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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향수, 둘 중 하나만 고른다면?

이솝 테싯과 휠 어떤 게 더 좋을까?
이솝 테싯과 휠 어떤 게 더 좋을까?

2020. 09. 21

안녕. 나는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객원필자 전아론이다. 사실 내 원래 말투와 문체는 디에디트의 ‘~다’체와 거리가 멀다. 원래 어투는 달고 사근사근한 축에 속하는 편인데(아마도), 성격이 그래서가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듣고 싶은 말투를 쓰기 때문인 것 같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잖아. 그래서 디에디트 객원필자 초반에는 친구들에게 놀림도 종종 받았다. ‘~다’체 안 어울린다고….

그런데 나는 평소와 다른 문체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재미있다. 약간 신도 난다. 이런 게 바로 부캐의 맛인가? 오늘 소개할 브랜드 이솝도 원래는 향수 브랜드가 아니다. 그래서 향수 라인업도 몇 개 안 된다. 하지만 최근 가장 핫한 이솝 제품을 묻는다면 누구라도 ‘향수’를 답하지 않을까. 부캐가 나날이 성장해 가는 재미를 이솝도 느끼고 있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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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각각 향수 브랜드들의 베이스가 어디냐에 따라, 그들이 만드는 향의 방향성도 달라진다고 믿는 편이다. 예를 들어, 조말론은 바디 오일이 유명한 피부 관리숍이 베이스였다. 아무래도 몸에 바르는 제품은 어떤 성분인지 궁금해하기 마련이니, 제품명들이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만들어졌을 테고. 지금도 조말론의 향수 이름들은 메인 향조를 중심으로 하는 명확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예로, 인테리어 소품숍으로 시작한 딥디크의 첫 제품은 향초였다. 그래서 딥디크의 제품들은 열에도 잘 살아남는 짙고 강한 향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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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솝은 어디서부터 시작한 브랜드일까? 바로 헤어 살롱이다. 1987년 이솝은 헤어 살롱을 오픈했다. 그래서인지 이솝의 제품들은 헤어 살롱에서 맡아봤을 법한 아로마틱 향을 메인으로 한다. 사실 헤어 제품의 향은 물에 씻겨 내려가는 데다, 수증기를 뚫고(!) 발향이 되어야 한다는 크나큰 난관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리여리한 향조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그게 아마 이솝이란 브랜드가 아로마틱한 허브, 스파이시, 우디 노트들을 중심으로 삼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솝은 머스크도 열심히 쓴다. 앞에 향조들의 강도가 세서 별로 티가 안 나서 그렇지….)

가장 최근에 발매된 이솝의 향수는 로즈이지만, 인기로 치면 테싯과 휠을 아직 이기지 못했다. 온라인상에서도 테싯과 휠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둘의 향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그래서 내가 대신 둘 다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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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발매된 테싯은 5년이 지난 지금 뒤늦게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조향사는 셀린 바렐. 조말론의 바닐라 앤 아니스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그 외에도 클린(섬머 세일링), 코치(포피), 랑콤(아로마 블루) 등과 함께 일한 조향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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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싯은 팡팡 터지는 시트러스로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유자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자는 유자청과 유자차의 영향인지 달큰한 과일인데, 서양에서는 유자를 좀 더 그린하고 씁쓸한 시트러스로 받아들인다. 그래서인지 테싯의 유자 뉘앙스는 뒤이어 오는 허브의 향들과 잘 어우러진다. 얼핏 느껴지는 후추스러운 스파이시 향도 신선함을 더하는 데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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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 노트에는 바질이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향수에서 쓰이는 바질은 먹는 바질의 향과 약간 다르다. 신선한 느낌은 같지만 좀 더 스파이시한 허브 뉘앙스랄까. 실제로 바질 잎을 손에 막 짓이긴 후, 손 끝의 향을 맡아보면 약간 매콤한 느낌이 든다. 바질과 다양한 허브와 그린 노트들 덕분에 테싯을 뿌리면 왠지 풀밭에 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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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노트는 베티버와 클로브. 우리에겐 둘 다 낯선 향조다. 쉽게 생각하자면, 베티버는 약간의 먼지? 느낌이 나는 나무뿌리 향이다. 풀냄새이지만 신선한 느낌은 아니고,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더해져 있다. 나는 더 쉽게 설명할 때 ‘건초 냄새’라고 말한다(물론 건초 냄새와 차이는 있지만….).

클로브는 흔히들 병원 냄새라고 하는 바로 그 향. 단독으로 맡으면 소독약 냄새 같아서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다른 향과 섞이면 포인트를 주는 특징적 역할을 한다. 다양한 노트들이 잔향으로 남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테싯의 잔향은 ‘의외의 비누 향’이다. 허브향이 들어 있는 비누 냄새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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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싯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시트러스 허브 향수, 혹은 시트러스 그린 향수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트러스는 발향력이 높은 대신 지속 시간이 짧고, 허브는 강도가 높은 향조(향의 재료)다. 그 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머스크 향조를 잘 사용해서 지속력과 강도 조절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을 굉장히 조화롭게 이뤄낸 향수인 것 같다. 조향할 때도 그린 노트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그린 처돌이’에게는 매우 호감인 향수! 테싯 특유의 청량함과 상쾌함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듯하다. 허브향 입문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향수이기도 한데, 아로마틱한 향조는 취향이 많이 갈리니 꼭 시향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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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휠은 테싯과 비슷한 향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전혀 다른 향이다. 휠은 2017년에 발매되어 테싯보다는 최근에 나온 제품이다. 조향사는 바나베 피용. 그는 이솝의 첫 향수인 마라케시도 조향했으니, 이솝에서 벌써 두 번째 향을 발매한 셈이다. 그 외에도 르라보 제라늄30, 폴 스미스의 포트레이트 포 맨과 포 우먼의 조향사이기도 하다.

휠은 탑노트에서 타임이라는 허브와 다양한 스파이시 노트가 느껴진다. 타임은 허브 중에서도 꽤 강한 녀석(!)이라 이어질 우디 노트에도 지지 않고 잘 살아남는다. 스파이시 노트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허브와 우디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활기차고 생동감을 주는 역할을 해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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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에는 우디 노트와 남성 향수에서 많이 쓰는 사이프러스 노트가 배치되어 있다. 사이프러스의 싸한 느낌이 허브와 결합되면서 좀 더 청량감을 준다. 우디 노트는 촉촉한 샌달우드 뉘앙스도 느껴지지만, 드라이한 시더우드 향이 훨씬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이런 마른 나무의 느낌은 히노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지는 키포인트는 스모키 노트! 가죽 냄새 같기도 하고 장작 타는 향 같기도 한, 스모키 노트가 매력을 더한다. 그래서 이쯤 오면 뭔가 절에 온 듯한 기분도 든다. 나무에 둘러싸인 절에서 피우는 향냄새랄까. 이럴 때 조향이란 참 재미있다고 느낀다. 향 하나로 공간까지 만들어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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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베티버(아까 설명한 걔), 오크모스(나무에 핀 이끼 냄새), 그리고 유향 나무가 잔향을 담당한다. 특이한 구성이라기보다는 앞서 존재감 뿜뿜하는 우디 노트들을 안정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향조들이다.

휠은 테싯에 비해서 좀 더 거칠고 강한 느낌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감각적인 구성으로 느껴질 법한 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니아가 많지만, 그만큼 불호인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첫 향을 맡자마자 말한다.

“이거 완전 한약 냄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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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깔. 그래서 향의 세계는 무궁하고 재미있다. 사실 나도 내 브랜드 ahro에서 올 겨울 안에 우디 향수를 발매하고 싶어서, 한창 조향 중이다. (아로의 다른 향수들이 궁금하다면 클릭!) 조향의 단점은 언제 완성본이 나올지 몰라 끝을 예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올해 겨울이든 내년 겨울이든 나오기만 하면 감사한 일이지. 아마 이솝 또한 다음에는 어떤 향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이솝에서 ‘로즈’라는 이름으로 장미 향 향수가 나왔을 때 다들 놀란 거겠지.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향을 만드는 브랜드들이 늘어날수록 향의 세계는 확장된다. 그 향을 만난 나의 세계 또한, 이렇게 확장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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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