자기하다. ‘MINIMO’ 노란 창문 캔버스 액자 크기에 따라 가격은 4~10만 원선.
벽지, 가구의 컬러에 따라 그림의 톤앤 매너를 맞추면 집과 그림이 따로 놀지 않는다. 감이 잘 안온다면 그림을 구매하기 전에 그림을 놓을 공간을 미리 사진을 찍어 작품을 붙여 넣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대략 파악 할 수 있다. 당장 그림을 사지 않더라도 자주 사용하는 A3, A2 액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사이즈로 쟁인다. 이케아에서 싸게 판다.
두 줄로 요약하면 우리집에 어울리는 그림을 고르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A3, A2 사이즈의 빈 액자를 산다.
2. 톤앤 매너에 맞는 그림을 찾는다. 그럼, 그림에 대한 내 오지랖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