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청바지라면 귀가 번쩍 뜨이는 객원 필자 김고운이다. 청바지의 매력은 나이가 든다는 점이다. 입을수록 색이 빠지고 부드러워지며, 마치 오랜 친구 같은 포근함을 준다. 이런 청바지의 매력에 빠져 청바지 만드는 수업을 듣고, 그때 만든 청바지를 아래 사진처럼 색이 변할 때까지 입기도 했었다. 청바지는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막상 사려고 하면 무엇을 고를지 막막하다. 그래서 청바지 구매 가이드를 정리해봤다. 아래의 순서대로 오랜 친구가 되어줄 청바지를 골라보자.
STEP 1
사고 싶은 청바지 파악하기
청바지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자신이 지금 원하는 청바지가 무엇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사고 싶다는 뭉툭한 마음일 테니까. 합리적인 소비는 필요한 물건을 구체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1. 입을 청바지가 없다면
가장 흔한 경우다. 옷장 앞에서 바지를 고르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 가지고 있는 상의, 외투, 신발을 하나로 연결해 줄 청바지가 필요하다. 이때는 무작정 쇼핑 플랫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훤칠하고 개성 있는 모델들이 입고 있는 여러 색깔, 핏, 디자인의 바지들을 보면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 대신 옷장과 신발장을 둘러보자. 가지고 있는 상의와 신발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어울리는 청바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선 색깔을 정하자. 다른 옷들과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색깔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청, 중청, 연청 이 세 가지는 필수로 구비해놓는 것이 좋다.
2. 근본, 근본, 근본
청바지엔 ‘근본’이라는 단어가 붙기도 한다. 바지에 무슨 근본이란 말인가. 여기에는 일본의 영향이 지대하다. 일본은 미국의 캐주얼한 패션을 정말이지 동경했다. 1980년도부터 미국에서 빈티지 청바지를 닥치는 대로 수입하더니 옛날 청바지를 재현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근본을 추구하는 청바지는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청바지는 주로 구형 방직기로 짜인 셀비지 원단으로 만들어진다. 생산속도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원단 끝 흰색 부분으로 대표되는 셀비지 원단만의 포근한 느낌이 있다.
대부분 워싱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진청으로 착용한다. 입고 세탁하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벗겨진다. 이를 페이딩(fading) 혹은 에이징(aging)이라고 하는데, 옷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이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즐거움을 옷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좋아한다면 깊고도 넓은 셀비지 청바지의 세계로 떠나보자.
3. 뭔가 다른 청바지를 입고 싶다면
과거를 동경하는 청바지가 있는가 하면 앞장서서 트렌드를 이끄는 청바지도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나 명품 브랜드의 청바지가 그렇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실루엣과 구성. 구매하고 착용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런 시도가 패션을 발전시키고 우리를 미래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청바지는 이런 자유와 해방의 가치를 담기에 적합한 그릇이다. 1950년대 말론 브란도나 제임스 딘 같은 당대 청춘스타들이 청바지를 착용하며 청바지는 청춘의 아이콘으로 노동자를 넘어 대중에게 확대되었다. 또 1960년대에는 반전 운동으로 대표되는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했다. 고단한 삶에 전투력이 필요하다면 청바지의 도움을 받아보자.
STEP 2
브랜드 정하기
사고 싶은 청바지를 정했다면 브랜드를 정할 차례다. 위에서 분류한 것처럼 청바지는 접근 방식에 따라 변하는 폭이 다른 옷들보다 크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브랜드에 따라 다르니 청바지에 있어서 브랜드는 중요하다. 가격 또한 브랜드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예산을 감안하더라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1. 미국 – 리바이스, 리, 랭글러
청바지의 본고장 미국으로 넘어가 보자. 대표 브랜드 3개를 꼽자면 리바이스(Levi’s), 리(Lee), 랭글러(Wrangler)이다. 모두 100년이 훌쩍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공이 담긴 바지를 10만 원 전후로 구매할 수 있고, 청바지뿐만 아니라 재킷과 같은 의류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모두 다양한 국내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어 여러 후기가 있으니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면 참고하자.
2. 한국 – 데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셀비지 청바지는 일본에서 부활했다. 국내에도 이런 작업 방식을 적용하여 생산하는 브랜드가 있으니, 데밀(Demil)이다. 자체 소장하고 있는 여러 빈티지를 바탕으로 패턴부터 생산까지 직접 수행한다. 그리고 위탁 생산하는 릴라이언트 제품도 있는데, 10만 원 대의 가격에 다양한 색과 핏을 선택할 수 있다. 데일리 청바지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리는 제품이 아닐까. 끝을 본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평범함이 아름답다.
3. 일본 – 시오타
시오타(Ciota)는 일본에서 청바지 관련 공장들이 대거 밀집해있는 오카야마에 본거지를 둔 브랜드다. 원단 공장과 봉제 공제 공장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모든 공정을 철저하게 신경 쓴다. 시오타의 제품은 모두 자체 개발한 원단을 사용한다. 인도 남부에서만 수확할 수 있는 수빈(Suvin) 코튼을 사용하여 매우 부드럽다.
시오타의 차별점은 여성용 청바지다. 골반 부분을 여성 체형에 맞추어 퍼지는 형태로 제작했다. 착용하기에도 편하고, 상의를 넣어 입거나 셔츠나 재킷 같이 포멀한 착장에도 잘 어울린다. 색상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으니 여성용 데님을 찾고 있다면 시오타를 추천한다.
4. 필리핀 – 레온데님
청바지 마니아라면 위에서 언급한 브랜드들은 익숙할 수 있다.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갈증이 있다면 동남아를 주목하자. 동남아 청바지가 점점 떠오르고 있다. 동남아에는 페이딩을 즐기는 청바지 마니아들이 많다. 습하고 더운 기후에서 착용할수록 대비가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동남아 브랜드는 필리핀의 레온데님(Leon Denim)이다. 청바지 마니아들이 함께 만든 레온데님은 청바지를 비롯하여 밀리터리를 활용한 제품까지 직접 제작한다. 이러한 열정으로 일본의 브랜드들과 협업할 정도로 성장했다.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외배송도 가능하니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STEP 3
핏 정하기
브랜드로 청바지의 품질과 가격이 결정된다면, 핏은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 청바지는 대중적인 옷인 만큼 유행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다. 그만큼 다양한 청바지가 있으니 평소 스타일에 맞추어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의할 점은 이름을 신뢰하지 말라는 것. 청바지의 제품명에는 주로 ‘스트레이트’ 같은 핏 정보가 있다. 하지만 브랜드마다 용어에 대한 핏이 모두 다르고 라이트, 레귤러, 슬림, 와이드 등 각종 단어들이 앞에 붙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직접 착용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사이즈 정보나 후기를 꼭 참고하자.
간혹 수축을 예상하고 큰 사이즈를 구매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봉제 후 세탁하지 않고 판매하는 ‘논 워시’ 제품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모든 옷은 봉제 후 첫 세탁을 할 때 수축이 발생한다. 하지만 논 워시가 아닌 대부분의 청바지는 워싱 과정에서 모두 세탁을 거쳐 수축이 된 상태다. 홈페이지 적힌 치수는 수축 이후 최종 치수이기 때문에 자기 사이즈에 맞게 편하게 선택해도 된다.
검증을 위해 직접 세탁과 건조를 하면서 청바지와 치노팬츠의 수축률을 계산해보았다. 결과는 어떨까? 두 바지의 수축률엔 큰 차이가 없었다.
TIP
세탁법
청바지의 세탁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빨면 안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냄새가 날 수 있으니 냉동실에 넣어야 한다, 햇볕에 살균해야 한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하지만 경험상 몇 가지만 주의한다면 다른 옷처럼 빨아도 된다. 결국 옷이니까.
1. 중성 세제를 사용하자. 청바지에서 ‘청’을 담당하는 인디고 염료는 알칼리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알칼리 세제를 사용하면 물 빠짐 증상이 있을 수 있다. 물이 빠지는 거야 자연스러운 증상이지만, 다른 옷에 이염이 될 수 있으니 중성 세제를 사용하자.
2. 뒤집어서 세탁하자. 세탁기 속에서 옷들은 이리저리 부딪히고 긁힌다. 그 과정에서 색이 빠져 세탁 후 없던 워싱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결이 다른 워싱이 생기면 몹시 마음이 아프니, 뒤집어서 빨래를 하는 것이 좋다. 빨래망까지 사용한다면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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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운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헛바람이 단단히 들었습니다. 누가 좀 말려줘요.