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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직장인 시점, 강북 냉면 맛집 5

안녕! 디에디트의 고독한 대식가,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최근 직장을 새롭게 옮겼다. 서울 종로 한복판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누리는 행복 중 하나는...
안녕! 디에디트의 고독한 대식가,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최근 직장을 새롭게 옮겼다. 서울…

2021. 07. 07

안녕! 디에디트의 고독한 대식가,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최근 직장을 새롭게 옮겼다. 서울 종로 한복판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누리는 행복 중 하나는 식사다. 원조 오피스 상권의 풍요로운 식문화를 체감하고 있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빼꼼 고개를 내민 식당들이 뛰어난 회전률과 다양한 메뉴 구성으로 직장인의 주린 배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맛밥집’을 열심히 다녔다. 영수증을 모두 털어 통계를 낸 결과, 날씨가 더운 탓인지 냉면집에서 가장 돈을 많이 썼다. 정말 좋았던 곳은 두번 다녀왔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통근 중인 직장인의 이유있는 냉면 맛집 큐레이션을 너그럽게 읽어주시길 🙂 지역은 서울 강북을 기준으로 추렸다.


[1]
“노포 바이브 싫어요. 세련된 분위기 좋아요”

광화문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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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오니 평양냉면을 먹을 기회가 늘어났다. 종로는 맛있다는 평양냉면 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고기 우린 육수나 동치미 국물을 좋아하는 편이여서, 평양냉면은 내 입에 제법 잘 맞았다. 슴슴하다고도 표현하지만, 부드럽고 깨끗한 감칠맛이라 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육향이 은은하게 깃들어 기분 좋은 감칠맛을 내는 게 평양냉면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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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국밥은 현대화된 평양냉면을 선보이는 곳이다. 특유의 슴슴한 맛은 여타 냉면가게와 다를 게 없지만, 구성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보면 좋은 디테일을 갖고 있다. 씹는 맛이 좋은 야채 고명, 까끌까끌한 메밀면발, 오묘한 감칠맛을 내는 냉면 육수를 선연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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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자체도 평양냉면의 전통보다는 개량에 힘쓰는 곳으로 느껴진다. 그 예로 고기고명을 들 수 있다. 돼지국밥을 함께 팔기 때문인지 얇게 저며 부드럽게 씹히는 돼지고기 고명이 들어간다. 입안에서 씹히는 질감이 메밀면과 잘 어울린다. 최애냉면으로 등극할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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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방문을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수용인원이 많고 다인석부터 1인석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어, 피크타임만 적당히 피하면 맘 편히 먹기 좋은 가게다. 신속한 접객에서 시작되는 혼밥 식사부터 수육 한 판, 순대 한 접시 더 시켜놓고 여럿이서 즐기는 저녁 만찬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다.

회사 앞까지 찾아온 지인을 데리고 갔을 때, 만족스런 평가가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노포 바이브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깔끔하고 쾌적한 접객을 선호한다면 광화문국밥을 추천하고 싶다.

📍광화문국밥
가격: 평양냉면 11,500원
킬링 포인트 : 얇게 저며 부드럽게 씹히는 돼지고기 고명, 같이 쌈싸먹는 아삭한 백김치


[2]
“직장인에게 맛보다 소중한 건 신속한 식사”
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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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짧다. 아무리 맛있어도 웨이팅 시간이 길면, 평양 옥류관 쉐프가 해준 냉면도 무소용이다. 시간이 소중한 평냉 러버를 위해 피크타임 회전율을 높은 가게를 소개한다. 12시 입장 기준, 종로에서는 을밀대가 만족스런 회전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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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옆 무교동에 있는 을밀대는 점심시간 한복판에 들러도 줄이 빠르게 빠진다. 을지로 평냉의 절대강자, 우래옥과 비교하면 2배는 빠른 회전율이지 않을까. 식당이 오피스 빌딩 지하 1층에 있어서이기도 할 거다. 점심부터 어복쟁반을 시켜 먹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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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과 냉면 육수는 지점마다 편차가 있는 편이지만, 을밀대 냉면의 가장 큰 장점인 쫀득한 메밀 면발은 고스란히 가져간다. 다들 빠르게 먹고 빠르게 철수하는 분위기다. 종로에 온 성질 급한 평냉러버에게 추천한다.

📍을밀대 무교점
물냉면 1만 3,000원
특이사항 : 보기엔 거칠고 씹으면 쫄깃한 메밀면


[3]
“가본 적도 없는 홍콩 대만이 그리워지는 맛”
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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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투 식스로 사무실에서 키보드만 두들기다 보면, 몸이 찌뿌둥해진다. 종로에서 곧바로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탈 수 있지만, 나는 일부러 용산역까지 따릉이를 타고 간다. 중식당 꺼거는 퇴근길에 용산 골목길을 파고들다 만난 가게다. 일단 비주얼부터 강력하다. 홍콩은 아직 안 가봤지만, 내겐 홍콩영화로 단련된 취향이 있다. 가본 적도 없는 중국 남부도시가 그리워지는 건 어째서일까. 장국영과 장만옥이 밥 먹고 있을 듯한 중식당 앞에서 자전거 잠금장치를 채워놓고 신중하게 메뉴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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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장 치킨 냉면’을 주문했다. 메뉴판 한 줄 요약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정! 광둥식 치킨 그리고 생 에그누들, 주방장의 특별한 마장 소스를 곁들인 비빔국수> 비빔국수를 빼면 평생 제대로 먹어본 적 없는 식재료였다. 재룟값이 꽤 나간다는 생 에그누들을 쓴다는 것도 맘에 들었고, 두툼한 닭고기살이 접시에 가득 차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냉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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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요리에 기대하는 쫄깃한 면발도 좋았고 육즙이 흘러넘치는 닭고기 고명도 훌륭했으나, 특히 빼어난 건 ‘마장 소스’의 기분 좋은 하모니였다. 깨장 혹은 즈마장이라고도 부르는 이 고소한 양념은 중국 현지에서 즐겨 쓰는 식재료라고 한다. 여기에 고추기름과 정향을 더해 매콤새콤한 맛이 더해진다.

입안에서 세 가지 이상의 맛이 지루할 틈 없이 변주된다. 꺼거의 비빔냉면은 일부러 퇴근길을 용산으로 틀 정도로 열심히 즐기고 있다. 최근 입소문이 많이 난 덕인지 웨이팅이 많아졌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고 신용산의 구불구불한 골목을 돌다 보면 금방 순번이 돌아온다. 2인 1조 평일 저녁 방문을 추천하는 맛집.

📍꺼거
깨장 비빔냉면 1만 4,000원
특이사항 : 일단 먹고나면 마켓컬리에서 에그누들이랑 마장소스 사고 싶어짐


[4]
“맛있는 중국냉면은 가죽나물이 들어간다”
백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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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꺼거의 중국식 냉면이 중국의 로컬무드를 차용한 쉐프의 창작 요리라고 한다면, 지금 소개할 중국냉면은 전국 어디에서나 그럭저럭 비슷한 형태를 가진 듯하다.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볼 수 없고, 한국의 중식당에서만 만날 수 있는 요리다. 한국화된 디아스포라 푸드랄까. 가게마다 레시피는 조금씩 다른 듯하지만, 살얼음 낀 육수에 땅콩소스가 들어간다는 데엔 차이가 없다.

올봄, 이른 더위를 맞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을 먹었다. 찬 음식이 먹고 싶었기에 중국냉면을 주문했지만 먹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가죽나물 없이 중국냉면은 만들 수 없어요. 조금 더 계절이 풀리면 찾아주세요.”라 말했다. 도대체 가죽나물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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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초록색으로 잘게 쪼개져 올라간 고명이 바로 가죽나물이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 여린 잎으로 향이 독특해 별미로 손꼽히는 기간 한정 식재료. 쌉쌀하면서도 달큰하고, 발효음식의 오묘한 향미가 느껴지는 나물이다. 지금 소개하는 백리향은 가죽나물이 없으면 중국냉면이 아니라는 말을 내게 두 번째로 들려준 가게다. 특정 재료를 향한 뚜렷한 확신에서 맛집의 자존심을 느낀다.

퇴근길에 허겁지겁 들른 백리향에 홀로 앉아 후루룩 면을 삼키고 있을 때, 서빙하는 분이 내게 넌지시 귀띔해주신다. “땅콩 소스가 들어가야 중국냉면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가죽나물이 꼭 들어가야 해요” 차이나타운에서의 스몰토크가 떠오르는 묘한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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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염장한 가죽나물을 잘게 쪼개야 중국냉면에 좋은 향미가 난다”고 말씀하셨다. 허나 그렇다고 냉면에 가죽나물 맛만 가득한 건 아니다. 좋은 중국요리가 으레 그렇듯, 그릇 하나에 산과 바다가 골고루 담겨있다. 시원하고 상쾌한 육수에 고소한 땅콩소스, 오향장육, 건새우, 해삼 같은 중국식 고명이 풍부하게 들어간다. 면과 고명을 냉육수 안에서 대차게 섞어 먹으면 시식 준비 끝.

차가운 기운과 스파이시한 향미가 식사 끝까지 이어지는 멋진 냉면이었다. 더위로 지친 몸을 회복하는데, 이만한 보양식이 없다고 느낀다. 백리향의 경우 역세권인 합정 메세나폴리스 아케이드 안이라 접근성도 좋다. 가죽나물이 다 떨어지면 먹을 수 없다고 전해 들었으니, 이곳을 찾는 디에디트 면식러들의 행운을 기원한다.

📍백리향
중국냉면 10,000원
특이사항: 건새우가 완성한 냉육수의 풍부한 감칠맛과 바다내음


[4]
“호스트와 교감하는 식사를 좋아하시나요?”
우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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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테이블이 설치된 식당을 좋아하는 편이다. 점원과 스몰토크를 즐길 수 있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조리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만드는 사람의 노고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사장님에게 음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음식 만든 사람한테 직접 해설을 듣는 것 만큼 즐거운 식도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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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옥은 그런 점에서 스페셜한 식당이다. 호스트가 게스트를 적극적으로 드라이브한다. 음식 준비 상태나 시간대에 따라 호스트가 식당 이용방식을 능동적으로 일러주는 곳이다. <저녁 7시 반 이후 주문 시, 술주문 필수> 같은 룰을 따라야 한다. “주인 양반 참 기가 세네”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개인 대 개인의 소통이 식객 생활의 묘미라 여긴다면 이 또한 식당에서 누리는 대유잼 콘텐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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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옥에서의 식사는 블루보틀 카페에 갔을 때 받는 환대와는 사뭇 다르다. 가만히 있으면 정말 조용히 먹고 떠날 수 있다. 반면 게스트가 능동적일 때는 여러 가지 피드백을 얻어갈 수 있는 식당이라고 해야 할까.

퇴근길에 혼자 냉면 한 그릇 때리러 갔던 날이었다. 아마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고, 떠날 때까지 새로 온 손님은 없었다. 나처럼 호기심 많은 손님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상황이리라. 쉐프와 손님이 오랜시간 일대일 구도를 맞이했다. 우리는 가게를 찾는 동안 전국각지에서 맛있게 먹은 냉면에 대해 말했고, 거기에 달라붙은 응답을 통해 나는 풍부한 요리 지혜를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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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평양냉면처럼 보이는데 맛은 색다르네요?”
“영향은 받았을 텐데 굳이 평양냉면이라 말하긴 어려울 거 같아요.”

우주옥의 냉면은 사장님이 어릴 때부터 을지면옥을 드나들며 켜켜이 쌓인 입맛, 수십 년 간 냉면을 먹으며 느꼈던 장단점, 내가 먹고 싶은 냉면 취향을 조금씩 개선하며 내놓은 냉면이라 말했다.

먹부림 내돈내산의 끝은 직접 해먹기 인가. ‘내가 먹고 싶었던 서울식 물냉면’이라… 흥미로운 접근이다. 들은 바를 요약하면 향이 선명한 냉면을 구현하는 게 우주옥의 요리철학이다. 재료의 감칠맛을 배신하지 않는 최선의 향을 그릇 위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는 메뉴를 소금간과 간장간을 의도적으로 분리한 이유일테다. 냉면 한그릇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향미를 위해 쉐프가 음식 밑간까지 신경쓴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음식에 들어간 모든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음식이 더욱 먹음직스럽다. 선홍빛 고기 고명과 예쁘게 말린 면발, 잘게 썰린 동치미 배춧잎이 둥둥 떠다니는 냉육수를 단숨에 들이킨 채 가게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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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오면 음식에 대해 여쭤볼 수 있을까. 자기가 만든 걸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은 뭘해도 믿음직스럽다는 게 나의 오랜 지론이다. 힘들게 만든 수십인 분의 육수를 왜 버렸는지 굳이 밝히는 가게에 커다란 흥미를 느낀다. 호스트가 주도하는 냉면 가게를 다니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최근 솔드아웃 공지가 자주 뜨고 있다. 방문 전 가게 @woojoo.ok 인스타그램 확인을 권장한다.

📍우주옥
냉면 청(소금 베이스) 1만 2,000원
특이사항: 소금으로 간을 맞춘 상큼한 물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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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년

미식과 브랜드에 대한 글을 씁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 나란히 산책하는 일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