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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이란 뭘까요

좋은 사진이란 뭘까? 구도와 빛, 색감부터 시작해 많은 조건이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냥 글쟁이다. 사진에는...
좋은 사진이란 뭘까? 구도와 빛, 색감부터 시작해 많은 조건이 있겠지만 내가 할…

2016. 12. 08

좋은 사진이란 뭘까? 구도와 빛, 색감부터 시작해 많은 조건이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냥 글쟁이다. 사진에는 문외한인데다 아무리 많은 카메라를 써도 늘지 않는 순수한 사진실력을 지녔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사진도, 글도 좋은 작품은 애정어린 시선에서 나온다는걸.

언젠가 함께 했던 그 남자는 사진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매번 사진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내미는 내게 심드렁한 셔터 소리로 답했다. 사진은 대체로 엉망이었지만,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n26
[그 사진은 아니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찍어준 쇼핑 후 활짝 웃는 모습]

뭐가 우스웠는지 자지러지게 웃는 내 모습을 몰래 촬영한 사진이었다. 당시엔 뚱뚱해 보이게 나왔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예쁘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맞다. 예쁘다.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다. 사진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그가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나를 좋아했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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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주아주 먼 땅에서 네 명의 남자로부터 전해지는 사진과 이야기를 확인하는 재미에 산다. 다른 기사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나의 ‘파고남’. 지구 반대편에 있는 거대한 땅 ‘파타고니아로 떠난 남자들’ 말이다. 사막과 설산, 빙하가 떠다니는 바다를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종주한다는 그들의 ‘무동력 원정’은 두렵고도 근사하다.

파고남과 함께하는 GS칼텍스는 웹사이트(http://namyoungho.com)를 통해 하루하루 그들의 여정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벌써 탐험 37일째를 맞이했다. 3,000km가 넘는 여정 중 1,720km를 넘겼다. 까마득히 먼 땅에서 파고남들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건 내게 큰 용기를 준다. 지금 일어나는 힘든 일 따위야 3,000km의 거친 여정처럼 견디다 보면 언젠가 끝나는 모험이라는 생각에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I Am Your Energy. 지금의 파고남에게 딱 맞는 슬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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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남은 모두 네 명. 사막 전문 탐험가 남영호 대장과 탐험가 박대훈 대원. 그리고 이 여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기 위해 마찬가지로 험난한 모험길에 오른 최남용 사진작가, 이듀마 촬영감독이 함께한다. 남영호 대장과 진하게 와인을 마시며 인터뷰한 인연으로, 파고남의 여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허락을 구하고 파타고니아에서 어렵게 전달된 사진 중 일부를 공개한다.

나는 사진 찍기를 참으로 즐기는데, 이상할 만큼 조악한 결과를 내놓는다. 혹자는 아무 생각 없이 셔터만 누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론하지 않았다. 나는 늘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보이는 모든 것을 찍으려고 하니까.

d800

원정 전에 남영호 대장에게 사진에 대해 물었다. 그 역시 탐험가가 되기 전에는 사진 기자로 일하기도 했으니 탐험에서도 직접 사진을 찍는다더라. 카메라 기종을 물었더니 니콘 D800을 쓴다고 답했다. 니콘 카메라를 선호하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더니 피식 웃었다.

“찍는 놈이 문제지 카메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렌즈마다 특성이 있고 브랜드마다 캐릭터가 있지만, 작가가 그걸 이해하고 있기만 하다면 남은 건 감성의 문제라는 대답이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했을 땐 올림푸스 카메라를 썼고, 캐논 5D 마크2를 썼을 때도 있더라. 다 좋은 카메라였지만 니콘의 찰칵거리는 셔터가 손에 가장 잘 감겼다고 했다.

“물건을 빨리 바꾸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좀 더 화소가 높고, 색감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최신 기종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D800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그림을 담아낼 수 있다고. 왜 아직도 오래된 핫셀블라드와 라이카를 쓰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문제라더라. 성능이나 연식보다는 장비와 작가와의 궁합이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진 찍는 건 일종의 수행 같아요”

이번 원정의 ‘얼굴’인 남대장은 막상 탐험중인 본인 모습을 담는 것에는 크게 욕심이 없다고 했다. 대신 고독한 사막에서 본인이 마주한 풍경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사진 찍는 걸 수행, 혹은 명상에 비유한 점도 흥미로웠다. 내게는 사진을 찍는 일이 유희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괜히 더 멋있어 보였다.

5d

파타고니아에서 도착한 사진은 모두 최남용 작가가 촬영한 것이다. 남대장이 촬영한 사진도 추후에 보여드릴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최작가가 사용한 카메라는 캐논 5D 마크2. 좋은 카메라지만, 특별하거나 최신 모델은 아니다. 나 역시 오래 사용했던 카메라기도 하고. 그런데 그가 보내준 사진은 특별해 보인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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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서 파고남들은 튀지 않는다. 가끔은 숨은그림찾기 처럼 깜찍한 컷도 눈에 띈다. 두 탐험가가 붉은 재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난 저들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저 낯설고 거대한 미지의 땅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픈 마음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도시에 있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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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미 파타고니아의 일부처럼 보인다. 흙먼지 날리는 길 위를 자전거 하나로 가로지르는 그들의 모습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심장이 벅차오르고 호흡이 가빠오는 상황일 텐데도, 이 광경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과장도 하지 않고, 강요도 하지 않는다. 이게 파고남들이 사진으로 보내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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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한 장을 볼 때마다 남대장이 말했던 ‘수행’의 의미를 실감한다. 저 거대한 풍경 속에서 파고남은 너무나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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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작은 인간이 오로지 제 신체에서만 나오는 힘으로 거대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겠다고 덤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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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탐험가의 뒤를 쫓는 것처럼 사진 속에서 당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저 높은 곳에서 아직도 막막하게 남은 여정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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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토의 10배에 달한다는 파타고니아의 거대함을 보자. 이 무동력 원정이 얼마나 거칠고 무모한지가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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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해낼 수 있다. 그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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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의 모습을 불필요하게 강조하지 않는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오히려 현지의 분위기를 현실감 있게 담았다. 파타고니아 현지에서 마주친 사람들, 손길, 동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와 애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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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을 가로지르는 양 떼들은 나보다 더 대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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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마저 핸섬한 이 남자는 현지에서 파고남을 돕고 있는 동료 토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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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사막을 건너던 중에 파타고니아의 카우보이라 불리는 가우초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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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초들은 유럽과 원주민의 혼혈로 말을 타고 유목생활을 한다고. 그들의 축제 역시 사진으로 접할 수 있었는데, 말을 다루는 모습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지다.

이 사진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세상 밖 지구 건너편에는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풍경이 숨겨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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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조차 근사하다. 사실 이 사진에는 비밀이 있다. 앞서 봤던 사진과는 다르게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아이폰7 플러스다. 역시 장비가 좋아야만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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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노라마 역시 아이폰7 플러스로 촬영한 것. 내가 봤던 아이폰 파노라마 사진 중 가장 멋지다. 어쩌면 이렇게 찍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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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은 묵직한 카메라로 각잡고 촬영한 것과는 다른 맛이 있다. 이렇게 식탁에 차려진 소박한 점심상을 구경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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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서 사과를 씹는 남대장과 박대원의 익살스러운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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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좋은 매체다. 가보지 않은 곳을 경험할 수 있고, 말로 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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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간 무기력했다. 이어지는 출장과 밤샘 마감 탓에 잠이 부족했고, 조급한 성격 때문에 고민을 달고 살았다. 자려고 폭신한 베개에 머리를 대고도 초조함을 밀어내지 못 했다. 요즘의 나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하다. 이렇게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하면서도, 더 큰 꿈을 이루고 싶다는 욕심에 숨이 턱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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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으면 페이스북도 괜히 넘겨보고, 파고남들이 보내준 사진 폴더도 아무 생각 없이 열어 본다. 파타고니아의 사막을 건너는 네 명의 남자를 생각하며 고민을 떨치곤 한다. 그 거대한 사막에 놓인 파고남의 작고 작은 뒷모습을 생각한다. 파고남도 사막을 건너고, 나도 사막을 건너고 있다.

‘좋은 사진이 무엇일까’라고 건방지게 서두를 던졌지만 나는 감히 정의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도 지금 여러분께 보여드린 파타고니아의 사진은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향한 애정 가득한 시선과 삶에 대한 에너지가 묻어나지 않는가. 도시에 있는 나와 여러분의 심장도 뛰게 할 만큼.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정리하며 긴 글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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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이렇게 크고, 두렵고, 아름다운 각자의 사막을 건너고 있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