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티셔츠 부자 에디터B다. 우리 집에는 티셔츠가 많다. 티셔츠만 많은 건 아니지만 유난히 티셔츠가 많다. 바지, 셔츠는 많지 않은데 티셔츠만 많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티셔츠는 다른 옷과 좀 다른 것 같다. 얼굴 다음으로 아이덴티티가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티셔츠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난 내가 티셔츠를 모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구나 그래픽으로 다양하게 디자인될 수 있다는 것, 여러 벌을 사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라는 것도 티셔츠의 매력이 아닐까. 여기까지 내가 왜 그 많은 티셔츠를 샀는지에 대한 변명이다.
혹시 ‘김씨네 과일’이라는 브랜드를 들어 본 적 있을까? 김씨네 과일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유럽의 희귀과일을 바잉해오는 과일 가게…는 당연히 아니고, 티셔츠 브랜드다. 근데 판매 방식이 특이하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 두 사람이 다마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매를 한다. 티셔츠를 팔지만 판매 방식은 트럭 과일 장수와 비슷하다. 인스타그램으로 언제 어디서 판매하는지 공지를 하는데 미리 안다고 해도 내가 찾아갈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집 앞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무실 5분 거리에서 팝업 행사를 한다는 거다. 장소는 어니언 성수. 그래서 찾아갔다.
굉장히 더운 날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날씨였는데 40명이 넘는 손님이 과일 티셔츠를 사기 위해 줄서고 있었다. 이때 시간이 오후 2시 정도.
나는 과일 티셔츠를 구매할 생각이 없어서(너무 더웠다) 줄은 서지 않고 살짝 구경만 했다. 다마스에는 다리지 않아서 쭈글쭈글한 여러 사이즈의 다양한 과일 티셔츠가 걸려 있었다.
전면에는 과일이 프린트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했다. 감귤, 복숭아, 아보카도, 바나나, 체리, 수박, 코코넛 등. 과일의 색을 닮은 알록달록한 옷걸이도 옷과 잘 어울렸다.
후면에는 KIM’s DIGITAL FRUITS이라고 적혀 있다. 앞쪽만 봤을 때는 과일 프린트가 귀엽긴 해도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뒷쪽 그래픽이 아주 맘에 들었다. 가격은 한 장에 3만 원, 두 장에 5만 원이다.
어니언 성수 안으로 들어가니 김씨네 과일의 사장 김도영, 실장 조용일이 보였다. 손님들은 몇 분 동안 줄을 서서 티셔츠를 산 뒤 두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는 코스로 쇼핑을 하고 있었다. 이건 쇼핑이기도 하고, 팬미팅 같기도 하고 그 자체가 놀이처럼 보였다.
김씨네 과일을 이끄는 김도영은 9년 전부터 티셔츠를 만들던 사람이다. 2013년부터 랩티(rap tee)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랩티란 허가를 받지 않고 팬들이 만드는 굿즈 티셔츠 같은 개념이다. 빈지노, 염따 등 주로 힙합씬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티셔츠를 만들었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랩티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지난 5월 성수동 플리마켓에서 과일 티셔츠를 처음 선보였고 이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빨간색 과일바구니 위에 과일인 척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어이없어서 웃겼다. 이제는 이 말도 진부하지만 ‘컨셉에 진심’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다마스부터 과일 상자 그리고 촬영은 못했지만 ‘비닐 봉다리’에 담아주는 일련의 과정이 보통의 쇼핑과는 정말 달라서 재밌었다.
[팝업스토어 한정 메뉴로 판매된 어니언X김씨네 복숭아 왕도나스]
김씨네 과일이 어니언 성수에서 팝업스토어를 연 게 7월 중순이니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김씨네 과일은 베스킨라빈스와 협업해서 김씨네 아이스크림 티셔츠를 팔고,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했다. 두 사람의 다마스가 다음 번엔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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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