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디자인이 전부, 아이맥

안녕하십니까. 끼니를 치열하게 챙겨 먹어도 속이 헛헛한 여러분. 에디터H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면, 그건 아직 충분히 먹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도...
안녕하십니까. 끼니를 치열하게 챙겨 먹어도 속이 헛헛한 여러분. 에디터H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2021. 06. 22

안녕하십니까. 끼니를 치열하게 챙겨 먹어도 속이 헛헛한 여러분. 에디터H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면, 그건 아직 충분히 먹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도 사도 사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아직 충분히 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죠. 오늘은 최근에 가장 강한 물욕을 느꼈지만, 결국엔 헤어져야 했던 제품에 대해 짧은 단상을 기록해둘까 합니다. 바로 2021년형 M1 아이맥입니다.

DSC07106

혹시 제 언박싱 영상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온갖 오두방정과 호들갑을 다 떨면서 박스를 열거든요. 사실은 매일 같이 쏟아지는 신제품에 둘려싸여 살다보면, 아무리 좋아하는 애플에서 신제품이 나온다고 해도 예전만큼 놀랍거나 신기하지가 않습니다. 무뎌지는 거죠. 정말 오랜만에 “어머, 크레이지”를 남발하며 포장을 뜯는 모든 순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은 종이 박스 만으로 이토록 아름답고 견고한 포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죠. 박스 포장만 고민하는 팀이 따로 있나 싶을 정도로요. 써놓고 보니 왠지 그런 팀이 있을 것 같네요. 박스를 좌우로 가볍게 벌리면 아이맥이 자태를 드러냅니다. 묵직하겠거니… 생각하고 바디를 들어올리면, 당황스러울 만큼 가볍습니다. 이게 아이맥이 맞나 싶죠. 기존 21.5형 아이맥이 5.48kg이었는데, 새로 나온 24형 아이맥은 4.46kg에 불과합니다. 화면은 훨씬 널찍해졌지만 무게는 1kg 가량 비워냈죠.

DSC07160

전면에 붙어있던 포장지를 뜯어내면 컬러에 또 한 번 놀랍니다. 이렇게 쨍한 오렌지를 일체형 PC에 사용할 생각을 하는 회사가 또 어디있겠어요? 실물은 애플 홈페이지 속 랜더링 이미지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과감한 채도를 자랑합니다.

전면에는 핑크빛이 도는 연한 오렌지 컬러를 사용했습니다.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전면 모두 글래스로 마감해서 수채화 같은 색감을 냅니다.

DSC07167

후면에는 알루미늄 바디의 은은한 광택을 타고 흐르는 눈이 시린 오렌지 컬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황색’보다는 ‘코랄’에 가까운 컬러입니다. 거치대에는 한톤 밝은 오렌지를 사용해서 완급 조절까지 완벽하죠. 개인적으로는 블루, 그린, 핑크, 옐로, 퍼플, 그레이의 다양한 컬러 중에 오렌지가 가장 제 취향에 들어 맞았습니다. 화려한 컬러를 좋아하거든요.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겠죠. 쉽게 질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정말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감이에요.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이 디자인을 눈앞에 둔다면 자꾸만 쳐다보게 될걸요.

DSC07140

옆모습도 압권입니다. 더 얇거나, 더 두꺼운 부분도 없이 본체의 두께가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하게 11.5mm. 혹자는 “그냥 외장 모니터 아니냐”고 묻더군요. 그만큼 1cm가 조금 넘는 두께 안에 일체형 PC의 모든 부품이 들어가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DSC07169

덧붙이자면 각각의 컬러에 맞게 깔맞춤되어 박스에 담긴 마우스와 트랙패드, 키보드까지 볼 거리가 넘쳐납니다.

DSC07147

특히 오렌지 컬러로 마감한 우븐 케이블을 마주했을 때는 “와, 이런 것까지 신경썼어?”하고 또 감탄하게 되죠. 신제품을 처음 뜯을 때의 ‘그 재미’를 몇 년 만에 되찾은 기분이었어요. 게다가 자석을 ‘딱’붙는 전원 커넥터의 쾌감은 어떻고요.

DSC07112

그래도 명색이 PC 리뷰인데, 너무 디자인 얘기만 하는 건 아니냐. 아이맥 디자인 바뀐 건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지겹다. 아마 이 호들갑스러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분들이라면 지금쯤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게요. 아무리 예뻐도 제가 너무 디자인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신형 아이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디자인, 둘째도 디자인, 셋째도 높은 확률로 디자인입니다. 이 제품의 모든 아이덴티티가 이 슬림하고 화사한 디자인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완성된 디자인을 실컷 감상했으니 거꾸로 되짚어봅시다. 어떻게 이런 디자인을 만들 수 있었을까?

2012년에 나왔던 아이맥 디자인을 9년 동안 울궈먹었던 애플입니다. 물론 이전 세대의 아이맥 역시 일체형 PC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9년은 너무 심하잖아요? 애플이 같은 디자인을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한 이유는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같은 성능을 유지하면서 더 슬림한 디자인을 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DSC07119

결국엔 프로세서 자체가 달라지는 것만이 방법이었던 거죠. 아이맥 디자인의 해답은 애플의 첫 번째 자체 제작 프로세서인 M1이었습니다. M1은 아주 재밌는 프로세서입니다. 모바일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성능부터 형태까지 기존의 모든 문법을 바꿔버렸죠. 가장 인상적인 건 ‘시스템 온 칩’ 구조입니다. 이게 오늘 이야기의 키 포인트이기도 하죠. 각기 흩어져있던 프로세서, 그래픽, 메모리 등의 여러 요소를 칩 하나에 통합해서 설계했다는 뜻이죠. 이 설계 방식은 두 가지 효과를 낳습니다. 하나는 작업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세서가 차지하는 물리적인 공간이 줄어든 만큼 아이맥의 디자인도 콤팩트해질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PC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발열 관리입니다. 모든 전자제품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성능이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M1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습니다. 발열 제어가 기존 인텔 프로세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죠. 그래서 아이맥에는 아주 작은 냉각팬이 들어갔습니다. 이 역시 공간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겠죠. 결과적으로 M1의 구조적인 특징과 효율, 발열 관리 성능이 만나 이렇게 얇은 11.5mm의 아이맥이 탄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재밌죠?

DSC07161

물론 저는 결국 이 제품을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M1의 성능에 만족하면서도 프로급 모델에 대한 갈급함이 아직은 남아있기 때문이죠. 이 제품은 아이맥 27인치 제품을 대체하는 모델은 아닙니다. 기존 21.5인치의 자리를 차지하는 컬러풀한 대안이죠. 가격으로보나 화면 사이즈로보나 최상위 모델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씩은 빠져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열 없이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걸 보면 더 욕심이 나는 거죠. 소문 속의 M1X(이름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프로세서는 얼마나 더 좋을까? 얼마나 이 바닥을 뒤집어 놓을까 하구요. 그래서 이번 아이맥은 우아하게(?) 스킵했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영상 작업까지 도전하려는 모든 일체형 PC 러버들에게 이 제품을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영상을 봐주세요. 아이맥의 새로운 디자인과 그 이유에 대한 저의 짧은 기록은 여기까지. 사진 속의 자태를 다시 들여다봐도 여전히 탐나는 제품이네요.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