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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레이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을 찾아서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두구두구두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다. “음? 그게 모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두구두구두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다.…

2021. 07. 08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두구두구두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다. “음? 그게 모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일단 여기는 5성급 호텔이고, 위치는 서울역 건너편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호텔 기업 중 하나였던 힐튼이 운영을 맡은 우리나라 최초의 힐튼 호텔로 1983년 개장 시 ‘힐튼 서울’이라 불렸다. 남산 안자락에 조용히 있는 이 호텔을 소환한 까닭은, 요즘 화제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hiltonhotlestory_sfefsef[밀레니엄 힐튼 서울 야경 / 출처: 밀레니엄 힐튼 서울]

올 3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인해, 밀레니엄 힐튼 서울 소유주 측이 국내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과 매각 협상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떴다. 남산 소월길이 시작하는 곳에 자리 잡은 호텔의 부동산 가치은 대단하다. 전체 대지 면적이 1만8760㎡(5684평)고,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그 1/3인 5199㎡(1575평)다. 부동산 개발자의 마음에 빙의해 본다면, 저 호텔을 밀고 용지 전체를 활용해 여기에 무언가를 짓는다면 노다지 땅이 되는 거다. 물론 그런 가치를 다 합쳐서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가격이 제시됐지만. 처음에는 남산 뷰를 이용해 최고급 주거 시설을 짓는다는 말이 나오다가 서울 한복판에 어울리는 대규모 오피스 시설을 생각한다는 둥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왔다. 실제 서울역 건너편, 남대문 건너편에 있는 해당 용지만큼 서울 중심가에 있는 땅덩어리 큰 곳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니 부르는 게 값인 요지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팔린다면 호텔을 헐고 그 거대한 대지에 엄청난 건물이 세워지지 않을까 싶어 여기저기서 호텔 철거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신문들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 얽힌 추억을 자사 DB로 풀어냈고, 어떤 이들은 호텔의 가치를 호명하며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서현 교수는 <중앙일보> 사설을 통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분량 상 윤문을 했다).

“용도가 사라졌을 때 철거가 마땅하다면 건물이다. 용도가 사라져도 존재 가치가 있으면 건축이다.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애달파하지 않는 건 건물이라는 증언이다.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할 때 수많은 논쟁이 있던 것은 건축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 건축의 화두는 전통과 정체성의 구현이었다. 가장 즉물적인 대답은 독립기념관이었고, 가장 추상적인 번역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었다. 그런데 이런 담론의 궤와 다른 건물이 서울 한복판에 세워졌다. 건축의 영속적이고 근원적인 가치인 공간 비례, 구조 표현과 같은 추상적 주제에 대한 천착이 바로 힐튼 호텔이다. 산 중턱이라는 경사 조건까지 맞춰 복잡다단한 기능을 지닌 호텔을 간단명료한 상자에 풀어냈다. 그 큰 덩치의 사뿐하고 날렵한 비례는 기존과 전혀 다른 차원의 우아함이었다. 더는 호텔이 아닌 이것을 앞으로 호텔이라 부를 수 없겠지만 이 건물은 존재의 가치가 있다. 건물이 아닌 건축의 성취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라는 건축가에 대해서는 아마 들어봤을 거다. 전설적인 <바르셀로나 세계 박람회>의 독일관과 그곳을 위한 맞춤형 의자인 ‘바르셀로나 체어’를 디자인한 주인공으로,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을 지내다 폐교 후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현 일리노이 공과 대학(IIT) 건축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수많은 건물을 설계했다. 특히 유리가 건물 표면을 덮는 유리 커튼월 기법의 마천루가 전 세계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뉴욕 시그램 빌딩을 지은 장본인으로, ‘적을수록 풍부하다(Less is more)’,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등의 어구로 유명한 미니멀리즘 건축의 신화적 인물이다.

hiltonhotlestory_serewr_1[유리 커튼월 마천루의 시작점인 뉴욕 시그램빌딩 © Arch2O]

그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가 건축가 김종성(1935~)이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 아래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그의 사무실에서 11년 동안 동료로 일했다. 이후 모교에서 교수를 지내던 그는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 건축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김수근, 김중업과 더불어 한국 근대 건축 3인방이라 불리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건축 분야 회고전의 첫 주인공이 됐다. 10조 원짜리 옛 한국전력 본사 부지에 세워지는 105층짜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인 GBC의 총괄 건축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한 그가 귀국한 이유이자, 한국에 지은 첫 건물이 바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세밀한 비례의 아름다움에 탄성이 나오는 호텔은 양옆 끝자락이 30도씩 꺾여있는데 이를 두고 서현 교수는 “최고의 비례를 찾는 신의 한 수”라고 평했다.

hiltonhotlestory_d3wrwe[외국계 회사가 독식하던 초고층빌딩 총괄 건축가에 한국인이 임명된 일은 일대 사건이었다. /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세계경영을 부르짖던 대우그룹의 고(故) 김우중 전 회장이 대우그룹을 상징하는 대우빌딩 뒷편에 지은 호텔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가 소장 중인 김종성 컬렉션을 보면 이미 1976년 대우는 해당 부지에 세울 호텔 도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사우디아라비아 투자사와 합작해 운영하는 형태였는데 놀랍게도 브랜드는 하얏트였고 입구는 부지 정면에 한옥형으로 마련되어 1977년 설계한 현 호텔과는 차이가 난다. 힐튼 호텔은 국내 진출에 대한 떡밥이 뜨면 바로 신문에서 떠들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이는 1960년대 신문에서부터 언급될 정도였다. 힐튼 호텔의 창업자인 콘래드 힐튼의 별명이 ‘호텔왕’이었을 정도로 업계에서 최상위 포식자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겐 롯데호텔, 신라호텔 등이 더욱 친숙하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 비즈니스 맨에게 유달리 사랑받던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정치인, 경제인의 미팅이 잦았던 은밀한 곳이었다. 건물 최상층인 22층, 23층에 마련된 펜트하우스는 김 전 회장의 집무실로 쓰이기도 했고,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덮쳤을 때 IMF 실무단과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며칠간 합숙하며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는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계약을 조인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IMFNewspaere[1997년 12월 1일 <경향신문> 1면 /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0년대 한국 건축의 걸작으로 역사의 파고를 지새운 호텔이 40년 만에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리니 도무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대체 사람들은 이곳을 왜 이토록 애정하는가. 건물 정면이 아닌 후면에 자리 잡은 호텔 입구로 진입하면 로비를 지나 라운지까지 64m에 달하는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수평적 개방감이 어떤 것인지, 그 중간 지점에는 30m 높이로 뚫린 아트리움이 있어 언제나 자연광으로 환하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래로는 한양도성 성곽이, 위로는 N서울타워(옛 남산타워)가 보인다는 초록색 남산 뷰의 실체를 접하고 싶었다. 40년 전에 지었는데도 호텔 투숙료가 도대체 떨어지지 않는 기이한 비밀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한 번 가보는 거야!’ 친구의 회사 복지 카드 찬스를 쓰며 일요일 같은 비수기에도 한 박에 20만 원이 넘는 이 오래된 건축물에 머물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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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완공 당시 찍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 후면의 정문 전경. 맨 위의 사진과 비교할 때 그 영속적 느낌에 놀랄 수 밖에 없다. / 출처: 서울건축(임정의 사진)]

호텔은 들어갈 때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왜냐하면 호텔 정면이 아니라 후면에 정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 중턱의 경사 때문에 생기는 높이 차이를 활용한 기발한 방법인데 이 때문에 호텔이 굉장히 숨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머문 곳은 23층 중 17층. 건물에서 꽤나 높은 층으로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분 좋은 풍경의 마운틴 뷰였다.

sefsefgsesfef[한양도성 성곽, N서울타워가 함께 보이는 풍경 © HARRY JUN]

맨 처음 객실에서 저절로 눈이 간 부분은 의외로 책상과 의자였다. 요즘 객실에 저런 오피스 의자를 놓는 곳이 아직 있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일하러 온 사람을 위해 최적화된 느낌이었다. 남산 뷰의 아름다움도 느끼면서, 나도 밀린 원고를 쓰려고 노트북을 꺼냈는데, 갑자기 침대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얀 침대의 아늑한 소리에 홀려 살짝 누웠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주변은 어둑해지고 이후 노트북의 존재감은 철저히 지워졌다.

sdfsdflefsef[세월을 곱게 탄 편안함이 돋보이던 객실 모습 © HARRY JUN]

다음날 침 친구와 1층으로 내려가 문제의 로비와 라운지를 기웃거리며 사진을 핸드폰으로 다다다닥 찍기 시작했다. 뭔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관광지에 온 기분이라 기록 정신에 충실했던 것 같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1983년 완공될 당시 찬사를 받았던 부분이 바로 아주 섬세하면서도 정돈된 비례가 돋보이는 외관과 개방감이 증폭되는 로비층이었다. 입구 쪽이 원래 높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시야가 트이게 됐고, 이를 자연스럽게 열어두어 입구와 로비부터 저 건물 끝쪽까지 64m 정도 길이의 풍광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한눈에 연결된다. ‘수평적인 개방감’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뷰였다.

sdfsegsdrerwer[건물 후면과 정면을 관통하는 수평적인 개방감이 돋보이는 뷰 © HARRY JUN]

그리고 대망의 30m 높이의 아트리움은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앙에 위치한 분수와 서로 대응하듯 수직적인 빈 공간을 시원하게 보장한다. 천장 부분은 불투명한 막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원래 지어졌을 때는 붉은색 철골 구조물이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채 완전히 개방된 상태였다. 이게 너무 부담스러웠는지 막을 설치해 햇빛만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이 아쉬웠다. 사진을 보여줄 방법이 없어서 당황스럽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위치한 예술연구센터에서 보관 중인 김종성 컬렉션에 있던 슬라이드 필름 원본을 라이트 박스로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철골 구조의 짜임은 지금 봐도 매우 모던했고, 안락한 초특급 호텔의 내부와 대비되는 지점이 지극히 흥미로웠다. 아마 현재 호텔을 그렇게 짓는다면 사람들이 모두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었을 텐데, 호텔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여서 우윳빛 막을 계속 유지하는 게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아마 설계 모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원래부터 막으로 가려져 있을 거로 생각할 것이리라.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1983년 완공 당시에 찍은 모습과 거의 변한 부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큰 풍파 없이 나이를 먹은 신사를 보는 듯했다.

ksldfjgeserwcve[왼쪽: 2021년의 아트리움 모습 © HARRY JUN | 오른쪽: 1983년의 아트리움 모습 / 출처: 서울건축(임정의 사진)]

뭔가 어설픈 1층 투어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그리고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보니 건물의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활짝 걷혀지며 앞에 있는 서울스퀘어 빌딩이 보였다. 이 깍두기 빌딩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밖으로 나올 때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서울의 첫인상이었다. 서울스퀘어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호텔이 옛 대우그룹에서 전략적으로 관리하던 요충지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경영을 모토로 대우그룹과 일을 하러 온 수많은 외국인 임원들이 이 호텔에 묵으며 계약서를 검토했겠지. 호텔 최상부인 펜트하우스 2개 층을 집무실로 쓴 그룹의 총수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네모난 빌딩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IMF가 터진 지 벌써 25년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 그렇게 아저씨 아닌데….흑

hiltonhotlestory_4rsre[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 시선을 빼앗던 서울스퀘어 빌딩 © HARRY JUN]

1층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무척 당황했다. 건물 내부 아래로 내려가며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나가는 길이 없고 주차장만 있는 게 아닌가. 꾸역꾸역 길이 아닌 곳을 지나며 밖으로 나왔다. 호텔 정면 주변은 뭔가 정리가 되지 않은 분위기였다. 낡았다는 느낌보다는 혼란스러웠다. 여러 채의 건물들이 이곳저곳 튀어나오는데, 호텔 후면의 정문으로 들어갈 때 느꼈던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오래된 남대문 교회와 뷰가 함께 얽힐 때는 역사지구에 온 듯한 소회도 일었다.

hiltonhotlestory_we3rwer[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이다. © HARRY JUN]

내림막 길의 끝에 다다라서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리적인 감각이 돌아왔다. 서울로7017이 보였다. 그리고 저 길 멀리 복잡한 버스 환승 정류장을 뛰어넘어 옛 서울역 역사와 현 서울역 건물이 함께 보였다. 생각해보니 KTX를 타고 다른 곳에 왔다 갔다 할 때도 내 눈에는 서울스퀘어 건물만 보였지 그 주변과 뒤로는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서울스퀘어에 가려진 밀지를 체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보는 서울의 또 다른 면의 끝자락에서 택시를 타고서야 나는 내 고향 서울로 돌아온 느낌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안도였는지, 아쉬움이었는지 그 아무도 모를…

hiltonhotlestory_w34234[서울로7017로 올라가는 진입로와 고가도로 모습 © HARRY JUN]
hiltonhotlestory_26356[내가 아는 서울역들을 보니 반가웠다. © HARRY JUN]

호텔을 다녀온 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소유주가 매각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갑자기 안도감이 들면서 허망한 기운도 들었다. 아, 역시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굿바이 투어는 이제 끝이다. 투어 만이 계속될 뿐. 사라질 것 같던 건물의 옛 자료를 찾으러 다닐 때 김종성 컬렉션을 친절하게 보여주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담당자분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선생님. 결국 저작물 이용 허락서는 작성하지 않게 되었어요. 하하하.

P.S: 1983년 완공 당시 찍은 사진 사용을 허락한 김종성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hiltonhotlestory_sfefsef[이 사진도 기록이 아닌 현재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 출처: 밀레니엄 힐튼 서울]
About Author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디자인, 건축, 예술 관련 글을 기고한다.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손기술로 먹고산다'는 사주 아저씨의 말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