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내 브랜드를 소개하는 아워페이스 매거진의 강현모입니다. 항상 제품 추천과 관련된 내용을 담아 왔는데, 하반기부터는 추천과 소비의 늪에서 소비생활을 돌아보는 글도 함께 담아보려 해요. 물론 ‘소비를 줄이자’라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1)정말 나에게 맞는 소비를 했는지 2)무지성으로 구매한 것들 중에 후회하는 것은 없는지 3)주어진 예산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어떤 점을 더 신경써야 할지 돌아보는, 그런 이야기를 담아보려 해요.
오늘은 신발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신발을 좋아하는, 앞으로 좋아할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해요. 여러분의 시간과 예산은 정말 소중하니까요.
[1]
응모 중독
“솔직히 제 스타일 아닌데, 한정판이라 사요”
“o월 oo일 DRAW”
“o월 oo일 RAFFLE”
근 몇년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멘트입니다. 단어는 달라도 ‘추첨’을 의미하며, 다양한 브랜드에서 한정판 마케팅과 추첨제를 진행하며 자주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도 쓰이고 있지만, 한국시장에서만큼은 신발이 시초라 할 수 있죠. 신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캠핑, 구매 권한을 주는 드로우 등의 방식은 모두 신발에서부터 시작됐거든요.
수요가 많아 추첨을 해야할 만큼 예쁜 모델도 많지만, 한정판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니 ‘내 생각엔 사실 이거 별로인데 한정판이라 예뻐 보여’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속된 말로 ‘뇌이징(뇌+에이징)’이 되게 하는 모델도 많습니다. 취향은 개인차이지만, 보통 이런 한정판 모델들은 리셀가(발매가 +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가 높게 책정되었죠.
여기서 잠깐 ‘리셀’이 뭔지 짚고 넘어갈게요. 수요 대비 공급량이 적은 물건을 구매해서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행위로,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어요. 이제는 하나의 경제활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외부활동이 줄면서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경제활동을 이어갔죠. 이 시기에 리셀이 급부상하며 여기저기서 리셀 플랫폼이 등장했고, 그중 한 가지 품목으로 신발이 깊게 자리잡았습니다.
다시 한 번 돌아보면, 최근 몇 년 동안 한정판 신발을 구매하는 유형은 크게 3가지였던 것 같아요.
① 실착러(실제 착용하는 사람): 한정판으로 발매되는 신발을 실제로 신기위해 오랜시간 기다려 온 사람
② 리셀러(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사람): 실착 목적보다, 프리미엄을 붙여 실수요자에게 판매할 목적이 큰 사람
③ 습관성: 추첨이 뜨면 응모하고 보는 사람. 신발의 히스토리 등에는 큰 관심이 없으며, 실물이 예쁘면 신고 별로면 되파는 사람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신기 위해 한정판 신발을 원하나요? 혹은 높은 리셀가에 판매하기 위해 손에 넣고 싶은가요? 어쩌면 여기저기서 떠드는 신발 얘기에 관심 없다가, 친구 따라 한 번 응모해봤더니 덜컥 당첨이 되셨을 수도 있겠네요(제 주변에 은근히 많이 보이는 유형입니다). 중요한 건, 당첨이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을 거라는 점입니다.
[2]
쿨한 이미지에서 수족관 짤이 나오기까지
나이키 덩크 범고래, 뉴발란스 992. 최근 몇 년간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신발입니다. ‘한정판’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왔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신고 있죠. 어느 착장에나, 어느 상황에나 편하게 신을 수 있으면서 착화감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는 신발들인데, 이제는 오히려 너무 많이 보이는 것이 싫어 신지 않거나 중고시장에 판매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입니다.
[필자가 과거에 보유한 신발들. 왼쪽은 2015년, 오른쪽은 2023년]
저도 같은 이유로 나이키/뉴발란스 신발들을 꽤 많이 정리했어요. 검정에 흰색, 회색과 남색, 그리고 가끔 가다 보이는 독특한 색들. 지금 신발장에서 꺼내 보면 정말 무난한 컬러웨이에다가 겹치는 듯한 느낌도 많이 드는데, 응모할 때에는 뭐 그리 좋아서 미친듯이 응모를 하고, 하루하루 리셀 플랫폼 앱을 들락날락 거리며 가슴 졸였을까요. 어차피 내 발에 신겨지는 건 하루에 하나인데.
이사를 앞두고 신발장을 정리할 때 많이 느꼈어요. 열심히 모은 신발들을 눈높이에 한 줄로 모아두고 자세히 살펴 봤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거나 꼭 필요했던 신발이 아닌데, 무지성으로 사고 봤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한정판 신발에는 항상 ‘스토리’가 있고, 스토리의 배경이 과거에서 온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젊었을 때 처음 발매된 신발이, 시간을 거슬러 요즘 다시 나오게 된 경우죠. 스니커 씬에서는 ‘복각’이라 부르는 용어가 보통 이런 상황에 쓰입니다. 그리고 복각은 그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의 기술력, 디테일을 현대에서도 충실히 담아냈을 때 높은 평을 얻기도 해요.
쉽게 말하면 많은 한정판 신발이 ‘옛날에 나온 신발’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신발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았을 때 말이죠(저를 포함한 매니아에게는 단순한 옛날 신발 이상의 의미를 갖기에… 말을 줄일게요).
발등이 높고 발볼이 넓은 동양인의 족형에 맞지 않는 신발도 많고, 최근 나온 신발에 비해 쿠셔닝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많아요. 신발이 주는 감성과 스토리에 반해서 신는 경우도 많다는 거죠. 물론 그 감성과 스토리에 가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신발 자체의 기능인 ‘편안함’의 관점에서는 한정판 신발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편안하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신발들이 요즘 아주 많으니까요.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구하기 쉬운 신발들이 쿨한 신발로 커뮤니티를 휩쓸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건 ‘편하고 예쁜 신발’이 아니라 ‘남들이 쉽게 구하지 못하는 걸 나는 가졌다’라는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연봉 0000만 원 미만 오마카세 금지” 같은 신조어가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런 현상 아니었을까요. 수많은 신발을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이제는 여러분께 여쭤 보고자 합니다.
“그때 그 신발은 여러분께 정말 필요했을까요?”
“그 신발이 정말 여러분과 잘 어울렸을까요?”
“멀리서 누군가 여러분을 보았을 때, 사람보다 신발이 먼저 보이지는 않았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정판 신발을 신고 거리에 나왔을 때, 구하기 쉽고 값이 저렴한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며 속으로 무시했던 적은 없었나요?
[3]
한정판이 아니어도 괜찮아 :
발 건강을 챙기는 ‘멋’
한정판 신발을 정리하더라도, 비슷한 가격으로 멋을 챙길 수 있는 몇 가지 신발을 추천 드리고자 합니다. ‘이 신발은 이렇게 신어야 돼’라고 공식처럼 보여주는 한정판 신발보다, 저는 오히려 쉽게 구할 수 있는 신발을 본인만의 스타일로 멋스럽게 신는 사람들이 훨씬 멋있게 보이더라고요. 옷으로 치면 SPA 브랜드 옷들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내는 사람들이랄까요. 가격과 멋, 모두를 잡을 수 있는 보급형 아이템을 몇 가지 추천 드립니다.
① 나이키 보메로 (18만 9,000원)
[출처: 노윤서, 이시영 인스타그램]
얼마 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이죠. 나이키의 보메로입니다. 배우 노윤서를 비롯한 연예인들도 많이 신으면서 유명세를 탔죠. 보메로도 나이키에서 역사가 꽤나 깊은 모델인데, 최근 유행하는 고프코어룩과 Y2K 스타일에 매칭하기 쉬운 건 물론이고 좋은 착화감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운동화예요. 쨍한 컬러부터 미니멀한 톤까지 다양한 색상들로 발매되었습니다.
어떤 컬러를 선택하든 간에 한정판 신발들만큼의, 어쩌면 그 이상의 착화감을 보여줄 거예요. 적당한 멋과 착화감을 중시하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대신, 물렁물렁한 쿠셔닝이다 보니 하루종일 걸어다닐 때 무릎에 무리가 올 수도 있어요. 참고 부탁드려요..!)
② 뉴발란스 1906 (17만 9,000원 ~ 19만 9,000원)
나이키에 보메로가 있다면, 뉴발란스에는 1906이 있습니다. 2000년대 러닝화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실버톤의 갑피 + 메쉬 + 고기능성 쿠셔닝’인데, 이 맛을 잘 살려주는 모델이 1906이에요. 사실 ‘뉴발란스’하면 99x시리즈, MADE in USA 라인부터 생각나잖아요. 저 역시 그랬는데, USA 라인 외에 일반 신발들중에서도 꽤 괜찮은 신발들이 많습니다.
1906은 익숙한 모델 2002와 똑같은 쿠셔닝을 갖고 있어서 오랜시간 신고 있어도 발이 정말 편해요. 은색 베이스에 골드/블루톤이 배합된 기본 컬러도 있고, 빈티지 무드의 그린컬러처럼 스트릿 아웃핏에 맞을 법한 제품들도 있어요. 반드시 회색 신발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그리고 꼭 99x를 신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적당한 가격에 착화감 좋고 요즘 유행하는 러닝화 스타일인 1906을 신어 보는 건 어떨까요.
③ 캐치볼 (6만 원 ~ 12만 9,000원)
뭉특한 러닝화 대신 단화를 찾는 분들이라면, 주저없이 캐치볼의 제품들을 추천드릴게요. 캐치볼은 국산 브랜드이고, 반스/컨버스와 비슷한 단화류들을 선보이는 곳입니다.
단화를 떠올리면 ‘운동화보다 불편한데 가격은 비슷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캐치볼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주는 곳이기도 해요. 물론 모든 사람의 발에 편할 수는 없겠지만, 같은 단화류 내에서 제가 신었던 제품들 중에서는 가장 편안한 착화감을 보여주었습니다. 단화에는 잘 사용되지 않았던, 푹신한 깔창(오솔라이트 인솔)이 사용된 게 한 몫 한 것 같아요.
뒤꿈치에 적당한 쿠션이 들어가 있어 잘 까지지 않아 좋았어요. (단화류는 사실 이게 고통이었거든요. 처음 신은 날 뒤꿈치가 피로 물드는…) 그리고 신발끈이 고무끈이라서, 일반 면소재로 된 끈보다 신축성이 훨씬 좋습니다. ‘꽉끈’ 좋아하시는 분들은 끈을 묶었다 풀지 않아도 돼요.
단화류까지 한정판을 찾으시는 분들이 계신데, 꼭 그런 한정판 단화가 필요한 게 아니고 데일리 아이템이 필요하다면, 캐치볼을 추천 드립니다.
오늘도 많은 브랜드의 홈페이지에 런칭 알림이 띄워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만 좀 줬으면’ 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알림 문구들, 그리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을 때 자랑하고 싶은 마음들. 신발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들이 이런 ‘마음’의 집약체 아닐까 싶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 굳은 주관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안그러면 여기저기 휘둘리기 쉽거든요. 한때 유행을 이끌었던 신발이 얼마 지나지 않아 촌스러운 아이템이 되고, 반면에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 신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한정판이든 아니든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 그 분위기가 만드는 ‘멋’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연예인들이 신은 신발보다 그 사람이 풍기는 ‘멋’을 갖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단기간의 노력이나 돈으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그 ‘이미지’를 사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한정판 신발이 주는 멋도 물론 크겠지만, 여러분께 주어진 상황에서 꼭 필요하고 잘 어울리는 신발들을 하나씩 채워갈 때 자신만의 멋도 쌓여갈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신발을 신는 것이지, 신발이 사람을 신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도 현명한 소비와 알찬 경험을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bout Author
강현모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출근 후 마케터, 퇴근 후 에디터. 회사 안에서는 브랜드 마케터로, 회사 밖에서는 '아워페이스' 매거진의 팀 리더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