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 달동안 사무실을 옮기려고 해.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시에서 일하고 올 거야.”
안녕, 여러분. 디에디트 에디터H다. 19세기에 지어졌다는 포르투 시내의 이층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디에디트가 뭔지 까맣게 모르는 분들도 있으리라. 우리는 아주 작은 미디어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 내용은 다양하지만 컨셉은 명료하다.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 사는 건 종종 고단하고, 지갑 사정은 왕왕 시시해지지만 그럴 때일수록 사는 일은 더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지름을 부채질할 핑계를 찾아다닌다. 출근길을 황홀하게 해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나 금요일밤의 혼술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맥주같은 것들. 내 취향을 까뒤집어 보여주는 셈이다. 바쁜 당신의 소비 생활을 위해서 말이다. 맞다. 우리는 아주 얄팍한 사람들이다. 좋은 물건이 좋은 시간을 만들어준다고 믿을 만큼.
[디에디트 웹사이트가 처음 구동되던 그 날]
어떻게 이런 미디어를 시작하게 됐냐고? 거창하게 늘어놓을 역사는 없지만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2016년 초여름, 에디터M과 함께 직장을 나왔다. 6년차 기자 생활이라는 어설픈 경력만 남아있었다. 서른 넘은 직장인이 갈 곳을 정하지 않고 헤매는 건 경력 단절을 의미했다. 그런데 더이상 아무 곳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회사 생활은 불행했다. 매달 통장에 채워지는 월급의 안온함에 취해 몰랐을 뿐. 생전 없던 용기를 내서 M에게 말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해보자.” 철 모르는 두 계집애가 통통한 뺨을 맞대고 밤잠을 설쳐가며 디에디트를 만들었다. 음흉한 에디터M이 잠깐 도와주다 발 빼려고 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 뒤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매일 매일 새로운 일들이 펼쳐졌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는 흔해 빠진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올라가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빨랐다. 처음 사업자 등록을 하고 나선 ‘대표님’이나 ‘사장님’같은 낯간지러운 타이틀을 서로의 이름 뒤에 붙여가며 자지러지게 웃곤 했다. 쓰고 싶은 글이 넘쳐났다. 밤을 새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명함을 만들고, 서버를 늘리고, 새로운 에디터를 맞이하고, 사무실을 얻었다. 어떤 날엔 우쭐하고, 어떤 날엔 침울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친구들은 그랬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네 인생이 부럽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할 줄 아는 건 글 쓰는 것 밖에 없는 내가 이 재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에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만의 회사를 만들고,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그게 완벽한 자유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매일 새로운 글을 쓰고, 새로운 영상을 촬영했다. 매번 만족스러울 수는 없었다. 박수와 힐난이 교차했다. 하루하루 불안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언젠가 아무도 내가 만든 콘텐츠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차곡차곡 쌓였다. 서른을 한참 넘긴 내 나이를 헤아려본다. 이제와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다 뾰족하게 날 선 댓글 하나에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내 기대보다 나약한 사람이었다. 결국 어느 새벽, 노란머리를 연신 쓸어올리며 피곤해하는 에디터M을 붙잡고 말했다.
“혜민아, 나 더 못하겠어.”
나보다 두 살 어린 에디터M은 자그마한 눈을 비벼뜨고 사뭇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그렇게 힘들면 그냥 떠나자.”
그 한 마디 대답 이후로 모든 게 순식간에 진행됐다. 한 달동안 외국으로 출근해도 괜찮겠냐는 질문에 우리 막내 에디터는 시크하게 웃으며 “좋아요. 갑시다.”라고 답했다. 전직원(그래봤자 셋이지만)이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포르투행 비행기 티켓을 사고. 셋이 살면서 사무실로 꾸밀 수 있는 건물을 찾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 달 간 포르투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놀러가는 거야? 돈이 어디서 나서? 왜 하필 포르투갈로 가는 거야? 수많은 의문이 쏟아졌다.
글쎄, 이 프로젝트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흔히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와 비슷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는 장소는 물론이고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일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디지털 기반으로 일하는 ‘유목민’이라는 점에서는 닮았지만, 디지털 노마드만큼 자유로운 방식은 아닐 것이다. 개인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회사를 통째로 옮기는 거니까. 실제로 서울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방식을 대부분 고수하고 있다. 다만, 그 배경이 달라진 것 뿐이다.
한창 유행하는 ‘한 달 살기’와도 결이 비슷한듯 다르다. 한 달 살기는 여유와 힐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낯선 도시의 삶을 깊숙이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근사하지만, 철저히 일상을 등지는 개념이다. 디지털 기반으로 일할 수 있는 몇몇 직업군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직장인이 일을 멈추고 한 달을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말이다.
아마 우리는 포르투에서 자유롭게 일하지 못할 것이다. 여유와 힐링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상을 벗어나기는 커녕 온갖 기획안과 촬영 장비를 챙겨들고 36시간의 긴 비행을 견뎌 도착했다. 이럴거면 왜 왔냐고? 일을 포기할 수도 없었고, 경제활동을 멈출 수도 없었으며, 내 한 몸만 달랑 떠날 수도 없는 신세라 그랬다. 어차피 일할 거라면, 더 멋지게 일하고 싶어서.
석 달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니 비용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다. 운좋게 저렴한 비행기 티켓도 구했고, 숙소이자 사무실인 이 집도 에어비앤비를 통해 적당한 금액에 빌렸다. 비어있는 서울 사무실의 월세가 고스란히 나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피눈물이 흐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많은 도시 중에서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온 이유도 말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콘텐츠를 위한 여정인 만큼 특별한 장소가 필요했다. 파리, 런던, 베를린… 유수의 도시들이 우리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사라졌다. 이미 이미지가 많이 소비된 도시 보다는 조금 생소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포르투는 한국에선 그리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지만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다닥다닥 붙은 창문마다 스토리가 흘러 넘치는 곳이다. 완벽한 도시도 아니고, 노골적인 휴양지도 아니다. 게다가 물가가 아주 싸다. 포트 와인을 싼 값에 물처럼 마실 수 있다! 아,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오늘도 해가 떠있는 내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하고 왔다. 집에 돌아오니 다리가 뻐근하더라.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계속 치열하게 일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헤맬 작정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이건 그냥 도피일지도 모른다. 서울에서보다 더 힘들고 지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익숙한 도시에 남아 오늘과 내일을 살고 있는 모두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닿았으면. 일상은 시시해보이지만 그걸 버티며 살아가는 건 대단한 일이고, 각자가 가진 대단찮은 사유들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도망가도 괜찮다. 유럽 대륙의 서남쪽 끝자락에서도 일상은 계속된다. 여러분이 내 나약함을 마음껏 비웃으셔도 좋다. 용기내서 떠나왔으니 그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려 한다. 좋으면 좋은대로,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맛깔나는 콘텐츠가 되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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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