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단종된 차를 시승한 괴짜 이주형입니다. 제가 3년 반 전에 지금의 차를 구매하려고 다양한 후보를 두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니였습니다. 당시에는 미니 5도어 해치백 모델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뒷좌석에 부모님을 태워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좁은 뒷좌석뿐만 아니라 통통 튀는 승차감 때문에 결국 고사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미니 해치백 모델 말고, 미니 클럽맨도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네, 오늘은 55년 만에 단종된 모델 ‘미니 클럽맨’을 리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미니를 좋아합니다. 모두가 비슷해져 가는 자동차 제조사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아우라를 뿜고 있거든요. 그중에서 미니 클럽맨은 특히 독특한 차입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미니 해치백의 뒤를 20cm가량 늘린 왜건형 모델인데, 그만큼 축거(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도 늘려서 5도어 해치백보다 뒷좌석에 여유가 좀 더 있고, 트렁크도 더 넓습니다.
미니 클럽맨은 1969년에 등장했는데, 미니의 상위 모델로 기획됐고 세 가지 종류로 나왔습니다. 그중 지금의 미니 클럽맨은 역시나 왜건형인 에스테이트(영국에서는 왜건을 ‘에스테이트 Estate’라고 부릅니다)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7년, 미니 브랜드의 오너가 된 BMW 그룹은 클럽맨을 되살리는데, 에스테이트를 기반으로 살린 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죠.
해치백과의 20cm의 길이 차이는 숫자로 들으면 별로 크지 않은 것 같지만, 미니 해치백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공간감이 느껴집니다. 뒷좌석 레그룸이 10cm나 더 생겨서 어른 네 명이 편하게 앉을 수 있습니다. 더 넓어진 공간 덕분인지 5도어 해치백에는 아예 있지도 않았던 뒷좌석 공조기도 생겼습니다.
클럽맨의 아이콘과 같은 독특한 트렁크 도어 또한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클럽맨의 트렁크는 위로 올리는 방식이 아닌, 냉장고처럼 양쪽을 여는 구조입니다. 이는 위에 얘기한 초대 미니 클럽맨 에스테이트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비록 트렁크 도어 자체는 자동이 아니지만, 범퍼 아래 부분에 발을 대면 센서가 이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열리는 킥모션 기능이 들어가 있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도 트렁크 도어를 문제없이 열 수 있습니다. 또한 양쪽으로 여는 구조이기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트렁크를 열 때 힘을 덜 들여도 되는 부분은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요즘같이 주차하는 자리가 날로 좁아지는 상황에서 뒤로 길이가 더 늘어나는 트렁크 도어는 열어둘 공간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길어진 길이 덕분에 이제는 매번 짐을 실을 때마다 트렁크를 비울 걱정, 혹은 뒷좌석을 접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꽤나 쓸만한 트렁크 공간이 나옵니다. 물론 이건 다 미니의 관점에서 넓다는 것이고, 시트를 접지 않았을 때의 트렁크 용량이 360L로 웬만한 준중형 세단보다 여전히 작긴 합니다. 하지만 설 연휴에 장모님이 가득 챙겨주시는 음식을 싣는 데는 충분했죠.
실내는 더 커진 뒷좌석을 제외하면 일반 미니 해치백과 같습니다. 버튼이 아닌 스위치로 각종 기능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해놨고, 가운데에는 원형으로 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원형의 모양은 옛날 미니에서 이 부분에 계기판이 있었던 것을 오마주한 것이죠. 다만 디스플레이 자체는 사각이라 위아래로 큰 베젤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이 원 전체를 OLED 화면으로 채운 신형 미니가 좀 더 공간을 잘 활용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스위치로 시동을 거는 느낌, 그리고 스위치들을 딸깍딸깍 눌러주는 느낌은 언제나 참 좋더군요.
제가 탄 차량은 미니 쿠퍼 모델로, 우리나라에서 판매했던 모델 중에서는 가장 기본형 트림입니다. 1.5리터 직렬 3기통 터보 엔진은 136마력의 출력을 가집니다. 출력이 특별히 높지는 않지만 차 자체가 1,560kg 정도로 무거운 편은 아니다 보니 힘에 부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192마력의 2리터 직렬 4기통 터보를 장착한 쿠퍼 S를 고를 테지만, 일상 주행에서는 이 정도로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미니의 승차감은 귀여운 외모만 보고 샀다가 상상 이상의 딱딱한 승차감에 되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이 높죠. 미니는 원래부터 ‘고카트 느낌’, 즉 작은 크기에 바닥에 착 붙어서 날렵하게 가는 듯한 느낌을 지향했기 때문에 승차감이 어느 정도 희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미니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승차감이 많이 나아졌거든요. 미니 클럽맨을 시승하는 동안 저뿐만 아니라 동승한 제 아내도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심지어 저희가 3년 전에 시승했던 미니 컨트리맨보다도 승차감이 더 낫다고 평했습니다. 미니 컨트리맨이 SUV 특유의 느슨한 승차감이라면 클럽맨은 좀 더 타이트하다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어떤 승차감이 더 좋은가는 개인 취향의 영역이니 시승을 한 번씩 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특히 현대기아차의 푹신한 승차감에 익숙하다면 여전히 미니는 딱딱하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미니 클럽맨, 더 넓게 나아가 미니 라인업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차를 가성비로만 생각할 때는 편의사양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일 겁니다. 4,320만 원이라는 차량 가격을 고려할 때 더 저렴한 차량에도 기본으로 달고 나오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없고, (상위 모델인 쿠퍼 S에는 달려 있습니다) 기본적인 내장 내비게이션도 빠져 있어서 대신 인포테인먼트에서 지원하는 애플 카플레이를 쓰거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경우 따로 거치를 해서 내비게이션 앱을 써야 합니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없거든요. 스마트폰을 클립 사이에 넣어서 고정시키는 방식의 무선 충전기가 있긴 하지만, 요즘같이 스마트폰이 커지기 전인 2015년에 만들어진 거라 제 아이폰 14 프로도 안정적으로 충전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아이폰 프로 맥스나 갤럭시 울트라 같이 7인치에 근접하는 크기의 스마트폰들은 아예 클립을 최대로 늘려도 충전기에 들어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고작 몇 년 전에는 시트 조정도 레버를 당겨서 수동으로 했었다고 하니 많이 나아지긴 한 거 같지만요.
그렇기에 저는 미니를 타고 다니는 오너분들을 존경합니다. 단순히 편의사양이나 가성비 등의 데이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만 보면 미니를 사면 안 되지만, 자신의 취향이 그 객관적으로 불리한 부분들을 모두 감수한 거니까요. 저도 클럽맨을 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블 애니메이션 <왓 이프…?>처럼 다른 평행 세계의 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위에도 전해드렸지만 미니 클럽맨은 2월 초에 마지막 차를 생산하며 단종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1,969대 한정의 파이널 에디션을 발표하기도 했죠(예상하셨겠지만 클럽맨이 처음 등장한 1969년을 기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 이 기사를 읽으시고 클럽맨을 구매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면 신차의 경우 남은 재고를 발품 팔아 알아보거나, 중고를 알아봐야 합니다. 이유는 당연히 판매 저조입니다. 2022년 기준의 판매 자료에 따르면 클럽맨은 미니 라인업 전체 판매량 중에서 고작 10%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저는 미니 클럽맨의 가장 큰 장점으로 더 낮고 탄탄한 운전 감각을 지닌 미니 해치백과 더 넓은 공간을 가진 컨트리맨 사이에서 그 장점만을 가져온 것을 꼽습니다. 하지만 이게 역설적으로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둘 사이에서 애매하다는 얘기도 되니까요. 미니는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소비자들이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웬만한 다른 브랜드들은 SUV가 판매량 점유율에서 확연히 앞서는 것과 달리, 미니는 아까 인용한 2022년 판매량 자료를 다시 보면 아직 근본이라 할 수 있는 해치백 모델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포지션이 애매한 클럽맨은 설 자리가 없었겠죠.
하지만 전체 자동차 산업에서 보면 해치백이 인기가 많은 미니는 예외에 속합니다. 옛날에는 정말 다양한 모양과 크기를 가진 차종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특정 종류의 차에 집중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은 SUV와 크로스오버죠.
이렇게 특정 차종에 쏠리게 되는 현상은 일단 자동차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운전학원들이 속속들이 문을 닫는 상황이라는 뉴스 꼭지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의 고도화와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드는 유지비 등의 이유로 옛날만큼 운전면허를 딸 이유를 못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그만큼 자동차 자체에 대한 수요도 줄어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자동차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줄어드니 제조사들 입장에서는 결국 그나마 ‘돈이 되는 차종’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바로 SUV와 크로스오버였죠. 이게 어느 정도냐면, 람보르기니나 애스턴 마틴, 그리고 페라리마저 SUV를 내놓았습니다. 이미 첫 SUV인 카이엔을 22년 전에 내놓은 포르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출시 당시에는 포르쉐가 전통을 버렸다며 엄청난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작년 미국 내 기준으로 판매량 1, 2위가 모두 SUV인 카이엔과 더 작은 SUV인 마칸임을 생각하면 상당한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의 현대만 봐도 i30나 벨로스터 등 해치백 차종을 차례로 단종시켰고, 소형차 액센트의 후속 모델로 비슷한 크기의 크로스오버인 베뉴를 내놓았습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의 첫 차종으로는 아이오닉 5를 내놓았고, 현대의 고급 서브 브랜드인 제네시스 역시 GV60 크로스오버를 첫 전동화 차량으로 내놓은 것을 보면 많은 제조사들이 SUV와 크로스오버에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니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미니의 SUV 모델로 자리 잡은 컨트리맨은 올해 웬만한 소형 SUV 수준으로 크기를 키운 신형이 6월 판매를 앞두고 있고, 클럽맨이 떠난 자리는 이번에 발표된 크로스오버 전기차인 에이스맨이 채우게 됩니다. 결국 미니도 지금의 트렌드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죠.
자동차 제조사들 입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할 만한 것, 그리고 잘 팔리는 것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요. SUV나 크로스오버가 넓은 실내와 실용성, 그리고 운전할 때 높은 차체에서 주는 심리적 안정감 등 덕분에 인기가 많은 것 또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동차 업계에 개성이 사라지고 있는 점은 아쉽습니다. 미니 클럽맨의 단종은 이렇게 업계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개성의 또 다른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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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백수가 되었지만, 백수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에디터이자 팟캐스터. IT가 메인이지만 관심가는 게 너무 많아서 탈이 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