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쉐어하우스에 살아보니

안녕, 쉴새없이 돌아다니는 에디터B다. 언젠가는 쉐어하우스에 살아보고 싶었다. 이 욕망의 뿌리를 캐면 <하트시그널>이 나오고, 더 캐면 <논스톱>과 <남자 셋 여자 셋>이 나온다....
안녕, 쉴새없이 돌아다니는 에디터B다. 언젠가는 쉐어하우스에 살아보고 싶었다. 이 욕망의 뿌리를 캐면 <하트시그널>이 나오고,…

2020. 01. 20

안녕, 쉴새없이 돌아다니는 에디터B다. 언젠가는 쉐어하우스에 살아보고 싶었다. 이 욕망의 뿌리를 캐면 <하트시그널>이 나오고, 더 캐면 <논스톱>과 <남자 셋 여자 셋>이 나온다. 알고 있다. 방송에서 본 쉐어하우스의 이미지는 편집된 거라는걸. 지루한 순간, 재미없는 농담, 적막을 걷어내고 유쾌하고 달달한 순간만 남겨놓았겠지.

그래도 궁금했다. 해 본 적 없었으니까. 그래서 2주 동안 역삼동에 있는 커먼타운 트리하우스에서 살아보았다.  평소 공간 리뷰는 밖에서 시작했다. 이번에는 안에서부터 시작해도 될 것 같다. 오늘만큼은 잠시 들리는 손님이 아니라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하는 집주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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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뷰다. 내가 있는 6층은 복층 구조로 되어있다. 트리하우스는 8층짜리 건물이고 70세대에 가까운 입주민이 사는데, 모든 층이 복층은 아니다. 지금은 블라인드를 열어놓았는데, 리모컨을 이용하면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도 블라인드를 조작할 수 있어서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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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자. 나는 고작 2주밖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짐이랄 것이 없다. 거실이 이렇게 휑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1층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월패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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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을 찰칵 찍어서 친구에게 보여주니 타공판 같다고 하더라. 생김새는 취향을 타겠지만, 실용적이다. 막대기를 원하는 위치에 꽂으면 옷걸이가 된다. 위치를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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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면 막대기에는 살짝 홈이 있어서 옷을 걸어 놓아도 쉽게 흘러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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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공간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으레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짐이 많아지기 마련. 엄청난 미니멀리스트가 되거나 엄마가 짐을 버리지 않는 이상 짐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납공간은 많을수록 좋다. 커먼타운은 곳곳을 수납공간으로 잘 활용했다. 계단 밑을 열면 비밀 공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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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거울처럼 보이지만 이곳 역시 거울 안에 옷장이 숨겨져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옷장에 거울을 붙인 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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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을 거의 안 가져와서 화장품만 넣어두었다. 그리고 사방이 거울이라 방이 더 커 보이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복층이라 층고가 높아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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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세탁기조차 이렇게 숨겨 놓았다. 세탁기를 언뜻 보면 크기가 작아 실망할 수 있는데,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 작은 세탁기엔 건조 기능이 있다. 난 언젠가 건조 기능이 있는 세탁기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그게 바로 나만의 성공 지표다. 이게 온라인 게임이라면 내 머리 위에 이런 호칭을 하나 달고 싶다. ‘건조 기능이 있는 세탁기를 써 본 남자’

이제는 밖으로 나가보자. 집 안보다는 밖에 더 볼 게 많다. 커먼타운에서는 디테일한 요소 덕분에 살짝 감동할 때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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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엘리베이터 소환 버튼이다. 신발을 신기 전에 일단 버튼을 누르면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아 참, 나가기 전에 블라인드를 치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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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히는 중이다. 블라인드는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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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잉  위이이잉. 닫혔다. 이제 정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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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디테일. 비밀번호 입력 버튼은 손잡이에 있다. 이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문 디자인이 심플해서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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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문 옆에 있는 우산 보관대. 비에 젖어 축축해진 우산을 밖에 펼쳐 놓으면 미관상 좋지 않고, 실내에 두자니 찜찜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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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세트장이 아니고 복도다. 중앙이 비어있는 ‘ㄷ’자 복도와 철제펜스 때문인지 왠지 교도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원래 의도는 입주자끼리 마주 볼 일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디자인한 거라고 한다. 복도에 나와서 맥주 한 잔하다가 건너편의 이웃과 눈인사하는 그런 상황.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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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는 테라스가 있다. 여기서는 바베큐 파티를 할 수도 있고, (걷기엔 좁지만)산책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 집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이런 곳이 있다니 호사스럽다. ‘호사’라는 단어를 쓰고 나니 시칠리아에서 디에디트는 얼마나 부자처럼 살다 온 걸까. 거긴 집 안에 정원이 있었는데. 궁금하면 여기로. 바베큐를 구워 먹다가 바람 쐬러 나온 이웃에게 “안녕하세요, 봄날의 바베큐 좋아하세요?” 그러겠지. 그러면서 친해지고.

커먼타운에서 내가 주로 이용하는 층은 6층 아니면 1층이다. 웬만한 공용공간은 1층에 모두 몰려있다. 그러니 1층으로 가보자.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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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려갑니다. 여기는 6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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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3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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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그린라운지’라는 로비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커먼타운의 핵심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트리하우스라는 이름답게 초록 식물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여기도 나무 저기도 나무. 아토피가 절로 낫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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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방도 아니고 로비에 식물 좀 많은 게 뭐가 좋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로비가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몰라서 그렇다. 물론 여기는 공용주방, 공용세탁실 등이 중요한 시설이 있지만 그건 부가 시설에 불과하다. 주 기능은 커뮤니티 프로그램.

나는 입주민들과 몇 번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입주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예를 들어 커피 투어, 맥주 시음회, 도심 달리기, 요가 같은 것들. 이건 외부 강연자를 초청한 게 아니라 모두 입주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입주자들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맥주 시음회는 제주맥주 마케터가 진행하고, 도심 달리기는 88서울 크루원이 주최한다. 모두 커먼타운 입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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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양도성 이야기’에 참가했었다. 등산과 역사를 결합한 아웃도어 콘텐츠를 만드는 이원창 님이 주최한 프로그램이었다. 한 시간쯤이 지나자 강연이 끝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과 막걸리가 세팅되었다. 놀랍게도 술과 안주는 강연자가 자비로 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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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강연보다는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기애애해 보였다. 다들 너무 친해 보여서 ‘나 빼고 모두 절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한두 번씩 얼굴을 마주치고 술을 같이 마시다 보면 친해질 수밖에 없겠더라. 다른 지점 입주민도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신기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었다. 아니, 내가 잊고 있었던 세상이었다. 대학생 때 기숙사가 이런 느낌이었다. 친구의 친구를 쉽게 만나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방송 작가를 했다는 사람이 있었고, 한국에 몇 명 없는 씨서론(맥주 소믈리에)도 있었다. 사실 나는 그 분위기가 정신없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10시쯤이 되자 절반 정도는 2차를 하러 갔다. 그린라운지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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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라운지 옆에는 공용 주방이 있다. 물론 각자의 방에도 주방이 있긴 하지만, 여기가 더 넓고 다양한 도구가 갖춰져 있다. 그러니 본격 요리를 할 거라면 공용주방을 이용하는 게 낫다. ‘귀찮게 1층까지 내려와서 음식을 해 먹는다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한다. 여기서 같이 요리를 하고 여기서 같이 먹는다. 그게 쉐어하우스의 라이프스타일이더라. 이런 걸 보면 <하트시그널>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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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 디에디트도 직원들에게 커피를 무제한으로 제공해주는데, 원두 재고를 관리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기선 내가 마시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다.

무제한 제공은 좋지만 1층까지 내려와서 커피를 마시는 게 큰 혜택 같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커먼타운에는 프리랜서도 많다. 이들은 커먼타운을 사무실 겸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들에게는 큰 혜택 오브 혜택이다. 사무실에 커피가 없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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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보이는 공간은 바로 업무&공부를 위한 곳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주말 아침 일찍 방문을 해서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평일 저녁에는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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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는 아니고 오른쪽에 테이블이 더 있다. 사람이 있어서 찍지는 못했다. 바로 옆 그린라운지에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독서실처럼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고, 카페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외에도 1층의 공간을 하나만 더 소개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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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려동물을 목욕시킬 수 있고, 바로 옆에는 작은 공원도 있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1인 가구를 배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공간을 다 소개하지는 않았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마룸, 프린터기도 있었지만 하나씩 다 설명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쉐어하우스가 사람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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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직장인들은 감기에 걸리듯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 그 감정의 원인이 정말 혼자 살기 때문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여가 생활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연애나 결혼을 선택하곤 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고. 쉐어하우스를 보니 연애와 결혼 외에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더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유튜브를 봤다가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는 삶. 그런데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건 가끔 울적하게 만든다. 지금은 그 감정에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쉐어하우스에 살면서 저녁에 입주자들과 세 번 정도 대화할 일이 있었다. 얘기를 하다가 “시간 더 있으면 맥주 한 잔할까요?”라고 해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고민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난 뒤엔 각자의 층으로 돌아갔다. 혼자 살지만 같이 사는 느낌, 쉐어하우스의 매력인 것 같았다. 쉐어하우스를 떠나기 전 날에는 수육을 끓여줄 테니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뭐지, 여기는. 더 살아보고 싶어졌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