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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팅을 부르는 살내음 향수 3

너한테 좋은 향 나는데, 뭐야?
너한테 좋은 향 나는데, 뭐야?

2024. 03. 11

안녕.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아론이다. 날이 추우면 사방에서 포근하고, 부드럽고, 편안하고, 깨끗하고, 가끔은 관능적인… 다양한 머스크 계열의 향이 풍겨오곤 한다. 물론 머스크 노트뿐만 아니라 비누 향이나 코튼 류의 향, 혹은 달콤한 구어망드 향이 이런 느낌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고.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정확한 노트 구분보다 더 직관적인 명칭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바로 ‘살내음’ 혹은 ‘살냄새’ 향수.

이런 향들은 향수인 듯 향수 아닌 느낌으로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너 오늘 무슨 향수 뿌렸어?’가 아니라 ‘너한테 좋은 향기 나는데, 뭐야?’라는 질문을 받게 한달까. 게다가 내 체취와 뒤섞일수록 가까운 거리에서는 더욱 기분 좋은 향으로 발향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향수라면? 이미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다면? 그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누군가의 마음을 동하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 세 가지 새로운 살내음 향수를 추천한다.


아르마니 뷰티 프리베
코가네 블랑

코가네 블랑

코가네는 일본어로 ‘금’, 블랑은 프랑스어로 ‘흰색’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향을 맡는 순간 고급스러운 느낌과 새하얗고 깨끗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조금 자세히 설명해 볼까? 뿌린 직후에는 빨래를 막 마친 듯한 흰 셔츠, 혹은 흰 침구류가 떠오르는 깨끗한 향이 난다. 보통 이런 알데하이드 계열의 향들은 쨍한 느낌이 있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코가네 블랑은 그렇지 않다. 보들보들 보드라우면서도 깨끗한 향이 난다. 비결(?)은 뒤이어 따라오는 다채로운 화이트 플로럴. 그중에서도 자스민이 일등 공신이다. 개인적으로 자스민은 굉장히 농염하고 섹시한 향을 가진 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이트 플로럴 특유의 꼬릿함이나 무게감 때문에 조향할 때도 신경 써서 다루곤 한다. 그런데 코가네 블랑에서 느껴지는 자스민은 신기하게도 단점 없이 장점만 부각되어 있다. 신선하면서도 부드럽고, 약간은 관능적인 꽃향기랄까?

그리고 이 꽃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의 살결에서 풍길 것 같은 은근하게 달콤한 향으로 차츰 변한다. 왠지 이 향이 풍기는 사람의 품으로 파고들고 싶어지는…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향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향덕이라면, 코튼 느낌의 알데하이드 노트와 화이트 플로럴의 조화는 조금 흔한 편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꼭 시향을 해 보시길. 뻔한 향일 거라 짐작했던 그 생각을 확실히 깨줄 테니까. 모두에게 어렵지 않고 웨어러블 한 향이지만, 한번 맡으면 은근히 자꾸 떠오르는 스타일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


줄리엣헤즈어건
낫 어 퍼퓸

줄리앳 해즈 어 건

낫 어 퍼퓸? 향수인데 향수가 아니라는 게 이름이라니!? 그런데 사실 이름보다 더 독특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한 가지 향료만을 사용해서 만든 향수라는 것. 솔직히 조향사로서, 너무 충격이었다. 음식으로 치자면 양념도 하지 않은 재료 하나만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향을 맡아보고 난 후 이해… 아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낫 어 퍼퓸에서 사용된 단 하나의 향료가 바로 세타록스(Cetalox)이기 때문이다.

세타록스는 천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합성으로 만들어지는 향료다. 머스크 계열의 향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앰버그리스 뉘앙스를 내는 향이다. 앰버그리스는 향유고래를 통해 얻는 향료였는데, 동물 보호권 등 다양한 이유로 최근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앰버그리스 특유의 따뜻한 살내음, 부드러운 관능미 등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세타록스를 사용하는 일이 많다. 맡으면 맡을수록 더 맡고 싶은, 중독적인 살내음을 내는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르라보의 어나더13 같은 향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직접 맡아본 결과, 내게는 세타록스 하나만 느껴지진 않았다. 다소 샤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세타록스를 부드럽게 해주는 여러 머스크 향, 탑노트의 발향을 위한 약간의 시트러스 뉘앙스 등등. 앰버그리스의 매력을 살려줄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낫 어 퍼퓸’이라는 이름 그대로, 향수가 아니라 내 살내음인 척하는 향을 찾고 있다면 꼭 한번 시향 해보시길. 만약 취향이 아니더라도, ‘아, 이게 앰버그리스 노트구나’ 하는 정확한 깨달음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톰포드
바닐라 섹스

톰포드 바닐라

처음 이 향수의 출시 소식을 들었을 때 든 생각. 특유의 섹시하고 파격적인 이미지를 가진 톰포드가 달달한 바닐라 향을? 하지만 이름을 듣고 나니 ‘그럼 그렇지’ 싶었다. 동아시아권에는 뒤에 두 글자를 빼고 출시되어 맹숭맹숭한 ‘바닐라’가 되어버렸지만… 이름 때문이라도 향을 맡아보고 싶단 사람이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다소 묽은 바닐라 향과 통카빈 특유의 아몬드와 체리 뉘앙스로 시작하는데, 바닐라 향을 앞세운 다른 향수들과는 시작부터 좀 다른 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향이 지배적으로 발향되긴 하지만, 희고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매끈한 느낌의 보편적인 바닐라의 특징이 확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톰포드답게(?) 약간 섹시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매캐함을 깔아둔 게 포인트. 게다가 잔향으로 갈수록 자스민 같은 화이트 플로럴 노트가 올라오면서 언뜻언뜻 애니멀릭함이 돋보이는 게 독특하다. 뭐랄까,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나쁜 남자나 나쁜 여자가 사용할 것 같은 그런 바닐라 향이랄까.

톰포드는 이미 로스트 체리, 비터 피치 등 구어망드나 프루티 계열의 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출시한 바닐라 향수도 그런 맥락 중에 하나로 놓여있다고 보이는데, 이렇게 궁금증을 자극하는 향이 살내음과 섞이니 자꾸만 맡고 싶은 충동이 인다. 접근 레벨은 좀 있지만 오늘 소개한 향 중 가장 유혹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P.s. 이번 글의 제목은 편집자인 에디터B의 니즈에서 시작됐음을 밝힌다. 너무너무 좋은 향이지만, 솔직히 플러팅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향이 될 거라 생각한다. 여러분의 건승을 빈다.

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