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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행복한 스피커 리뷰

날 키운 건 8할이 만화였기 때문에, 내 인생의 명대사들은 대체로 단행본 출신이다. 오늘의 명대사는 이거다. “좋은 신발을 신으면 좋은 곳으로...
날 키운 건 8할이 만화였기 때문에, 내 인생의 명대사들은 대체로 단행본 출신이다.…

2017. 11. 09

날 키운 건 8할이 만화였기 때문에, 내 인생의 명대사들은 대체로 단행본 출신이다. 오늘의 명대사는 이거다. 좋은 신발을 신으면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 누가 한 말이냐고? 일본 순정만화의 고전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츠바키라는 언니가. 남자 주인공인 츠카사의 누나인데 점점 더 부연설명하고 싶어지니까 여기서 자르겠다.

나는 이 말을 어디에도 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물건은 좋은 순간을 만들어준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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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카테고리에 대한 구력이 모자람에도, 유난히 리뷰하기 즐기는 물건들이 있다. 바로 카메라와 스피커. 사진을 찍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니까. 게다가 그 주인공이 아주 잘 만든 물건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말이다.

오늘은 에디터H가 올해 가장 행복하게 리뷰했던 제품을 다시 들춰보려고 한다. 예전 리뷰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디에디트의 첫 사무실을 완성해가는 어수선하고 험난한 과정을 함께했던 아이다. 바로 보스의 블루투스 스피커 사운드링크 리볼브 플러스.


#바쁜 페인트공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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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은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지만, 넓고 해가 잘 들어온다. 우리의 감성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에 3일 동안 페인트칠을 했다. 문은 코랄빛이 도는 핑크로 바르고, 입구는 네이비와 그린의 중간쯤 되는 오묘한 컬러를 입혔다. 방음 공사를 따로 하는 바람에 사무실 내부의 흰색 페인트도 새로 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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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페인트질 쯤이야 롤러로 쓱싹쓱싹 문대면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크나 큰 오판이었다. 깨끗하게 컬러를 입히기 위해선 프라이머를 미리 바르고, 컬러 페인트를 두 세겹 덧발라야 했다. 롤러를 잡은 손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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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가 닿지 않는 곳엔 작은 붓을 가지고 다니며 덧칠을 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30분, 팔짝 팔짝 뛰어오르며 30분. 이런 중노동이 없었다. 나와 에디터M 둘이선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았다. 친한 친구도 부르고, 남동생도 부르고, 남동생의 친구까지 불렀다. “여러분,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시켜드릴게요. 쉬지 말고 일하세요!” 모두에게 롤러와 페인트 통을 할당해준 뒤, 경쾌한 음악을 틀었다. 트와이스 노래를 들으면서 박자에 맞춰 음을 흥얼 거리며 롤러를 위 아래로 흔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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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합판이 새햐안 벽이 될 때까지 흰색 페인트 네 겹을 발라야 했다. 이럴 때 BGM이 없었다면 어떻게 일했을까. 가구 하나 없이 페인트 냄새와 먼지만 날리는 사무실 바닥에 내려놓아도 멋스러운 디자인이다. 이음새 하나 없이 아리땁다. 게다가 터프하고 말이다. 실수로 돌바닥에 떨궈도 계속 노래를 부르고, 물이 묻어도 끄떡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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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한 가운데 놓고 음악을 틀어두면 어디서나 똑같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매끈한 원통형 바디를 빈틈없이 두르고 있는 360도 사운드 덕분이다. 사실 360도 사운드라는 개념은 혼자서 방에서 음악을 들을 땐 실감하기 어렵다. 넓은 공간에서 여럿이 곳곳에 둘러앉아 음악을 들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좋은 소리’를 듣고 있다는 안도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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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은 약간 소리가 울리는 공간이라 그런지 음악듣기 더 좋다. 주말엔 옆 사무실이 출근하지 않으니 볼륨을 더 높여놓고 페인트칠에 몰입했다. 사진은 남은 페인트를 타일에 바르는 모습. 나중에 여기저기 장식할 요량으로 막내 에디터가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녀의 선곡은 ‘BODY’. 들으면 절로 어깨를 씰룩거리게 된다.

내 첫 페인트칠에서 얻은 교훈은 세 가지다. 스피커 필수. 레드불 필수. 친환경 페인트 필수(냄새가 덜 난다).


#추워지기 전에 옥상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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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연가 에디터M이 새로운 사무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역시 옥상이다. 오후 무렵, 옥상으로 떠난 에디터M이 갑자기 메시지를 보냈다.

“날씨 개쩜, 스피커 들고 옥상 ㄱㄱ”

“아, 귀찮게 오라가라야 ㅡㅡ”

나는 심통맞은 메시지를 보내고 맥주까지 챙겨서 옥상을 향했다. 웬걸. 날씨가 정말 좋았다. 춥지도 않았고, 노을 지기 직전의 하늘은 적당히 파랗고, 옥상에서 보니 사람들은 분주해보이고 우리만 여유로워보이고. 갑자기 기분이 좋더라. 그래서 맥주를 까고, 꼴깍 꼴깍. 땡땡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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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뮤직이 추천해주는 노래를 아무거나 플레이해본다. 와, 미쳤다. 처음 들어본 노래인데 비트가 심상치 않다. I took a Pill in Ibiza이라는 곡의 Mike Posner 리믹스 버전인데 몹시 흥겹다. 갑자기 우리 옥상은 클럽. 흥이 겨워 둘이 어깨를 1cm 씩 움찔거려본다. 턱 끝은 이미 그루브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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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바로 앞에 지나다니는 곳이라 굉장히 시끄러운데, 덕분에 그 소음에 묻혀 음악 볼륨을 마구 높여본다. 야외에서 들어보니 얼마나 파워풀한 물건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손잡이를 잡고 달랑달랑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콤팩트한 바디인데, 소리는 굉장히 자기주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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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사람들의 목소리, 지하철이 출발하는 소리. 도시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음 속에서도 묻히지 않는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흔히 스피커에 쓰는 표현 중 ‘중후하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노련하고 입체적으로 뽑아내는 사운드다. 오디오 기기에 밝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오, 좋은데?”하고 귀가 솔깃해지는 존재감.

딱 노래 다섯 곡 들으며 맥주 한 병 반을 비우고 들어왔다(왜 한 병 반이냐면, 술이 약한 에디터M이 반 병쯤 마시고 남겼기 때문이다). 음악이 있어 즐거운 땡땡이였다. 비록 지금 야근을 하고 있지만.


#추억의 노래와 와인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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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사무실에 손님(이라 쓰고 일꾼이라 읽는다)들이 왔다. 전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사무실 공사를 돕기 위해 온 것. 우릴 위해 드릴을 들고 커텐을 설치해주는 모습이 늠름하다. 이 밖에도 많은 일을 시켰지만 비밀로 하도록 하자. 그리고 나서는 정성껏 차린(?) 음식을 대접했다.

돈 주고 사 온 피자와 돈 주고 사 온 와인으로 작은 파티다. 스피커 리뷰니까 당연히 파티엔 음악이 필수란 얘기를 할 차례겠지. 이번엔 좀 더 특별한 걸 준비했다. 바로 파티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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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사운드링크 리볼브 플러스를 테이블 양 끝에 놓고 파티 모드로 연결하면 된다. 별로 어렵지 않다. 보스 커넥트 앱에서 한 개의 스피커와 연결한 뒤, 파티 모드를 선택하면 주변에 있는 다른 보스 스피커를 추가로 연결할 수 있다. 일전에 디에디트 1주년 파티에서 앱 업데이트 문제로 파티 모드 연결에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드디어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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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역시 한 개보다는 두 개가 좋다. 두 스피커가 동시에 연결되자마자 음악 소리가 공간을 꽉 채운다. 다들 “오오”하고 감탄하며 박수를 친다.

사족이지만, 이 제품의 유일한 단점은 음성 안내다. 한국어 패치가 잘못된 외국인이 읽어주는 것처럼 요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특히 제품의 전원을 켜면 바로 내 아이폰과 연결되었다는 음성 안내가 흘러나온다. 내 아이폰은 “Connected 경화미의”이라는 국적 불명의 안내 멘트는 들어도 들어도 웃긴다. 듣는 사람마다 중국어인줄 알았다며 빵 터질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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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그림을 끌어다 놓으면 바로 연결이 된다]

자, 다시 파티 모드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그냥 연결하면 두 개의 스피커에서 같은 사운드가 흘러나오는 셈이다. 볼륨이 두 배가 되고 더 빵빵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이때 파티 모드 화면에서 스테레오 모드를 터치하면 각각의 스피커가 좌우로 나뉘어져서 스테레오 오디오 시스템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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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아주 시끄러운 경우가 아니라면 스테레오 모드를 추천한다. 위화감 없이 입체적인 스테레오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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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에 치킨까지 배달 시켜서 완벽한 배달음식 파티를 벌였다. 음악은 서로 선택하겠다고 우기는 통에 중구난방으로 계속 바뀐다. 누구는 올드팝을 고르고, 누군가는 지나간 가요를 틀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즐거웠다.

스피커는 소리를 듣는 제품이라, 사진과 글 만으로 전달하는 게 아쉽고 힘들 때가 많다. 이 작고 예쁜 스피커가 올해 내게 여러 좋은 순간을 선물해줬다. 여러분께도 와닿으셨을지. 그랬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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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답게 마지막은 배터리 이야기를 해보자. 16시간 연속 재생 가능하다는 게 스펙 상의 설명이다. 우리 사무실이 백색 소음이 워낙 유별난 곳이라 최근엔 계속 적당한 볼륨으로 음악을 틀어놓는다. 매일 3~5시간 정도씩 사용하는 것 같다. 더 들을 때도 있고. 지금은 완충 후 3일째 쓰고 있는데 확인해보니 배터리가 70% 남았다고 나온다. 왜 이렇게 줄어들지 않지? 우리 정도 쓰면 일주일은 충전 없이 사용가능할 듯.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너무 좋다는 얘기만 했지만, 진짜 좋은 걸 어떻게 해.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