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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의 뿌리를 뽑아라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취재하러 갔다가 원고료보다 많은 돈을 쓰고 와서 슬픈,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취재하러 갔다가 원고료보다 많은 돈을 쓰고 와서 슬픈,…

2018. 11. 12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취재하러 갔다가 원고료보다 많은 돈을 쓰고 와서 슬픈,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묘에 다녀왔다. 분명 취재하러 간 거였고 나름대로 예산도 정해두고 갔는데 나는 왜 원고료보다 많은 돈을 쓰고 온 걸까… 뭐, 그 이유야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동묘를 가보시면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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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번에 동묘에 가서 무척이나 고통받았는데, 그 이유는 내게 원고를 의뢰한 에디터 M의 말을 오해한 탓이다. 동묘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고 나서, 에디터 M이 ‘동묘에 가면 뭘 하니?’라고 묻길래, 나는 그냥 궁금해하는 줄 알고 ‘요즘 유튜브 같은 거 보면 금액 제한 걸고 미션같은 거 하던데요.’라고 답했다. 아뿔싸. 그렇게 이번 글의 컨셉은 정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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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나는 이번에 단돈 5만원으로 ‘신발 – 하의 – 상의’ 풀착장을 찾는 모험을 떠나야만 했다.


“구제를 왜 입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혹시 왜 구제따위를 입냐라고 질문하시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인 동묘 탐방기를 시작하기 앞서 여러분이 갖고 있는 구제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할듯 싶다. 구제 혹은 빈티지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오해는 크게 두 가지다. ‘헌옷수거함에서 주워오는 거 아니냐?’로 대표되는 퀄리티 걱정과 ‘그거 순 제멋대로 가격 정하는 거 아니냐?’로 대표되는 구제 상인에 대한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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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상인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께 ‘100% 이렇습니다!’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동묘를 7년째 다니고 있는(에헴) 내가 아는 한 구제 매장에 제품이 들어오는 방법은 꽤 다양하다.

첫 번째는 브랜드나 옷가게가 망해서 재고를 사오는 경우다. ‘사장님이 미쳤어요’나 땡처리 같은 걸 생각하면 쉽다. 애초에 망한 걸 받아오는 거니까 싸게 들일 수 있다. 그리고 가게가 망해서 못 판 물건들이니 사실 진짜 구제도 아니고 그냥 새 물건이다. 물론 구제 상인들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다른 물건보다는 비싸게 파는 경우가 많으니 이건 따로 참고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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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도매상을 통해서 구매하는 거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있기 마련이라고, 중고 물품만 취급하는 중간 업자가 따로 있다. 매일매일 시장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공수하는 식당 주인들처럼 동묘의 구제 상인들도 중간 업자를 통해 괜찮은 옷을 골라온다. 그러니까 동묘에 있는 가게들도 나름대로 다 선별과정을 거친 셀렉숍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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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우려하는 헌옷수거함이나 도매상에서도 안팔리는 악성재고의 경우는 대부분 매장으로는 못 들어가고 대개 길거리에 쌓여있는 옷 더미로 가는 경우가 많다. 정리하자면 매장에 있는 옷은 ‘주워온 옷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다시 말하자면, 옷 더미에 있는 옷은 입을 만한 옷이 못 되니 되도록 사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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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본적으로 매장이나 예쁘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것들은 주인의 취향과 안목으로 선별한 퀄리티가 어느정도 보장된 옷들이라는거다. 구제 상인도 장사를 해야하는데, 넝마 조각을 팔면 장사가 될리가 없지 않겠나. 게다가 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와서 점점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되는 상황이다.

dognmyo[당신이 고등학교때 배운 수요와 공급 곡선]

가격도 마찬가지다. 수요과 공급 곡선이라는 건 다들 한번쯤 들어보셨을거다. 시장원리에 따라서 적정가격을 찾아가는 그 그래프. 여러분이 고등학교 때 졸지 않으셨다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그래프다. 이 시장원리는 동묘에서도 기가막히게 적용된다. 동묘에도 ‘시세’라는 게 있다. 너무 비싸면 사람들이 안 사고, 너무 싸면 손해니 나름대로 정해둔 적정 가격이 있는데, 어느 매장을 가도 다 비슷비슷한 가격대인 걸 알 수 있다. 대충 청자켓은 만 원에서 만 오천 원, 바지는 이만원 언저리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정말로 한 두번만 가봐도 충분히 가격에 대해서 감이 온다. 정찰제가 아니라고 쫄지 말자.

batch_dongmyo_2[젊은 사람들이 가는 가게와 나이드신 분들이 가는 가게가 뒤섞여있는 것도 동묘의 매력이다]

좋아, 이제 다시 5만 원을 들고 동묘로 떠난 나의 이야기다. 단돈 5만 원으로 신발, 바지, 윗도리를 산다고? 무리가 아닐까? 솔직히말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동묘에서는 불가능하진 않다. 구제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가격이다. 솔직히 말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싸다. 단, 여러분은 돈 대신 시간을 써야 한다. 원하는 물건을 좋은 가격에 찾을 때까지 발품을 팔아야한다. 시간은 금이라는데 결국엔 시간+돈 쓰고 중고를 사면 손해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러분의 인건비를 생각해도 싼 편이니까 걱정하지 말자. 게다가 원하는 옷을 찾았을 때의 쾌감은 정말….! 심봤다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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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바쁘게 발품을 팔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옷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게 주어진 금액은 단돈 5만 원. 이곳은 교환과 환불도 어려우니 최적의 선택을 해야한다. 오늘 여러분께 내 7년 동묘 생활의 모든 영업 비밀을 쏟아낼 생각이다. 동묘를 처음 가시는 분들에게도 제법 쓸 만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으니, 참고하시라.


“어찌하면 동묘에서 뽕을 뽑을까”

batch_ dongmyo_45batch_dongmyo_efwe[이렇게 이쁜 셔츠가 5,000원, 이렇게 이쁜 바지가 3만 원도 안 한다]

어쩐지 동묘에선 흥정을 잘 해야한다는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다. 물론 흥정은 구제시장의 꽃이다. 하지만 절대로 무리해서 흥정하지 말자. 여기서 무리하지 말라는 건 두 가지 의미다.

흥정엔 소질이 없는데 왠지 해야할 것 같아서 억지로 한다거나, 가격을 너무 후려쳐서 구제 상인을 곤란하게 만들지 말라는 거다. 동묘에도 상도덕이란 게 있다. 아까 말했듯 이곳도 나름대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흥정을 안 해도 엄청나게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흥정이란 것은 단 돈 몇 천 원을 아껴 잘 먹고 살아 보자는 의미가 아니라, 이곳에서 쇼핑하는 재미를 더해줄 요소에 가깝다. 그러니까 제발 재미도 없고 소질도 없으면 하지 말자. 디에디트의 모토처럼 우리는 사는 재미가 없으니 사는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쇼핑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거지 스트레스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니까.

batch_P1000359[빛 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주인 아저씨의 손]

하지만 그럼에도 흥정을 해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서 여기 몇 가지 예문을 드리겠다. 이대로만 따라하자. “사이즈가 좀 애매한데, 안 맞을 수도 있으니 좀만 깎아주세요” “장수 깔끔하게 맞춰주세요(5만원권 1장이라든지, 만원짜리 1장으로 맞추자든지)” 등이 있다. 인터넷 보면 “세탁비 드니까 깎아주세요”하라고 하는 것도 있던데, 내가 해보니 그런거로는 잘 안 깎아준다. 아마 앞에 이런 멘트를 던져봤자 여러분이 받을 답변은 바로 “이미 세탁된거에요”일테니까.

batch_P1000245[이런 건 흥정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혹시 흥정 방법 중 ‘안 사고 그냥 나간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셨나. 요즘 동묘엔 워낙 사람이 많아서 당신이 사지 않아도 누군가는 사갈 확률이 높다.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이 정말 마음에 들어했던 그 옷이, 잠시 나간 사이에 누군가가 가져갈 수도 있다는 거다. 실제로 이미 동묘에 빠삭하다고 자부했던 나도 칼하트 퀄팅 조끼를 사려고 했었다가 잠시 다른 곳에 간 사이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바람에 실패했다. 아, 아직까지도 눈에 아른거린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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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옷을 다 사라는 건 아니다. 동묘가 처음이라면 상상도 못한 저렴한 가격과 괜찮은 퀄리티에 괜히 이 옷 저 옷 집어올 확률이 높은데 100% 후회한다. 기본적으로 옷이라는 게 나랑 어울린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옷이랑도 어울려야 한다. 일단 내 옷장에 있는 옷이 무엇인지 기억한 뒤,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이 구제가 내 옷들과 어울릴까를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내 옷과 어떻게 조합해봐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면 사지마라. 아무리 값싸게 샀어도 어울리는 게 없으면 안 입게 된다. 예쁜 옷 사놓고 못 입으면 속만 쓰리다. 만약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쁜 옷이라면 차라리 전신의 옷을 싹 다 사버리자. 그게 나을 수도 있다.


“먼저 신발과 바지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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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에서 풀착장을 사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코디하자. 이건 비단 구제 뿐만 아니라 모든 옷을 살 때 통하는 쇼핑룰이다. 신발이랑 바지를 정하고 상의를 맞추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지만, 상의를 정하고 거기에 바지와 신발을 맞추는 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찾기도 어렵다.


“하나 보다는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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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팁이다. 꼭 친구랑 가라. 많이 갈 수록 재미는 2배, 3배, 4배로 는다. 아무것도 안 사도 구경하는 맛이 있는 동네인데다, 서로 누가 더 괜찮은 걸 찾나 미션을 거는 것도 추천한다. 상금은 밥 사기 정도가 적당하겠다. 무엇보다, 내가 정신을 잃고 미친듯이 물건을 사기 시작할 때 브레이크를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참고로 나는 회사를 다니는 친구한테 업무시간에 전화해서 통제해달라고 부탁했다. 헤헤. 물론 그럼에도 실패했지만.

batch_dongmyo_ere[동묘엔 싸고 맛있는 게 많다. 칼국수 한 그릇에 단돈 오천 원도 안 된다]

아, 5만 원으로 풀착장 맞추기는 어떻게 됐냐고? 마음이 아프지만, 실패했다. 꽤 괜찮은 상의를 5천원에 찾아내서 기쁜 마음에 선뜻 구매했고, 3만 원짜리 바지는 사장님과 흥정에 흥정을 거듭해 2만 5천 원에 구매했다. 그럼 2만원이나 남았는데, 왜 실패냐고? 마음에 드는 신발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다. 신발은 사지 못했다. 위아래랑 어울리는 신발이 없더라. 여러분, 내가 말하는 팁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렇게 몸소 실패해드렸다. 진짜다.

P10201961_2-side[그래도 옷장에 있는 옷들을 생각해서 골라서 셔츠는 이렇게 이쁘다]

처음에 말한대로 원고료보다 옷 사는 데 돈을 더 많이 써버렸다. 5만원 미션 이외에도 점프수트도 사고, 체인도 사고, 자켓도 사고…. 셀 수 없이 사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여러분에게 알려줘야 할 주의점들을 정말로 온 몸으로 느꼈으니까. 게다가 옷은 남으니까. 나는 괜찮다. 아마도 괜찮다(눈물). 여러분, 당장 동묘로 떠나자. 그리고 뽕을 뽑기는 커녕, 뽑혀버린 나 대신 동묘의 기둥뿌리를 확 뽑아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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