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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고운 소리, 베오플레이 E8 3세대

자본주의란 비정하고 매력적이다. 살면서 한 가지 재미를 깨우칠 때마다 돈 들어갈 일이 뒤따르곤 했다. 주량이 소주 두 병인 게 자랑이던...
자본주의란 비정하고 매력적이다. 살면서 한 가지 재미를 깨우칠 때마다 돈 들어갈 일이…

2020. 04. 08

자본주의란 비정하고 매력적이다. 살면서 한 가지 재미를 깨우칠 때마다 돈 들어갈 일이 뒤따르곤 했다. 주량이 소주 두 병인 게 자랑이던 20대 시절엔 술값이 무섭지 않았다. 참이슬보다 처음처럼이 좋다는 게 나의 유일한 취향이었고. 거기엔 추가 비용이 없었다. 30대로 넘어오며 와인과 증류식 소주, 위스키를 깨우치며 술값에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한 잔에 삼 만 원짜리 위스키는 왜 그리 목구멍을 터프하게 긁어대는가. 계산서를 두려워하면서도 더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다는 발칙한 야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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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어폰에 위험한(?) 관심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아직 위험할 정도로 비싼 제품에 손을 뻗지는 못했지만, 아이폰에 번들로 따라오는 이어팟을 들으며 “오오 최고야”라고 생각하던 게 고작 몇 년 전인데. 지금 내 양쪽 귀에 꽂혀있는 제품은 베오플레이 E8 3세대다.

뱅앤올룹슨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 평가가 갈린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어떤 ‘클라스’에서는 쳐주지 않는 감성 브랜드라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만드는 회사에서 만든 이어폰만 주로 듣던 내 입장에서 뱅앤올룹슨 정도면 꽤 가파른 신분 상승이 아닌가. 무선 이어폰에 45만 원이라는 가격도 만만치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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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패키지와 제품의 뛰어난 만듦새, 뭐 이런 것들은 당연한 얘기다. 내가 궁금한 건 소리나 블루투스 기기로서의 안정성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격에 대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시큰둥했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가격을 납득하게 할 만한 고급 기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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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질은 얼마나 좋을까? 무선 이어폰이 좋아봤자 얼마나 차이가 날까 싶었다. 하루종일 베오플레이 E8 3세대로 음악을 들어봤다. 어떤 노래를 들을 땐 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노래를 들을 땐 다른 제품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갸우뚱했다. 그러다 원래 쓰던 에어팟 프로를 껴봤다. 갑자기 소리가 달라졌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좁아지고 보컬의 목소리가 답답하게 들렸다. 이렇게 간사할 때가. 좋은 건 몰라보던 내 막귀는 더 안좋은 건 귀신같이 구분해내더라. 사실 에어팟 프로의 사운드에 큰 불만이 없었던지라 더더욱 놀라웠다. 계속 번갈아 가며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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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다른 무선 이어폰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공간 표현력이다. 내가 요즘 이어폰 리뷰할 때 자주 듣는 유튜브 영상이 있는데 포스트 모던 주크박스라는 채널에서 리메이크한 ‘Seven Nation Army’를 들어보자. 노래 시작과 함께 딱, 딱 핑거 스냅 소리가 들리는데 정말 소리가 관자놀이 부근에서 들리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이후에도 트럼펫 소리나 피아노 소리, 보컬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명료하게 구분되어 들리는 것도 인상적이다. 나의 지인 기즈모님은 베오플레이 E8 3세대의 사운드를 ‘카랑카랑하다’고 표현하던데, 듣다 보니 알겠다. 정말 카랑카랑하고 깨끗한 소리를 뽑아낸다. 고음이 선명하고 탁하거나 뭉개지는 영역이 없다. 듣기 좋은 사운드다. 평소에 듣던 다른 노래도 이 이어폰으로 들으면 에어팟으로 들을 때보다 훨씬 좋다. 귀가 탁 트이는 느낌. 이런 게 돈값을 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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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자면 통화 품질도 훌륭하다. 주변 소리 모드는 에어팟 프로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구현해서 사용할 때 이질감이 거의 없다.

사실 몇 년 전에 베오플레이 E8 1세대 제품을 사용했었는데, 그때보다는 착용감이나 배터리 시간, 편의성 면에서 많은 점이 개선됐다. 일단 충전 단자가 마이크로 USB에서 USB-C로 진화했으며, 무선충전을 지원하게 되었고, 최대 35시간이라는 강력한 재생 시간까지 확보했다. 그래도 여전히 기기를 바꾸며 페어링하는 과정이 버벅이는 모습이나 전용 앱의 불안함이 아쉽다. 이미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앱을 실행할 때마다 기기를 찾고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아쉽다. 45만 원짜리 이어폰에 이런 앱을 연결해서 사용하게 하다니.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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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선 이어폰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서 더할 나위 없는 성능을 보여준 제품이었다. 소리가 좋고, 통화가 잘 된다. 계속 듣다 보니 욕심마저 생긴다. 이게 45만 원어치의 사운드라면, 더 비싼 건 어떨까? 이거보다 더 좋은 제품도 들어보고 싶어진다. 적신호다.

전작과의 자세한 비교 리뷰는 영상으로 담았으니 확인해주시길. 오디오 뉴비 에디터H의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