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과일 없는, 김씨네 과일 가게

안녕, 티셔츠 부자 에디터B다. 우리 집에는 티셔츠가 많다. 티셔츠만 많은 건 아니지만 유난히 티셔츠가 많다. 바지, 셔츠는 많지 않은데 티셔츠만 많은...
안녕, 티셔츠 부자 에디터B다. 우리 집에는 티셔츠가 많다. 티셔츠만 많은 건 아니지만 유난히…

2022. 08. 10

안녕, 티셔츠 부자 에디터B다. 우리 집에는 티셔츠가 많다. 티셔츠만 많은 건 아니지만 유난히 티셔츠가 많다. 바지, 셔츠는 많지 않은데 티셔츠만 많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티셔츠는 다른 옷과 좀 다른 것 같다. 얼굴 다음으로 아이덴티티가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티셔츠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난 내가 티셔츠를 모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구나 그래픽으로 다양하게 디자인될 수 있다는 것, 여러 벌을 사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라는 것도 티셔츠의 매력이 아닐까. 여기까지 내가 왜 그 많은 티셔츠를 샀는지에 대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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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김씨네 과일’이라는 브랜드를 들어 본 적 있을까? 김씨네 과일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유럽의 희귀과일을 바잉해오는 과일 가게…는 당연히 아니고, 티셔츠 브랜드다. 근데 판매 방식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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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매장이 없다. 두 사람이 다마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매를 한다. 티셔츠를 팔지만 판매 방식은 트럭 과일 장수와 비슷하다. 인스타그램으로 언제 어디서 판매하는지 공지를 하는데 미리 안다고 해도 내가 찾아갈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집 앞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무실 5분 거리에서 팝업 행사를 한다는 거다. 장소는 어니언 성수. 그래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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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더운 날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날씨였는데 40명이 넘는 손님이 과일 티셔츠를 사기 위해 줄서고 있었다. 이때 시간이 오후 2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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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일 티셔츠를 구매할 생각이 없어서(너무 더웠다) 줄은 서지 않고 살짝 구경만 했다. 다마스에는 다리지 않아서 쭈글쭈글한 여러 사이즈의 다양한 과일 티셔츠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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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에는 과일이 프린트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했다. 감귤, 복숭아, 아보카도, 바나나, 체리, 수박, 코코넛 등. 과일의 색을 닮은 알록달록한 옷걸이도 옷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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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에는 KIM’s DIGITAL FRUITS이라고 적혀 있다. 앞쪽만 봤을 때는 과일 프린트가 귀엽긴 해도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뒷쪽 그래픽이 아주 맘에 들었다. 가격은 한 장에 3만 원, 두 장에 5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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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언 성수 안으로 들어가니 김씨네 과일의 사장 김도영, 실장 조용일이 보였다. 손님들은 몇 분 동안 줄을 서서 티셔츠를 산 뒤 두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는 코스로 쇼핑을 하고 있었다. 이건 쇼핑이기도 하고, 팬미팅 같기도 하고 그 자체가 놀이처럼 보였다.

김씨네 과일을 이끄는 김도영은 9년 전부터 티셔츠를 만들던 사람이다. 2013년부터 랩티(rap tee)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랩티란 허가를 받지 않고 팬들이 만드는 굿즈 티셔츠 같은 개념이다. 빈지노, 염따 등 주로 힙합씬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티셔츠를 만들었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랩티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지난 5월 성수동 플리마켓에서 과일 티셔츠를 처음 선보였고 이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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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과일바구니 위에 과일인 척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어이없어서 웃겼다. 이제는 이 말도 진부하지만 ‘컨셉에 진심’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다마스부터 과일 상자 그리고 촬영은 못했지만 ‘비닐 봉다리’에 담아주는 일련의 과정이 보통의 쇼핑과는 정말 달라서 재밌었다.

1400_DSC05922 [팝업스토어 한정 메뉴로 판매된 어니언X김씨네 복숭아 왕도나스]

김씨네 과일이 어니언 성수에서 팝업스토어를 연 게 7월 중순이니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김씨네 과일은 베스킨라빈스와 협업해서 김씨네 아이스크림 티셔츠를 팔고,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스토어를 했다. 두 사람의 다마스가 다음 번엔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