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사이버트럭이 진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처음 발표가 될 때만 해도 이게 정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리고 딱 4년만에 진짜 차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이버트럭은 처음 소개됐던 기대들을 하나씩 눈 앞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이버트럭은 실제 차량 공개 키노트부터 충격적이었죠. 가장 빠른 차량이라는 상징성을 갖는 (물론 더 빠른 차도 있지만…) 포르셰 911과 단거리 드래그 레이스를 펼칩니다. 전기 모터는 초반부터 빠른 토크를 꾸준히 낼 수 있기 때문에 엔진 회전수와 변속기를 이용해 서서히 힘을 끌어올려가는 내연기관과는 결이 다른 가속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새롭지 않기 때문에 사이버트럭의 가속력 시연은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기존보다 더 크고 무거워진 새 테슬라가 ‘흔한 테슬라 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죠.
그런데 당연한 반전, 바로 이 사이버트럭 뒤에는 또 한 대의 포르셰 911이 끌려오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이버트럭은 그 자체 무게만 해도 엄청납니다. 중간 기준이 되는 AWD 모델이 3톤에 달합니다. 일반적인 차량이 1.5톤 정도이고, 대형 세단이나 SUV, 혹은 배터리를 많이 넣은 전기차들이 2톤을 조금 넘깁니다. 포르셰 911도 1.5톤 정도이니 사이버트럭은 무려 4.5톤 이상으로 3배의 무게로 달리기를 한 셈입니다.
단순한 과시일 수도 있지만 사이버트럭 자체가 단순 승용차가 아니라 짐 칸에 뭔가 싣거나 뒤에 캠핑카 등을 끄는 등 큰 힘을 목적으로 하는 차량이니 이런 비교는 단순한 가속력보다 뭐든 끌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자동차에 큰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커다란 엔진만의 일이 아니라 모터와 배터리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방탄차량? 아니, 소재의 변화
이 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각진 디자인, 그리고 이를 덮고 있는 방탄 소재지요. 2019년 처음 사이버트럭이 공개됐을 때 총알을 막을 수 있다며 유리창에 쇠구슬을 쐈는데 금이 가면서 웃음거리가 됐었는데, 사실 방탄 소재라고 해서 총알을 흠집 없이 막는 건 아닙니다. 총알의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실제 양산에 나온 제품은 마치 탱크처럼 외장도 튼튼하고, 유리창도 진짜 총알을 막아내는 방탄 유리 옵션을 넣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이 차에 화살을 쏴보기도 하고 망치로 내리치기도 하지만 거의 손상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반 차량과 충돌 사고가 일어났는데 상대방 차량은 앞부분이 다 망가진 반면 사이버트럭은 플라스틱 부분만 조금 깨졌을 뿐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습니다.
사이버트럭의 몸체는 일반적인 철 소재가 아니라 냉간 상태에서 프레스로 꾹 눌러 압연한 고강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듭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흔한 소재지만 녹이 늘지 않고, 매우 단단합니다. 고급스러운 질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자동차에 쓰이는 일반 철강에 비해서는 가공이 어렵고 값도 비싸지만 그 효과는 탁월한 것 같습니다. 사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걱정되는 문콕 등에 대해서도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반 차량에 방탄 소재가 왜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테슬라는 당장 익숙한 일이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 모델 3부터 X까지 모든 차량에 들어간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입니다.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는 공조 장치의 한 기능인데, 헤파필터를 통해서 외부의 공기를 아주 강하게 빨아들입니다. 이 필터를 거친 공기는 방독면처럼 대부분의 생화학 테러에 쓰이는 균들을 대부분 걸러냅니다. 그리고 이 공기를 차 안에 빠르게, 많이 공급하면 차 안의 기압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면 차량 구석구석의 빈틈으로 외부 공기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차 안의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는 성질을 갖게 되겠지요.
이건 코로나 19 시기에 병원들이 많이 썼던 음압 병실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음압 병실은 내부의 기압을 낮춰서 공기가 외부에서 들어오기만 하고 바이러스와 세균이 섞여 있을 수 있는 병실의 공기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게 차량에 들어간 것이죠. 어떻게 보면 ‘그런 걱정까지 하나’ 싶지만 생화학전은 전쟁에서 언제든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위협입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아주 주목받은 기술이기도 하고요.
방탄은 어떻게 보면 미국 시장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주제를 파고 든 것 같습니다. 미국은 지금도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예고없이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시장은 반응할 겁니다.
새로운 소재의 선택이 중요한 건 결국 단가와 가공의 어려움인데, 이게 실질적으로 상업적 가치를 갖는다고 인정을 받는다면 다른 차량으로도 확장될 겁니다. 물론 모델 3, Y부터 모델 S, X까지 곡선이 강조된 차량들의 디자인에 스테인리스 스틸이 적용되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라인업의 차량이 새로 개발될 수도 있지요. 사실상 전기 구동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는 갖춰져 있으니 그 위에 올릴 디자인과 가격이 현실성을 갖추기만 하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차량,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12V의 틀 깬 48V 전력 설계
어쨌든 사이버트럭이 놀라운 것은 진짜 출시가 됐다는 점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장담을 했고, 실제 가능성이 있으니 발표와 사전 주문을 받은 것이겠지요. 돌아보면 모델 3도 진짜 이야기한 대로 나올지 반신반의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업성과 기술적인 경험 양쪽을 모두 잡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는 중입니다.
테슬라의 괴짜 설계는 외관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실 전기차 업계가 사이버트럭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48V 배선입니다. 전통적으로 자동차는 12V로 전기 전자 부품들을 구동합니다. 오디오도 12V, ECU 컴퓨터도 12V,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시거잭도 12V를 씁니다. 테슬라는 이를 48V로 끌어올리는 시도를 합니다.
이미 48V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모터에도 종종 쓰이곤 하는데, 사이버트럭은 단순히 모터 때문은 아닙니다. 모든 자동차가 그렇지만 전기차는 전력 효율과 무게를 줄이는 것이 지속적인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부분이 전자적으로 제어되고, 갖가지 센서와 통신 모듈이 철판 아래에 가려져 있습니다. 전선 무게만 100kg이 넘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 전장의 전압을 48V로 끌어올리면 같은 전력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전류는 4분의 1로 줄어듭니다. 또한 전압이 높아지면 전기를 보내는 데에 드는 손실도 크게 줄어듭니다. 우리나라 가정의 전기를 220V로 쓰는 이유도 첫번째는 송전효율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지요.
물론 모든 부분이 48V로 바뀌는 것은 아닐 겁니다. 여전히 자동차 생태계는 12V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48V로 차량의 굵직한 부분으로 전기를 보내고, 필요한 부분에서 소형 컨버터로 12V로 내리면 훨씬 효율이 높아집니다.
송전 효율이 높아지면서 케이블을 가볍고 단순화할 수 있게 되고, 전체적인 무게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전기와 데이터를 하나의 케이블로 함께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 전자장비의 설계에 대한 기존 틀을 무너뜨렸습니다.
전장의 시대에 차량 설계를 뒤엎다
이야기가 조금 어렵긴 하지만 테슬라는 이 48V 배선을 데이지체인 형태로 구성했는데, 이는 기존 차량의 커넥터가 A와 B를 직접 연결하고, C와 D를 또 다른 선으로 연결하던 것에서 벗어나 커다란 배선이 차량을 한 바퀴 돌아가면서 전체적으로 이어버리는 방식입니다. 넓은 고속도로로 이동하다가 필요한 경우에 좁은 간선길로 빠져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처럼 차량 전체를 하나의 전기, 전자 네트워크로 묶어버리는 겁니다.
이러면 전선의 무게가 엄청나게 줄어들 뿐 아니라 조립과 수리도 쉬워집니다. 네트워크 구조가 단순해지니 말이지요. 물론 위험 요소도 있습니다. 어느 한 곳이 손상을 입으면 전체 네트워크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테슬라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백업 네트워크를 짜 두어서 그 우려를 가라앉히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테슬라는 이 48V 설계 기술을 모두 공개해버렸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쓰라는 것이죠. 실제 많은 기업들이 48V 전환을 고민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각 전장 부품을 바꿔야 하기 때문인데, 부품 공급업체들이 얼마나 많이 따라 움직여줄 지가 관건입니다. 테슬라가 이를 공개한 이유도 어쩌면 48V로 같이 가보자는 의지일 겁니다.
사이버트럭은 독특한 외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어떻게 보면 기존의 테슬라 차량들이 기존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전기차에 대한 그림을 새로 그려 나갔던 것처럼 차량 소재와 설계에 대한 틀을 새로 짜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자동차는 단순한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그 안에 수 만 가지 기술과 그 하나하나에 얽힌 전 세계의 생태계가 합쳐지는 결정판입니다. 우리말로 ‘완성차’라고 부르기도 하는 게 결국 요소 기술을 통일해서 하나로 만드는 것 자체가 큰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는 그 틀을 바꿔갑니다. 어찌 보면 경쟁 차량 제조사들보다도 부품 업체들의 고민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차량이 나왔고, 상상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몇 마력에 연비가 어떤지를 중심으로 바라보던 자동차 시장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차량은 완전히 새로운 도화지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테슬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을 눈여겨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요. ‘기술적으로 다 왔다’라는 생각이 들던 것이 자동차였는데,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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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