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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담은 나의 서울

“있잖아. 나 독일 친구가 놀러오는데, 서울은 어디가 좋지?” 최근 들었던 가장 난이도 높은 질문이었다. 멘탈에 지진이 왔다. 명동과 인사동은 너무...
“있잖아. 나 독일 친구가 놀러오는데, 서울은 어디가 좋지?” 최근 들었던 가장 난이도…

2017. 05. 25

“있잖아. 나 독일 친구가 놀러오는데, 서울은 어디가 좋지?”

최근 들었던 가장 난이도 높은 질문이었다. 멘탈에 지진이 왔다. 명동과 인사동은 너무 뻔한 것 같고, 홍대와 이태원은  번잡스럽다. 뭔가 유니크한 장소를 추천하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서울 여행을 상상해보니 도통 감이 오지 않더라. 내 평생을 살아온 이 도시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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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매력 넘치는 곳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한강은 밤낮으로 판이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동네마다 전혀 다른 문화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걸. 서울의 어떤 동네가 핫한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나와 에디터M은 영상을 한 편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주제는 하나. <나의 서울>.

원래 영상 촬영은 제로PD가 맡아서 하지만 이번엔 우리가 직접 촬영하겠다고 객기를 부렸다. 일반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는 부담스러워서, 촬영엔 그냥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자주가는 곳, 좋아하는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정말 매일 매일 영상을 찍었다. 나중엔 타임랩스를 하도 찍어대서 세상의 흐름이 타임랩스처럼 보일 정도였다.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한 시간동안 찍은 영상을 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이폰7과 G6, 갤럭시S8까지 스마트폰 세 대를 들고 다니며 번갈아 촬영했는데 그게 패인이었다. 세 카메라의 색감이나 화각이 모두 달라 편집했을 때 화면이 들쭉날쭉해 보였다. 눈물을 머금고 한 대의 스마트폰을 골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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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원래 아이폰7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폰으로 찍는 게 가장 익숙했다. 낮에 찍은 영상으로 비교했을 땐 아이폰의 색감이 가장 내 취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 카메라 기능에 제약이 너무 많았다. 저조도 촬영을 할 때 셔터 스피드나 감도를 조절할 수 없었고, 촬영 결과물도 좋지 않았다. 한강 야경도 찍고 싶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일 먼저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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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S8은 저조도 촬영에서 굉장한 성능을 보여줬다. 스마트폰 카메라라곤 믿기 힘든 수준이다. 다만, 여러 환경에서 촬영을 하다보니 여러 설정을 건드려야 했는데 전문가 모드에서 색온도와 감도를 조절할 수 있는 범위가 좁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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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많이 했다. 결국 고른건 G6 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광각 카메라 때문이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만으로 촬영을 하다보니 렌즈를 교체할 수 없어서 화각에 제약이 컸는데, G6는 렌즈가 두 개나 달려있으니 더 유리한 셈이었다. 125도 화각의 광각 카메라는 도시의 풍경을 담거나 타임랩스를 찍을 때 유용하게 써먹었다. 솔직히 광각 카메라가 없었다면, 이쯤에서 포기하고 그냥 일반 카메라로 촬영하겠다고 SOS를 쳤을 것 같다.

촬영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촬영 장비를 마련하는 것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요즘 뜬다는 성수동도 가봤지만 막상 걸어다니며 촬영해보니 썩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온 서울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 사무실이 장충동 인근이라 퇴근하는 길에 DDP 앞에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한 시간동안 일몰 타임랩스를 찍기도 했다. 타임랩스를 촬영할 때는 몇 배속으로 찍을 건지 선택할 수 있는데, 처음엔 잘 몰라서 15배속으로 찍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일몰 촬영처럼 장시간 촬영할 땐 30배속이나 60배속으로 찍는 게 더 리드미컬하게 나오더라. 계속 배움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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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시도해보고 싶은 촬영이 하나 있었다. 바로 타임랩스를 찍으면서 카메라가 점점 옆으로 돌아가는 촬영이다. 전문 장비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크게 좌절하고 있었는데, 함께 사무실을 쓰는 ‘시나몬’ 분들이 엄청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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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종이컵을 반으로 자르고 스마트폰을 고정할 수 있는 깊은 홈을 낸 뒤에, 쿠킹 타이머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타이머를 맞춰놓으면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에 이 위에서 타임랩스를 촬영하면 꽤 멋진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들이 워낙 가볍고 슬림하게 나오는 덕에 가능한 아이디어였다. 참고로 G6를 기준으로 했을 때, 무게 163g에 두께 7.9mm다. 종이컵으로도 충분히 지지할 수 있는 무게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테스트해봤다. 허접해보였는데, 대박이다. 재료비 만원으로 엄청난 결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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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종이컵 거치대가 어디서나 유용했던 건 아니다. 너무 가벼워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높이가 너무 낮아서 맥주캔 위에 올려두고 촬영했던 적도 있다. 아니면 난간에다 스카치 테이프를 칭칭 감아서 고정하는 일도 있었다. 생각했다. 에디터는 정말 극한 직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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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의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다. 가장 서울다운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아름다운 한강을 바라보며 위로받는 기분이랄까? 이런 모습을 영상으로 찍을 땐 가볍고 작은 스마트폰 카메라라는 게 큰 장점이 된다. 버스 창문에 스카치 테이프를 세네 겹 붙이니 단단하게 고정된다. 영상도 생각보다 흔들림 없이 예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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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가 가장 자주 가는 동네 중 하나가 홍대, 연남, 상수 지역이다. 특히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 대낮의 홍대 거리는 꽤나 매력적이다. 찍다보니 영상 욕심이 생긴 우리는 장비를 업그레이드를 감행했다. 스마트폰용 짐벌과 삼각대를 대여해서 촬영하기로 한 것. 렌트샵에 문의해보니 G6는 화면이 너무 커서 짐벌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울 거라고 하시더라. 다행히 직접 가서 짐벌에 거치해보니, 생각보다 제품이 가벼워서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카메라용 짐벌이었으면 무거워서 못들고 다녔을 텐데, 스마트폰용 짐벌은 쓰기 편했다. 걸어가면서 서로의 뒷모습을 찍어줬다.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잘 나왔다. UHD 해상도로 찍은 보람이 있다. 오예.

대망의 마지막 촬영은 역시 한강 일몰이다. 뻔하지만 근사하고,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한강의 풍경. 고민 끝에 동작대교를 향했다. 바람이 우리를 날려버릴 것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날아가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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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너무 강해서 노출이 맞지 않을 땐, 전문가 모드에서 설정을 바꾸면 된다. 사실 얼마 전까진 전문가 모드로 영상을 찍어본 적은 없어서 스마트폰에서 이렇게 많은 설정을 만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감도는 50~3200까지 조절할 수 있으며, 색온도나 셔터스피드도 세밀하게 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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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대를 설치하고 30배속 타임랩스로 일몰 촬영을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씨다. 이렇게 해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여유있게 지켜본 것도 올해들어 처음인 것 같다. 바닷바람 같은 한강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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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촬영에서 포커스 피킹 기능으로 초첨 영역을 조절하면, DSLR과 비슷한 느낌으로 빛이 동그랗게 맺힌 보케를 만들 수 있다. 잘만 써먹으면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연출이 가능해진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에 드는 클립이었는데, 제로PD가 편집하면서 넣어주지 않았다.

자, 일주일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촬영한 우리의 노력이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이 되었다. 너무 재밌고, 너무 힘들었다. 두번은 못할 것 같지만 결과물을 보니 행복하다. 이제 누군가 서울이 어떤 도시냐고 묻는다면, 이 영상을 보여줘야지.

서울의 모든 곳을 쏘다닌 게 아니라서, 내가 사는 도시의 매력을 100% 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의 서울은 이런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바쁘며, 정신없지만 곳곳에 낭만이 있는 곳. 지긋지긋한 건물숲을 벗어나면 모험 가득한 골목길이 기다리는 곳. 그리고 아름다운 한강이 있는 곳.

여러분 마음 속의 서울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진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