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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 디스플레이에 대한 변명

“노치 디스플레이 좋아해요?” 아뇨, 세상에 이렇게 디스플레이 한 구석을 아이스크림처럼 푹 떠낸 자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도 싫습니다. 아,...
“노치 디스플레이 좋아해요?” 아뇨, 세상에 이렇게 디스플레이 한 구석을 아이스크림처럼 푹 떠낸…

2021. 12. 09

“노치 디스플레이 좋아해요?”

아뇨, 세상에 이렇게 디스플레이 한 구석을 아이스크림처럼 푹 떠낸 자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도 싫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IT 글쟁이 최호섭입니다. 노치 이야기를 하려니 마음이 급했어요. 이번 이야기는 바로 애플의 한 입 베어 문 디스플레이 ‘노치’입니다.

한 문장에 이렇게 같은 단어를 많이 쓰고 나니 어딘가 어색합니다. 불과 몇 년 전, 그러니까 아이폰X이 나오기 전까지 잘 쓰지도 않던 단어가 바로 이 노치입니다. 디스플레이 한 구석이 파인 거죠.


‘이게 진짜로 이렇게 파여서 나온다고?’

Processed with VSCO with fp8 preset

아이폰X의 유출 이미지가 처음 나왔을 때 세상을 가장 들썩이게 했던 것도 바로 이 노치 디스플레이죠. ‘M자형 탈모’라고 놀리는 이야기도 많았고, 실제 제품이 출시되는 순간까지도 말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등장한 맥북 프로에도 이 움푹 파인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면서 또 불편한 목소리들이 들려 옵니다. 제가 이걸 만든 것도 아니고, 주식 몇 개 산 것 외에 애플과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이게 이렇게까지 구박받을 일인가 싶어서 소심하게 변명을 해 봅니다.

iphonexsDSC09991[때는 2018년 9월. 왼쪽은 아이폰 8 플러스, 오른쪽은 노치 디자인이 적용된 아이폰 XS]

이 ‘노치’는 사실 기술적인 한계와 시장의 욕심 사이에서 태어난 ‘타협점’입니다. 사람들은 더 큰 디스플레이를 원하지만 그럼에도 기기가 커지는 걸 원치 않아요. 그걸 풀어내는 방법은 기기에 테두리를 줄이는 겁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마니아들 사이에서 베젤, 보더 같은 낯선 단어들이 스마트폰 디자인을 평가하는 데에 빠지지 않았죠. 네, 그냥 앞면에 화면이 아닌 ‘테두리’가 많으니 그걸 줄이는 거죠.

iphone-seApple_new-iphone-se-white_04152020[2020년에 출시한 아이폰 SE 2세대]

당장 아이폰 SE의 디자인만 봐도 요즘 제품에 비해서 양  테두리도 꽤 있지만 위아래의 테두리가 어마어마합니다. 위에는 전화할 때 쓰는 수화기와 전면 카메라, 그리고 밝기나 주변 조명 등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센서가 달려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홈버튼이 놓여 있지요. 그 안을 들여다보면 LCD 화면을 밝히는 백라이트와 디스플레이 컨트롤러 등이 디스플레이 위아래를 채웁니다. 그러니까 버려지는 공간이 아니라 나름의 역할이 있는 테두리였던 거죠.

하지만 이걸 줄여서 화면으로 만들면 아주 간단하게 큰 화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기술적인 실현은 OLED에서 출발합니다. 이 디스플레이는 픽셀 소자가 직접 빛을 내니, 구조상 백라이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디스플레이 제어도 더 간단하고요. 만들기가 조금 까다롭지만 디스플레이에 픽셀을 증착시켜서 아예 테두리를 없애는 것도 가능합니다. 자유도가 훨씬 높은 거죠. 그러니까 전면을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기에 앞면에 포기할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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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에는 기본적으로 꼭 갖춰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OS를 제어할 때 쓰는 홈 버튼, 그리고 카메라와 수화기 등이지요. 결국 이 부품들도 형태를 바꿔야 합니다. 애플은 홈 버튼을 없애는 방법을 택했고, 그 인터페이스는 의외로 아이폰이 아니라 아이패드를 통해 꽤 오랫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험됐습니다. 다섯 손가락을 오무려서 홈 화면으로 돌아가는 인터페이스를 기억하신다면 그게 바로 그 고민 중의 하나입니다.

결국 화면 아래의 작은 막대로 그 부분을 풀어냈고, 홈 버튼을 없애면서 화면 아래쪽의 테두리를 걷어 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위쪽은 조금 달랐죠. 카메라와 수화기, 그리고 센서들이 있으니 말이죠. 게다가 홈버튼이 사라졌으니 그걸 대신할 생체 인증 도구도 필요했습니다. 소니나 샤오미 같은 회사들이 쓰고, 애플도 아이패드 에어, 아이패드 미니에 쓰는 전원 버튼의 지문인식 센서를 쓸 수도 있었지만 증강현실에 관심이 많던 애플은 얼굴을 좀 더 정확히 읽어내는 ‘수고’에 집중합니다. 트루뎁스 카메라와 페이스ID입니다. 그리고 수화기까지 하나의 부품으로 통합해서 위쪽 일부에 자리 지분을 마련합니다. 그게 바로 디스플레이의 일부를 파먹은 노치가 됩니다.

노치는 이야기할 겁니다. “아니, 내 덕분에 디스플레이 베젤이 엄청 줄었잖아!” 맞아요. 그렇지만 이게 딱 하나의 흔적이 되면서 타박을 받게 된 거죠.

Processed with VSCO with fp8 preset

애플은 이걸 그냥 무책임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소프트웨어로도 고민을 합니다. 아이폰, 그러니까 iOS 화면 위쪽을 시계, 배터리, 그리고 알림 메시지 등으로 채우는 표시줄을 노치와 결합합니다. 네, 어차피 거기는 중간이 조금 어중간하게 뜨는 자리였으니까요. 그걸 잘 배치하면 디자인적으로 그렇게 거슬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걸 거예요. 그리고 인터페이스로 봐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디스플레이에서 상태 표시줄을 물리적으로 떼어낸 것 같은 구분이 되니까요. 의외로 이걸 먼저 도입한 회사는 LG전자인데, 그 이야기는 또 슬프니까 여기서는 하지 않기로 해요.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화면을 최대한 크게 만들기 위한 물리적인 고민이 노치이고, 그걸 소프트웨어와 결합해서 콘텐츠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구분하게 한 게 바로 노치 디스플레이라는 거죠.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써본 사람들이 딱히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것도 이런 디자인 요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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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걸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방법들도 있어요. 수화기 스피커를 디스플레이 위쪽으로 밀어내고, 카메라는 팝업으로 빼거나, 반투명한 디스플레이 안쪽에 밀어넣습니다. 지문 인증을 위한 센서도 초음파 방식으로 바꾸어 디스플레이 안쪽에 넣기도 합니다. 이 모든 노력들의 목표도 결국 화면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지요.

애플은 아이폰 13을 발표하면서 트루뎁스 카메라의 구조를 바꾸어서 수화기를 위쪽으로 밀어내고, 그 폭을 꽤 줄였습니다. ‘아예 없애지 않냐’라는 불만도 있긴 하지만 전면 카메라의 중요도, 그리고 화질과 센서의 정확도를 생각하면 아직은 억지로 숨기는 것보다 노치가 더 나을 겁니다. 그리고 그 부분의 노치를 없앤다고 해서 딱히 우리가 얻는 정보량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 보다는 그 동안 만들어 놓은 페이스ID와, 트루뎁스 카메라로 얼굴의 윤곽을 읽고 증강현실과 맞붙이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지키고, 관련 기술에 신뢰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겁니다.


맥북까지 파고 들어온 노치,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

Apple Event — October 18

그런데 이 노치가 맥북까지 밀고 들어왔습니다. 최근 출시된 맥북 프로 2021 14인치, 16인치에는 노치 디스플레이가 들어갔습니다.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카메라와 조도센서 등이 원래 있던 자리에 있고, 그 줄에 맞추어서 상태 표시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 역시 목적은 디스플레이를 더 크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노트북 역시 기기는 작으면서 디스플레이는 더 커지길 바라는 요구가 많지요. 그래서 버려지던 공간을 위로 밀어올린 거죠. 그러면서 디스플레이와 상태표시줄 사이는 아주 더 명확하게 구분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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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노치가 콘텐츠에 간섭하지 않냐고요? 네, 맥북 프로에서 게임이나 전체 화면으로 앱을 실행하면 노치 바로 아래 영역까지 화면을 채워줍니다. 그리고 노치를 비롯한 상태 표시줄은 싹 자취를 감춥니다. 화면을 잘게 쪼개서 백라이트를 비추는 미니LED 디스플레이 덕분에 상태 표시줄은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우스 커서를 근처로 가져가면 메뉴가 나오지요. 아주 매끄럽습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긴 한데, 상태 표시줄이 노치 크기에 따라서 두꺼워졌습니다. 그래서 메뉴 화면이 좀 날렵한 맛이 사라진 느낌도 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맥북 프로의 노치는 화면을, 아니 이 화면을 품고 있는 디스플레이 전체 면을 더 알뜰하게 짜서 쓴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를 하드웨어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함께 고민해서 풀어냈다는 것이 묘한 재미를 주는 부분입니다. 언젠가는 이 역시 아이폰과 더불어 기술적으로 풀어낼 방법이 있겠지만 기술적 한계를 잘 우회한 방법이 되는 것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iPad mini_product image_facebook

아, 그런데 왜 아이패드는 노치를 안 만드냐고요? 아이패드는 왜 테두리를 더 좁히지 않냐고요? 이건 기기를 쥐는 특성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아이폰은 양 옆면을 움켜쥐는 식이지만 아이패드는 손바닥 안쪽으로 화면을 받쳐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손이 어느 정도 기기 앞면을 잡으면서도 디스플레이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영역, 바로 테두리가 꼭 필요한 기기지요. 그걸 나름 애플의 해석으로 최소화한 것이 지금의 테두리이고, 이는 아이패드 프로부터, 에어, 미니까지 거의 같은 크기로 유지되고 있지요.

노치를 위한 저의 짧은 변명은 여기까지입니다.

About Author
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