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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는 이런 핸드크림을 발라요

안녕. 나는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객원필자 전아론이다. 겨울엔 참 사야 할 게 많다. 특히 겨울철 건조함에서 나를 지켜줄...
안녕. 나는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객원필자 전아론이다. 겨울엔 참 사야…

2021. 01. 10

안녕. 나는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객원필자 전아론이다. 겨울엔 참 사야 할 게 많다. 특히 겨울철 건조함에서 나를 지켜줄 아이템들이 필요하지. 사실 난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건조함을 모르고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이 당긴다고? 그게 뭐야? 몸이 건조하다고? 그게 뭐야?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30대가 되니까 다 알겠더라 너무너무 알겠더라^^…. 그래서 뒤늦게 보습 크림, 립밤, 바디 오일, 바디 로션 등등을 사 모으고 있다. 거기에 얼마 전에 또 추가된 카테고리가 있는데, 그건 바로 핸드 크림. 한번 쓰기 시작하니까 핸드 크림 없이 어떻게 살았었나 싶더라. 하하….

핸드 크림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끈적이고 무거워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보습력 강한 핸드 크림을 찾는 사람, 바른 듯 안 바른 듯 가볍고 촉촉한 핸드 크림을 좋아하는 사람, 향이 없는 핸드 크림을 선호하는 사람, 디자인이 예쁜 핸드 크림이면 일단 사보는 사람 등등. 나는 어떤 취향이냐고? 그야 당연히, 제형은 상관없으니 무조건 향이 좋은 핸드 크림을 찾아 헤메는 사람이지.

향수가 브랜드에 따라 향의 방향성이 다른 것처럼, 핸드 크림도 마찬가지. 그래서 크게 세가지 타입의 향으로 나눠 추천해보려 한다. 풀 내음, 나무 냄새, 허브의 느낌이 좋아? 상큼 발랄 기분이 업되는 시트러스 느낌이 좋아? 달달하고 부드러운 구어망드 느낌이 좋아?


[1]
내 손에 숲을 담아, 이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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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스타그램 인테리어 사진에 빠지지 않는 소품 중 하나! 바로 이솝 핸드 밤이다. 크림이 아니라 ‘밤’이라는 이름이 붙은만큼, 제형이 아주 꾸덕꾸덕하다. 하지만 잘 펴 바르면 흡수성은 좋은 편. 사실 한번 구겨지면 펴지지 않는 알루미늄 튜브는 사용하기 다소 불편하다. 그런데 그게 또 멋스러운 감성인 걸 어쩌겠어. 가장 작은 사이즈가 75ml라 휴대하기 무거운 것도, 오래 쓰다보면 구겨지다 못해 찢어지는 알루미늄 재질도 예쁘니까 다 용서가 된다. 아 물론, 향도 좋다.

레저렉션 아로마틱 핸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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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솝 핸드 밤’이란 거의 이 핸드 밤을 뜻한다. 그정도로 레버런스 아로마틱 핸드 밤에 비해 대중적이고 많이 팔린다. 이유는 향 때문이다. 시트러스, 허브, 그리고 약간의 우디 향이 어우러져서 누구나 편하고 기분 좋게 쓸 수 있는 향기니까. 패키지에는 만다린 린드(껍질), 로즈마리 리프, 아틀라스 시더우드(히말라야삼목)가 들어있다고 써있다.

의외로, 손에 바른 직후의 향은 생각보다 시트러스하지 않다. 물기 어린 허브향이 지배적이며, 꽤 쌉쌀하게 시작한다. 막 딴 허브 바구니에 시트러스가 약간 들어있는 느낌? 그런데 재미있게도, 허브향이 점점 빠지면서 시트러스의 향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다린, 오렌지, 감귤류의 오렌지 색 시트러스 느낌인데 약간의 달달함도 풍겨서 기분이 좋아진다. 시간이 지나면 허브는 아주아주 약해서 거의 느껴지지 않고 시트러스만 살짝 남는, 로션 냄새로 남는다.

레버런스 아로마틱 핸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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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이솝 핸드 밤을 쓰는 사람 중, 레버런스 아로마틱 핸드 밤을 쓰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이유는? 당연히 향 때문이다. 첫 향부터 아주 강렬하기 때문에, 발라보고 바로 시향한 사람이라면 안 살 가능성이 높거든. 패키지에는 베르가못 오일, 베티버 뿌리 오일, 페티그레인 오일(비터오렌지 잎/잔가지 오일)이 들어있다고 써있다. 뒷면의 성분 표시를 보니 추가적으로 왕귤 껍질 오일/ 오스트레일리아 샌달우드 목부 오일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솝에서 나온 핸드 밤은 두 개 뿐이니 향이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전혀 다르다. 바른 직후에는 스모키한, 나무를 태운듯한 냄새가 강하게 올라온다. 매력적인 스모키 향이지만 호불호가 엄청 갈릴 듯. 나는 순간적으로 아일라 위스키의 피트 향이 떠올랐다. 그 향처럼 약간의 병원 냄새도 나거든. 그 향이 점점 옅어지면서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서서히 올라온다. 그래도 여전히 스모키한 향이 지배적이라… 이거 바르면 누가 캠프 파이어 하고 왔냐고 물어볼 거 같은데? 하지만 반전은 잔향에 있었다. 스모키한 향이 거의 다 빠지고 나니까 물기 어린 나무 냄새가 아주 중독적이다! 르라보 상탈33처럼 우디 좋아하는 사람이면 완전 반할만한 향이랄까. 자꾸 킁킁대게 만드는 향이다.

여담이지만 에디터B님이 이 핸드 밤을 쓴다던데. 약간… 숲에 사는 곰(돌이)에게서 나는 향이 상상됐다. 왜 있잖아, 온 몸에 자잘한 나뭇가지랑 나뭇잎 붙이고 둥근 흙 동굴에서 푹 자다가 막 나온 그런 곰… 아… 아닌가요…?


[2]
시트러스 핸드크림 맛집, 프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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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쉬의 향수를 소개하는 글을 썼을 때, 심지어 에디터H님도 “프레쉬에서 향수도 나오는지 몰랐어요!”라고 반응하셨었는데. 그럼 여러분, 프레쉬에서 핸드크림이 나오는 건 알고 계신가요? 보통 핸드크림은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향 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바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프레쉬의 핸드크림들은 상큼한 향이 중심이기 때문에, 가볍고 발랄한 기분이 들어서 좋다. 본인이 시트러스 처돌이다? 겨울에 축축 쳐지는 기분이 싫다? 그럼 프레쉬로 가시죠. 가장 작은 용량이 30ml라 휴대하기도 아주아주 좋다. 아, 물론 가격은 예외….

헤스페리데스 그레이프 프룻 모이스처라이징 핸드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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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쉬 공식 사이트를 찾아보니 탑노트에는 만다린, 이태리 레몬, 자몽이, 하트 노트에는 베르가못, 연꽃, 자스민이 들어있다. 베이스 노트에는 루바브, 머스크, 그리고 복숭아가 있고. 대충 훑어보면 상큼 -> 꽃 향 -> 달달 흐름이 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역시 바른 직후 첫 향부터 자몽 과육이 팡팡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게 상큼하다. 자몽 속살의 그 붉고 반짝거리는 알갱이가 느껴질 법한 그런 향이랄까. 이정도면 핸드 크림에서 느낄 수 있는 상큼함의 최대치가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아주 분위기 있는 자몽향으로 자리잡는데, 루바브와 연꽃, 자스민 노트 덕분인 듯하다. 유치하지 않은 자몽, 시트러스 향이라면 바로 이런 거겠지. 헤스페리데스 향수는 ‘너무 시다’는 평이 종종 있는데, 핸드크림은 훨씬 부드러운 편이라 사용하기 더 좋다.

슈가 레몬 모이스처라이징 핸드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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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의 첫 콘텐츠를 프레쉬 슈가 레몬 향수로 썼던 기억이 있다. (해당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클릭!) 프레쉬 공식 사이트를 (또!) 찾아보니 탑노트에는 이태리 레몬, 유자, 만다린이, 하트 노트에는 리치 플라워, 오렌지 블라썸, 진저 플라워가 있다. 상큼함에서 바로 달콤한 꽃향기로 이어지는 건가? 베이스 노트에는 오크모스, 카라멜, 화이트 상탈이 있고.

첫 향에서는 의외로 레몬보다 달콤한 냄새가 확 풍겨온다. 시트러스 다 어디갔지!? 개인적으로 슈가 레몬의 달콤함을 ‘크림 소다’에 비유하곤 하는데, 맡아보면 정말 그 향이 난다. 슈가 레몬의 ‘슈가’는 설탕 알갱이 느낌이 아니고 슈가 파우더의 느낌의 설탕이다. 레몬과 시트러스는 튀지 않을 정도로만 들어있어서, 무겁지 않게 만들며 상쾌함을 더해준다. 레몬향 이렇게 조절하기 힘든데, 정말 시트러스 맛집…. 잔향은 처음의 달콤한 향이 리치 플라워, 오렌지 블라썸 등의 희고 달콤한 꽃향기로 이어지면서 부드럽게 살결에 남는다. 의외로 잔향이 가장 오래가고 매력적이었다.

시트론 드 빈 모이스처라이징 핸드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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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쉬 공식 사이트를 찾아봤는데… 얘만 노트 표기가 없었다. 아니 왜 차별하는거야! 시트론 드 빈이면 무슨 뜻이지? 포도밭의 레몬? 레몬 덩쿨?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향을 맡아봤는데 예상과 아주 달랐다.

바르자마자 풍겨오는 그린한 향! 초록빛의 시트러스와 녹차스러운 쌉쌀함이 섞여서 무척 매력적이다. 흔히 생각하는 시트러스의 속살이나 껍질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시트러스 나무의 나뭇잎까지 더해진 향이랄까. 유치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시트러스가 엿보여서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상큼한 느낌도 있지만, 마지막엔 꽃향기와 달콤함까지 더해져서 은은하고 기분 좋은 잔향으로 남는다.

+

이 외에도 핑크 자스민 모이스처라이징 핸드크림, 허니서클 모이스처라이징 핸드크림, 씨베리 너리싱 핸드크림 등이 있다.


[3]
핥아버리고 싶은 달콤함, 로라 메르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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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망, 혹은 구어망드 계열은 달콤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뜻한다. 바닐라, 초콜렛, 카라멜, 라떼, 크림, 슈가, 아몬드 크림, 커스터드… 아 배고파. 달콤함의 끝판왕인 구어망드의 특성 상, 날이 추워지는 겨울철이 올수록 사랑을 많이 받는다. 더울 때 쓰기에는 향이 좀 무거우니까.

구어망드는 정말, 발향력의 끝판왕이다. 그래서 향수 대신 쓴다는 사람도 많다. 조향할 때도 구어망드 계열의 향료를 조금이라도 쓰면 왠만한 애들은 쉽게 잡아먹힌다…. 향료마다 강도, 확산성, 지속성이 다 다른데 구어망드 계열은 전부 강, 강, 강. 그야말로 최강이거든. 하지만 향이 강하다는 건 그만큼… 알죠? 취향이나 예민함에 따라 힘든 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왠만큼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도 로라 메르시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랬거든) 로라 메르시에는 주로 메이크업 제품을 만드는데, 다소 생뚱맞게 ‘오 구어망드’ 컬렉션으로 향수, 바디 수플레, 핸드 크림이 있다. 근데 이 제품들의 마니아가 어마어마하다. 그래, 어떤 향이 있는지 한 번 볼까? 했다가 내 통장도 열렸….

앰버 바닐라 핸드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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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메르시에 구어망드 제품 중, 가장 순한 느낌의 향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대중적인 향이기도 하다. 유튜브에 조금만 찾아봐도 이 향의 바디 수플레(바디 로션)을 벌써 몇 통씩 비웠다는 ‘찐 후기’들이 줄줄 나온다.

공식 사이트에는 바닐라의 따스함이 섞인 앰버 블랜드의 고요한 관능미가 감귤과 타이거 오키드의 후레쉬한 노트, 아몬드와 브라운 슈가의 달콤한 에센스를 만나 풍성해진다고 써있다. 뭐가 이렇게 많이 들어있어… 그리고 마무리 향에는 부드럽고 은밀한 샌달우드가 들어있다고.

손등에 발라보고 바로 깨달았다. 이 향은 탑에 자리잡은 상큼 혹은 새콤한 감귤류의 시트러스가 신의 한 수라고. 처음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오기 마련인 구어망드의 무게감을 산뜻하게 잡아준다. 덕분에 거부감 없이 달콤한 향을 받아들이게 된달까. 물론 시트러스는 아주아주 조금이고 전체적으로는 바닐라 향이 가득 깔려있다. 점점 풍성하고 부드러워지는 바닐라 향 속에 꽃향기도 섞여 있어서 여성스러운 느낌이 난다. 엠버가 너무 달거나 유치하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주면서, 외국 느낌 낭낭한 아이보리 컬러 살내음으로 자리잡는다.

크림 브륄레 핸드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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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브륄레라니,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뿌려서 토치로 구워내 바삭바삭하게 만든 바로 그 디저트!? 먹는 건 너무너무 좋은데 향으로 만들면 어떠려나….

공식 사이트에는 따스한 캐러멜, 솜사탕 그리고 프렌치 바닐라 빈의 에센스가 들어있다고 써있다. 심플한 향 표현인데? 향을 맡아보면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바른 직후부터 캐러멜 향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거든. 진하게 졸인, 짙은 갈색의 캐러멜 냄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 점점 캐러멜의 갈색 느낌이 빠지면서 코팅된 설탕같은 가벼운 달콤함으로 변한다. 다행히 무거운 머스크나 파우더리한 향은 많이 안 쓴 듯. 그래서 무겁거나 답답한 느낌은 덜하다. 그저 달콤하다. 너무 달아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어떻게 보면 달콤함으로 추구할 수 있는 섹시함이란 이런 걸까…?

프레쉬 피그 핸드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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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무화과 향 핸드 크림이다. 사실 내가 만든 무화과 향수(아로의 피그먼트)로 핸드크림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가장 열심히 분석해본 제품이기도 하다.

공식 사이트에는 신선한 무화과 에센스, 살구 과즙, 감각적 일랑일랑의 향이 조화를 이룬다고 써있다. ‘프레쉬’를 담당할 그린 노트가 안보여서 다소 의아했는데, 발라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바른 직후에 라즈베리, 혹은 체리처럼 붉은 베리 계열의 신선하고 달달한 향이 난다. 오호, 이거였군!

하지만, 곧바로 파우더리한 느낌과 코코넛 향이 따라온다. 무화과라기 보다는 신선한 코코넛 같은 느낌? 게다가 로라 메르시에의 다른 향에 비해 확실히 무게감이 있다. 잔향 또한 여성스럽고, 어른스러운 향으로 전개된다. 첫 향이 소녀였다면 잔향에서는 성숙한 여성으로 확 변한달까. 개인적으로는 화장품에 쓰이는 묵직한 머스크 향에 멀미가 느껴져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멋있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향이다. 잘 차려입은 나에게서 이런 향이 난다면 조금은 반할지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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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아몬드 코코넛 밀크 향이 있다. 그건 왜 뺐냐고? 내 마음이야…

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