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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돌아왔다

자꾸만 생각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방금 했는데 또 하고 싶은 게 사랑이라면. 틀림없이 그건 사랑이었겠지. 콘솔 게임이 세상을 지배하던...
자꾸만 생각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방금 했는데 또 하고 싶은 게…

2017. 02. 07

자꾸만 생각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방금 했는데 또 하고 싶은 게 사랑이라면. 틀림없이 그건 사랑이었겠지. 콘솔 게임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슈퍼마리오는 내 첫사랑이고 우상이었다. 파란 멜빵바지를 입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그의 모습은 정말 근사했지. 개인적으론 ‘불꽃’ 아이템을 먹었을 때의 흰 멜빵을 더 좋아했지만.

SMR-header

작년 가을, 애플 키노트에서 닌텐도가 슈퍼마리오의 iOS 버전, ‘슈퍼마리오 런’을 출시한단 얘길 들었을 때도 가슴이 얼마나 설레던지. 긴 기다림 끝에 한국에서 만난 우리는 뜨겁게 사랑하는 중이다.

처음엔 시시했다. 한 손으로 조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 슈퍼마리오는 변해있었다. 이제 그는 내가 뛰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쉬지 않고 달린다. 양손에 조이스틱을 쥐고 능수능란하게 손을 놀리던 재미도 사라졌다. 오직 원터치.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한 없이 단순해진 조작법은 복잡미묘했던 옛날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굼바가 나왔을 때 정면으로 맞닥뜨리면 죽는다는 법칙도 깨졌다.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그냥 달려가게 두어도 굼바 정도는 뛰어넘는다. 너무 쉬워졌다. 사용자 자유도가 지나치게 떨어진다.

그래도 우리의 재회에 10.99달러를 지불했기 때문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스테이지를 거듭할수록 내 손가락은 새로운 사랑의 방식에 적응해갔다. 짧게 터치하면 살짝 뛰어오르고, 길게 터치하면 멀리 뛰어오른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고난도 기술을 구사할 때도, 타이밍 맞춰 ‘톡, 톡, 톡’ 터치해주면 그만이다. 터치 외의 조작은 거의 없다. 튜토리얼엔 나오지 않지만, 달리는 방향 반대로 화면을 스와이프하면 제자리 뛰기가 가능한 정도뿐이다.

instaSuper_Mario_Run_-_Mario_Artwork

이 단순함 속에서도 재미는 꽃 피우기 시작했다. 슈퍼마리오의 전통적인 요소를 다 동원하여 스테이지마다 다양한 컨셉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리프트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전진하고, 유령 저택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비탈길을 엉덩방아 찧으며 미끄러져 내려간다. 매 스테이지가 다른 재미를 품었다. 특히 쿠파 스테이지는 예전 느낌을 잃지 않았다. 쿠파를 세 번 밟아 죽을 때의 그 쾌감. 아, 너무 좋다.

처음엔 단순해서 시시했던 조작법은 하루종일 아무때나 플레이할 수 있는 자유로움으로 와 닿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 짬짬이 첫사랑과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다른 계집애랑. 나는 마리오보다는 피치공주로 플레이하는 걸 더 좋아한다. 치맛자락 펄럭이면서 더 멀리 뛰거든.

mariomine
[나의 마리오 왕국]

아쉬운 건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 현재 총 24개 스테이지를 만들어 놓았는데, 순수하게 전부 클리어만 하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스코어 기록을 경신하거나 놓친 컬러 코인을 먹기 위해 반복 플레이를 하고는 있지만, 계속하다간 질릴 날이 머지않았다. 물론 숨은 잔재미를 무시할 순 없다. 나만의 왕국을 꾸미고, 키노피오의 집에서 동전이 쏟아지는 보너스 스테이지를 즐기거나 전 세계의 낯선 이들과 랠리를 펼친다.

우주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 중 하나인 슈퍼마리오가 스마트폰 시대를 위해 준비한 것들은 협소하지만 알찼다. 의심했던 거 미안해. 당신이 돌아와서 기뻐. 앞으로도 같이 달리자. 그러니까 업데이트 좀 해줘. 제발. 기다릴게. 늘 그랬던 것처럼.

SUPER MARIO RUN
point – 모바일에 딱 맞췄단 마리오
Price – Free (전체 스테이지 오픈은 10.99달러)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